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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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조 피킷... 참으로 평범해서... 그래서 특이한 주인공이네요.

시리즈의 첫 권, 일종의 프리퀄로 봐야할 듯한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조 피킷이 어떤 사람인지, 그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등이 소개되고,

심각하지 않은 음모론으로 그를 부각시키는 역할인 듯 합니다.


음모론이 심각하지 않다는 거야, 그 간 맛을 봤던 다른 스릴러 소설 대비 그렇다는 거지,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자신과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 조직의 무자비한 횡포지요.


조 피킷,

그는 정말 평범합니다. 평범한 가장, 

생활비에 쪼달리지만, 본인이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멋진 일을 쫓아서 하는 이상주의자 같은 면모로 나타납니다.


총도 제대로 못 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타협을 시도하려고 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거든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아내와 딸들을 생각하자니 이상만 고집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가 가진 것은 이상을 쫓으려는 순수한 마음과 진실을 밝히려는 소박한 노력이었습니다.,

현명하고 강한 아내 메리베스의 변함없는 서포트도 그를 지키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미국의 메이저 문화코드를 반영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 

총도 제대로 못쏘는 것으로 마치 제대로 하는 일이 뭐 하나 있을까 싶은 자책감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소시민. 자신의 이상을 쫓아 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타협도 생각해 보는, 그런 평범함. 많은 미국의 중산층, 또는 중하류층의 공감을 살 만한 포지션입니다.


어쩌면 Underdog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의 선임자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주변의 여러 사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는 타고난 친화력을 기반으로 사람을 잘 사귀면서 그의 선임자의 후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에 비해 조 피킷은 평범하고 소박합니다. 모자라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Underdog입니다.


그 Underdog이 자신의 막강한 선임자와 유능한 동료가 꾸민 음모를 보기 좋게 격퇴합니다.

그것도 너무 기상천외하지 않게.... 평범한 방식으로요..


미국은 태생적으로 Underdog이 강력한 기존 권력을 해체하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국 이상의 패권 국가였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미국민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영국을, 유럽을 자신의 마음 속의 권좌에서 내려 버렸습니다.


권위에 대한 용기있는 도전 뿐 아니라 근거없는 경멸까지도 미국에서는 용인되는게 이러한 태생적 문화의 명암입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 이성주의>라는 60년대에 씌여진 책은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냅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잘 안보지만, 이러한 정서를 드러내는 옛날 영화로서 떠오른 게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던 <아마겟돈>입니다.


작은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발견되었고, 지구에서는 핵폭탄을 설치하여 소행성을 쪼개서 지구를 빗껴가게 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핵폭탄을 표면에서 폭발시켜봐야 큰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핵폭탄을 소행성 깊숙히 설치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깊이 구멍을 뚫는 기술자들이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말이 석유 시추 탐사기술자이지 영화에서는 불량배, 양아치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NASA와 관련 지질학자와 물리학자의 전문성을 뛰어넘는 문제 해결 역량을 이 탐사 기술자들이 보여줍니다. 결국 지구를 구하는 것은 이들이지요.


필드에서 단련된, 학위도 없는, Underdog 느낌의 기술자들이 책상 머리에서 학문이나 익힌 권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한다는 식의 구조는 미국의 영화나 쟝르소설에서 수도 없이 반복됩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양상과는 다르게, 불량배 처럼 보이는 Underdog들이 더 순수하고, 매너 있는 상류층, 지식층이 더 부패하고 사악하다는 주제들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타이타닉> 이기도 하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Make it Count 건배는 기가막히게 그런 장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알 고어 부통령에게 이기고, 재선에서 케리 민주당 상원 의원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이 Underdog코드이기도 했씁니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의 석유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부자이긴 하지만, 그는 순박해 보이고, 적당히 단순해 보여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줬습니다. 반면 알 고어는 지나치게 똑똑해 보여서  'snobbish' 하다는 느낌을 주었었습니다. 케리 상원의원도 알 고어 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대결에서도 이 코드가 일부 나타났다고 여겨집니다. 힐러리의 패인이 그 한가지만은 아니지만, 힐러리는 지나치게 똑똑한 말들로 사람을 기만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끝까지 자신의 지지 기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과격한 말을 쏟아냈지요. 그 지지기반은 백인 Underdog이라고 볼 수도 있지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 <오픈 시즌>을 읽으면서 그런 문화코드가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게 인기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작품이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우리가 받는 인상의 몇 배로 더 큰 임팩트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자체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런 저런 미국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와이오밍 주에 있는 빅 혼산이 배경이던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엘로 스톤 국립공원이 와이오밍 주에 있습니다. 옐로스톤 남쪽에 있는 Mt. Teton 이란 곳도 경치가 끝내 줍니다. 빅혼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네요.


