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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Cafe 알파 1
아시나노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몇 십 년 후, 미래의 어느 순간. 지구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해수면이 끝없이 상승하여 인류가 이루어낸 고도의 문명과 그 상징인 도시가 물에 잠겨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땅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잠겨버린 요코하마 시골 마을 귀퉁이에 카페 알파가 있다. 오가는 손님이 하루에 한 사람쯤 있을까 싶은, 마을 사람들만 가끔 들르는 그런 곳. 카페를 지키는 사람은 -아니, 사람이 아니다- 로봇인 알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 주인을 대신해서 카페를 지키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 이 만화는 흐르고 있다.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원두를 사러 시내에 가는 일 말고는 지겹기 짝이 없는 하루다. 그러나 그 지겨운 일상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지 보여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한참이나 쳐다볼 때, 해지는 노을을 바라볼 때,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문득 일어나는 마음의 일렁임을 잡아챈다.
사건이라고 해봤자, 마을 사람들과 해금을 켜거나, 새해 해돋이를 보러가고, 수박을 나눠 먹고, 물가에 가서 물을 바라보는 따위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들. 그러나 이 만화를 읽다보면 그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새삼스럽다. 빗소리가 이토록 사랑스러웠던가, 달콤한 수박 한 조각이 이토록 감미로웠던가, 밤하늘에 둥글게 떠 있는 저 달이 보인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가...
‘카페 알파’는 느리고 느린 만화책이다.
바쁜 일상을 열정과 성실이라는 외피로 포장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의 시간이, 더 많이 기뻐하는 이에게는 기쁨의 시간이, 더 많이 감사하는 이에게는 감사의 시간이 덤으로 주어질 뿐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 덤의 시간만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게 아닐까. 덤으로 주어진 그 시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금은 충만함과 행복이, 그 시간을 뒤로한 후에는 소중한 추억이...
느리고 느려서 행복한 삶이 궁금하다면, 오늘 퇴근길에 카페 알파에 가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