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으로 산다는 것 - 사장이 차마 말하지 못한
서광원 지음 / 흐름출판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트럼프가 심사위원으로 나와 '당신 해고야'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꽤 인기가 있었다. 여러가지 인기 이유를 댈 수 있었지만, 사람들을 가장 열광시킨 것은 아마도 전지전능한 부자 사장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 나름대로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장은 그런 전지전능한 존재다. 수하의 부하들(졸개들, 혹은 머슴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거들먹거리면서 자연(?)스럽게 해고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또한 자신의 마음대로 괴팍스러운 성격에 못이긴 별난 행동도 마음껏(?) 부릴 수 있다. 물론 이건 외부에서 보여진 CEO(혹은 사장)에 대한 일면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또한 아무리 큰 조직이라 하더라도 사장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반직원과는 머나먼 거리를 일부러 유지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기에 당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짐작하기도 힘든 별종일 뿐이다. 관찰하기에 너무 개체수가 작을 뿐더러, 접촉하기도 쉽지 않아 잘 관찰되지 않은 희귀종인 셈이다.

이러한 희귀종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관찰을 담은 책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난 소감을 한줄로 요약한다면...그네들도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하지만 사람이라고 하지만 여러가지 생활모습이나 사고의 틀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별종이라는 사실 또한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외롭고도 힘든 싸움을 해나가기 위해, 결국은 스스로와 대화할 수 밖에 없는 절대 고독한 섬같은 신세라는 부분은 중세의 왕이 왜 마눌님이 아닌 정부를 얻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반증이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가장 좋은 상담자는 바로 자신의 적이지만, 그네들과의 전투 중이라 내가 가진 무기를 다 보여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인해, 술이라는 독을 끼고 살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한다.

신문지상에 홍보성 글만 올리는 줄로만 알았는데...역시 옥석을 가려 읽을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함을 새삼 느꼈다. 그건 웅진식품 회장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잘 삯힌 홍어 같은 글을 읽음으로써 역지사지의 경지에 올라보는 재미도 또한 쏠쏠하다.

직장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지라, 상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덤이었다.

뱀발로 덧붙이면, 상사가 잘 이해되지 않는 신입직원이나 승진은 해야 겠으나 도통 상상의 속을 모르겠다는 사람 그리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고위직 임원들도 한번쯤 눈길을 주어봄직함에 전혀 부족함이 없기에 감히 일독이라는 강추를 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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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인 더 시티
신윤동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품절


불행히도 이 땅은 점점 반일 아니면 친일, 반미 아니면 친미로 나뉘고 있다. 회색지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제국주의도 싫고, 민족감정도 마뜩치 않은 나 같은 회색분자에게 작금의 사태는 뭔가 불편하다.

타오르는 애국심이 무쇠불위의 민족감정으로 포장된 또 다른 집단주의일까봐 불안하다. 차가운 논리 없는 뜨거운 감정은 불안한 미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강한 미국'에 맞설 대안은 '강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평화로운 한국'이다. '침략하는 일본'에 맞설 대안은 '반격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평화로운 한국'이다.

청년들의 서늘한 애국심이 쿨한 대한민국을 만든다. 쌩뚱맞은 헛소리에는 냉정하게 생까자. 가소로운 헛짓은 가볍게 무시하자.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이,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회는 위험하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시처럼,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34쪽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의 '근본'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앗아가는 깡패집단이다. 일상을 전쟁터로 만드는 폭력집단이다. 그들이 어떤 명분으로 미화하든지 간에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김선일 씨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희망한다. '순교자'가 없는 세계, '애국자'도 없는 나라, 근본 없는 놈들의 세상을. 더 끈질기고, 더 지독하게 꿈꾼다. -43쪽

사실 대한민국 뉴스는 아주 정치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보여주지 않느냐로 드러난다. 브라운관 너머롤 공영방송이, 상업방송이 어떻게 진보정당을 왕따시켜왔는지 돌아보자. 여론조사 발표에서 제외하고, 토론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물론 고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서 더 무섭다. 진보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무의식이 더 무섭다...

...그날 국회 의사봉은 절대반지 같았다. 사악한 무리들이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순간, 나 또한 경악하고 절망했다. 세상은 파멸로 치닫고, 악의 제국이 태어나는 줄 알았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 절대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애국가>도 내 마음을 치지는 못했다. 그저 절대반지는 위험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원정대가 필요하다. -58쪽

터져 나오는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 교육부 장관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수능 출제 개선위원회를 만들고, 시험 뒤 공식 이의제기 절차를 신설하겠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물론 근본적인 불만에는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그것마저 인정한다면 '교단'이 깨어질지도 모르니까.