조 피킷이 신혼여행을 갔다고 하는 잭슨 홀이란 동네는 Mt Teton 남쪽에 있습니다.

작은 국내선 공항이 있어서 옐로스톤을 가고자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거쳐가는 곳이지요.

신혼 여행지가 같은 와이오밍 주 내의 다른 마을이라니, 그 평범하고 소박한 서민성은 신혼 여행지 선택에서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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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 - 토라로 토다를 구약사상문고 6
왕대일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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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 – 왕대일

이 책의 저자인 왕대일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서학자로서 저자는 시편을 하나씩 분리해서 읽을 것이 아니라 한 권으로 묶어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내용 요약

이 책은 총 10개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앞에 머리말이 있다. 머리말 첫 단락에서 저자는 “시편을 탄원시, 찬양시, 감사시, 제왕시 같은 유형에 따라서 읽지 않고, 시편이 다섯 마당으로 짜여진 한 권의 책이라는 매무새를 깊이 헤아리면서 읽었습니다”라고 하며 이 책은 그러한 사색의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시편의 얼개가 모세의 토라를 따라한 것이라고 하며, 시편의 다섯 마당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 이른바 ‘토라시’와 ‘제왕시’라고 한다.

1, 2장은 시편을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한 권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3, 4장은 한 권의 시편 앞에서 들머리 역할을 하는 시편 1편과 2편에 대해서 각각 설명한다. 5장에서부터 9장까지 시편 다섯 마당을 1 권씩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 10장에서는 시편에서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있었는지, 예수는 어떻게 시편의 전통에 서 있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책을 마친다.

1장에서 저자는 시편의 바탕은 기도와 찬양, 또는 탄원과 찬양이지만, 시편의 시들은 결국 찬양으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렇게 찬양이었던 시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서가 되었다.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 저자들의 묵상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묵상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기에 시편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를 위해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이 땅의 문제를 헤쳐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장에서 저자는 시편을 읽는 독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시편의 시를 유형별로 묶어서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른 하나는 시편 시가 전해진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시편의 생김새나 짜임새에 대한 관찰은 시편의 쓰임새에 대한 연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한다. 성전이 외적의 침략으로 무너진 뒤에 성전 대신 회당이 들어서게 되면서 시편은 시집의 형태로 두루마리에 정리되기 시작한다. 이때는 제2성전시대로 기원전 6세기 이후이다. 바벨론 제국에 의한 패망(BC 587) 이후 길고 쓰라렸던 붕괴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셨던 언약을 상기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항변하는 자들에 대한 응답”으로 다섯 마당이 한 권으로 묶인 시편이 편찬되었다 한다.

3장에서는 전체 시편의 들머리 역할을 하는 시편 1편을 분석한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들려주는 길에 대한 토라(말씀)이다. 이 서시는 시편 전체를 토라로 보게 한다. 시편에서 이러한 토라시는 1편, 19편, 119편이다. 시편 1편은 악한 사람들이 판치는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한마디로 주님의 은총을 밤낮으로 읊조리며 살아야 한다. 이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가르침을 읊조린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4장에서는 시편 2편을 분석한다. 시편 2편은 다윗이 세운 왕국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시편 1편이 토라시라면 2편은 제왕시이다. 이러한 들머리와 짝을 이루는 시편의 마무리는 시편 149, 150이다. 149편이 하나님이 시온 산에 왕을 세웠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토라시 1편, 19편, 119편 바로 다음 시편이 2편, 18편, 118편이 제왕시라는 점은 이러한 배치가 의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토라시와 제왕시는 같이 하면서 시편의 뼈대를 이룬다. 이렇게 시편은 토라를 따르는 신앙과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는 소망을 짝으로 소개한다.

