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하는 정치경제학독서소모임 발제>


한국어판 서문 – 최장집


  법의 지배라는 개념 안에는 여러 생각들이 겹쳐져있다. 우선 법의 지배의 이상은 모든 인민이 통치자이자 동시에 피통치자인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의 지배는 반드시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분리된 상태를 고려해야만 제대로 된 이론을 전개할 수 있다. 또 법의 지배를 둘러싼 세 가지 생각이 경합하고 있다. 도덕적 명령으로서의 법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 법에 명시된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복종,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법에 대한 준수. 이 세 가지 중 현실주의적 관점인 뒤의 두 가지 생각을 취하면,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는 명확하게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즉, 정도의 문제로 바뀐다. 이 정도는 수평적 책임성(정부 내부에서의 견제와 균형)과 수직적 책임성(선출된 대표로서 유권자의 요구사항을 이행해야 할 의무)이 달성된 정도에 따라 평가해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법의 지배라는 개념에 비추어봤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정과 집행의 완전한 분리의 상태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은 위에서 언급한 수평적-수직적 책임성이나 현실의 갈등의 제도화를 거치지 않은 채 수입되었다. 따라서 비현실적이었으며, 그래서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 가운데 행정부가 법의 해석과 집행의 과정에서 임의성을 개입시켰다. 또한 사법부의 경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첫째,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는 반공주의라는 정치적 압력에 시달렸다. 둘째, 민주화 이후에는 경제 엘리트 집단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다. 삼성의 전환사채발행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과 비정규직법이 이 압력을 잘 보여준다.


  통치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법에 종속시키는 현상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선출된 자의 책임(매디슨), 비합리적 행위로부터의 자발적인 거리두기(엘스터),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합리적 선택(마키아벨리). 반면 한국은 법의 지배에 필수적인 요소인 사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성취가 지연되었다. 긴 역사에 걸쳐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행정부 엘리트 계급과 강한 일체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내부적인 인사고과 평가라는 압력 또한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했다. 만약 법의 지배의 정도를 책임성의 여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사법부 또한 수평적-수직적 책임성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회적 갈등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노출시켜야 한다. 이런 책임성을 지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국가기관은 정당이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힘의 불균형을 조정-해소하는 역할을 맡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영문판 서문 – 쉐보르스키


  법의 지배라는 개념에 대한 두 가지 이해방식이 있다. 하나는 도덕규범적 이해다. 이것은 풀러의 정식, 즉 법이 보편성/공표/비소급/이해가능/체계 내 무모순/실행가능/지속적인 안정성/규범 내에서의 축차적 질서라는 조건을 만족한다면 그것이 도덕적 명령으로서의 힘을 가지는 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입법의 과정이 이 정식을 만족시키기만 한다면 법의 존재 자체가 복종의 의무를 생성시킨다.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적 이해다. 법의 지배는 사회의 각 부분에서 권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할 때 발생하는 충돌이 만들어내는 힘의 균형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제도적 균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권력을 소수만 행사한다면, 우리는 흔히 그런 상태를 법에 의한 지배라고 부른다. 반면 다수가 행사한다면 균형상태에 더 가까운 법의 지배라고 부를만하다. 즉,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는 완전히 구별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법의 지배에 대한 이런 현실주의적 설명은 사회적 차원의 제약과 법이라는 특수한 장치를 구별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적 차원의 제약은 법으로서 설정한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 일정한 절차를 부과하기 위해서 법을 만든다. 적용가능한 절차는 다양하고, 우리는 그 중에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반정부적 집합행동을 일으킬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최고의 법으로서 헌법을 제정한다. 마지막으로, 법의 지배를 확립해 정부와 피통치자 다수에게 예측가능성과 기대를 부여하는 제도화된 권력을 창출해낸다. 제도화된 권력의 유인 효과는 캘버트의 감독관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법은 또한 구성적 제도라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구성적 제도로서의 법은 사람들에게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고, 그 권한에 기반해서 법에 따를 유인을 만들어낸다. 이 유인이 사람들의 행위에 일관성, 즉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임의성을 배제한다.


  구성적 제도로서의 법은 곧 제도적 균형상태를 달성한다. 사람들은 법이 제공하는 권한과 유인에 의해 이익과 권력을 취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각 개인이나 집단에게 이익이 되고 사람들이 그 제도에 따를 때, 제도적 균형상태가 달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의 강건함이 소득 즉 법을 준수할 때 얻어지는 이익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보았다.


  가르가레야의 논문은 수직적 책임성에 주목해 법의 지배를 설명하려 한다. 다수의 인민(유권자)으로부터 주어지는 압박은, 다시 권력을 행사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신중해져야 한다는 신호를 수권자에게 지속적으로 보낸다. 그러므로 수평적 책임성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웨인개스트는 반정부적 집합행동과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법의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실각은 수권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트로페는 정부 내의 상호견제를 통해 법이 지배에 접근한다. 갈등처리 메커니즘을 잘 구상했을 때 사람들은 법에 복종한다. 이것은 서로의 권한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이념을 다시 표현한 것이다. 정부 내 힘의 균형만으로도 제도의 자율성과 사법부 독립, 법의 지배가 확립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몇몇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과 달리, 민주주의(즉 다수지배)와 법의 지배는 양립가능한 개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둘의 양립가능성은 이익집단 사이의 정치의 문제로 환원된다. 폰타나는 16세기 프랑스를 언급한다. 이 때 사법부는 독립적이었지만 판결은 편파적이었다. 정치가 개입하지 않은 결과였다. 페레존과 파스키노는 정부의 일부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권한을 제한하는 상태에 돌입했을 때 균형이 맞춰지며,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비대해지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마라발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례를 든다. 입법부가 입법과정을 비공개처리하자, 정부 밖의 시민단체와 기업이 소송을 제기해 처리방식을 바꾸었다. 입법부가 징세와 관련된 법안을 처리하자 사법부가 개입해 무효화시켰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선거무효소송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법을 통해 정치적 적대세력을 공격하는 수단이었다.



법의 지배의 계보 – 홈즈


  왜 합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지도자들은 법의 지배를 받아들일까? 마키아벨리의 설명을 참고해보자. 그는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통치에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법의 지배를 받아들인다고 쓴다. 그렇다면 왜 역사상 다른 정부는 그러지 않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리더가 비합리적이어서, 근시안적이어서, 감정적이어서 그렇다(토크빌). 반면 마키아벨리의 눈에 이런 상황은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권자에게 손해이며 수권자가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 법의 지배가 아닌 다른 지배상태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석은 정부의 행태의 예측가능성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법의 지배에 관해 논하려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개념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부의 대우는 개인과 집단에 따라 차이가 난다. 힘이 센 집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통치에 유리하므로, 정부는 힘이 센 집단에게 더 잘해주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권력의 사회적 지형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중국가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것을 비대칭적 다원주의(루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익집단의 숫자와 범위를 늘리면 된다. 그러면 정부는 그 모든 이익집단의 요구에 반응할 것이고, 보장되는 권리의 범위도 같이 늘어날 것이다.