미완의 반란이지만, 그래도 의심을 가진 자, 많은 것을 얻지 않았는가. 점수를 얻고, 개선안을 얻지 않았는가. 의심은 반성을 부르고, 대안을 낳는다. 불신 천당, 광신 지옥-65쪽

30대 초반까지는 친구들 모두가 결혼하지 않았다. 불과 서너 해가 지나면서, 친구는 장가가고 후배는 시집갔다. 나이주의 그래프에 따라서 결혼 했으니 아이를 낳았다. 이제 아이도 보살펴야 하고, 장모님도 챙겨야 하고, 경조사도 신경써야 한다. 30대 중반의 미혼인 내가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이다. 솔직히 처음엔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죄책감은 아니지만 박탈감은 느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끊임없이 무언가와 부대끼는 저들에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나이로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나이의 주기에서 이탈하면 무언가 끊임없이 불편하고, 끝없이 자문하게 된다. 말도 못하는 아이와 '통화'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면서 무언가에 정성을 기울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쓸쓸해한다.

나는 30대 초반까지 나이주의의 잠재적 소수자였지만, 30대 준반에 비로소 현실적 소수자가 되었다. -75쪽

"남자끼린데 뭐 어때~."

남성 동성애자들이 서로에게 성적인 장난을 치면서 하는 농담이다. 이 농담에는 뼈가 있다. 남성과 남성, 동성과 동성 사이에는 '성적'희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한국의 성문화를 희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 말은 동성 간 성폭력이 벌어진 전후에 성폭력을 무마하는 말로 사용돼왔다.

이처럼 한국에서 동성 간 성폭력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성추행을 당하고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있었다.

동성 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꼴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동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는 역설마저 존재한다.

설사 동성 간 성추행을 인정하는 문화 속에 있다 하더라도 남성 간 성추행의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성폭력을 당한 고통에 남성성을 훼손당했다는 수치심까지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남자답지 못해서 당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혹시 내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88쪽

물론 공적인 권력이 사적인 전횡을 뒷받침하는 구조도 문제다. 아직도 한국의 학교, 특히 지방의 사립학교에서 교장은 왕이다. 왕 같은 전권을 행사한다. 그래서 의혹이 있어도 교사나 학생이 문제 삼기 어렵다. 더구나 동성 간 성추행처럼 공공의 합의된 지지를 얻기 어려운 문제는 감히 제기조차 어렵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제기한다고 해도, 제도가 권력을 옹호한다. 문제가 된 교장도 성추행 의혹이 터져 나온 뒤에 버젓이 학교에 출근했다고 한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3년 교장의 성추행 사건 1건은 정직 1일로 끝났다. 2004년의 3건 중 견책이 2명, 정직이 1명이었다. 한마디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성추행을 저지른 교장은 권력을 아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그가 성기를 만지고 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성추행을 당한 사람에게 이중의 모욕감을 주어서 철저하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게다가 그의 행위를 강제 추행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성추행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권력이 작동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동성 간 성추행은 피해자를 이중의 고통으로 몰고 간다. 성추행을 당한 고통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고통까지 더해지는 것이다(물론 이성 간 성추행을 당해도 말하기는 어렵다).

말하지 못하는 슬픔은 이제 끝나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좀 무감해지는 것이 차라리 피해자들의 말문을 열어주는 길인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의 용기로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더 좋아져야 한다. 지금쯤 한반도 곳곳에 자신의 손버릇, 말버릇, 입버릇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게다. "너 지금 떨고 있니?"-90쪽

나는 대마가 두렵다. 담배도 끊지 못하는 주제에 대마까지 피울 자신이 없다. 중독에 약한 나로서는 또 다른 중독이 그저 무서울 뿐이다. 아예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대마를 금지했으면 하는 마음도 굴뚝같다. 하지만 나는 피우지 않지만, 남들이 피우는 것까지 무조건 금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제 막 대마초를 피우지 않더라도, 대마초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대마를 허하라, 아니 대마를 생각하라. 그것이 '열린'사이회다. -98쪽

첫 번째 직장에서는 "나는 고립된 섬이야"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밥벌이를 그만두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어쩌다, 아니 운좋게 <한겨레21>로 옮기게 됐다. <한겨레>니까 월급 반, 운동 반, 그렇게 은근한 자부심을 품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직을 하면서 월급이 줄었다. 직장을 옮기기 전, <한겨레>에 다니고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먹고살 만큼은 주지?" 돌아보면, 소박한 질문이었다. 그때는 언제든 가난할 준비를 하지고 다짐했다. 역시나 우습지만, 그때는 5천원이 넘는 밥은 사먹지 말자는 원칙도 지켰다.

물론 이제는 먹고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1년에 두어 번 비행기도 타야하고, 철마다 예쁜 옷도 사야 한다. 심지어 길 가다 혼자서 분통을 터트린다. 직장생활 10년이면 이 정도는 모았어야 하는 것 아니야? 구체적인 액수까지 생각하다 그 구체적인 액수의 3분의 1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면서 분노가 치민다.