시편 1편이 보여주는 것이 개인적인 일상에서 경험하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대비라면, 시편 2편은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의로운 길을 걸으려는 이스라엘의 왕과 악인의 길을 따르려는 세상의 왕들을 구별해서 말한다. 시편 1, 2편이 말하는 바는 세상에는 악인들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인의 길에 서라 하시며, 이러한 일을 바로 이루기 위해서 시온에 세운 대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려 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렇게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실현되고 있다.

5장부터 9장까지 시편 5권 각 권을 분석한다. 시편 1권은 3편부터 41편까지이며, 탄원시가 바탕이 되고 있다. 시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실제가 고통과 시련이라는 것을 직시한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에서 탄식이 형성되지만, 탄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는 통로가 된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토로하고 복수를 청하는데, 이것은 결국 우리의 약함과 유한함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가 된다. 그렇게 시편의 “의인‘은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기도의 언어를 회복하게 된다.

시편 2권(42편~72편)과 시편 3권(73편~89편)은 하나로 이어지는데, 다윗의 시 51~71편을 가운데 두고 고라의 시와 아삽의 시가 감싸고 있는 구조이다. 시편 2권의 기본 바탕은 다윗이 수립한 왕조를 향한 간구에 있으며 유형 상으로는 간구와 탄원으로 분류된다. 시편 2권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토라를 사수하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주인공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이 땅에 구현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시편 3권의 시들은(73~89편) 왕조가 패망한 뒤의 상황을 애도하는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편 73편은 시편 전체의 중간에 위치해서 시편의 지평을 둘로 구분한다. 그 이전에는 왕을 향한 희망이, 그 이후에는 왕에 대한 절망이 깔리고 있다. 그 가운데에 있는 76, 84, 87편 등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패망에도 하나님의 성소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다.

시편 4권(90~106편)과 5권(107~150편)은 하나로 연결되며, 시편 1~3권이 제시하는 질문에 응답하는 역할을 한다. 시편 4권은 “다윗 왕조의 멸망(89편)과 종말의 때에 누릴 기쁨(107편) 사이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신학을 요약해 놓았다”고 한다. 시편 4권에서는 다윗보다 모세가 더 부각된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신실하게 헤쳐 나갔던 이스라엘의 과거 선조들의 신앙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다윗이나 사울 이전에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며, ”주님이 우리를 다스린다“는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의 근본을 되찾고자 한다.

시편 5권(107~150편)은 “시편 1~4권이 펼쳤던 다윗 왕국에 대한 각각의 기대와 비전을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재해석” 한다. 107~117편은 왕조의 패망에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연의 질서는 전혀 무관함을 상기하며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여겨질수록”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청한다. 118~135편은 예루살렘 성지순례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확신과 승리의 찬송으로 끝낸다. 136~145편은 유배자로서의 현실을 다시 상기하면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향을 더욱 궁극적인 소망으로 삼고, 다윗의 후손이 장치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세우게 된다는 비젼을 제시한다.

시편 5권의 마지막 다섯 편의 시인 146~150편은 “할렐루야 시”라고도 불린다. 시인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시련 앞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경험하게 될 구원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그 희망을 역사 속에 구현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토라를 따라서 걷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시편의 큰 주제라 할 수 있겠다.

10장에서 저자는 시편의 주인공인 두 인물을 소개한다, 의인과 왕. 처절한 고난을 겪은 사람을 묘사한 시편 22편을 통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시편에서 기도하고 바라던 왕은 제사장 멜기세덱과 연결된다. 왕이자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신약의 히브리서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근거로 여겨졌다. 이처럼 시편의 두 인물인 의인과 왕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시편을 자주 인용하였지만, 특히 십자가에서 시편을 계속 암송하고 있었다는 점에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는 주목한다. 엔도 슈사쿠는 예수님의 그 시편의 시구들이 제자들에게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보았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끝까지 사랑의 언어를 놓치지 않았던 모습을 보며, 제자들은 비로소 이사야서 53장을 떠올렸을 것으로 엔도 슈사쿠는 보고 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 서서 그 길을 걸으려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시편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시편으로 기도해야 “오늘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토다(찬양, 기쁨, 감사)를 꽃피는 토라(말씀)을 제대로 걸을 수 있다”고 하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후기

시편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읽는 것이 기본이라면, 앞 뒤 문맥 없이 시편 한 편만 들여다 보면서 뜻을 파악하고 큐티를 하려는 시도들은 자칫하면 전혀 다른 문맥으로 시편을 해석하게 하는 경우도 있겠다 싶다. 책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룬 1편과 2편만 봐도 1편만을 보면 신앙 생활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해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2편과 연결해서 보면,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 측면 모두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음을 비로소 보게 된다.