  - 자기 제한의 계보 수권자가 자기 절제를 하는 이유에 관한 설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제가 도덕적 명령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제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도덕적 명령이라는 설명은 수권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들이 보장받는 권리가 역사적으로 유동적이라는 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 도덕적 명령이라면 이 권리의 범위가 도덕적 명령에 따라 확정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목적으로서의 장기적 이익의 추구라는 동기는 단기적 손실이나 평판과 같은 요소들을 한데 설명할 수 있다. 자기 제한은 권력의 분립, 즉 집중된 여러 권한을 쪼개 다른 사람 또는 부서에게 이양하는 행위와 연결된다.


  - 사법부 독립의 계보 수권자가 사법부를 독립시키는 이유는 부인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집중된 권력의 수권자의 시간낭비를 초래한다. 따라서 업무의 분장은 수권자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 특히 일상적이고 성가시고 귀찮고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는 일에 대한 결정권부터 떼어준다. 그리고는 비난을 받을만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사법부에게 돌리고, 수권자 본인에 대한 원한을 낮춘다. 해밀턴은 이 논리를 배심원제의 장점에 관해 설명하는 데 이용했다. 또한 정의로운 처분은 호감은 살 수 없으며(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반감만 살 수 있을(어쨌든 내 사람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 뿐이기 때문에, 수권자는 정의에 관한 일관된 처분의 권한을 사법부에 넘기는 것을 선호한다.


  - 신뢰의 계보 우리는 사적인 개인 사이에서 복수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다. 불을 지르는 데 돈이 별로 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불벼락맞을 일을 해서는 안된다. 사적인 개인 사이의 이런 관계를 집단 간의 관계로 확장시켜보자.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완전무결하게 방어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따라서 수권자 집단은 인민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서 반감과 반란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아가서 협력의 철회를 방지하는 것도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다. 자기 제한은 이런 협력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이런 자기제한은 하층계급의 조직된 행동의 직접적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공중보건에 투자하는 부자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반드시 그런 행동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현재 유지되는 특정한 체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고 있는 집단은, 이 체제로부터 과거에 이익을 취하지 못했던 집단까지 모두 포섭해서 다같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강고한 이해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파르티잔 친구들”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전략은 현실 속에서 인민을 군인화하고, 대신 군인이 될(된) 인민들에게 참정권과 재산권, 소송권 등을 부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체제가 강건하게 유지될수록 수권자 집단은 지속적 이익을 얻는다. 예측불가능한 지배자는 남도 파괴하려들면서 동시에 자기도 파괴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법의 지배 아래에서 일관성을 보이는 수권자는 최소한 “합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역사적 조건이나 제약에 의해서, “합리적”인 수권자 집단이 있는 공동체가 반드시 “번영”하는 것은 아니다.


  - 갈등에 대한 법적 관리 사람들은 제멋대로 군다. 그래서 상류계급의 사람은 하류계급의 사람을 놀리고, 후자는 전자를 때린다. 이런 행태가 만연한 공동체는 스스로 붕괴한다. 특히 다른 공동체와의 갈등 –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또한 법의 지배를 통해 관리한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민사적 갈등이었다면, 여기에서는 공정한(것처럼 보이는) 형사재판의 출현이 중요하다. 형사재판은 하층계급에게는 사회적 불만을 해소시키는 장이며, 상층계급에게는 하층계급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절차를 규율로서 강제하는 효과를 지닌다.


  - 정의의 수축과 확장 위의 논의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협의 집단의 확대 즉 정의의 확립은 협력의 대상이 늘어나야 할 필요를 수권자 집단이 느낄 때, 즉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압력이나 변화가 있을 때 일어난다. 축소는 그럴 필요가 줄어들었다거나 필요없다고 느낄 때 일어난다. 법의 불공정한 집행은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정의의 확장이나 축소라는 현상을 촉발시키는 요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불공평은 대개 수권자 집단에게 유리한 불공평이고 그 집단은 불공평을 변화시킬 유인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 자해의 달콤함 무력에 의한 강제는 쉬운 이탈을 낳는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권을 위해서 합리적인 수권자 집단은 무력 대신 인민에 대한 법의 지배를 수용하며, 자신도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만들어진 법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은 타인 지배인 동시에 자기 지배의 방식이다. 자기 지배는 루소의 사회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마키아벨리는 “내 결정에 의한 상처는 덜 아프다”고 적고 있으며, 해밀턴은 “사람들은 자기 없이 결정된 사안에는 일단 반대한다”는 통찰을 남겨놓았다. 토크빌은 준법의 동기로서 자기지배를 강조한다. 법에 따르면 작으나마 권한이 주어지고, 그 권한에 따른 직책도 주어지며, 그 권한을 통해 체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가능성도 슬며시 비치기 때문이다.


  - 권리들의 배열 하층 계급에겐 최초의 협력 이후에 주어진 권리 자체가 스스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상층 계급은 재산보호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장기적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서 절제한다. 이런 행동은 맨슈어 올슨이 떠돌이 도적과 붙박이 도적을 설명하는 곳에서, 세수증대는 수권자집단에게도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기절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연방주의자 문서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생산력을 비교하면서 자유상업번영론을 찬양하는 흄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전형적인 경제자유와 번영에 관한 논증, 즉 특수이익입법이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과연 특수이익입법은 법의 지배를 해치는가, 아니면 오히려 돕는가? 우리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자유화 이후 러시아는 보편입법을 열심히 실시했음에도 상층계급이 행정을 통해 이권을 장악해서 보편입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것은 보편/특수이익입법이 법의 지배와 큰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 때문에 함부로 복지축소를 감행하지 못하는 일부 자유주의 국가들이나, 투표권 행사를 잘 하지 않는 여성에게 복지부담을 덮어씌우며 복지축소를 감행하는 일부 구 공산권 국가들의 행태도 참고할만하다. 이들은 모두 특수이익입법과 보편이익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즉, 특수이익이 입법으로 관철되는 경험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공유되는 순간, 다양한 이익집단이 조직되며 법의 지배로 점차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 “법 앞의 평등”의 계보 루소는 이상적 관점에서, 특수이익입법의 법의 정신에 완전히 위배되는 부패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간의 합리적 특성 때문에 특수이익입법은 필연적이다. 법은 나만 빼고 다 지키는 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는 권력분립인데, 때로는 이조차 잘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인종 간에 서로 다른 처벌 강도 같은 것들이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익 집단의 수를 늘려 특수이익입법에 따르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가 집단의 수에 의존적인 연속된 개념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법에 의지해 권력을 행사하게끔 하는 것이 법의 지배다. 너도 나도 법에 호소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가능한 정의의 상태rough justice다. 이것을 부패의 분산, 부패의 일상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또 다른 필요조건도 있다. 특수이익입법을 원활하게 해줄 엘리트들의 존재와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이다. 다수 하층 계급을 돕는 엘리트에게 그의 행위는 도덕적 즐거움과 실제적 이익 모두를 안겨주는 유인이 있는 행위다. 하지만 엘리트들은 이런 유인이나 별다른 이익이 없는 한 이중국가체제를 통해 자신들과 나머지를 분리하기도 한다.


