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 1
우르줄라 하우케 지음, 강혜경 옮김 / 해나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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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감성을 자극하는 글들은 어딘가 읽는 동안은 즐거우나 다 읽고 나면 가슴을 깊숙히 찌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간지럽다고 표현하면 될까? 그래서 방송국등에서 이미 한번 발표된 글을 다시 묶어 내는 것은 특히 잘 잡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어딘가 모르게 끌리는 게 있었다. 그 끌림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기에, 실패할 각오를 하고 읽었다.

근데... 첫 느낌은 일단, 유쾌함이었다. 세상을 너무 비관하지마,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단다, 너무 튀는 건 좋지 않아... 따위의 얘기를 늘어 놓는 아빠를 향해서 사회 현상의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으로 아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아이의 감각적이 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아빠가 아마 내가 주위에서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편한 것과 불편한 것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고 외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그 답답함을 유쾌한 비꼬기로 풀어내고 있는 기지가 일단 나를 즐겁게 했다.

근데, 한참을 읽으면서 만나는 새로운 느낌은 어딘가 좀 씁쓸해지는 것, 그것이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서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나와 독자들 역시 이 아빠와 다를 바가 있을까? 이런 사회적 안목 역시, 중산층 독자들의 장식품쯤으로 전락해 버린 게 아닐까? 인종,성, 성적취향, 노인, 청소년, 교육, 전쟁, 정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풍자적일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풍자할 수 있을 만큼 이 문제의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문제를 관조할 수 있을만큼 우리 사회 시민의식이 발전되어 있는 걸까? 씁쓸하다.

책을 덮고 나니, 갑자기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잔인하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하지만 카드빚에 내몰려 아이와 함께 자살한 엄마,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식칼테러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성적 취향을 고민하다 자살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는 신문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고 웃는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 책의 소개글이 '아이와 중산층 아빠의 웃음 터지는 대화'라고 했는데, 이런 책을 읽고 정말 끝까지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 무감각하거나, 서구풍의 우스개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제기에 한 번 귀기울여 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다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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