또한 한권으로서 읽는 시편들을 통해 새삼 드러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결코 현실 도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비참한 현실이지만, 현실에 뿌리내리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어두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시편의 신학은 다윗 왕조의 패망과 이방인의 땅으로의 유배라는 고난 가운데에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졌던 소망의 실체를 보게 한다.

오늘의 기독교인은 특히 한국에서의 기독교인은 악으로 물든 현대 물질문명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신앙의 개인적 차원과 정치/사회적 차원을 통합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점점 세속화되어 이제는 세상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삶 가운데 이루어 내야 한다는 과제 또한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시편 또한 오늘의 우리가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님의 날카로운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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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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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저
뿌리와이파이 간
2017.08.07 간

 

8월에 읽은 ‘코리아 생존전략’과 9월에 읽은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으면서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개항을 맞이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이 책이 지난 8월에 출간이 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16년의 경험을 가진 외교관이라 합니다. 외교관으로서 해당 국가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이해해야 제대로된 외교 정책이 입안될 수 있다고 하며, 평소에 연구해 온 일본의 근세사를 ‘생활문화사’의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님에도 내용 구성이 무척이나 풍성하게 느껴지며, 각 장은 읽는 재미가 느껴지게끔 쉬운 문체로 흥미롭게 쓰여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토요토미 가문과 토쿠가와 가문의 일대 격전을 벌였고 토쿠가와 가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토쿠가와 가문은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 (현재의 토쿄)에 막부를 설립하였습니다.

에도시가 위치한 간토오 지방은 원래 얕은 늪지대여서 경작이 쉽지 않았으나, 토쿠가와 가문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이 지방으로 밀려온 뒤에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그 지방을 개간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일본 최대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하였다 합니다.

기존의 권력의 중심이었던 교토/오사카와 떨어진 곳에 또다른 정치/경제의 중심이 생겼고, 이러한 분립 구조가 일본의 역사를 바꾼 행운이 됩니다.

에도에 위치한 토쿠가와 막부는 전국의 지방영주들인 다이묘들에게 ‘천하보청’이라는 공공 사업의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또한 에도에 주기적으로 와서 일정 기간 머물게 하는 ‘참근교대제’를 실시했습니다. 이 두가지 의무를 이행하느라 다이묘들의 재정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수를 자신의 부를 위해 축적할 여유가 없게된 각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산업을 장려하고, 어떻게든 세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고, 이론 보다 실제가 위주가 되는 학문 경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공공 사업에 의한 경제 부양 정책이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중요한 항목들을 통해 그 시대를 얘기합니다.

제 4장. 일본의 된장이라고 할 미소가 원래는 전투식량이었고,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에도 시대의 평화 가운데에서 민간의 미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했고, 보다 값싸게 공급이 되기시작했다고 합니다.