  - 잠자고 있는 권력을 깨우는 규칙 법의 지배는 지배자가 공석인 기간, 즉 권력의 공백을 메워준다. 군주정에서는 수권자의 죽음, 민주정에서는 교체의 필요성에 의해 헌법적 수준에서 “권력을 쟁취 또는 승계하는 절차”가 가장 먼저 설정된다. 이 절차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특정한 인간 또는 집단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규칙이다.


  이런 규칙이 설정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가. 마키아벨리-해밀턴의 아이디어는 “공화국들의 공화국”이다. 비상상황에 대비한 재량권은 불가피하게 독재를 낳는다. 독재를 향해 나아가더라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대항할만한 조직이 없고, 독재자 쪽이 훨씬 세기 때문에 그 진행을 막기가 쉽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도시공국의 연맹체를, 해밀턴은 주들의 연합체를 구상했다. 최상층부가 전제적으로 변하려 할 때 개별 공국-주의 지도자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한다. 이 가능성에 의해서 연맹의 수평적-수직적 권력분립이 유지된다. 이 분립을 명문화하면 바로 헌법이 된다.


  - 부자들의 아편인 의존부인 엘리트의 자기파괴적 오만, 즉 내가 잘나서 잘나게 되었는데 다른 이들이 왜 나를 방해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오만에 의한 반감과 반란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선출제가 도입되었다. 선출제를 통해 다수 대중과 엘리트 사이의 연결고리가 생성되고, 선출을 통해 공동체에 유익한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반감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시민권 패키지의 범위와 대상의 확대로 연결된다. 동시에 이런 권리가 부여된 것 자체로 대단한 교육의 효과를 낳는다.


  -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가 어쨌든 엘리트들은 사람이기에 근시안적이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특히 엘리트 집단 안에서 권력의 이양에 대한 견해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외생변수를 언급하나, 외부 엘리트와 내부 엘리트의 연합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권력, 규칙, 그리고 준법 – 산체스-쿠엔카


  피노체트의 협박은 법의 지배가 권력관계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통치행위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의 지배는 통치행위가 법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법을 따르리라는 기대를 품고 법을 신뢰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언제든지 취약해질 수 있다. 법의 지배를 달성하려면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아무도 파괴하려 하지 않는 체제를 고안해내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제엔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형식적 안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 지속성이다. 이 두 가지는 준법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잇다. 준법의 문제를 현실의 역학관계롤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이것은 제도화된 권력과 제도 밖의 권력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제도의 독리성과 자율성을 드러낼 다른 설명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설의 구성적 규칙과 규제적 규칙의 구분법을 차용할 것이다. 구성적 규칙이란 규칙 자체가 새로운 행동양식과 권한을 만들어내는 규칙을 뜻한다. 구성적 규칙으로서의 제도는 규칙을 통해 제도화된 권력을 만들어내며,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을 가능한한 배제하거나 최소한 통제하려 한다. 이런 상태를 법의 지배라고 부를 수 있다.


  법의 지배에서 준법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첫째, 사람들은 왜 법을 따르는가 하는 문제다. 제도와 제도 밖의 수단이 동시에 주어질 때 사람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것은 법이 완전히 구성적 규칙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제도화된 권력과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의 분포의 불일치는 준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권력의 불일치 속에서 제도가 제공해주는 이익이 더 클 때 준법이 실현된다.


  - 법의 지배의 이상 사람들이 모두 법을 따르고, 법이 사람들의 최소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상황을 우리는 법의 지배라고 부를 수 있다. 풀러 정식 중 8번은 준법을 조건으로 달고 있다. 즉, 앞의 7개 조건이 잘 지켜진다고 하더라도 준법은 실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함축하는 것이다. 만약 행정부가 임의성을 띈다면, 풀러 정식과 관련된 준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입법부가 임의적이라면, 이것은 법의 지배와 연관된다. 풀러 정식에 부합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서 준법의 소극적/적극적 형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다시 법에 대한 복종/법에 대한 종속, 정적인 준법/동적인 준법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모든 구별에서 후자는 통치자의 입법권에 제한이 가해지는 형태를 의미한다.


  - 정치에 관한 구성적 규칙 존재하지 않았던 권한을 부여하는 규칙(하트)로서의 법이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법은 구성적 측면과 규제적 측면을 지닌다. 그 중에서도 정치에 관한 구성적 규칙으로서의 법엔 고유성이 있다.


  다른 종류의 구성적 규칙과 법을 비교해보자. 첫째 사례는 게임이다. 게임 규칙은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히 떨어져있다. 또 내가 참여하고자 하는 순간 모든 행위가 규칙에 의존적인 것이 된다.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선택이다. 둘째 사례는 언어다. 모든 발화는 규칙인 문법에 의존적이다. 그리고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이탈을 뜻한다. 구성적 규칙으로서의 법과 비교해보자. 법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탈(또는 전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공동체를 떠나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기에, 이 법을 거부한 뒤의 대안이 사실상 없다. 이 두 가지는 차이점이다. 반면 규칙에 의존적이라는 것, 그리고 부정행위는 규칙과 무관한 어떤 행위로 간주된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의 정치적 규칙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규칙 자체의 파괴나 변화가 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완전히 자율적이고 독립적이진 않다고 간주해야 한다.


