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은 있는가
이헌모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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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아온 것 뿐아니라, 전공 자체가 정치학이다. 정치학자로서 오랫동안 일본 정치를 지켜보아 왔던 저자가 일본 정치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책을 내었다.

이런 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무엇일까?

1. 아베는 왜 갑자기 수출규제를 들고 나왔을까? 안타깝게도 이 질문은 너무 최근 질문이다. 이 책은 2018년 8월 기준으로 봐야한다

2. 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될까? 현 시점의 관찰로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이다.

3. 일본의 개헌은 가능할까?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함.

1990년대 초에는 개헌 논의가 일부 보수 우익에서나 나왔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기피되는 주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여론에 못지 않게 비등해졌다. 이를 저자는 개헌론자들의 꾸준한 노력이 아베의 장기 집권과 결합해서였던 것으로 본다. 그는 이를 ‘나시즈쿠시(済し崩し: 일을 조금씩 처리함 )’적 개헌 과정이라고 소개한다.

개헌 자체는 일본 국민이 선택한 결과이니 이웃 나라에서 과연할 사항은 어차피 아니라 한다. 문제는 그런 개헌을 언젠가는 기정사실이 될 것을 인정하고 그 현실적인 위협에 대해서 대비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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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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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저
뿌리와이파이 간
2017.08.07 간

 

8월에 읽은 ‘코리아 생존전략’과 9월에 읽은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으면서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개항을 맞이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이 책이 지난 8월에 출간이 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16년의 경험을 가진 외교관이라 합니다. 외교관으로서 해당 국가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이해해야 제대로된 외교 정책이 입안될 수 있다고 하며, 평소에 연구해 온 일본의 근세사를 ‘생활문화사’의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님에도 내용 구성이 무척이나 풍성하게 느껴지며, 각 장은 읽는 재미가 느껴지게끔 쉬운 문체로 흥미롭게 쓰여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토요토미 가문과 토쿠가와 가문의 일대 격전을 벌였고 토쿠가와 가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토쿠가와 가문은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 (현재의 토쿄)에 막부를 설립하였습니다.

에도시가 위치한 간토오 지방은 원래 얕은 늪지대여서 경작이 쉽지 않았으나, 토쿠가와 가문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이 지방으로 밀려온 뒤에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그 지방을 개간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일본 최대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하였다 합니다.

기존의 권력의 중심이었던 교토/오사카와 떨어진 곳에 또다른 정치/경제의 중심이 생겼고, 이러한 분립 구조가 일본의 역사를 바꾼 행운이 됩니다.

에도에 위치한 토쿠가와 막부는 전국의 지방영주들인 다이묘들에게 ‘천하보청’이라는 공공 사업의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또한 에도에 주기적으로 와서 일정 기간 머물게 하는 ‘참근교대제’를 실시했습니다. 이 두가지 의무를 이행하느라 다이묘들의 재정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수를 자신의 부를 위해 축적할 여유가 없게된 각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산업을 장려하고, 어떻게든 세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고, 이론 보다 실제가 위주가 되는 학문 경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공공 사업에 의한 경제 부양 정책이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중요한 항목들을 통해 그 시대를 얘기합니다.

제 4장. 일본의 된장이라고 할 미소가 원래는 전투식량이었고,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에도 시대의 평화 가운데에서 민간의 미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했고, 보다 값싸게 공급이 되기시작했다고 합니다.