제5장. 참근교대제로 인해 에도로 향하는 도로가 발달하고, 도로 주변의 여행 관련 시설들도 제대로 갖춰지게 됩니다. 참근 교대제로 인한 공적인 여행의 일상화되고, 인프라도 갖춰지다 보니, 개인적인 여행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쿄토와 오사카, 에도 등에는 전국에서부터 관광객이 몰려왔고, 그시대로부터 불과 백여년 전인 전국 시대에는 일반 평민들은 여행이 불가했고, 무사 계급들도 여행은 목숨을 걸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에도 시대의 평화 가운데에서 전국적인 여행의 붐이 일었다 하니,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지요. 경제적 기반과 더불어 전국적인 치안의 확립이라는 기반이 잡히지 않고서는 안될 일이겠습니다. 이 때 부터 전국 시대의 지방 중심의 가치관에서 일본인들에게 일본 전국을 하나로 보는 가치관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6장. 뜻밖에도 출판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독서 문화는 중국은 물론 조선에 비해서도 크게 뒤졌으나,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으로서의 판권의 확립, 서적 유통업으로서의 대본업의 발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출판 강국 일본의 현재 모습의 근원을 짐작하게 합니다. 유명한 작가의 연재 소설은 그 소설의 다음 회차가 출판되기를 전 일본 열도가 기다리고, 출판되면 그 이야기로 전 열도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합니다. 이러한 출판 문화의 발달 역시, 민간의 소비 성향에 따라 시장이 발전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제7장. 일본 파나소닉의 창설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예전에 마쓰시다 정경숙이란 것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에 관련된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그 ‘숙’이란 것이 교육에 관련된 기관을 의미했는데 그 형태가 우리나라의 어떤 것과도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숙 일본말로는 주쿠는 개방형 사설 교육기관으로 전문 지식인이 지식의 창출과 전수 활동 만으로도 소득을 얻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합니다. 조선시대의 서원과 비교하자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테라코야라는 사설 교육기관도 있어서 읽기/쓰기와 함께 주산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교육 체제 역시 민간, 시장 주도의 현상이었다 합니다.

제 8장. ‘요미우리’라는 뉴스 전달 매체가 당시 인구 백만의 도시 에도를 배경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면, 이는 당시 발달하고 있던 상업과 더불어 소비자들에 대한 광고 매체로까지 활용이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민간 주도의 자생적 인쇄매체 입니다.

제 9장. ‘동아시아~’ 책에서 김시덕 교수도 상세히 다루었던 ‘해체신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학 책을 제대로 된 사전도 없이 3년에 걸쳐서 일본어로 번역을 했다합니다. 1700년대의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804년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실용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의학 분야에서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역시 민간 주도의 결과 입니다.

제 10장. 한국에 대동여지도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이노 다다타가라는 지도 제작자가 있었습니다. 이노는 원래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어쩌다 막부가 후원하는 지도 제작 업무를 맡게되어, 자신의 천문지식을 활용해서 상세한 지도를 작성합니다. 에도 시대의 평화를 배경으로 한 여러 개간 사업, 간척 사업, 건물 건축 사업 등을 통해 당시 일본의 측량 기술은 매우 발전해 있었고, 장비와 도구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합니다. 이런 물적 기반에 자신의 천문지식을 결합시킨 이노는 놀라운 열정으로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3만 킬로가 넘는 일본 전국의 해안을 직접 실측하였다 합니다. 이노 다다타카의 업적은 지금 봐도 놀랐습니다. 당시의 막부도 이노 다다타카의 업적을 잊지 않습니다. 비록 군사 기밀유출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민간 배포는 금했지만, 막부는 이노 다다타가의 자손 대에 이르기까지 후원을 지속합니다. 이노 다다타가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합니다. 조선에서의 김정호의 운명과는 사뭇 비교가 됩니다.

제 11장은 사전 편찬의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네덜란드어 사전(난일 사전)은 민간이 주도했지만, 더 상세한 난일 사전은 막부가 주도했습니다. 민간이 주도한 것을 막부가 주도하여 완성한 모습입니다. 사전 편찬은 어찌보면 지식 인프라 사업일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막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12장은 섬유 산업의 얘기입니다. 목면을 중심으로 한 섬유 혁명이 섬유 자체의 제조 뿐 아니라, 염색을 통한 디자인 고급화, 유통에 이르기까지의 밸류체인이 인구 백만이라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 에도를 배경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당대 최고의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들을 모아 상업적 카탈로그 까지 만들어 배포했다고 하니 그 배경이 되는 상업적 인프라가 어느 정도였을지요,.