정말 이유없는 반항이요, 방향 없는 분노다. 겨우 10년만에, 나는 그렇게 치사한 중산층 아저씨가 됐다. -107쪽

동남아는 또 다른 깨달음도 안겨주었다. 나는 도저히 생태주의자가 될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여행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부딪치게 되는 저개발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워도 지저분한 화장실과 고장난 에어컨은 참을 수 없었다. 도시를 떠나겠다는 호기가 그저 치기 어린 '낭만'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됐다.

나는 고작 시골을 동경하는 '시티 보이'였을 뿐이다. 도시를 사랑하고, 개발을 좋아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서 경제성장이 꼭 행복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설교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차마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 한 달 봉급으로 20만 원을 받는 사람들에게 차마 '경제성장 해도 살기 고달프긴 마찬가지'라고 설득할 수는 없었다.

해보면 허무한 짓도 못하면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167쪽

번잡한 길에서 이어폰을 꽂으면 아늑한 고립이 찾아오고, 비로소 개인이 됐다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그렇게 엠피쓰리가 만드는 고립감을 나는 사랑한다. 엠피쓰리 덕분에 나의 머나먼 귀가는 때때로 아늑해졌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견뎌낸 날들도 있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만 있으면 복잡한 지하철도 때로는 댄스 플로어로 변했고, 버스는 누군지 모를 절대자에게 경배하는 예배당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에서 셰어 누님이 근엄하게 "Do you believe in love after love?" 라고 물으면 고개를 숙이면서 믿음을 고백했고, 카일리 언니가 "Your disco needs you~"라고 지엄하게 명령하면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살며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REM 오빠들이 "Losing my religion~"이라고 읊조릴 때 하마터면 버스에서 무릎 꿇고 '나도 그렇다'고 고백하며 울먹일 뻔했다. 이렇게 엠피쓰리 플레이어는 타임머신이었다....

...최근엔 이선희의 발라드와 들국화의 노래들을 들었다. 들국화는 시들했고, 이선희는 감미로왔다. 그토록 무시했던 이선희가 좋아지고 내 청춘의 들국화가 시들하다니, 내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반려자는 취향의 무상함도 가르친다.

친구는 친구도 소개했다. 평생 친해지기 힘들겠다고 단념했던 힙합음악도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완벽한 귀가란 먼저 심야의 좌석버스에 몸을 파묻고, 반드시 엠피쓰리를 들으며 돌아가는 길이다. 좌석버스의 좌석에 몸은 적당히 은폐 엄폐되고, 시야는 앞좌석에 비스듬히 가려지고, 옆좌석에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엠피쓰리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흐른다. 나는 아늑함에 취한다. 이대로 영원히 갔으면 좋겠다. -181쪽

나는 쇼핑이 끝나면 죄책감이 밀려드는 타입의 인간인데,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뻔한 전략은 세일하는 물건을 사는 것이다. 최소한 30퍼센트 이상, 웬만하면 50퍼센트 이상, 이것이 나름의 원칙이다. 심지어는 방콕에서도 세일하는 물건 위주로 사는데, 세일 생활자의 비애도 겪는다. 싼 맛에 빠져 취향이 사라져버린다. 물건의 자태보다 세일의 폭에 눈이 멀어 생긴 결과다. 누군가의 훌륭한 옷차림을 보면, '흥 비싸게 샀겠지' 질투해버린다.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또 다른 안간힘, 얼마를 썼느냐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서 세일로 얼마를 절약했느냐(벌었느냐)를 계산한다. 그래도 남는 죄책감을 위해 어쭙잖은 정치 논리도 동원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슬로건, "소비로 제3세계 인민을 돕는다-189쪽

" 뒤집으면 저개발국가의 저물가를 마음껏 착취하겠다는 말씀이다.

나의 소비생활에서 잊기 힘든 아픈 추억이 있다. 어언 두 해전, 인구 7천만의 사회주의인민공화국 베트남의 최대 도시인 호치민 공항의 면세점이 그토록 초라해서 도무지 살 만한 물건이 없을 때였다. 심지어 면세점에서 피폐한 인민의 소비생활을 보았다고 '오버'하면서 가슴 아파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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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학교 - 입문에서 100km 달리기까지
니와 다카시.나카무라 히로시 지음, 민경태 옮김, 스피드웨이브 감수 / 마고북스 / 2007년 5월
절판


스포츠사이클링은 전신운동

레저용 자전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꼭 이 실험을 해보았으면 한다. 어느 정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라이딩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먼저 핸들에 양손의 집게손가락만 올려보자. 이 상태로 느긋하게 달리고 있으면 집게손가락이 눌리면서 손가락에 가해지는 부담이 의외로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반대로 오르막길을 오를 때나 있는 힘껏 페달링을 할 때는 집게손가락으로 핸들을 강하게 당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평상시에는 팔 전체로 이 부담을 받아내고 있기 때문에 눈치 채기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집게손가락만 사용해보면 그 부하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사이클링은 페달링 운동이 강조되면서 하반신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움직임은 적지만 상반신에도 힘이 가해지는 상태(이것을 아이소메트릭 운동이라고 한다)가 지속되는 것이 스포츠사이클링이다. 반명 생활자전거는 대부분의 체중이 안장에 실리기 때문에 상반신이 받아내는 부담이 매우 적다.

