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앨버트로스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유년기를 보낸다. 그 후 생식이 가능한 성년기가 60세까지 지속되고 '불임의' 노년기가 80세까지 이어진다. 죽음은 대개 바다에서 맞는다. 방금 우리 머리 위를 맴돌고 사라진 저 '남극해의 로열앨버트로스'가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도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로열앨버트로스 부부는 인간 부부보다 더 오랫동안 신의를 지키며 부부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긴 생애에서 함께 사는 시간은 모두 합쳐도 93일에 불과하다. 석 달이 조금 넘을 뿐이다. 앨버트로스는 선원들처럼 수년씩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는 경혼생활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들처럼 '항구마다 신부'를 두지는 않는다. 앨버트로스는 앵무새나 인간처럼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고, 회색 거위처럼 바람을 피우거나 신의를 저버리거나 삼각관계를 만들지도 않으며, 갈매기가 펭귄처럼 이혼이나 파트너 교환을 하지도 않지만, 무한히 고독하다. 또 암컷이건 수컷이건 결혼생활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지 않으며 지배하려고도 복종시키려도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평생토록 애정과 신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결혼생활의 첫번째 비결이다. 그러니까 앨버트로스는 수많은 암탉들을 거느리며 잘난 척 뻐기는 수탉이나 바다코끼리 그리고 동방의 폭군과는 정반대의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52쪽
앨버트로스는 결혼을 하기 전에 특이할 만큼 오랫동안 서로를 고른다.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지 오직 감정에 의존하여 아주 세심하게 살핀다. 둘 사이에 조화가 존재하면 교미동작에서 그 사실이 입증된다. 성적 행위가 없는 결혼 전 짝짓기, 즉 약혼도 관례다. 정확히 11월 30일이 되면 매년 4000마리의 수컷 앨버트로스가 뉴질랜드에서 700킬로미터 떨어진 캠벨 섬에 모습을 드러낸다......열흘 뒤 12월 10일이 되면 고르륵, 끼끽대는 새들의 소리가 항시섬을 공략하는 폭우의 소음을 압도한다. 흥분한 수컷들의 진동음을 내는 것은 것이다. 암컷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은 정확히 지켜진다. 정확히 1년 40일간의 작별을 끝내고 부부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들은 황새들처럼 소리를 내고 주둥이를 부비고 목의 깃털에 서로의 얼굴을 파묻고 귓속말을 소곤대고 나서는 일상적인 결혼생활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작년에 다른 부부가 사용했던 둥지를 고치고 단 하나의 알을 낳는다. -53쪽
평생을 지속하는 이상적인 혼인생활은 대체 어떻게 시작될까? 지난해에 결혼한 암컷들이 등장하고 난 바로 뒤에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미혼의 암수 '틴에이저'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대형 '선보기' 대열에서 점차 5~15마리씩 소규모 '유희그룹'을 만들어간다......처음에는 예의범절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마음에 찍은 상대를 절대로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며 곁눈질로만 살핀다. 매부리코처럼 휘어진 커다란 부리는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므로 파트너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 상대가 겁을 먹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주의한다. 아니면 부리를 하늘로 올리고 큰 소리로 고르륵대는 황홀경에 들어가 '당신을 그리는 내 마음이 이토록 강렬하다'는 표시를 한다. 그리고 부리와 깃털을 서로 비빈다. -54쪽
그들은 둘이 결혼에 합의하기 전가지 몇 주일간 반복적인 예식을 치른다. 이때는 파트너를 바꿀 수도 있으며, 사실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은 자주 파트너를 바꾼다. 그들은 말 그대로 '좀더 나은 상대'를 찾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한다. 반세기에 이르는 평생의 혼인을 결정하는 일이니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 쌍의 앨버트로스가 구애의 춤에서 서로 조화를 느끼게 되면 영원히 지속될 공동의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거대한 결혼시장에서 서로의 짝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으므로 알을 낳고 부화를 하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짧은 여름이 끝나면서 벌써 첫 눈보라가 친다. 따라서 신혼부부는 각기 헤어져 끝없는 남극의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이들은 다음해 부화기에야 재회할 것이다. 그때는 오랫동안 뜸을 들이지 않고 곧장 혼인식을 올려 부화 시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56쪽
