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2 - 그 이어지는 이야기
사회평론 편집부 엮음 / 사회평론 / 2010년 7월
품절


우리 사회의 법적,제도적 문제처리 방식에 의하면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문제는 대부분 결론이 났다. 물론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결론을 어떻게, 얼마나 납득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남아 있긴 했지만, 형식적으로 그의 문제제기는 모두 끝난 일이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로서는 이 결론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정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양심고백 이후 그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이 일은 마치 묵은 숙제와도 같았다.

2007년 제기동성당에서 첫 기자회견을 할 때부터 양심고백은 그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를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했다.

그런 심정으로 마지막 힘을 짜냈다.
-12쪽

김용철을, 삼성을, 세상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독자들이 기꺼이 읽고 싶은 책이 되어야만 했다.

제목은 그런 책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제목을 다시 구상하면서 처음에 제안되었던 제목들도 다시 검토했다. 그중에 '삼성을 생각한다'도 있었다. '모호하고 뜬금없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제목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보다 우리 의도에 맞는 제목이 없었다.

우리는 <삼성을 생각한다>가 진지한 사회적 의제를 던져주는 가치 있는 책이 되기를 원했다. 판에 박힌 고발성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고, 저자의 땅에 떨어진 위신을 회보시키고도 싶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고급스럽고 품격있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이런 생각에 딱 들어맞는 제목이었다. 약간의 모호함이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을 듯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자신 있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제목이었다. 그렇게 '삼성을 생각한다'를 최종 제목으로 결정했다.
-15쪽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사회가 막장은 아니지 않나. 후손에게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제발 삼성 비자금 문제를 진보와 보수 대결로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패 대 반부패라는 시각이 옳다.
-27쪽

이미 출간 일주일 전에 <한겨레>와 <조선일보>에 광고를 계약해 두었다. 그런데 출간일인 1월 29일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1월 29일 오후 <한겨레>의 광고 담당자가 출판사로 연락을 해왔다. 그의 말이 기가 막혔다. "담당자의 착오로 2월 2일자 광고지면을 이중으로 계약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광고가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화가 나고 기가 막혔지만, 담당자가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데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나 싶고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일단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48쪽

최근 두 신문사(한겨레, 경향신문)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는 "최대 광고주의 '보복성 광고 중단' 방침에 두 신문사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광고 중단 2년이 무엇을 남겼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있다.
-103쪽

일찍이 일인 폭군 통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던 에티엔 드 라 보에티는 그 답을 만인의 '자발적 복종'에서 찾았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의 나이는 고작 18살이었는데, 이 16세기 인물의 발언이 21세기 하눅ㄱ에서 그대로 적용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07쪽

홍세화 선생은 최근 그의 칼럼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전했습니다.

"자유언론은 생존수단이 존재이유를훼손하면 안된다."

한국사회의 기자들은 사르트르의 이 가르침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기자로 살겠노라' 결심하고 펜과 카메라를 들었던 그 순간. 가슴에 품었던 기자로서의 '존재이유'를 지금 한국사회의 기자들은 얼마나 기억하며 살고 있을까요.

<삼성을 생각한다>는 지금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는 우리에게 꽤 따끔한 채찍질로 다가옵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기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취재 기술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다는 '양심'. 바로 그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10만부 가량 판매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변변한 광고 없이 이렇게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 10만이라는 숫자는 진실에 목말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기자들이 얼마나 예의를 다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하는 숫자입니다.
-138쪽

재미있는 것은 광고거부사태와 독자 반응 사이의 시너지효과이다.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많은 부분 광고거부사태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만약 광고거부사태가 없었다면, 독자들의 반응이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그랬다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지금처럼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광고거부사태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열렬히 찾았다. 이것이 이 책의 운명이었고, 이 운명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기인한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삼성을 둘러싼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149쪽

사실 삼성 비판 책을 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한 영업자 출신 출판인은 지식공작소 시절 <이씨춘추>가 출판되었는데, 제대로 영업 한번 해보지 못하고 책이 절판되는 상황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책 출판 당시 옥외광고 판에 15초 정도 테스트를 했었는데, 삼성그룹비서실에서 이를 알고 연락이 왔었고, 4대 일간지 광고는 물론, 은근한 협박으로 결국 절판되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죠.
-197쪽

얼마 전에도 법학교수가 술에 취해서 전화로 삼성문제 이야기 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던데, 내가 그랬어요. '술 먹을 시간에 좀 더 연구하고, 각자 위치에서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고.
-241쪽

대법원까지 가서 결정된 사안을 다시 뒤집어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시에 '삼성특검'의 결과가 국민의 법 상식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사 출신임에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 책으로 세상이 바뀔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리의 후손이 사는 세상은 좀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데 하나의 자료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247쪽

총수(김어준) : 사람은 결국 자기 선택이죠. 나머지는 다 변명이고, 결국 무슨 선택을 했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냐를 결정하죠.

그 마지막 선택이 결국 김용철이죠.

그런데 그 선택은, 정의의 문제 이전에 무섭잖아요. 워낙 큰 상대라.

...........

김 : 그러니까 제가 검사를 할 때도 후배들한테 항상 이야기 했어요. 명색이 특수부 검사는 핵심세력의 심장부에다 비수를 꽂아야 된다고. 검찰권을 준 이유가 뭐겠어요. 가장 쎈 놈에게 덤빌수 있는 권한을 준 거. 그게 아니겠어요......저는 검찰 수사할 때 청탁이 없는 사건은 할 맛이 안나서 그만둔 거 많아요.
-266쪽

김 : 검찰의 시각에서는 모욕을 당했어요. 그 당시에, 왜나면 강금실을 법무부장관으로 보낸 순간.
총: 그건 왜 그렇죠. 왜 강금실을 보낸 것에 모욕당했다고 느낀 거죠?

김 : 강금실이란 분은 그때 검찰의 과장급 정도였어요. 검사장도 안되었고, 법무부 과장급 정도였고 그런 사람들이 동기였어요. 게다가 검찰 쪽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또 거기다가 여성이잖아요.

......

총 : 그러니까 검찰 입장에선 자신들만의 권위와 전통을 대통령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김 : 예. 그렇죠. 그런 모욕감 같은게 집단적으로 작용을 했을 거예요. 노무현대통령은 개혁을 위해서 그랬을 거지만. 뭐 실제로 모욕을 줄려고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고......그리고 되자마자 검찰에서 보고하는 청와대 팩스선을 끊어버렸잖아요. 진짜로 보고채널을 끊어버렸어요.
-286쪽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렸으면 하는 것은 책을 출간한 출판사로서 당연한 기대이지만, 한편으론 처음 원고를 받아 들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운이 좋다면 3만부, 그것이 우리의 처음 예상이었다. 물론 이 책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삼성을 생각한다>는 그 이상의 특별함이 있었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세상과 격렬하게 뒤엉켰다. 그리고 세상과 뒤엉키면서 만드는 주름, 그 굴곡을 통해 활자에 담긴 것 이상을 보여줬다.

그것은 익히 보아왔던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다. 모두를 당혹하게 만든 새로운 진실이 그 안에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권력의 위험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

책의 진실성과 책 너머의 진실, 그것은 독자들에 의해 드러났다. 경제권력이, 혹은 언론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도작들은 스스로 찾아내고 알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희망을 보았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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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09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