그렇다면 생활자전거를 오랜 시간 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먼저 앞에서 언긋한 것처럼 기어가 없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달릴 수 없으며 엉덩이가 아프다. 대부분의 체중이 엉덩이에 실리기 때문이다. 또한 자전거가 무겁기 때문에 경쾌하게 달릴 수 없다. -81쪽

장소는 자동차가 드문 주차장. 자동차 한대가 들어가도록 구획되어 있는 주차 공간에서 유턴을 해보자.

포인트는 하얀 선에 닿을 듯 되도록 크게 도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돌아야 한다. 바퀴 두개로는 매우 어려운 동작이다. 자전거는 속도가 붙어야 좌우로 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천천히 움직이고자 할 때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띄우면 중심이 낮아져서 느린 속도에서도 안정감이 생긴다.

또 원하는 라인을 타기 위해서는 시선이 중요하다. 스키를 탈 때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바라보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므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쪽 방향으로 할 수 있게 되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해보자. 사람마다 더 잘하는 방향이 있는 것 같다. 안전 주행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어느 쪽으로 더 잘하는지 확인해두면 좋을 것이다.

유턴을 할 수 있게 되면 8자를 그리면서 타보도록 하자. 나아가 그 구획 내에 물통 등을 놓고 쓰러뜨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연습한다. 뒷바퀴 자국도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면 상당한 균형 감각이 길러진 것이다. -130쪽

도로교통법상 지켜야 할 주요 의무를 살펴보자.

-신호를 따를 의무(제5조)
보행자+차(자전거는 교통신호에 따를 의무를 진다. 이를 어길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질 수 있다)

- 과속 금지 의무(제15조)
자동차 등(자전거는 과속금지 대상이 아니다)

- 안전거리 확보의무(제17조)
차(자전거 역시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제24조)
차(보행자가 우선임에는 의문이 없다)

- 주정차 금지 장소에서 주정차 금지 의무(제28조)
차(자전거 역시 적용받는다)

- 서행 장소에서 서행할 의무(제27조)
차(자전거 역시 적용받는다)

- 무면허운전 금지(제40조)
자동차 등(자전거는 면허제도가 없다)

- 음주운전 금지(제41조)
자동차 등(자전거는 음주운전 금지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 안전운전 의무(제44조)
차(자전거 역시 적용받는다)

- 승차용 안전모(헬멧) 착용 의무(제48조의 2 제3항)
이륜자동차 및 원동지 장치 자전거(자전거는 안전모 착용 의무가 없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강력한 권고사항이다)

- 제한 속도 준수 의무
학교 앞 구간 등 제한 속도를 준수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자전거 역시 이를 준수해야 한다.

-134쪽

섬을 한 바퀴 돌 때는 시계반대 방향, 호수를 한바퀴 돌때는 시계방향으로 돈다. 그러면 물과 보다 가까운 지점을 달릴 수 있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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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상상초월 동물생활백서
비투스 B. 드뢰셔 지음, 이영희 옮김 / 이마고 / 2007년 4월
품절


거대한 앨버트로스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유년기를 보낸다. 그 후 생식이 가능한 성년기가 60세까지 지속되고 '불임의' 노년기가 80세까지 이어진다. 죽음은 대개 바다에서 맞는다. 방금 우리 머리 위를 맴돌고 사라진 저 '남극해의 로열앨버트로스'가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도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로열앨버트로스 부부는 인간 부부보다 더 오랫동안 신의를 지키며 부부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긴 생애에서 함께 사는 시간은 모두 합쳐도 93일에 불과하다. 석 달이 조금 넘을 뿐이다. 앨버트로스는 선원들처럼 수년씩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는 경혼생활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들처럼 '항구마다 신부'를 두지는 않는다.
앨버트로스는 앵무새나 인간처럼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고, 회색 거위처럼 바람을 피우거나 신의를 저버리거나 삼각관계를 만들지도 않으며, 갈매기가 펭귄처럼 이혼이나 파트너 교환을 하지도 않지만, 무한히 고독하다. 또 암컷이건 수컷이건 결혼생활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지 않으며 지배하려고도 복종시키려도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평생토록 애정과 신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결혼생활의 첫번째 비결이다. 그러니까 앨버트로스는 수많은 암탉들을 거느리며 잘난 척 뻐기는 수탉이나 바다코끼리 그리고 동방의 폭군과는 정반대의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52쪽