제5장. 참근교대제로 인해 에도로 향하는 도로가 발달하고, 도로 주변의 여행 관련 시설들도 제대로 갖춰지게 됩니다. 참근 교대제로 인한 공적인 여행의 일상화되고, 인프라도 갖춰지다 보니, 개인적인 여행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쿄토와 오사카, 에도 등에는 전국에서부터 관광객이 몰려왔고, 그시대로부터 불과 백여년 전인 전국 시대에는 일반 평민들은 여행이 불가했고, 무사 계급들도 여행은 목숨을 걸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에도 시대의 평화 가운데에서 전국적인 여행의 붐이 일었다 하니,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지요. 경제적 기반과 더불어 전국적인 치안의 확립이라는 기반이 잡히지 않고서는 안될 일이겠습니다. 이 때 부터 전국 시대의 지방 중심의 가치관에서 일본인들에게 일본 전국을 하나로 보는 가치관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6장. 뜻밖에도 출판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독서 문화는 중국은 물론 조선에 비해서도 크게 뒤졌으나,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으로서의 판권의 확립, 서적 유통업으로서의 대본업의 발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출판 강국 일본의 현재 모습의 근원을 짐작하게 합니다. 유명한 작가의 연재 소설은 그 소설의 다음 회차가 출판되기를 전 일본 열도가 기다리고, 출판되면 그 이야기로 전 열도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합니다. 이러한 출판 문화의 발달 역시, 민간의 소비 성향에 따라 시장이 발전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제7장. 일본 파나소닉의 창설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예전에 마쓰시다 정경숙이란 것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에 관련된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그 ‘숙’이란 것이 교육에 관련된 기관을 의미했는데 그 형태가 우리나라의 어떤 것과도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숙 일본말로는 주쿠는 개방형 사설 교육기관으로 전문 지식인이 지식의 창출과 전수 활동 만으로도 소득을 얻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합니다. 조선시대의 서원과 비교하자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테라코야라는 사설 교육기관도 있어서 읽기/쓰기와 함께 주산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교육 체제 역시 민간, 시장 주도의 현상이었다 합니다.

제 8장. ‘요미우리’라는 뉴스 전달 매체가 당시 인구 백만의 도시 에도를 배경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면, 이는 당시 발달하고 있던 상업과 더불어 소비자들에 대한 광고 매체로까지 활용이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민간 주도의 자생적 인쇄매체 입니다.

제 9장. ‘동아시아~’ 책에서 김시덕 교수도 상세히 다루었던 ‘해체신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학 책을 제대로 된 사전도 없이 3년에 걸쳐서 일본어로 번역을 했다합니다. 1700년대의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804년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실용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의학 분야에서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역시 민간 주도의 결과 입니다.

제 10장. 한국에 대동여지도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이노 다다타가라는 지도 제작자가 있었습니다. 이노는 원래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어쩌다 막부가 후원하는 지도 제작 업무를 맡게되어, 자신의 천문지식을 활용해서 상세한 지도를 작성합니다. 에도 시대의 평화를 배경으로 한 여러 개간 사업, 간척 사업, 건물 건축 사업 등을 통해 당시 일본의 측량 기술은 매우 발전해 있었고, 장비와 도구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합니다. 이런 물적 기반에 자신의 천문지식을 결합시킨 이노는 놀라운 열정으로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3만 킬로가 넘는 일본 전국의 해안을 직접 실측하였다 합니다. 이노 다다타카의 업적은 지금 봐도 놀랐습니다. 당시의 막부도 이노 다다타카의 업적을 잊지 않습니다. 비록 군사 기밀유출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민간 배포는 금했지만, 막부는 이노 다다타가의 자손 대에 이르기까지 후원을 지속합니다. 이노 다다타가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합니다. 조선에서의 김정호의 운명과는 사뭇 비교가 됩니다.

제 11장은 사전 편찬의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네덜란드어 사전(난일 사전)은 민간이 주도했지만, 더 상세한 난일 사전은 막부가 주도했습니다. 민간이 주도한 것을 막부가 주도하여 완성한 모습입니다. 사전 편찬은 어찌보면 지식 인프라 사업일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막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12장은 섬유 산업의 얘기입니다. 목면을 중심으로 한 섬유 혁명이 섬유 자체의 제조 뿐 아니라, 염색을 통한 디자인 고급화, 유통에 이르기까지의 밸류체인이 인구 백만이라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 에도를 배경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당대 최고의 전문가가 다른 전문가들을 모아 상업적 카탈로그 까지 만들어 배포했다고 하니 그 배경이 되는 상업적 인프라가 어느 정도였을지요,.