제 13장은 염색된 섬유가 유통하게 되면서 이것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 막부가 ‘사치금지령’ 을 내려 옷의 색깔을 쥐색, 차색, 남색의 세가지로 제한했다고 합니다. 막부가 항상 도와주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색의 제한이 도리어 허용된 색을 중심으로 한 색의 세분화 및 표준화를 낳았다고 합니다. 중간색, 혼합색 등의 미묘한 색변화가 일본의 전통문화의 중심이 되어 ‘이키’, ‘야나세’라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역시 민간 주도의 섬유 산업이 어떻게 당시의 문화를 형성해서 오늘까지 내려오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 14장은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는데, 일본에서의 상황은 마침 그들의 기술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삼평이란 도공이 끌려간 곳은 일본의 사가 번의 아리타라는 지역. 사가 번의 번주는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이 필요했었고 도자기는 그에 알맞은 제품이었다 합니다. 번주의 지지와 후원을 등에 입고 아리타 도자기는 일본 전국으로 유명해집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합니다. 중국의 도자기가 중국 내부 사정으로 유럽으로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일본의 도자기가 그 대안으로 인식되었고, 아리타 도자기는 중국산을 대체할 만큼의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일본은 그 무렵에 유럽에 대한 수출산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15장에서는 19세기 일본 도자기 산업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해외로 소개되었던 일본 도자기 산업이 개항기를 맞이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서게 됩니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빈의 만국 박람회는 오늘날의 그 어떤 행사보다 컸다고 합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없던 시대에 박람회는 그러한 정보가 모이는 장소였기에 수백만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 박람회에 일본에서는 당시의 기술로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2미터짜리 초대형 도자기를 출품하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박람회 이후 수출물량이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박람회는 민간 도자기 회사를 설립하여 민간 주도로 참가하였고, 1877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도자기 전문 상점을 내기도 하였다 합니다.

제16장에서는 에도 시대 지식의 흐름 세가지로서 오규 소라이의 유학, 이시다 바이간의 심학, 그리고 난학을 얘기합니다. 오규 소라이는 공자의 ‘원전’을 기반으로 주자학을 비판하였다 합니다. 이시다 바이간은 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상업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 이라는 것을 가르쳤고, 이러한 심학 사상은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상인 세력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제 17장과 18장은 에도 시대의 화폐 경제 현황과 그 문제점을 짚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에는 금, 은, 동 세가지 화폐가 있었다 합니다. 금화는 동부의 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은화는 서부의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쓰였으며, 동화는 자디잔 잔돈의 역할을 했습니다. 서부에서 동부로, 동부에서 서부로 관광여행을 하거나, 참근교대제 때문에 이동을 한다 했을 때, 금화를 은화로, 은화를 금화로 환전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환전을 담당한 상인들이 ‘료가에쇼’였으며, 이들이 커지면서 미쓰이, 스미토모 등의 재벌의 기원이 되었다 합니다. 당시 아직 전세계적으로 화폐 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상황이다 보니, 막부가 정책적 실수를 여러번 저질렀다 합니다. 금의 비중을 줄여서 화폐를 내놓는 바람에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합니다. 각 지방 번은 ‘한쓰’라는 번 지역내 화폐를 사용했다 하는데, 이들 지역 화폐는 금화나 은화와 같이 자체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않은 그야말로 불태환화폐, 신용화폐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도를 활용해 각 번은 상업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합니다. 향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는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은 이런 상업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였기에 독자적인 사절단을 유럽에 보낼 수도 있었다 합니다.

에도 시대 민간 경제는 화폐 중심으로 발전을 했음에도, 막부에서 무사계급에 지급하는 녹봉은 미곡 본위였다고 합니다. 쌀 생산의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미곡의 가격이 하락하여 무사 계급의 지위가 상인 계급 대비 하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합니다. 마치 유럽에서 신흥 부르조아 계급이 귀족 계급 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에도 시대라는 기간 동안 일본은 안정된 정치를 배경으로, 경제, 사회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기에 19세기에 밀어닥친 개항의 물결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러한 발전이 중앙 정부가 아닌 민간의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의 힘에 의해서였다는 것이 저자의 기조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생활문화사’를 통해 그러한 부분을 조명해 보자는 것이었지만, 독자로서는 몇가지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들이 생기기는 합니다.

첫째로는 수요의 증가에 상응하는 공급의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물론 책에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바로는 쌀 생산의 생산성 향상이 있었다는 점, 도자기 등 다양한 상품이 제조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한 내용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진 챕터가 하나 더 있었더라면 아쉬움은 덜했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민간에 축적된 부가 증가하면서 일본 전체가 발전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축적된 부는 어떻게 분배가 되었을지, 빈부격차는 어땠는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1800년대의 유럽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극심한 빈부 격차는 결국 사회주의 운동을 낳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산업혁명 이전이었기에 유럽의 산업 자본주의에서와는 상황이 달랐겠지만, 부의 축적은 언제나 불균등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이로 인한 사회불안은 없었던 것인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을 하고 넘어왔는지 등이 궁금해 졌습니다.