나는...바다표범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다. 일고여덟 마리의 암컷들이 수컷 한 마리를 임금처럼 모시고 사는 이유가 정말 성적 쾌락 때문일까? 혹시 수컷이 휘두르는 폭력 때문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모순 같지만 많은 수의 암컷 바다표범들이 하렘에 살면서도 낯선 수컷과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그와의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그 낯선 수컷이 언젠가는 후궁으로부터 자신을 유괴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 동물학자들은 이제까지 바다표범의 성생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왔다. 수컷 바다표범은 피나는 결투를 통해 해변의 자기 구역을 정한다. 얼마 뒤 찾아온 암컷들은 그중 마음에 드는 수컷을 골라 자발적으로 그의 노예가 된다. 건방진 암컷은 지느러미로 곤장을 맞거나 수컷의 거대한 몸통에 깔리는 벌을 받는다. 도망을 치려던 암컷이 수컷에게 붙들리면 다시 끌려와 하렘의 다른 암컷들 틈에 내동쟁이쳐진다. 이는 고전적인 일부다처제와 강장의 성(性) 독점이 결합한 형태다. 해변은 성적 폭력으로 가득하고 가장 힘이 센 수컷이 모든 암컷을 독차지한다. 암컷들이 수컷의 잔인한 지배에 스스로 굴복하는데 그렇게 해야만 힘이 센 자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모두가 이렇게 믿었다. -84쪽
199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동물행동연구가 빌 아모스는 "다틀렸다"고 외쳤다. 그는 남성적 선입견을 버리고 노스로나 섬의 바다표범 서식지에 사는 동물들을 진지하게 관찰한 결과 좀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는 하렘의 왕을 둘러싸고 놀고있는 어린 바다표범들의 혈액검사를 통해 그 왕이 실제 생물학적 아버지인지를 연구했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지난해에 출생한 아기 바다표범들의 3분의 1은 하렘의 왕이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었다. 하렘의 왕이 속아넘어간 것이다. 해변의 지배자와 고통스러운 결투를 벌이는 대신, 밤이나 안개가 짙을 때 해변 서식지에 몰래 나타나 잠깐 짝짓기를 하고는 다시 사라지는 '연인'이 있었던 것이다. '연인'들은 해변의 지배자가 잠들었거나 어두운 밤 혹은 안개가 짙어서 하렘을 지키기 못할 때 잠깐씩 들른다. 낮에도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암컷들이 있다. 이제까지 동물학자들은 그런 암컷들이 물고기 사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렘의 지배자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암컷 바다표범들도 연인과 모랜스를 즐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쪽
그 외에도 특이한 사실이 관찰되었다. 해변 하렘에서도 지배자 바로 옆자리는 암컷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암컷들은 왕의 사랑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는 명예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무게가 나가는 암컷들은 오히려 가장자리를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해변의 지배자는 독신인 해변의 힘센 라이벌들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는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어린 자식들은 전혀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어린 바다표범 새끼들이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2. '대왕'의 계속되는 감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하렘 주변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연애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표범 새끼 열 마리 중 세 마리 이상이 왕이 아닌 낯선 수컷의 자식이었다. '연인'에 관한 연구가 상세히 진행되면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한 어미가 몇 해에 걸쳐 낳은 여러 새끼들의 아비가 단 한명의 동일한 '연인'인 경우가 많았다. 하렘의 독재자는 거의 매년 바뀌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년 간이나 서로를 위해 정절을 지켰던 것이다. -86 쪽
그렇다면 하렘의 암컷들은 일부일처제를 원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여러 바다표범 그룹들을 관찰한 결과, 하렘은 수컷들의 꿈일 뿐 암컷드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적으로부터 안전한 번식장소가 드물고 비좁은 지역, 다시 말해서 대양의 작은 섬들에 있는 해안에서만 어쩔 수 없이 힘센 독재자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번식할 장소가 넓고 흔한 곳, 예를 들어 북극이나 남긍의 빙하지대의 바다표범 서식지에서는 암컷들이 사방 수 킬로미터의 지역을 독차지하여 자신의 '연인'이 이웃여자르르 넘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암컷은 단 한번의 결혼을 원하고, 수컷만이 일부다처제를 선호한다.....물론 해변의 독재자는 남의 눈을 피해야 하는 '연인'보다 더 많은 자식을 생산한다. 하지만 평생을 고려한다면 다른 계산이 나온다. 독재자는 늘 하렘의 암컷들을 감시해야 하고 경쟁자들과 피 흘리는 결투를 해야 하며 수 주 동안 계속되는 짝짓기 시기에는 단 한 번 물고기 사냥을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독재자 노릇도 잘해야 2~3년 뿐이다. 그 뒤에는 뒷방 신세에다 15세쯤 되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남의 눈을 피해 다니는 '연인'형의 수컷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으니 40세까지 충분히 산다. 이렇게 수명에서 차이가 나니 단기간의 독재자보다 결국은 더 많은 후손을 생산하게 된다. -87쪽
