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과 풍경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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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하면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테니스선수), 요즘 한창 날리는 나달(테니스 선수),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있는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반지의 제왕 라울(축구선수) 같은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 목동이 헤매이던 안달루시아 평원(로르카가 둘러본 곳이 주로 안달루시아 평원이다.)과 그 유명한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대체로 스페인에 대한 이미지는 오후의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광장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무희가 '플랑밍고'를 추고 있는 모습이나 소와 씨름하는 '투우사'처럼 남성적이거나 정열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이다.

 

이름도 생소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과의 만남은 지금까지 스페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로르카가  20살때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인상과 풍경'은 그가 스페인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여행서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풍자와 해학이 있는 류도 아니고, 여행지의 사진과 함께 감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들과도 다르다. 스무살 청년의 눈으로 진지하게 사색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마음 속을 뒤덮을 것이며,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가는지 보게 될 것"이라고 했고, 읽는 동안 수긍하게 된다. 참, 쓸쓸하게도 바라본다. 나에게 정원은 풍성한 이미지. 풍만한 비너스의 모습처럼 풍요롭고 아늑해서 휴식과 사색하기 좋은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로르카의 정원은 이전의 풍요롭고 잘 가까워진 아름다운 정원이 모습이 아니라 이전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다. 사람의 손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이젠 방치된 모습. 그래서, 더 을씨년스럽다. 쓸쓸하고도 쓸쓸한 정원이다.

 

로르카의 눈으로 바라본 스페인은 예전의 영화로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쇠락함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특히나, 교회에 대한, 종교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이 인상적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밥대신 기도나 하고 있는 모습은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하는 글은 거침이 없다. 도대체 왜, 그들은 세상속에서 자비를 실천하지 않고,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슨 사랑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 라며 시종일관 강하게 비판한다.

스물살 피끓는 젊은 청춘의 시선으론 그건 일종의 이율배반인 것이다.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은 스무살에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스무살"에 썼다는 사실이 나를 사롭잡는다.  나는 그때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했던가? 과거로 회귀해본다. 약관의 나이. 초록공처럼 용수철튀어오르듯 펄덕이지만은 아니었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고 같이 방황하기도 했고, 신영복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사회의 부조리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이 스물의 청년 로르카의 시선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우수에 차있으며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그의 감수성어린 글들은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시절만의 시권이다.

 

감성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향유香油를 받으면 환상의 등불이 켜지리라.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P12>

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사물을,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다른 감성으로 바라보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책에서>

이 곳의 수도사들은 온갖 죄악과 타락에 물들지 않기 위해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슴속에 품은 모든 슬픔과 고니를 유서 깊은 이 무덤 속에 묻고자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다... 영혼은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저 육신을 억누르고 학대한들, 해결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그들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카르투시오 수도사들은 인간의 소심함과 비겁함을 도래는내는 단적인 표본이다. 이들은 속세를 떠나 스스로 고립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열망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카르투시오 수사들이 찾는 하느님은 대체 누구인가? 분명 그리스도는 아닐 것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만약 세상사에 지친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우치고자 이런 첩첩산중으로 찾아들어 왔다면, 그들은 속죄와 고행의 가시밭길이 아니라 의당 자비와 자선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그런 이들에게 이기적이고 냉혹한 고행의 의미가 없는 일이다. 고행과 기도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기도할 때 사람들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만을 청하기 마련이다. 추운 겨울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별을 보고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시야에서 사리져버린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비로운 마음이다. <p42~44카르투하 수도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것이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게 일어나는 거품 위에 수줍게 서 있는 나신의 비너스상도 결국 우리 인간의 머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던가? 누구도, 절대 그 어느 누구라도 달콤한 맛과 쓰디쓴 맛을 동시에 지닌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러한 죄악의 본질로 만들어지 ㄴ조내이기 때문이다...죽은 뒤에는 헛된 욕망만 제외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p.109부르고스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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