세째로는 당시의 일본의 상황이 유럽에서의 부르조아 혁명기의 상황과 어떻게 매칭이 될까 하는 점입니다. 어차피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비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비교를 통해 조금 더 알게 되는 점도 있을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메이지 유신에 대한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게 맞을 것 같기는 합니다.

지금도 강력한 관료제의 나라라고 인식되어 있는 일본인데, 그 발전의 원동력은 민간 주도의 시장 경제였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어떤 부문은 정부의 방임이 필요하고 어떤 부문은 정부가 주도하는게 필요할 텐데, 일본 에도 시대는 그러한 역할 배분이 잘 맞아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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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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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픔을 길로…

우리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축난다는 것을. 개인적인 스트레스 뿐 아니라 사회적인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만큼 몸이 더 아프고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습니다.

간혹 기사로 전해지는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때 뿐이었지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많은 전문가분들이 계심에 감사하면서, 제 자신은 그 이야기들을 잊어갔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건사고들이 줄을 잇고, 또다른 희생자들이 나타납니다. 아픈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마음이 우울해 지다 보니,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선을 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습기 사건, 세월호 사건 어느 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에 대처하는 우리 나라 사회의 무능함 역시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늘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사회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들의 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개인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발생 빈도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더 높게 나타난다면, 그 뒤에 뭔가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게 자연스럽습니다.

저자인 김승섭 교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소방공무원, 전공의 등의 아픔을 직시하며, 그들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그 내용을 데이타로 정리하고 분석에 분석을 거칩니다. 그렇게 과학의 이름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아픔의 원인을 드러내려 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성소수자들같이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더 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한 작업들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상황을 진단하고자 하는 저자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입니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벤젠 노출이 백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일반적인 역학의 역할이라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가설을 탐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폭력의 경험과 질병의 발병 사이의 시점이 제법 차이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고,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 조사가 필요하게 됩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도 많다 합니다. 사회적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차별이라고 인정하기 보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덜 불편하기 때문에 차별로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저자는 IBM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직업병 소송을 도와주었던 보스턴 보건 대학원의 리처드 클랩 교수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그는 “문헌 검토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1961년부터 1991년까지 IBM에서 일했던 3만 3,730명의 건강자료를 분석해 암 사망 비율을 계산하고 그들의 직업이 뇌종양, 신장암,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물을 법정에 제출합니다.” 법정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클랩 교수의 보고서를 공식적인 자료로 채택하지 않았고, IBM측은 여러 언론을 통해 클랩 교수의 연구 결과를 깎아내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들은 클랩 교수를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저널은 클랩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합니다.

인터뷰어: 왜 이런 일을 하나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 교수: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라는 클랩 교수의 말과 같이 저자는 그렇게 이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도 함께 하며, 그들의 아픔을 기록하려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아픔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1994년의 성수대교 참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 합니다. 아픔은 기록되지 않았고, 대책도 전무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온전히 기억되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 위해 저자는 살아남은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또한 동성애를 향한 혐오가 비과학적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동성애는 질병’이고 ‘치료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라는 식의 폭력적인 구호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오래전 정리되어 더 이상 논쟁조차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들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라고 합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한 이후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 여러 학제에서 성소자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오늘날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학계의 상식이 되었다 합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합니다. 1976년에 설립되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동성애 전환 치료를 주도하는 가장 큰 규모의 탈 동성애 운동 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13년 6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그동안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을 닫습니다.

또한 저자는 HIV/AIDS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동성애를 그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과학적 발언이라고 합니다. 파트너가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성 간, 동성 간 성관계 모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동성애에 대한 혐오에 기초해서 동성애와 HIV 감염을 연관 짓는 것은 HIV/AIDS의 예방과 치료에 큰 장벽이 되었고, 오히려 그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현재의 연구 결과라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지향이고 HIV/AIDS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무리로 저자는 1960년대 이전의 미국의 로세토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199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로세토 공동체는 30년간 비슷한 환경을 지닌 이웃 마을 대비 지속적으로 낮은 심장병 사망률을 보여주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고, 이 확신이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합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요.