앨버트로스는 결혼을 하기 전에 특이할 만큼 오랫동안 서로를 고른다.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지 오직 감정에 의존하여 아주 세심하게 살핀다. 둘 사이에 조화가 존재하면 교미동작에서 그 사실이 입증된다. 성적 행위가 없는 결혼 전 짝짓기, 즉 약혼도 관례다. 정확히 11월 30일이 되면 매년 4000마리의 수컷 앨버트로스가 뉴질랜드에서 700킬로미터 떨어진 캠벨 섬에 모습을 드러낸다......열흘 뒤 12월 10일이 되면 고르륵, 끼끽대는 새들의 소리가 항시섬을 공략하는 폭우의 소음을 압도한다. 흥분한 수컷들의 진동음을 내는 것은 것이다. 암컷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은 정확히 지켜진다. 정확히 1년 40일간의 작별을 끝내고 부부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들은 황새들처럼 소리를 내고 주둥이를 부비고 목의 깃털에 서로의 얼굴을 파묻고 귓속말을 소곤대고 나서는 일상적인 결혼생활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작년에 다른 부부가 사용했던 둥지를 고치고 단 하나의 알을 낳는다. -53쪽

평생을 지속하는 이상적인 혼인생활은 대체 어떻게 시작될까?
지난해에 결혼한 암컷들이 등장하고 난 바로 뒤에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미혼의 암수 '틴에이저'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대형 '선보기' 대열에서 점차 5~15마리씩 소규모 '유희그룹'을 만들어간다......처음에는 예의범절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마음에 찍은 상대를 절대로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며 곁눈질로만 살핀다. 매부리코처럼 휘어진 커다란 부리는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므로 파트너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 상대가 겁을 먹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주의한다. 아니면 부리를 하늘로 올리고 큰 소리로 고르륵대는 황홀경에 들어가 '당신을 그리는 내 마음이 이토록 강렬하다'는 표시를 한다. 그리고 부리와 깃털을 서로 비빈다. -54쪽

그들은 둘이 결혼에 합의하기 전가지 몇 주일간 반복적인 예식을 치른다. 이때는 파트너를 바꿀 수도 있으며, 사실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은 자주 파트너를 바꾼다. 그들은 말 그대로 '좀더 나은 상대'를 찾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한다. 반세기에 이르는 평생의 혼인을 결정하는 일이니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 쌍의 앨버트로스가 구애의 춤에서 서로 조화를 느끼게 되면 영원히 지속될 공동의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거대한 결혼시장에서 서로의 짝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으므로 알을 낳고 부화를 하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짧은 여름이 끝나면서 벌써 첫 눈보라가 친다. 따라서 신혼부부는 각기 헤어져 끝없는 남극의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이들은 다음해 부화기에야 재회할 것이다. 그때는 오랫동안 뜸을 들이지 않고 곧장 혼인식을 올려 부화 시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56쪽

나는...바다표범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다. 일고여덟 마리의 암컷들이 수컷 한 마리를 임금처럼 모시고 사는 이유가 정말 성적 쾌락 때문일까? 혹시 수컷이 휘두르는 폭력 때문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모순 같지만 많은 수의 암컷 바다표범들이 하렘에 살면서도 낯선 수컷과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그와의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그 낯선 수컷이 언젠가는 후궁으로부터 자신을 유괴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 동물학자들은 이제까지 바다표범의 성생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왔다. 수컷 바다표범은 피나는 결투를 통해 해변의 자기 구역을 정한다. 얼마 뒤 찾아온 암컷들은 그중 마음에 드는 수컷을 골라 자발적으로 그의 노예가 된다. 건방진 암컷은 지느러미로 곤장을 맞거나 수컷의 거대한 몸통에 깔리는 벌을 받는다. 도망을 치려던 암컷이 수컷에게 붙들리면 다시 끌려와 하렘의 다른 암컷들 틈에 내동쟁이쳐진다. 이는 고전적인 일부다처제와 강장의 성(性) 독점이 결합한 형태다. 해변은 성적 폭력으로 가득하고 가장 힘이 센 수컷이 모든 암컷을 독차지한다. 암컷들이 수컷의 잔인한 지배에 스스로 굴복하는데 그렇게 해야만 힘이 센 자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모두가 이렇게 믿었다. -84쪽

199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동물행동연구가 빌 아모스는 "다틀렸다"고 외쳤다. 그는 남성적 선입견을 버리고 노스로나 섬의 바다표범 서식지에 사는 동물들을 진지하게 관찰한 결과 좀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는 하렘의 왕을 둘러싸고 놀고있는 어린 바다표범들의 혈액검사를 통해 그 왕이 실제 생물학적 아버지인지를 연구했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지난해에 출생한 아기 바다표범들의 3분의 1은 하렘의 왕이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었다. 하렘의 왕이 속아넘어간 것이다. 해변의 지배자와 고통스러운 결투를 벌이는 대신, 밤이나 안개가 짙을 때 해변 서식지에 몰래 나타나 잠깐 짝짓기를 하고는 다시 사라지는 '연인'이 있었던 것이다.
'연인'들은 해변의 지배자가 잠들었거나 어두운 밤 혹은 안개가 짙어서 하렘을 지키기 못할 때 잠깐씩 들른다. 낮에도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암컷들이 있다. 이제까지 동물학자들은 그런 암컷들이 물고기 사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렘의 지배자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암컷 바다표범들도 연인과 모랜스를 즐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쪽