  또 제도에 근거한 사실과 제도에 근거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구분법으로 이 둘의 차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게임과 언어에서는 이 두 종류의 사실이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정치적 규칙에서는 그렇지 않다. 제도화된 권력에 접근하는 제도화되지 않은 방법이 현실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을 제도화하는 방법도 열려있다. 예를 들어, 타국을 공격해야 전쟁인가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해야 전쟁인가? 이런 가능성은 법이 그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대적으로만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이 상대적 독립성으로부터 준법의 문제가 도출된다. 왜 다른 방식이 아닌 제도에 기반한 방식을 통해 제도화된 권력을 취하는가? 에콰도르의 3인 대통령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선출된 대통령 부카람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큰 반대에 부딪혔다. 의회는 정신병을 근거로 부카람의 당선이 무효이며, 의장 알라르콘을 후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부카람은 이 결정을 수용하지 않았다. 부통령 아르테아가는 대통령 공석 시 부통령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헌법조항을 근거로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비정치적 권력으로서의 군이 개입해서 상황을 정리한 뒤에야 이 사태는 수습되었다. 군은 법에 의해 제한받는 제도화된 권력이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무력으로서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이기도 하다. 즉, 제도화된 권력이 인민의 의지나 군대 등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것은 제도화된 권력의 위기상황이다. 요약하자면, 법의 지배는 정치행위가 구성적 규칙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내포한다. 하지만 구성적 규칙의 유지와 준법의 여부는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서도 그 권력은 정치 행위에서는 배제되어 있다. 이런 긴장으로부터 파생된 자율성이 두 가지 권력의 형태 사이의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 정치에 관한 구성적 규칙의 상대적 자율성 법의 지배에 대한 고전적인 사회주의적 관념은, 법의 지배가 사회적 권력관계의 충실한 반영이라는 것이었다. 영구헌법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준법은 그 법이 실제와 유사할 때 실천되며(라살레), 모든 권리는 상부구조이고 권력이 그 원천이라는 것이다(코엔). 그러나 이런 권리와 권력의 대응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법적 권리의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통해 상대적 자율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대적 자율성은 어떻게 확립되며 유지되는가? 즉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고 지키는가? 캘버트의 감독관 모델을 참조해보면, 협력여부를 알려주는 새로운 제도에 의해서 균형이 창출된다는 것이 확인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모델에서는, 모든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이 양도되면서 그 행사가 불법화되는 과정에 의해 균형이 창출된다. 이렇게 구성적 규칙이 구성된 이후에 사람들은 이것을 “지킨다.” 지키는 이유에는 준법이 이익이 된다는 하나의 이유, 또는 제도변경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제도 자체가 관성을 띄게 된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성적 규칙은 제도에 근거한 이익을 발생시킨다. 제도에 근거한 이익이 제도에 근거하지 않은 이익보다 크면 사람들은 준법을 실천한다. 이 두 유형의 이익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정당의 의회 참여문제에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매디슨은 제도에 근거한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제도 밖 권력을 제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제도에 근거하지 않은 이익이나 권력이 제도에 근거한 이익이나 권력으로 완전히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관성의 문제를 살펴보자면, 이미 확립된 구성적 규칙은 그 자체로 변경이나 전복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이것은 쉐보르스키의 명제, 즉 GDP가 높으면 민주주의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체벨리스의 명제, 즉 거부조건이 까다로울수록 법이 잘 준수된다는 주장도 첨언할 수 있다.


  - 결론 정치제도는 완전히 독립된 규칙도, 현실의 파워 게임의 단순한 반영도 아니다. 그래서 법의 지배는 규칙의 우선성에 관한 주장도, 이념적 추상도 아니다. 법의 지배는 이 중간에 위치하며, 그래서 준법의 문제가 발생한다. 제도에 의존하는 권력과 이익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 바깥의 권력/수단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준법은 제도에 기반한 이익이 크거나 제도 자체를 변화 또는 전복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클 때 발생한다.



법치국가에서 복종과 의무 – 트로퍼


  법치주의는 사실과 당위를 통합한다. 법이 있다는 사실이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수권자가 법을 준수한다는 사실은 준수에 대한 나의 의무를 정당화하는 한 요소가 된다. 이것은 법이 안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법이 자발적으로 제정된 것이라는 생각에 의해 뒷받침된다. 법의 지배와 법치국가는 같은 것인가? 다르다. 법의 지배는 달성해야 할 이상으로 제시되지만, 법치국가는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존의 법치국가 이론이 그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어떻게 법의 지배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 법치국가이론1: 법에 복종하는 국가로서의 법치국가 법치국가는 어떤 법에 복종하고 있는가? 자연법이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사조가 있다. 이 사조에서는 자연법은 인민주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법치국가와 인민주권이 양립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연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가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으며, 그 때문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여기에서 자연법과 실제 규칙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며, 결정적으로 자연법에 복종하는 것을 자율성의 표시로서 법의 지배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다. 다른 하나의 사조는 실정법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법은 최초의 설계방법부터 인간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법은 시시때때로 너무나도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자연법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법이 지닌 지나친 일반성으로 인해 해석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시 법의 지배로 간주하기 힘들다.


  - 법치국가이론2: 법의 형태를 띈 국가권력으로서의 법치국가 상위법은 대체로 내용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실제 집행상의 재량은 온전히 국가에게 주어져있다. 이 까닭에 집행은 법치의 외피를 입고 있다. 국가는 자신의 집행사항이 상위법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법부의 전문성과 넓은 재량은 사법부에게 사실상의 입법권을 부여한다. 둘째, 행정부 각 부서의 비대화와 재량권 또한 집행의 과정에서 입법 활동과 비슷한 결과를 낸다.


  - 법치국가에서의 실제 제약들1: 구성적 규칙 구성적 규칙은 규칙 자체에서 특정한 효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행위는 반드시 그 규칙들을 따라야 할 수 밖에 없다. 국가 또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자 할 때 몇몇 구성적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법치국가 내에서 인민의 준법을 정당화하는 요소가 된다.


  - 제약들2: 메커니즘으로서의 헌법 헌법은 특별한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잘 설계된 헌법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한다. 영국 헌법을 예로 들어보자. 영국의 명목상 최고행정집행자는 왕이다. 동시에 왕은 입법부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런 왕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정책의 실행에 대한 책임은 왕이 아닌 각 행정부처의 장관이 진다. 왕은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입법기관을 견제하는 동시에, 장관들로부터 견제를 당한다. 물론 이런 잘 설계된 헌정질서를 고안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제약들3: 재량권 행사의 제약 해석상의 제약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선거권을 확대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미에 관한 해석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권리도 있고 투표권 행사도 가능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으나, 이후에는 행사를 제한당하고, 이후에는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들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인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다시 확대되었다. 또 다른 예는, 대체로 합의체로 운영되는 최고법원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합의체로 운영되기 때문에 급진적인 의견이 나오기 어렵고, 객관적 설득력이라는 외피를 반드시 갖춰야만 한다. 이 지점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재량권의 제약이 발생한다. 또 최고법원은 자신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을 개인들을 고려하면 할수록 직접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을 내리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마주한다.


  위의 세 가지 제약들은 법치국가의 어떤 상태가 법의 지배와 비슷해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는 이론화에는 실패하게 된다. 우선 위와 같은 제약은 법의 지배라는 현상 전부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제약을 받는 구성원들의 이념이 더 많은 결과물을 설명해줄 수 있다. 또한 이런 제약들에 정말로 상위규칙들이 적용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마지막으로, 법의 지배 자체가 확립되어있지 않는 한, 시민이 법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재량에 따른 의지에 종속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치적 토대와 법의 지배”에 대한 발문 – 웨인개스트


  쉐보르스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법은 규범이 아니라 유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복종한다.” 이 관점은 유효한 것으로 보이며,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선, 헌법의 경우 적절한 기대치와 그 배반에 대한 집단적 반란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지켜진다. 따라서 합리적 수권자는 법을 준수하여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한다. 역으로 법은 이런 유인을 수권자에게 충분히 제공해야지만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다.