저자는 후배들과 함께하는 지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면서 책을 맺습니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저도 싫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관련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막연히 마음 한 끝 아프기만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역학이란 학문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닌, 논리적 과학적 데이타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에 근거하다 보니 힘있게 다가옵니다.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이 저자가 기대하듯 그렇게 변화해 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그러한 변화에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기로 결단한 저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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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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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저

지난 번에 '코리아 생존 전략'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디에서 구매한지 거의 1년이 되었지만 어쩐지 기회가 없었다.

'코리아 생존 전략'에 대한 오석태님의 서평에서 이 책이 언급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제목 부터가 '해양'과 '대륙'의 대결 구도에서 '코리아 생존 전략'과 비교가 될 것 같았다.

읽어보니,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그런 점으로 인해 큰 그림에서는 비슷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우리나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게 아니라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서 주변국의 입장에서 큰 흐름을 봐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을 모든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상정한다. 그 전에는 한반도가 그렇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았고, 대륙의 중화제국의 변방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낸 통일 일본이 등장하면서 동아시아의 지형도는 크게 바뀌었고, 그 여파는 결국 청나라의 등장과 명나라의 멸망을 비롯해서 타이완의 역사도 격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청나라에 의한 조선 침략이라는 결과까지 나았다 한다.

해양세력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은 17세기 이후 서구 세력의 진출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네덜란드와 러시아, 미국 등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서 세계의 흐름을 파악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서 성공적으로 근대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반면, 그런 접촉에서 시기적으로 뒤졌던 조선은 강성해진 일본과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청나라와의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를 준비가 덜 된 채로 맞이한 셈이 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조선의 사람들이 해외의 흐름을 볼 수 있었던 몇가지 사례들을 발굴해서 보여준다. 17세기말 동아시아 정세가 안정이 되었을때이다. 문순득이란 사람이 제주도에서 표류해서 오키나와에 떠내려갔다가 필리핀, 마카오, 북경을 거쳐서 귀국하는 이야기가 있다. 거의 3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이 분의 보고들은 바가 당시 조선 사회에서 큰 반향을 못 일으켰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바가 있다.

문순득은 당시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등이 참여하는 거대한 무역망의 흐름을 타고 귀국한 것이었다. 그 무역망에는 네덜란드 등의 서구 제국도 참여하고 있었고. 일본의 은과 도자기는 그러한 무역망을 타고 결국 유럽에까지 수출이 되었겠지.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 논쟁이나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아시아의 역사의 흐름 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19세기말의 일본 사회가 얼마나 집요하게 한반도 진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애기한다. 일본 정도 되는 강국이 그렇게 집요하게 부딪혀 온다면, 일본에 비해서 인구도 부족했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서구와의 교류도 늦어서 준비도 덜되었던 조선이 어차피 견디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 한다.

조선이 힘없이 무너진 것처럼 인식이 되고 있지만, 일본군 스스로의 통계로도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 일본군과 전투했던 의병의 숫자가 14만명이 넘는 다고 한다. 그 중에 1만 7천명 이상이 일본군에 의해 죽었다 한다.

이러한 기술은 최근에 출간된 황태연 교수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외 2권에서 얘기한다고 들은 것과 상통한다.

그냥 힘없이 무너진게 아니라, 저항의 과정이 있었지만, 워낙 일본이 강했고, 조선은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 조선 내부의 개혁, 자강 노력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의 흐름이 조선 위를 덮었다는 것.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의 열강으로 인정을 받았을 정도로 강했었다.

아니러니하게 러일전쟁의 승리가 일본 사회의 폐쇄적, 상명하복의 특징과 맞물려 결국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1945년의 종전과 해방, 그 이후의 국가 수립 및 한국 전쟁에 까지 이르는 역사를 다루는 길지 않은 챕터에서 저자는 당시에 성립된 한국과 일본의 정치 체제의 성격이 어떻게 현재에까지 이어지는 지 얘기한다.

'코리아 생존 전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넓은 시각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한다는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차이점이 상호 보완 관계가 될 것도 같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궁금해 진다. 
관련 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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