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비오는 날 창비아동문고 163
이가을 지음 / 창비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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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비가 오는 날, 나는 책상 앞에 놓아둔 달개비 화분을 창틀에 고리를 걸어서 비를 맞게 한다. 이가을 선생님의 <가끔씩 비오는 날>처럼. 내 달개비 '초록이'도 이 도시 한가운데서 잠시나마 행복하라고.

이가을 선생님의 작품은 어릴 때 부터 좋아했었다. 읽으면 마냥 착해지고 싶게 만드는 그 작품들 때문에 아마 그나마 착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서 작가께 감사한다.

어른이 되어서 오랜만에 서점에서 이가을 선생님의 작품집을 만났다. 주저없이 책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두대 걸르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는 바로 옆 커피솦으로 들어갔다. 도저히 집에 까지 가는 삼십여분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읽은 책이었다. 커피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건 물론이고.

가끔씩 비가 오는 날, 쓸모 있는 못이 되는 '나'는 늘 쓸모있는 못이 모르는 행복을 알고 있는 존재이다. 이 작품은 '늘 쓸모 있는 못'이 되기를 원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 모습에 정면으로 딴지를 건다. 그게 바로 내가 이 작품에 빠져들었던 매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뒤, 이 작품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조카의 국어책을 빌려 읽어보니... 아, 나는 정말 우리나라 교육정책과 교과서라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분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을 제멋대로 줄여 놓은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 구절, 바로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인 그 구절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비오는날 쓸모있는 못이 되는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늘 쓸모있는 못이 모르는 행복입니다.'

끊임없이 일등만을 강요하는 한국교육입안자들이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가 아니었든가. 늘 일등만 하는 아이가 모르는 행복이 가끔씩 눈에 띄는 열등생들에게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가당키나 할까? 그렇다면 이 작품을 교과서에 싣지나 말지... 정말 내가 사랑하는 나를 감동시킨 작품하나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난도질 당해 다가갈지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나는 진실을 믿고 싶다. 어제도 봄비가 내렸다. 내 초록 달개비를 창밖에 내어 걸면서 나는 늘 쓸모 있는 못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가끔씩 쓸모있는 내 인생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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