  - 법의 지배에 대한 균형접근법의 논리 쉐보르스키와 웨인개스트의 입장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이익 자체가 복종의 요인인 반면, 후자는 불복의 손해의 크기가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든 패배한 다수파의 협력-집합행동의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어떤 통치행위가 피지배 시민들의 사이를 갈라놓으며, 또 묶어주는가? 이를 위해 네 가지 조건을 검토해보면 좋을 것이다. 첫째, 의사결정절차에 대한 협약, 둘째, 협약의 존재가 이익이 된다는 각 집단의 판단, 셋째, 다른 집단과 행동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 넷째, 지배층에 저항해 협약을 지키겠다는 의지, 즉 공동전선의 구축.


  - 합의의 함축적 의미 합의(와 정치문화)는 이전 연구자들이 중요하게 고려했던 요소다. 하지만 웨인개스트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합의가 아니라 협력이 중요하다. 협력이 합의의 문화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었다. 의견불일치(비합의)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있다면 공동전선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정당은 왜 선거결과에 복종하는가 – 쉐보르스키


  선거제도에 대한 정당의 복종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법의 지배 자체를 존중하는 문화적 코드에 기반한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과 갈등의 평형상태에 기반한 설명이다. 어느 쪽이 더 타당할까?


  데이터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민주주의가 지속될 확률이 높다. 소득수준에 따라 선거에서 이긴 세력과 진 세력의 행동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주 낮을 땐 둘 다 불복하고, 중간일 땐 패배자만 불복하며, 높을 땐 둘 다 복종한다. 한 정당이 입법부 하원의 2/3 이상을 차지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확률이 높으며, 반대로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공동체에서는 민주주의가 지속된다. 즉 한 세력의 장기집권이 없을 때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 문화와 민주주의 문화중심 설명은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며 민주주의는 소득과 상관없다는 강한 주장으로 정식화되어야한다.


  - 문화적 견해들의 역사 문화중심 설명은 몽테스키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특정한 문화는 그에 걸맞는 특정한 형태의 정부(정치제도)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본인의 분명한 서술은 아니며 후대에 정식화된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정치제도의 발생 원인에 대해 확정짓지 않았다. 이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문화의 발전에 따라 정부도 발전한다는 입장을 폈다. 밀은 특정한 몇몇 문화는 민주주의와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민주주의를 배운 뒤에는 민주주의자로서의 행위를 수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문화중심적 설명을 모아보았을 때, 두 가지 난점이 도출된다. 첫째, 문화 내에서 어떤 특성이 민주주의를 향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별해낼 수 있는가. 둘째,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변화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는가.


  최근에 아몬드와 버바는 문화중심적 설명을 부활시켰다. 그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서구권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따라잡으면서도 정치는 후진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정치발전을 추동하는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그 원인을 “문화”라고 지목했다. 그들은 문화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도했는데, 이 분석은 개인들에게 던져진 몇 가지 유형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지형도로 구성된다. 이런 질문에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이 답변의 지형도는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와 무관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 문화의 어떤 면이 중요한가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문화의 특정한 측면에 대한 가설은 많다. 비이성적 동력(몽테스키외), 감정(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선호(밀, 아몬드와 버바), 삶에 대한 만족도와 혁명에 대한 열망(잉글하트) 등등. 또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의 어떤 측면들에 대한 설명도 있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거나(토크빌), 자기지배, 즉 자기결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느낀다거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걸맞는 시민적 덕성이라거나, 심지어 뭔가에 대한 합의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 대한 인과적 설명의 유형도 나뉜다. 첫째, 문화가 발전하면 경제도 번영하고 민주주의도 달성된다(립셋, 위아르다, 동아시아). 둘째, 문화와 경제발전이 동시에 되면 민주주의가 출현한다(아몬드와 버바). 셋째, 경제발전이 관대한 문화를 낳고 이것이 민주주의를 탄생시킨다(립셋). 넷째, 민주적 제도가 먼저 출현하고 문화가 뒤따른다(밀, 토크빌, 몽테스키외).


  - 문화 그리고 민주적 문화 민주적 문화에 대한 초창기의 논의는 프로테스탄트주의 즉 종교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프로테스탄트주의가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는 것이 베버에 관한 일반적 해석이다. 다른 종교에 관해서는 어떨까? 유학? 논쟁중이다. 이슬람? 역시 논쟁중이다. 한 종파 안에서도 서로 다른 교리해석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렇듯 문화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것이 무리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결과에 심하게 의존한(결과론적) 해석이다. 둘째, 어느 문화에서는 일정한 수준의 민주주의 친화적 성격은 찾을 수 있다. 셋째, 오래된 종교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정치체제와 공존해왔다. 즉, 그런 종교들이 특정한 하나의 정치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고(할 수 있다고) 간주하기 힘들다. 넷째, 종교든 문화든 전통이라는 것 자체가 가변적이기에 특정한 정치체제와 연결될 수 없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최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나 후쿠야마의 문화투쟁론 같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중심 설명의 부활로 간주할 만하다. 특히 이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인권 제국주의”로 간주하며 거부한다는 사실을 적극 내세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근본주의는 서구와 비서구를 가리지 않는다. 다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를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문화의 정수로 간주되는 종교조차, 실제로는 사회 내의 이해관계조정 기능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것이 베버의 생각이다. 이외의 다른 연구들 또한 문화로서의 종교보다는 제도로서의 종교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보여준다.


  - 경험적 증거 문화는 유효한 변수로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규모는 민주주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다문화적 상황은 민주주의도 망치지만 독재 또한 쉽사리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 즉, 다문화적 상황은 불안정 자체일 뿐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 결국 문화중심의 민주주의 이행 설명은 기각된다.


  - 이익과 민주주의: 공동체 모델링 민주주의적 공동체의 원형을 추출해보자. 이 공동체는 선출제로 운영되며 그 과정은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1인당 국민소득은 x이며, 계층은 3단계(저, 중, 고), 보수와 진보의 양당이 존재한다. 승리한 당은 자신들이 내세운 정책을 패배한 당에게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와 이익을 늘린다. 이 과정을 둘 다 수긍하면 민주정이고, 어느 한 당 또는 두 당 모두 불복하면 독재상태에 돌입한다. 하지만 두 당 모두 독재의 상황을 피하려는 유인이 있다. 독재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이 자신들이 내세운 정책을 통한 재분배의 실질적 효과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 모델에서 민주주의는 생존가능한가?


  - 풍요와 민주주의의 생존 부가 늘어날수록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의 손해는 줄어들고, 독재에서 오는 이득과 손해의 격차도 따라서 줄어들다 특정 지점을 지나면 이 둘의 관계가 역전된다. 이 순간부터 선거에 승복하는 행태가 정착된다. 반대로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복과 독재가 출현할 수도 있다. 물론, 가난하더라도 세력균형이 잘 잡혀있고 소득분포도 일정하다면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잘 자리를 잡는다. 인도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세력균형이 흐트러져 있을 때에는 이것을 재분배로 교정해주는 정책을 시행하면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도 잇다. 반면 특정한 세력의 군사력이 압도적인 경우에는 민주주의의 유지가 쉽지 않다.


