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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지? 포성가득한 그 곳은 늘 전쟁이 상주하는 곳. 삶과 죽음의 경계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을 늘 깨닫게 되는 곳. 늘 슬프고 어떤 희망도 쉽게 자랄 수 없는 곳. 테러의 본고장으로 지목되어 악의 축이 되어버린 나라 정도일 것이다. 어디에도 실낱같은 희망조차, 미소조차 떠올릴 수 없는 그 곳이 소설의 배경이다. 어떤 나라일까?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다.
다리가 아팠고 목이 뻣뻣했다. 그러나 다른 연을 이길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희망이, 한 송이씩 담에 쌓이는 눈발처럼, 커져갔다. <p.101>
세상에 아프가니스탄에 눈이 내린다. 겨울이 있다니. 포탄이 투하되는 사실을 영화 장면처럼 숱하게 보아 왔으면서 그곳의 겨울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혹은 우리는- 그곳을 영화처럼 전쟁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영상정도로만 바라보았다.
그 곳에 한 아이가 있다. 아미르. 대저택에서 하인의 수발을 받으며 아버지 바바와 살고 있는 소년. 그리고, 소년을 돌보는 하인 하산. 아미르와 하산은 어머니가 없다는 공통점 때문에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같은, 친구같은 사이이다. 그러나 결코 형제도 친구도 될 수 없는 주종의 관계이다.
아미르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때문에 아미르는 원죄가 있다.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 그래서, 아버지 바바는 자신에게 늘 거리를 둔다는 사실.
보긴 하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듣긴 하지만 제대로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는 유일한 기회였다. <p.102>
아버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연 날리기 대회.
유리가루를 입힌 연줄로 상대의 연을 끊어버리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과 끊어진 연을 가져오는 것. 아미르는 우승을 한다. 그리고, 끊어진 연을 잡기 위해 하산이 내달린다. 아미르도 하산의 뒤를 따라간다. 막다른 후미진 골목에서 연을 노리는 다른 일당에게 잡힌 하산을 보지만, 나서서 그를 구하지 못하고 외면한다. 아미르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산이 위험에 처했다. 두려웠다. 나서서 도와주지 못했다. 모른척했다. 표면상으로는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제 둘의 관계는 금이 갔다. 하산을 바라보는 게 괴로워서, 볼 때마다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아미르는 하산과 그의 아버지를 집에서 쫒아내도록 그들을 도둑으로 몬다. 못났다. 너무나 못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괴롭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벗어날 기회가 외부로 부터 왔다. 평화롭던 아프가니스탄에 변고가 생겼고,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게는 미국이 과거를 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바에게 미국은, 과거를 애도해야 하는 곳이었다.<p.196>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에서 가난하고 힘들지만 부자간의 정을 쌓아간다. 새로운 출발이다. 그리고, 바바의 임종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 그리고, 거기에 하산의 아들이 있다. 소랍.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과거와 맞닥뜨린다. 아미르는 자신의 오래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이미 상처받은 어린 소랍을 어쩌지는 못한다.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들 - 전쟁, 부모의 공개처형, 고아원, 성적노리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다. 이제 어린 소랍에게 삼촌이 나타났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은 아이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먹먹한 그 상황에서 아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다시 세상 속으로, 자신의 껍질에서 걸어나오려고 한다.
연을 쫓는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과거와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삶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지는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소년 아미르. 성장통을 오래도록 앓아온 아이가 이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책에서는 우리에게 낯선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가 알고 있는 참혹한 삶 이전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네들의 삶도,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책에서,
"부당하긴 하지만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이, 때로는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평생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아미르." <p.216>
너희 둘을 모두 사랑했지만 바라던 만큼, 공개적으로, 아버지로서 하산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반쪽인 아미르 네게 그것을 분풀이했던 것이란다. 너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과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온 특권들을 상징하는 반쪽이었으니까. 너를 볼 때마다 자기 자신과 죄를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그리고 네 아버지가 가진 좋은, 진짜 좋은 자질은 회한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네가 이해하길 바란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 아미르 잔.<p.450>
소랍잔.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고 어떤 나쁜 사람들은 변함없이 항상 나쁘단다.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들에게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네가 그 사람에게 한 일은 여러 해 전에 내가 그 에게 해줬어야 할 일이었다. <p.476>
그를 확실성의 혼란으로부터 들어올려서 불확실성의 혼란 속으로 떨어뜨렸다. <p.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