화산섬 매쿼리의 해안에는 일부가 함몰하여 바닷물로 채워진, 입구가 좁은 분화구가 있다. 이곳은 암컷들에게 인기가 높아 1000여 마리의 암컷들이 빽빽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좁은 입구에는 그들의 캘리밴(바다코끼리 수컷대장)이 앉아 다른 수컷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킨다. 캘리밴은 경쟁자들을 감시하고 쫓아버리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짝짓기를 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태어나는 새끼도 적고 또 태어났다고 해도 대부분 뚱뚱한 암컷들 사이에서 질식해 죽는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암컷을 거느린 수컷의 운명이다. 자손 생산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97쪽
1989년 영장류학자들은 대장 원숭이들의 맥박을 센서를 이용해 장거리에서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센서는 측정한 맥박수를 전파로 전달하기 때문에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어 방해할 필요가 없었다. 연구 결과, 서열이 높은 원숭이일수록 심장박동이 빨랐다. 다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서열이 높을수록 순환계 질환에서부터 심장마비까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높았다. 원숭이들도 인간처럼 매니저병이라는게 있는 것이다. 반면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정상적인 혈압에 건강상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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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이트대학의 동물행동연구가 K. 아이저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냈다. 야생토끼들은 서열이 낮을수록, 특히 '대장'을 만났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야생토끼는 10~20마리씩 무리를 지어 지하에 미로와 같은 굴을 파고 산다. 야생토끼들은 기이하게도 서열을 매우 중시한다. 짝짓기 시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매년 1월이 되면 토끼들은 야간전투를 벌여 다가올 여름을 위해 서열을 정한다. 수컷들은 서로 두들겨 패며 싸우고 암컷들도 서로 싸운다. 마지막 결승전에서는 두 마리의 맞수가 1미터 간격을 두고 마주선다. 그리고 갑자기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서 부딪힌다. 이 무혈 충돌은 한쪽이 포기하고 패배를 받아들여 그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한번 싸워서 얻은 서열은 1년 내내 유지된다. 반역의 기미는 전혀 없다....서열이 낮은 토끼에게는 대장의 얼굴을 대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없다. 대장이 나타나자마자 이들의 심장박동수는 미친듯이 급증한다. 대장이 사라져도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몇 시간이 걸린다.....인간사회는 이 두 시스템의 단점만을 빼내어 혼합시킨 것 같다. '보스'는 원숭이 임금님처럼, '부하'들은 야생토끼들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101쪽
1996년 수의사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 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힘이 센 암컷 비비들은 '여자들의 모임'에서 세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가장 좋은 먹이를 가장 많이 차지했으며 잠자리도 가장 편안한 장소를 차지했다. 결국 그 자손들은 평범한 암컷들의 자식보다 상태가 더 좋았다. 하지만 특권에 따른 이득도 결국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손해로 변했다. 여주인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다툼과 다른 암컷이 '퍼스트레이디'의 특권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언제나 긴장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며 도전자를 내쫓아야 하는 스트레스에 가득찬 생활은 결국 건강을 해쳤다.....비비의 퍼스트레이디는 기형아 출산이 이상할 만큼 많았다. 또 새끼 두마리 중 한마리는 사산했다....러시아의 학자들도 모스크바 동물원에서 망토비비 수컷들에게서 비슷한 현상을 확인했다. 그들은 작은 무리의 대장격인 비비 수컷 한 마리를 독방에 가뒀다. 그는 그 안에 갇힌 채 이름도 힘도 없는 수컷들이 자신의 옛 암컷들과 재미 보는 것을 할릴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장 비비는 처음엔느 미친 듯이 독방안을 오가며 날뛰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깨닫고 구석에 앉아 벽만 바라보다 9일째에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작은 집쥐들 사회에서도 대장은 힘든 운명이다. 한 우리 속에서 쥐 한마리가 16마리의 신하를 거느린 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상태는 곧 나빠지기 시작했다. 통치자 역할이 혈압을 올린 것이다. 4개월 후 그는 동맥경화증에 걸렸고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그러자 다른 수컷이 대장 자리를 빼앗았다. 그 뒤 평범한 시하들이 옛 대장을 어찌나 심하게 린치하던지 보다 못한 연구자들이 그를 독방에 수용했다. 조용히 휴식하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그는 일주일 뒤 정상 혈압을 되찾았고 그 외의 건강상태도 개선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 대장이 혈압이 올라가 병이 들었다. -103쪽