  - 소득 재분배 획기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에 대한 두 가지 제약이 존재한다. 하나는 반란의 위험이고, 하나는 유인을 창출하지 못해 효율이 저하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그런데 첫 번째 제약과 양립가능한 재분배의 양과 비율은 1인당 국민소득에 비례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한에서의 수권자의 운신의 폭 또한 1인당 국민소득에 비례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의 정도와 과세율의 비례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 부연설명과 해석: 승리확률 매우 진전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일부 정당은 영원한 패배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체제 유지의 이익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주의 체제가 진전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거참여와 복종에 대한 유인으로서의 승리확률을 잘 안배해서 제도설계에 신경을 써야한다.


  - 부연설명과 해석: 투표 투표가 민주주의의 유지와 붕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경우를 설정해볼 수 있다. 첫째, 좌파 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유권자의 힘을 바탕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파는 지지자가 소수이기에 독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1인 당 몫이 커지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유인이 생긴다. 둘째, 좌파가 석패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충분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한 반란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데, 첫째 경우보다 지지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독재에 성공시 1인이 가져갈 몫이 늘어남으로써 독재에 대한 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셋째, 우파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을 경우, 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된다. 이 경우 우파 지지자들의 1인당 몫이 별 것 없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유인이 없다. 넷째, 좌파가 아슬하게 이겼을 경우, 체제가 유지된다.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유인이 없고, 우파의 지지자와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 부연설명과 해석: 헌법 헌법은 잘 바뀌지 않는 최고의 법이다. 이는 집단 간 균형을 최초로 설정한 법이기 때문에, 제도의 유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설립동의(즉 규칙에 대한 존중)이 준수(즉 제도에 따른 결과에 대한 존중)를 함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부연설명과 해석: 균형점 구성적 규칙으로서의 법은 상황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사람들에게 부여한다. 어떤 법은 균형을 만들어주지만, 어떤 다른 법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균형을 이루게 도와주는 법 중 어떤 것은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게 편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참가자들은 이 법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경쟁에 뛰어든다.


  - 결론 선거규칙과 결과에 대한 승복은 합리적 이익추구의 결과다. 이 연구는 이미 균형점을 이루고 있는 여러 공동체들에 대한 관찰의 결과인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지속성에 관한 유의미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들과 집단들의 심리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문화중심의 설명을 채택한 사람들은 이 글에서 보인 것만큼 검증가능한 형태로 자신들의 설명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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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같이 하는 정치경제학독서소모임 발제>


6장 – 복지국가 유형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형


  노동시장에 대한 기존의 관점은 몇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노동시장 역시 가격 지표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주류경제학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사관계의 유형에 따라 노동시장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제도주의의 관점이다. 또한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계층이동의 기회균등 여부를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분석한다. 이런 관점들은 복지국가의 정책과 노동시장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포착하지 못하며, 이런 관점들에 의해 구상된 정책은 국가와 노동시장의 엄격한 분리, 그리고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엄격한 분리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세 가지 소리없는 혁명이 있다. 첫째는 완전고용의 대상이 비-남성으로 확대됨으로써 복지국가에 의존하는 사람들과 복지국가가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가 동시에 늘어났다. 둘째, 복지국가는 잉여인력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넘어서는 다양한 목적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어내야만 했다. 셋째, 사영 기업에 대한 규제를 넘어서서 복지국가 자체가 노동시장에 큰 영향력을 지닌 고용주로서 대두되었다. 이런 변화 이후 복지국가와 노동시장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동의 공급을 결정하는 조건(퇴직), 노동계약 상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의 확보 정도(유급결근), 그리고 노동수요라는 세 가지 지표에 주목해보도록 하자.


  사람들은 여가의 향유나 연금의 수준 같은 단순한 이유로 퇴직을 결정하지 않으며,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다른 많은 사회정책들을 고려한다. 특히 장기실업의 위험은 중요한 고려요소이다. 보수주의 복지국가는 위험도 높지만 연금수준도 높기 때문에 퇴직률이 높다. 사민주의 복지국가는 위험이 낮기 때문에 연금수준과 무관하게 퇴직률이 낮다. 이것은 일할 권리를 헌법의 수준에서 보장하는 두 유형 사이의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퇴직은 연금 수준과의 관계에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국가 전체의 완전고용을 유지하고 경제의 완급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유급결근은 상실된 노동능력을 회복시켜주려는 의도에도, 일하고 싶지 않을 때(일하지 않아야 할 때) 유급의 휴가를 주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불만 표시의 수단이나 고용자의 시장 대응 전략으로도 사용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놀고 싶어하는 단순한 욕구의 충족이라는 시선으로 유급결근을 파악해서는 안된다. 유급결근일수는 사민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복지국가 순서로 점점 줄어든다. 또한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유급결근일수 중 상당수는 비-상병결근인데, 특히 출산-육아휴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그 비중이 크지 않다. 이런 결근일수의 차이는 법제화(미국) 또는 절차의 복잡함(캐나다), 결근 중 급여의 수준과 지급주체의 차이(독일, 프랑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국가는 그 자체로 노동시장에서 큰 수요를 발생시키는 주체이며, 특히 행정 등 본연의 업무 이외에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막대한 고용을 창출한다. 사민주의 국가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의 국가의 고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보수주의 국가에는 그 비중이 낮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사회 서비스 분야의 종사자는 많지만 대개는 사영 기업이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7장 – 복지국가의 유형에 따른 완전고용정책의 차이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의 달성과 경기의 안정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진해야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한 편에서는 완전고용의 달성에 무게를 싣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경기의 완급을 조절해 실업을 일부러 유발시킴으로써 완전고용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응한다. 우리는 각 나라들이 이 두 가지 정책 방향 중 한 가지를 채택하게 되는 이유와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해보아야 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복지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적 모형들이 출현했다. 스웨덴은 강하고 광범위한 노동조합과 연결된 노동자 정당의 협상력을 바탕으로, 기업의 경영권 불간섭과 완전고용을 맞바꾸는 긴 기간의 사회계약을 만들어냈다. 반면 미국은 사업장 별로 협상이 파편화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정부는 거시경제정책의 조정을 통해 완전고용의 요구를 잠재웠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모형 사이에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모형들을 단순화하기 위해 북유럽, 독일과 미국을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뉴딜 정책을 통해서 강한 복지국가로 변하고자 했으나 파편화된 정치세력들 사이의 이해 충돌과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다. 결국 이들을 극복해내지 못했으며, 완전고용과 복지 서비스 확충을 위한 다양한 입법은 좌절되거나 폐기되었다. 영국 또한 완전고용에 수반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고,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노동자 계급의 반대를 불러왔다. 북유럽의 여러 국가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자영농이 정치적 다수파였던 덴마크에서는 한동안 거시경제정책 조절이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복지국가체제는 뒤늦게 성립되었다. 반면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잘 조직된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정당이 주요한 정치세력이었고, 이들이 복지국가체제의 성립을 주도했다. 스웨덴은 소득을 통제하는 정책 대신 이직이 자유롭도록 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는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임금과 투자에 대한 노동자-고용자의 상호확신을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통해 임금인상의 압력이 없는 완전고용을 달성해냈으며, 이후 북유럽의 모형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1960년대 이후 선진국의 노동시장은 완전고용에 상당히 근접한 정도로 변화하였고, 이는 임금인상의 압력으로 나타났다. 임금인상의 압력은 국제적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가는 몇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첫째는 디플레이션 유발, 둘째는 소득 동결, 셋째는 노동자-고용자 사이의 새로운 연대방식 설정, 넷째는 새로운 노동력 공급 유발이다. 첫째는 일시적이었고, 둘째는 고용자들만 이익을 가져간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을 이겨내지 못했으며, 셋째는 정치적인 불안과 그에 따른 협상파기 그리고 협상의 결과로서의 공공투자와 지연된 임금(이연임금)에 따른 공공재정의 부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는 결과적으로 임금인상의 압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노동조합들은 긴 안목보다 눈앞의 성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고, 국가는 이런 상황에서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지연된 임금 전략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미국의 빈곤과의 전쟁,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연금 급여 인상, 물가연동제, 소득대체율 인상이 그 예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지연된 임금의 규모가 늘어났고,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노동자의 경영참여 또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사영 기업의 경영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폐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이런 상황은 인플레이션과 세금 증대에 따른 임금인상의 압박, 노동조합의 분열과 근시안화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경제적 격동기인 1970년대에는 복지국가가 경기의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후 여러 국가들의 정책 선택에 다양한 모형이 나타났다. 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임금억제+재취업 프로그램 활성화 묶음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첫째, 노동조합들은 현재의 피고용자들의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감수해야만 실현가능한 미래의 피고용자(현재의 미취업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 둘째, 정부는 그 당시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자에 허덕였다. 셋째,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선진국들 내부에서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동자와 고용자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여기에 미국은 거시경제 관리와 시장규제로, 북유럽 국가들은 국가의 직접 고용으로, 독일은 노동자 은퇴로 대응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은 빚을 내서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공공 근로 고용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노르웨이는 유전에서 나온 기름을 팔아 복지 프로그램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스웨덴 또한 세수가 정체된 상황에서 빚을 내어 완전고용을 유지하였다. 80년대에 만들어진 임금소득자기금은 기업들이 초과이윤 등을 합쳐 내는 방식 때문에 고용자들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독일은 정치권과 금융계가 위기해법을 놓고 갈등을 겪었으며, 긴축재정을 시행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줄이고 대대적인 노동자 은퇴 정책을 추진했으나, 이는 오히려 사회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늘리는 반작용을 낳았다.


