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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 풀과 벌레를 즐겨그린 화가 ㅣ 어린이미술관 3
조용진 지음 / 나무숲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사회에서 신사임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신사임당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현모양처, 율곡 이이라는 대학자의어머니... 남성 사회에서 강요된 그녀의 삶은 여학교에 세워진 동상과, 현모양처라는 말에 갇혀서 오랫동안 난도질 당해왔다. 그녀가 훌륭한 화가였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평가 역시, 그녀가 자식을 팽개치고 남편을 봉양하지 않고 그림만 그렸더라면 칭송되지 않았을, 한낱 잡기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십대를 지나면서 '신사임당'이란 이름은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젊은 여성인 나에게 너무도 불편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삼십대가 되면서 그 이름이 다시금 돌아봐진다. 그 시대에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어떻게 억압당했던가를 생각하면, 그녀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온화한 미소뒤에는 온갖 고뇌와 갈등을 감추고 살아왔던 인간이 아니었을까,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책은 사실, 신사임당이란 인물에 대해 정공법으로 접근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또, 어느 시대건 여성들의 눈높이가 여리고,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생명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풀과 벌레들, 그리고 관념과 철학이란 것으로 위장되어 있는 남성들의 허위가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세상을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다. 하나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신사임당의 자아와 삶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이제 온전히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한 위인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늦게 나마 신사임당의 작품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