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사박사박

- 배나 사과, 바람이 든 무 따위를 가볍게 자꾸 씹는 소리. 또는 그 모양.

- 모래나 눈을 잇따라 가볍게 밟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책에서는 글자들이 사박사박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글자들이 책 위를 아이처럼 사박사박 걸어가는 모양이 보이는 듯 했다.

 

소곤소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 그러나 웬지 그 모양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10살의 여자아이 사키와 엄마의 일상이 담긴 글이다.  가족의 구성단위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부모와 자녀, 부자, 모자, 모녀, 부녀, 혹은 혼자. 책에선 그 중 모녀만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은 수직관계라기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관계이다. 친구처럼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엄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곰군의 이야기는 사키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아픔을 건드린다. 곰군의 성(姓)이 바뀐 것에 사키는 신경을 쓴다. 엄마와 둘이 사는 것에 대해 표현하지 않았던 아이의 아픈 마음을 툭 건드리게 된다. 아버지가 궁금하지만, 애써 외면하는 모습에선 엄마의 사랑으론 부족한 부분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의 천진한 상상력에 미소짓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아니.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너무너무 걱정이 되는  거야. 그래서, 집 안으로 바람을 들어오게 하면 조금이라도 바람이 가라앉지 않을까 해서 창문을 열었던 거거든. 그러면 바람을 가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때까지 난 수돗물이라는 게 강하고 바로 연결된 걸 줄 알았어. 강에는 물이 많잖아. 그래서 강물이 넘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도꼭지를 열었던 거야." (P.95)

 

아, 아이의 마음이 참 고와서, 천진해서 웃게 된다. 이 아이가 작은 것에 마음쓰는 고운 아이로 잘 자라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쩐지 "달의 사막을 고등어 조림이 지나가네요."라는 재밌는 노래의 가사보다는 "달의 사막을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 라는 원동요가 더 잘 어울린다. 조용한 일상이, 친구같은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만, 어딘지 조금은 외로워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일상의 잔잔함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글은 따뜻했다. 그림도 참 따뜻했다. 사키와 엄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책은 말한다. 세상의 선입견에서도 모녀가 행복한 일상들을 살아나가길.

 

=== 이런 섬세한 글을 쓴 작가는 당연히 여자이겠거니,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신현림이나 공선옥을 생각했다. 그림 또한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써내려갈 수 없을테니. 책을 다 읽고 확인한 작가는 남자. 그것도 일본에선 꽤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작가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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