  위에서 이루어진 고찰은 경기 안정과 완전고용의 동시 달성 가능 여부,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들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이뤄졌다. 핵심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나, 그 합의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은 다양했다. 그리고 이런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는 두 가지 역할을 맡는다. 하나는 분배의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지연시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분배에 개입하는 권력을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것. 한 때 이 두 기능이 스웨덴에서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스웨덴에서조차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 의회권력과 고용자를 상대로 한 교섭력을 상실하면서 복지국가가 이런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8장 – 복지국가 유형에 따른 포스트 산업사회의 노동 시장의 분절화 양상


  포스트 산업사회는 이전의 산업사회와 다른 고용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같은 포스트 산업사회에 진입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복지국가의 유형에 따라서 다시 고용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각 유형의 사회마다 고유한 계층적 고용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고유한 고용구조 또한 완전고용정책이나 서로 다른 노동시장 유형과 마찬가지로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 스웨덴, 독일을 전형적인 사례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포스트 산업사회의 고용구조의 전형적인 특징은 제조업 분야 성장의 둔화와 서비스 분야 고용의 폭증이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제조업 분야의 실업자들이 서비스 분야로 모두 옮겨가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관적인 사람들은 제조업 분야의 실업자들이 실업상태로 그대로 남음으로써 포스트 산업사회에 걸맞은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비관적인 관점 중 하나는, 서비스 분야는 제조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리며 그 임금은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보몰 가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증적으로도(유럽 사례 연구), 이론적으로도(생산성 개념의 정립 불가능) 비판의 여지가 있다. 또한 서비스 분야 또한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도, 대체불가능한 영역을 예로 드는 것에 의해 반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비스 분야를 단순히 하나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산업 영역과 연관이 많은 것과 적은 것 등으로 나누어 조사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세계에 속하는 서비스 산업과 포스트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서비스 산업을 나누어서 분석할 것이다.


   우선 그 규모로 보았을 때, 미국과 스웨덴에서는 고용이 대폭 늘었지만 독일에서는 늘지 않았다. 특히 앞의 두 나라에서는 여성 고용이 대폭 늘었지만, 독일은 늘지 않았다. 노동시간의 경우는 미국은 늘었고 스웨덴은 그대로이며 독일은 줄어들었다. 시간제 일자리의 경우 독일과 스웨덴은 대폭 늘어났지만 미국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 세분화해서 일자리의 유형을 분석해보았을 때, 스웨덴은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의 여성 고용이 대폭 늘어난 반면 미국에서는 경영관리와 재미 서비스 분야의 고용이 대폭 증가했다. 고급(고임금?) 일자리와 저급(저임금?) 일자리를 나눠서 보았을 때에는 전체적으로 포스트 산업사회에 속하는 분야들이 산업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고급 일자리와 저급 일자리 모두에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스웨덴의 경우 국가가 사회 서비스 분야에 여성을 대거 고용한 것으로 드러난다. 독일은 국가가 여성의 고용에 무관심한 모습이다. 미국은 남녀 모두 대부분의 고용을 시장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포스트 산업사회로 나아감에 따라서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관리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또한 이들은 대부분 사영 기업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이며, 국가를 대신해 여러 정보들을 제공해줄 서비스업자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복지국가체제에 큰 진전이 없는 미국의 특징이다. 포스트 산업사회로 들어가는 각 국가의 산업구조는 어떠할까? 독일은 전반적인 고용감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은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영역이 증가하는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미국의 경우에는 재미 서비스의 급증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직군별 상대적인 규모를 보았을 때, 독일은 여전히 공장노동자들의 위상이 높으며, 스웨덴은 사회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전반적인 성장을 기록중이다.


