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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소리가 들리니 엘린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라합 옮김 / 일과놀이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노동이 사회학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이전 부터 '일'은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구드룬 파우제방의 글은 평화, 평등이라는 그녀의 철학이 늘 일관되게 드러나 있어서 의심없이 읽는다. 이 책도 그녀의 이름만으로 골라잡은 것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래봤자, 아버지의 실직이 전부이지만 그것만으로 얼마나 가족들의 삶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지 놀랍도록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업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 실업으로 인한 가족들의 불안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게 써 내려가고 있는 작가의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처럼 사회안전망이 더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조차도 '실업이 이렇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관계, 그리고 인간의 자아를 망쳐들어가는데, 하물며 우리 사회는... 책을 읽는 내내 지난 구제금융시대를 맞이하면서 해체되어가던 우리 이웃들의 아픔이 오롯이 박혀왔다.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밝히고 있는 동화들이 막연한 희망과 설교를 늘어놓는 단점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이 동화는 현실이 아픔을 과장되게 그리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한 가족 구성원들의 노력을 강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삶의 희망이란 완전한 시대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불완전한 시대. 인간의 삶이란 늘 그 불완전한 시대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완전한 희망을 찾는 것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 더 나은 학력, 더 나은 직장이 이 불완전한 시대에서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허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허상에 목매달기보다는 따뜻한 인간애가 불안을 이겨낼 힘이라는 진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면 '강물소리가 들리니, 엘린'을 한번 권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