그 외에도 특이한 사실이 관찰되었다. 해변 하렘에서도 지배자 바로 옆자리는 암컷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암컷들은 왕의 사랑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는 명예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무게가 나가는 암컷들은 오히려 가장자리를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해변의 지배자는 독신인 해변의 힘센 라이벌들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는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어린 자식들은 전혀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어린 바다표범 새끼들이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2. '대왕'의 계속되는 감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하렘 주변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연애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표범 새끼 열 마리 중 세 마리 이상이 왕이 아닌 낯선 수컷의 자식이었다. '연인'에 관한 연구가 상세히 진행되면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한 어미가 몇 해에 걸쳐 낳은 여러 새끼들의 아비가 단 한명의 동일한 '연인'인 경우가 많았다. 하렘의 독재자는 거의 매년 바뀌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년 간이나 서로를 위해 정절을 지켰던 것이다. -86 쪽

그렇다면 하렘의 암컷들은 일부일처제를 원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여러 바다표범 그룹들을 관찰한 결과, 하렘은 수컷들의 꿈일 뿐 암컷드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적으로부터 안전한 번식장소가 드물고 비좁은 지역, 다시 말해서 대양의 작은 섬들에 있는 해안에서만 어쩔 수 없이 힘센 독재자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번식할 장소가 넓고 흔한 곳, 예를 들어 북극이나 남긍의 빙하지대의 바다표범 서식지에서는 암컷들이 사방 수 킬로미터의 지역을 독차지하여 자신의 '연인'이 이웃여자르르 넘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암컷은 단 한번의 결혼을 원하고, 수컷만이 일부다처제를 선호한다.....물론 해변의 독재자는 남의 눈을 피해야 하는 '연인'보다 더 많은 자식을 생산한다. 하지만 평생을 고려한다면 다른 계산이 나온다. 독재자는 늘 하렘의 암컷들을 감시해야 하고 경쟁자들과 피 흘리는 결투를 해야 하며 수 주 동안 계속되는 짝짓기 시기에는 단 한 번 물고기 사냥을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독재자 노릇도 잘해야 2~3년 뿐이다. 그 뒤에는 뒷방 신세에다 15세쯤 되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남의 눈을 피해 다니는 '연인'형의 수컷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으니 40세까지 충분히 산다. 이렇게 수명에서 차이가 나니 단기간의 독재자보다 결국은 더 많은 후손을 생산하게 된다. -87쪽

화산섬 매쿼리의 해안에는 일부가 함몰하여 바닷물로 채워진, 입구가 좁은 분화구가 있다. 이곳은 암컷들에게 인기가 높아 1000여 마리의 암컷들이 빽빽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좁은 입구에는 그들의 캘리밴(바다코끼리 수컷대장)이 앉아 다른 수컷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킨다. 캘리밴은 경쟁자들을 감시하고 쫓아버리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짝짓기를 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태어나는 새끼도 적고 또 태어났다고 해도 대부분 뚱뚱한 암컷들 사이에서 질식해 죽는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암컷을 거느린 수컷의 운명이다. 자손 생산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97쪽

1989년 영장류학자들은 대장 원숭이들의 맥박을 센서를 이용해 장거리에서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센서는 측정한 맥박수를 전파로 전달하기 때문에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어 방해할 필요가 없었다.
연구 결과, 서열이 높은 원숭이일수록 심장박동이 빨랐다. 다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서열이 높을수록 순환계 질환에서부터 심장마비까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높았다. 원숭이들도 인간처럼 매니저병이라는게 있는 것이다. 반면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정상적인 혈압에 건강상태도 좋았다.

.....

바이로이트대학의 동물행동연구가 K. 아이저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냈다. 야생토끼들은 서열이 낮을수록, 특히 '대장'을 만났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야생토끼는 10~20마리씩 무리를 지어 지하에 미로와 같은 굴을 파고 산다. 야생토끼들은 기이하게도 서열을 매우 중시한다. 짝짓기 시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매년 1월이 되면 토끼들은 야간전투를 벌여 다가올 여름을 위해 서열을 정한다. 수컷들은 서로 두들겨 패며 싸우고 암컷들도 서로 싸운다. 마지막 결승전에서는 두 마리의 맞수가 1미터 간격을 두고 마주선다. 그리고 갑자기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서 부딪힌다. 이 무혈 충돌은 한쪽이 포기하고 패배를 받아들여 그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한번 싸워서 얻은 서열은 1년 내내 유지된다. 반역의 기미는 전혀 없다....서열이 낮은 토끼에게는 대장의 얼굴을 대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없다. 대장이 나타나자마자 이들의 심장박동수는 미친듯이 급증한다. 대장이 사라져도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몇 시간이 걸린다.....인간사회는 이 두 시스템의 단점만을 빼내어 혼합시킨 것 같다. '보스'는 원숭이 임금님처럼, '부하'들은 야생토끼들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101쪽