  포스트 산업사회의 고용구조에 대한 전망에는 낙관적인 것과 비관적인 것이 공존한다. 지식과 과학적 정보들을 처리하는 고급직군의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소수의 지식노동자와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화로 귀결될 것인지. 고용의 질을 분석해보았을 때, 독일은 중간과 상급이 다수를 차지한다. 스웨덴은 상급이 다수를 차지한다. 반면 미국은 상급의 주목할만한 비율에도 불구하고, 하급의 직군들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전체적으로 포스트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비교적으로 상급의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소수자에 초점을 맞출수록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소수자들의 직군에 관한 분석은 계층이동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직종의 분절화라는 경향 또한 같이 보여준다. 우선 성별에 의한 직업의 분절화 경향은 전체적으로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이런 추세가 다소 덜하며, 스웨덴에서는 직업을 가지되 사회 서비스 직군에 몰려있다. 미국의 흑인과 히스패닉 또한 중간이나 상급 직종으로 점점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히스패닉보다 흑인에게서 더 뚜렷하다. 주목할만한 것은, 스웨덴에서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는 기회를 점점 더 많이 잡고 있음과 동시에 여성들이 사회 서비스직에 집중되어있는 또 다른 분절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분석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포스트 산업사회를 향한 진입은 사회 전반의 직업적 상승을 야기했으며, 특히 소수자들에게 직업 선택의 폭을 더욱 넓혀주었다. 허나 그 속에서 또 다른 분절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일은 예외적으로 고용 자체가 줄어들고 산업사회 분야의 주도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독일은 이제 제조업에서의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복지국가체제가 잘 갖춰져 있으나 여성 직종의 분절화가 심각하다. 즉, 여성을 많이 고용하는 공공부문과 남성을 많이 고용하는 사영부분이 뚜렷하게 나눠지는 것이다. 미국은 경제 전반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의 성장과 인종적, 성적 편향성의 개선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고용구조가 압도적으로 좋은 일자리와 압도적으로 나쁜 일자리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서두에서 제시된 보몰 가설은 이들 국가들의 포스트 산업사회를 향한 변화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다.
 


9장 결론 – 미래예측


  지금까지 복지국가의 유형들을 구분하고 탈상품화, 권력동원, 고용구조 등의 측면에서 그 궤적을 추적해보았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국은 관리와 재미 서비스가, 스웨덴은 사회 서비스가, 독일은 여전히 생산직이 주도하는 경제구조로 변화해왔다.


  스웨덴의 경우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완전고용 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여성이 일을 하게 만드는 다양한 유인들을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수에 있어서 한계가 있고, 이들은 임금인상의 압박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소득정책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소득정책은 압박에 대처하는 데 좋은 수단이 되지 못한다. 독일의 경우 긴축정책에 기울어있고 보수주의적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고용구조를 유지하고 고용규모를 축소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이는 여성의 배제와 공공서비스의 정체, 그리고 이후 퇴직자들의 증가로 인한 국가재정의 압박이 예상된다. 미국은 알려진 편견과는 다르게 상급의 일자리와 하급의 일자리가 모두 함께 증가하였지만, 사회 서비스 영역이 여전히 사적인 것으로서 시장에 의존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기업들은 각자가 연금 등과 관련된 추가적인 대책들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며, 이런 일을 대신하기 위한 상당한 규모의 관리자와 관리비용을 필요로 한다. 또한 시장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면서도 노동시장의 분절과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국가 전체에 확대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한 분절화에 잇따르는 계층화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계층화는 모든 국가에서 단선적으로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트 대립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계층화의 양상 또한 복지국가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스웨덴의 경우 민간-남성과 공공-여성의 분절과 대립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현재의 피고용자(내부자)-현재의 실직자(외부자)의 구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여성이 직업을 갖지 않기에 가족 내 부양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고, 또 이들은 더 적은 세금을 부담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금체계를 둘러싼 부양자-피부양자 갈등, 일자리를 둘러싼 내국인-외국인 갈등 등도 내포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적으로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전히 하급 일자리에서는 소수인종과 여성들이 과대대표 되어있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해볼 때,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낙관적 전망은 이런 개선의 경향이 계속되어 고용구조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과대대표 현상이 서서히 줄어들며, 현재의 상태는 계층상승을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 비관적 전망은, 같은 소수자 집단 사이에서 계층이 형성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이 확산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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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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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출근을 해본 적이 없다.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비슷한 경험이라면, 10년 가까이 다닌 학교 통학일거다. 경기도 버스, 환승, 도시철도, 환승, 다른 도시철도, 마지막으로 마을버스. 이 과정을 뒤집으면 집으로 향하는 길. 날마다 10분의 1, 10년의 10분의 1인 1년을 지하철에서 서있거나 앉아있었다. 한동안은 이 시간을 쓸 줄 몰라 선로 위에 버렸고, 나름대로 세워본 꼼꼼한 계획은 같은 시간에 어디론가 향하는 빽빽한 사람들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내게 통학은 더할바없는 지루함이었다. 저녁을 늦게까지 먹고는 친구집에서 잔 뒤 다음날 일어나고 5분만에 강의실에 도착할 때는, 내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게 통근은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며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이 책은, 이상했다. 마치 통근 없이 집에서 일하는 것은 사회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시대적 태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통근이 전국 표준시의 확립, 사회간접자본의 확산, 신기한 발명을 포함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문학과 기술서적과 팜플렛을 오고가는 어마어마한 주석과 참고문헌이 통근의 힘을 증명해준다고 말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이 책에 담겨있는 풍부한 정보를 읽다보면,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 대한민국의 대도시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이 자연스레 겹쳐보인다. 한국이 뒤늦게 압축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기 언급된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볼 때 최초의 몇몇 사건들은 그렇게 많이 떨어져있지도 않았다. 서울의 통근이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압박은 다른 주요도시들도 경험했으며, 완화시키기 위한 제안도 우리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사람 사는 곳은 이리도 닮았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글쓴이인 저자와 읽는이인 나는 미래의 통근에 도달했다. 통근이 사라진 사회는 새로운 중세가 될까, 아니면 통근이 우리에게서 뺏어가는 시간이 무한소로 수렴할까. 자동차 통근이 대세인 상황에서 대체수단은 아직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다소 비관적인 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작 150년전에 등장한 미국 최초의 자동차가 사람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다는 것 또한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그만큼 전망은 쓸모없고, 통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미래는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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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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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를 제외한 모든 단편은 신을 다룬다.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의 상태에 다가가려는 인간의 노력, 무경계와 확실성이라는 신의 인식, 영원한 현재라는 신의 시간, 이름짓기라는 신의 기능, 기적과 감추어진 섭리라는 신의 현전. 이들 모두는 인류가 신을 초월성에 귀속시킨 이래로 그에게 부여해온 속성의 역사의 일부다. 이 단편들은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내게 그 내용은 초월성의 내용을 모색하는 철학적 사색의 일부다.


나머지 예외적인 단편 하나는 외모지상주의와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개발된 기계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그러나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만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자율과 강제, 자연과 문명화, 주장과 동기-의도 등과 같은 인간의 사회를 둘러싼 굵은 주제들이 촘촘히 엮여들어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목소리를 낸다. 또는 그렇게 보이게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작가의 상상이 뻗어나간다. 다른 주제에 관해 한 번쯤은 떠올렸을법한 생각들, 그리고 아마 한 두 번쯤은 SNS에 개진해봤을 의견들. 다소 추상적인 다른 단편들에 비해, 이 단편은 현실과 접점이 많고 나를 거울에 비춰보는 것 같아 약간은 부끄러웠으며 그래서 가장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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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 주체적 작위 파시즘 시민사회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김석근 옮김 / 아산정책연구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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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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