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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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출근을 해본 적이 없다.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비슷한 경험이라면, 10년 가까이 다닌 학교 통학일거다. 경기도 버스, 환승, 도시철도, 환승, 다른 도시철도, 마지막으로 마을버스. 이 과정을 뒤집으면 집으로 향하는 길. 날마다 10분의 1, 10년의 10분의 1인 1년을 지하철에서 서있거나 앉아있었다. 한동안은 이 시간을 쓸 줄 몰라 선로 위에 버렸고, 나름대로 세워본 꼼꼼한 계획은 같은 시간에 어디론가 향하는 빽빽한 사람들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내게 통학은 더할바없는 지루함이었다. 저녁을 늦게까지 먹고는 친구집에서 잔 뒤 다음날 일어나고 5분만에 강의실에 도착할 때는, 내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게 통근은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며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이 책은, 이상했다. 마치 통근 없이 집에서 일하는 것은 사회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시대적 태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통근이 전국 표준시의 확립, 사회간접자본의 확산, 신기한 발명을 포함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문학과 기술서적과 팜플렛을 오고가는 어마어마한 주석과 참고문헌이 통근의 힘을 증명해준다고 말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이 책에 담겨있는 풍부한 정보를 읽다보면,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 대한민국의 대도시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이 자연스레 겹쳐보인다. 한국이 뒤늦게 압축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기 언급된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볼 때 최초의 몇몇 사건들은 그렇게 많이 떨어져있지도 않았다. 서울의 통근이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압박은 다른 주요도시들도 경험했으며, 완화시키기 위한 제안도 우리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사람 사는 곳은 이리도 닮았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글쓴이인 저자와 읽는이인 나는 미래의 통근에 도달했다. 통근이 사라진 사회는 새로운 중세가 될까, 아니면 통근이 우리에게서 뺏어가는 시간이 무한소로 수렴할까. 자동차 통근이 대세인 상황에서 대체수단은 아직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다소 비관적인 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작 150년전에 등장한 미국 최초의 자동차가 사람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다는 것 또한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그만큼 전망은 쓸모없고, 통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미래는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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