혼자 남은 수컷은 험악한 운명에 그대로 노출된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시간당 풍속 130킬로미터에 이르는 폭풍과 눈보라와 어둠 속에서 서너 달 동안 굶주리며 오직 자신과 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참고 견딘다. 예비 아바는 12센티미터 길이에 450그램인 알, 조류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작은 알을 둥지 대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발 위에 올려놓고 깃털이 나 있는 배의 기름진 주름으로 덮어 보호한다. 그 알이 18초만 눈이나 얼음과 접촉해도 새끼는 죽고만다. 얼음이 날리는 폭우가 내리면, 예비 아빠들은 500~600마리씩 둥그렇게 밀집하여 이른바 '거북이 대열'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벽이 되어주기도 하고 온기도 나눈다. 고개를 잔뜩 움츠리고 앞사람에게 기댄 채 (그 무엇에도 꺽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모두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몇 시간씩, 며칠씩, 아니 몇 주일씩 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춰 서면 안 된다 잠이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죽음이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에게 바람벽이 되어주며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이동한다. 또 원의 바깥쪽에 선 펭귄들과 안쪽에 선 펭귄들은 교대로 자리를 바꾼다. 원의 안쪽은 바깥쪽보다 온도가 60도 가량 높다.-113쪽
얼어붙은 베링 해, 끝없이 펼쳐지는 빙하의 사막,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동쪽 끝 사이, 그 어딘가에 문득 테니스장만한 크기의 연못이 보였다. 연못 안에는 5600마리의 안경솜털오리들이 빽빽이 들어앉아 있었다. 긴긴 겨울 동안 이 새들은 그 차디찬 물속에서 계속 목욕을 하며 체온을 이용해 연못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것도 섭씨 영하 50도의 무서운 눈보라와 극지의 암흑을 견디면서 말이다. 갑자기 푸드득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명령이라도 받은 듯 거대한 새떼가 날아올라 10분간 몇 바퀴 선회비행을 하더니 다시 얼음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앞장선 새들은 수 미터 깊이까지 잠수하여 작은 새우와 물고기를 낚아챘다. 이제 뒤따르는 무리가 그들을 앞질렀고 그들은 대열의 맨 뒤로 다시 솟아올랐다. 거대한 새의 롤러는 이렇게 물속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정확히 20분, 오리들은 연못 속의 먹이를 모두 잡아먹었다. 오리떼는 푸드득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새우나 작은 물고기도 얼음덮개 밑보다는 얼음덮개가 없는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못은 곳 사방에서 밀려온 먹이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새떼의 롤러는 다시 한번 구른다. 극지방에서만 사는 새들의 특이한 겨울나기 방법이다. -242쪽
비비들은 서로 이나 벼룩 등 털에 붙은 해충을 잡아주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들은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브레인은 6년 동안 새끼 비비가 진드기 때문에 죽는 경우를 아홉차례나 목격했다. 새끼의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여파다. 한번은 서열이 높은 비비가 진드기 때문에 새끼를 잃었다. 어미 비비는 몇 주 동안 새끼의 죽음을 애도했다. 젖은 이제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끼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어미 비비는 서열이 낮은 비비의 새끼를 훔쳐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폈지만 젖을 먹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새끼도 며칠 만에 죽었다. 그래도 어미는 계속해서 남의 새끼를 훔쳤다. 네 마리의 새끼 비비들이 그렇게 며칠 내에 죽어갔다. -258쪽
단봉낙타의 절수 방법도 흥미롭다. 인간이 사막을 달리기 위해서는 매일 6~9리터의 물, 다시 말해 땀을 통해 잃어버린 만큼의 물이 필요하다. 이만큼의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은 짧은 시간 내에 탈수 상태에 빠진다. 이를 막기 위해 단봉낙타는 세 가지 방법을 취한다.
1. 똥. 수분이 전혀 없는 똥은 대리석처럼 단단하다.
2. 소변을 보지 않는다. 소변은 내부기관에서 다시 아미노산들로 분해되어 무해하게 처리되어 새롭게 영양분으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재활용되어 유기체로 다시 투입된다. 사막의 주민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자원을 극히 절약해서 사용한다. 우리 인간들이 현대에 들어와서 힘들여 학습해야 했던 내용을 그들은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가슴 깊이 아로새기고 있다.
3. 체내에 120리터의 물탱크를 가지고 있다. 낙타의 전설적인 룸창고는 혹이나 위에 들어있지 않다. 사막에 살아님기 위해 죽은 낙타의 시체에 저장된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언제나 쓰디쓴 실망감을 맛보게 된다. 낙타의 물창고는 수십억 개의 미세한 탱크, 다시 말해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세포, 특히 적혈구 안에 들어 있다. 물을 마시면 이 세포들이 240배 확장되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물 저장고가 된다. 그래서 목이 마른 낙타는 점점 말라 뼈만 앙상한 몰골이 되지만 물을 마시면 10분 내에 통통하게 살이 찐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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