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성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데자뷰를 종종 경험한다. 남편이 주말에 애들하고 놀아주지도 않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붙어있는 꼴이 짜증난다는 얘기, 시어머니가 동서들과 비교하며 늘 인격적으로 모욕해서 화가 난다는 얘기, 아이들이 공부한답시고 엄마를 무슨 종 부리듯이 해서 서럽다는 얘기……. 그네들이 하는 얘기들은 듣다 보면 ‘어라, 지난번에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는데…….’ 하는 기시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시감 가운데 가장 익숙한 대사가 있으니, 온갖 문제 거리들을 다 털어 놓은 그네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아이구, 그래도 어떡해? 별 뾰족한 수 있나?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결혼한 여성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듣다보니 내게 결혼이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한 아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결혼을 하면 왜 그렇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 걸까? 왜 그렇게 분노하고 절망할 일들이 많은 걸까?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혼자서 살아가는 나라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일이 왜 없겠나? 하지만 그네들처럼 똑같은 문제들이 그토록 장시간 반복된 경험은 거의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문제에 대해서 그토록 오래 분노한 경험이 없다.

 살면서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은 늘 들이닥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선안을 만들어 능동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내 힘으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는,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 이상 화 낼 필요가 없다. 그냥 수용하는 수밖에. 

 

 많은 여성들이 그 ‘어찌할 수 없는 일’에 그토록 오래 화를 내는 까닭은 아마 그 일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닌 데 있는 게 아닐까? 

 반복되는 분노는 자신을 갉아먹는 병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분노 앞에서 “어쩔 수 없지.”라며 포기하는 건 옳지 않다. 정말 그 일이 어찌할 수 없다면 화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화가 난다면 그 일은 이미 어찌해야 하는 일이다. 그저 투덜대고만 있을 일이 아니란 거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복해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면 능동적으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 조언에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친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게 다 그렇지? 그럼 주말에 애 안 본다고 이혼해?” 
 “저런 시어머니 만난 게 다 내 팔자려니, 해야지. 그럼 어떻게 해? 며느리 노릇 안 하고 살아?”

 

 

 그네들의 반응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신들은 결혼이란 계약을 했으므로 이미 계약서에 도장 찍은 마당에 어쩌겠냐는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가정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하는 게 결혼 계약의 조건일 터이니,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계약에는 가정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조건밖에 없는가? 그 계약에는 구성원의 진정한 행복이란 조건은 없는 걸까? 그렇다면 그 계약은 너무도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평생을 그 계약에 얽매여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습관처럼 화내고 절망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 정말 그네들이 말하는 ‘평범한 일상’인가? 천만에, 그건 노예의 일상이다.

 

 결혼은 노예계약이 아니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과, 남편의 아이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이해, 배려, 헌신해야 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조항이 결혼계약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우리의 관념이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어찌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그 문제들이 정말 그런 것인지, 한번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해 보면 어떨까? 단, 계약 파기를 각오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단언컨대 아마 90% 이상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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