1996년 수의사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 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힘이 센 암컷 비비들은 '여자들의 모임'에서 세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가장 좋은 먹이를 가장 많이 차지했으며 잠자리도 가장 편안한 장소를 차지했다. 결국 그 자손들은 평범한 암컷들의 자식보다 상태가 더 좋았다.
하지만 특권에 따른 이득도 결국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손해로 변했다. 여주인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다툼과 다른 암컷이 '퍼스트레이디'의 특권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언제나 긴장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며 도전자를 내쫓아야 하는 스트레스에 가득찬 생활은 결국 건강을 해쳤다.....비비의 퍼스트레이디는 기형아 출산이 이상할 만큼 많았다. 또 새끼 두마리 중 한마리는 사산했다....러시아의 학자들도 모스크바 동물원에서 망토비비 수컷들에게서 비슷한 현상을 확인했다. 그들은 작은 무리의 대장격인 비비 수컷 한 마리를 독방에 가뒀다. 그는 그 안에 갇힌 채 이름도 힘도 없는 수컷들이 자신의 옛 암컷들과 재미 보는 것을 할릴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장 비비는 처음엔느 미친 듯이 독방안을 오가며 날뛰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깨닫고 구석에 앉아 벽만 바라보다 9일째에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작은 집쥐들 사회에서도 대장은 힘든 운명이다. 한 우리 속에서 쥐 한마리가 16마리의 신하를 거느린 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상태는 곧 나빠지기 시작했다. 통치자 역할이 혈압을 올린 것이다. 4개월 후 그는 동맥경화증에 걸렸고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그러자 다른 수컷이 대장 자리를 빼앗았다. 그 뒤 평범한 시하들이 옛 대장을 어찌나 심하게 린치하던지 보다 못한 연구자들이 그를 독방에 수용했다. 조용히 휴식하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그는 일주일 뒤 정상 혈압을 되찾았고 그 외의 건강상태도 개선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 대장이 혈압이 올라가 병이 들었다. -103쪽

혼자 남은 수컷은 험악한 운명에 그대로 노출된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시간당 풍속 130킬로미터에 이르는 폭풍과 눈보라와 어둠 속에서 서너 달 동안 굶주리며 오직 자신과 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참고 견딘다. 예비 아바는 12센티미터 길이에 450그램인 알, 조류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작은 알을 둥지 대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발 위에 올려놓고 깃털이 나 있는 배의 기름진 주름으로 덮어 보호한다. 그 알이 18초만 눈이나 얼음과 접촉해도 새끼는 죽고만다.
얼음이 날리는 폭우가 내리면, 예비 아빠들은 500~600마리씩 둥그렇게 밀집하여 이른바 '거북이 대열'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벽이 되어주기도 하고 온기도 나눈다. 고개를 잔뜩 움츠리고 앞사람에게 기댄 채 (그 무엇에도 꺽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모두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몇 시간씩, 며칠씩, 아니 몇 주일씩 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춰 서면 안 된다 잠이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죽음이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에게 바람벽이 되어주며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이동한다. 또 원의 바깥쪽에 선 펭귄들과 안쪽에 선 펭귄들은 교대로 자리를 바꾼다. 원의 안쪽은 바깥쪽보다 온도가 60도 가량 높다.-113쪽

얼어붙은 베링 해, 끝없이 펼쳐지는 빙하의 사막,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동쪽 끝 사이, 그 어딘가에 문득 테니스장만한 크기의 연못이 보였다. 연못 안에는 5600마리의 안경솜털오리들이 빽빽이 들어앉아 있었다. 긴긴 겨울 동안 이 새들은 그 차디찬 물속에서 계속 목욕을 하며 체온을 이용해 연못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것도 섭씨 영하 50도의 무서운 눈보라와 극지의 암흑을 견디면서 말이다.
갑자기 푸드득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명령이라도 받은 듯 거대한 새떼가 날아올라 10분간 몇 바퀴 선회비행을 하더니 다시 얼음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앞장선 새들은 수 미터 깊이까지 잠수하여 작은 새우와 물고기를 낚아챘다. 이제 뒤따르는 무리가 그들을 앞질렀고 그들은 대열의 맨 뒤로 다시 솟아올랐다. 거대한 새의 롤러는 이렇게 물속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정확히 20분, 오리들은 연못 속의 먹이를 모두 잡아먹었다. 오리떼는 푸드득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새우나 작은 물고기도 얼음덮개 밑보다는 얼음덮개가 없는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못은 곳 사방에서 밀려온 먹이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새떼의 롤러는 다시 한번 구른다. 극지방에서만 사는 새들의 특이한 겨울나기 방법이다. -242쪽

