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김명숙 / 동아일보사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가,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차별하지 않고)에게 늘 권해왔던 책이다. 한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과 '현실 속에서 익숙해져 있는 내 모습'사이에서 아프게 방황했었다.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적당한 고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가운데 이 책을 만났다.

서점을 들렀다가 책 제목을 보고서 정말 우연히 집어들었다. 그러나 집을 때만 하더라도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똑똑하다는 여성들이 쓴 책들이 대부분 도발적인 제목과 '나 잘났다'는 식의 이야기로 가득한 것을 익히 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 가운데서도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지은이의 자기고백 비슷한 프롤로그에서 본 한 글귀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 말때문에 나는 이 책이 여자로 태어나서 억울하다는 넋두리 비슷한 다른 책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내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은 내가 알고, 느끼고,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을 훨씬 더 깊이 있고 애정을 가지고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용기있게 그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격려하고 있었다.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권하면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큰 장점을 몇가지로 설명해 준다.

첫째, 이 책은 지은이가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느끼고 조사한 자료들이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여성들이 희망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꿈처럼 여기며 부러워만 하는 이야기들이 사실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는 투쟁의 결과로 여성들이 누리며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적당히'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 여자가 남성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욕 얻어먹지 않고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한마디로 똑똑한 여자가 남자들에게 빌붙어 살수 있는 방법 따위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은 누구나가 평등하고 그 평등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모든 것과 싸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잘나고 똑똑한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결하고 함께해 나갈 때 가능하다는 운동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내가 날마다 부딪치고 절망하는 '여자인 나'는 절대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이고 그 해결 방법도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모든 삶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익히 알고 배워왔지만, 정작 나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여성인 나'를 대할 때 얼마나 탈정치적이었던가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 삶에 든든한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는 예전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맑스의 책들을 통해서 그런 감정을 느끼고 감격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외우고 살았던 맑스의 좌우명을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인간과 관계된 것치고 나와 무관한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그러다 수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그 때의 기분을 맛보게 된다. 나는 매일 되뇌이고 살고 싶다. '나는 인간이다.' 노동자도 인간이라던 우리사회의 거대한 담론처럼 이제 여성인 나도 인간이다라고 되뇌이고 싶다. 그리고 사회속에 그것이 거대한 담론으로 자리잡기를 원한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나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내 동지들이 내 속에 공존하는 '일하는 나'와 '여성인 나'를 모두 인간으로 존중하고 인정해 줄 그날까지 나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그러나 행복하게 살고싶다. 진심으로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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