비비들은 서로 이나 벼룩 등 털에 붙은 해충을 잡아주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들은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브레인은 6년 동안 새끼 비비가 진드기 때문에 죽는 경우를 아홉차례나 목격했다. 새끼의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여파다. 한번은 서열이 높은 비비가 진드기 때문에 새끼를 잃었다. 어미 비비는 몇 주 동안 새끼의 죽음을 애도했다. 젖은 이제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끼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어미 비비는 서열이 낮은 비비의 새끼를 훔쳐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폈지만 젖을 먹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새끼도 며칠 만에 죽었다. 그래도 어미는 계속해서 남의 새끼를 훔쳤다. 네 마리의 새끼 비비들이 그렇게 며칠 내에 죽어갔다. -258쪽

단봉낙타의 절수 방법도 흥미롭다. 인간이 사막을 달리기 위해서는 매일 6~9리터의 물, 다시 말해 땀을 통해 잃어버린 만큼의 물이 필요하다. 이만큼의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은 짧은 시간 내에 탈수 상태에 빠진다. 이를 막기 위해 단봉낙타는 세 가지 방법을 취한다.

1. 똥. 수분이 전혀 없는 똥은 대리석처럼 단단하다.

2. 소변을 보지 않는다. 소변은 내부기관에서 다시 아미노산들로 분해되어 무해하게 처리되어 새롭게 영양분으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재활용되어 유기체로 다시 투입된다. 사막의 주민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자원을 극히 절약해서 사용한다. 우리 인간들이 현대에 들어와서 힘들여 학습해야 했던 내용을 그들은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가슴 깊이 아로새기고 있다.

3. 체내에 120리터의 물탱크를 가지고 있다. 낙타의 전설적인 룸창고는 혹이나 위에 들어있지 않다. 사막에 살아님기 위해 죽은 낙타의 시체에 저장된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언제나 쓰디쓴 실망감을 맛보게 된다. 낙타의 물창고는 수십억 개의 미세한 탱크, 다시 말해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세포, 특히 적혈구 안에 들어 있다. 물을 마시면 이 세포들이 240배 확장되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물 저장고가 된다. 그래서 목이 마른 낙타는 점점 말라 뼈만 앙상한 몰골이 되지만 물을 마시면 10분 내에 통통하게 살이 찐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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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5시 55분에 엠비시 라디오를 켜면 엠비시 피디가 정성스레 수집해온 민요 한토막을 해설과 함께 들을 수가 있다. 민요의 내용을 들어보면, 고된 시집살이와 힘든 농삿일을 잠시나마 잊기 위한 넋두리 등이 상당히 자주 나오는 편이다. 아마도 농사가 주된 생활의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공동 노동의 현장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나름 짐작 추측을 해본다.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발견한 소설가 위화. 그 분이 쓰신 소설이라기에 덥썩 집어들고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배깔고 엎드려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소설 인생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엠비씨 피디처럼 농촌 지방에 전해져오는 민요와 이야기를 채집하는 일을 하는 화자가 늙은 소 한마리와 함께 밭을 가는 나이 든 농부를 만나,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농부와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상당부분 구별해서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노인이었다는 점이 화자가 계속 이야기를 듣게된 이유라고 설명하지만, 그의 기이안 인생항로가 귀를 기울이게끔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의 인생 이야기다. 노름으로 수많은 전답을 잃어버린 주인공과 노름꾼 아들의 탕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 주인공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모친, 평생 주인공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보여주는 마눌. 그리고 불쌍한 두명의 아이들과 병신 사위. 그네들을 씨줄로 삼고 역사의 격랑을 날줄로 삼아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무능한 국민당 군에 억지로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에게, 달리기 잘했던 건강한 아들 녀석이 피를 너무 많이 빼서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는다. 또한 어릴적 열병으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는 딸을 병신 사위와 짝을 지어주었는데, 알콩달콩 잘 사나 싶더니 아이 낳다가 그만 아이만 남겨두고 먼저 떠나 버린다. 또한 사위도 사고로 죽어버리고...하나 남은 손자 마저 어이없게 먼저 저 멀리 떠나버리고 만다. 이러한 기구한 사연을 간직한 노인의 한나절 이야기가 바로 이 노인의 인생살이 였다는 것.

 노인의 인생을 읽고나면 아무리 힘든 세상살이도 나름 살아갈 힘을 얻을 듯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견디어 내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읽은 소감이다.

 뱀발로 덧붙이면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이 원작이라고 하니 영화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듯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허삼관 매혈기처럼 짠~~한 감동을 주니 한번 읽어보시길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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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8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