제 13장은 염색된 섬유가 유통하게 되면서 이것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 막부가 ‘사치금지령’ 을 내려 옷의 색깔을 쥐색, 차색, 남색의 세가지로 제한했다고 합니다. 막부가 항상 도와주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색의 제한이 도리어 허용된 색을 중심으로 한 색의 세분화 및 표준화를 낳았다고 합니다. 중간색, 혼합색 등의 미묘한 색변화가 일본의 전통문화의 중심이 되어 ‘이키’, ‘야나세’라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역시 민간 주도의 섬유 산업이 어떻게 당시의 문화를 형성해서 오늘까지 내려오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 14장은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는데, 일본에서의 상황은 마침 그들의 기술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삼평이란 도공이 끌려간 곳은 일본의 사가 번의 아리타라는 지역. 사가 번의 번주는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이 필요했었고 도자기는 그에 알맞은 제품이었다 합니다. 번주의 지지와 후원을 등에 입고 아리타 도자기는 일본 전국으로 유명해집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합니다. 중국의 도자기가 중국 내부 사정으로 유럽으로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일본의 도자기가 그 대안으로 인식되었고, 아리타 도자기는 중국산을 대체할 만큼의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일본은 그 무렵에 유럽에 대한 수출산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15장에서는 19세기 일본 도자기 산업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해외로 소개되었던 일본 도자기 산업이 개항기를 맞이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서게 됩니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빈의 만국 박람회는 오늘날의 그 어떤 행사보다 컸다고 합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없던 시대에 박람회는 그러한 정보가 모이는 장소였기에 수백만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 박람회에 일본에서는 당시의 기술로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2미터짜리 초대형 도자기를 출품하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박람회 이후 수출물량이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박람회는 민간 도자기 회사를 설립하여 민간 주도로 참가하였고, 1877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도자기 전문 상점을 내기도 하였다 합니다.

제16장에서는 에도 시대 지식의 흐름 세가지로서 오규 소라이의 유학, 이시다 바이간의 심학, 그리고 난학을 얘기합니다. 오규 소라이는 공자의 ‘원전’을 기반으로 주자학을 비판하였다 합니다. 이시다 바이간은 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상업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 이라는 것을 가르쳤고, 이러한 심학 사상은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상인 세력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제 17장과 18장은 에도 시대의 화폐 경제 현황과 그 문제점을 짚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에는 금, 은, 동 세가지 화폐가 있었다 합니다. 금화는 동부의 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은화는 서부의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쓰였으며, 동화는 자디잔 잔돈의 역할을 했습니다. 서부에서 동부로, 동부에서 서부로 관광여행을 하거나, 참근교대제 때문에 이동을 한다 했을 때, 금화를 은화로, 은화를 금화로 환전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환전을 담당한 상인들이 ‘료가에쇼’였으며, 이들이 커지면서 미쓰이, 스미토모 등의 재벌의 기원이 되었다 합니다. 당시 아직 전세계적으로 화폐 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상황이다 보니, 막부가 정책적 실수를 여러번 저질렀다 합니다. 금의 비중을 줄여서 화폐를 내놓는 바람에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합니다. 각 지방 번은 ‘한쓰’라는 번 지역내 화폐를 사용했다 하는데, 이들 지역 화폐는 금화나 은화와 같이 자체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않은 그야말로 불태환화폐, 신용화폐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도를 활용해 각 번은 상업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합니다. 향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는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은 이런 상업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였기에 독자적인 사절단을 유럽에 보낼 수도 있었다 합니다.

에도 시대 민간 경제는 화폐 중심으로 발전을 했음에도, 막부에서 무사계급에 지급하는 녹봉은 미곡 본위였다고 합니다. 쌀 생산의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미곡의 가격이 하락하여 무사 계급의 지위가 상인 계급 대비 하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합니다. 마치 유럽에서 신흥 부르조아 계급이 귀족 계급 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에도 시대라는 기간 동안 일본은 안정된 정치를 배경으로, 경제, 사회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기에 19세기에 밀어닥친 개항의 물결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러한 발전이 중앙 정부가 아닌 민간의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의 힘에 의해서였다는 것이 저자의 기조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생활문화사’를 통해 그러한 부분을 조명해 보자는 것이었지만, 독자로서는 몇가지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들이 생기기는 합니다.

첫째로는 수요의 증가에 상응하는 공급의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물론 책에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바로는 쌀 생산의 생산성 향상이 있었다는 점, 도자기 등 다양한 상품이 제조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한 내용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진 챕터가 하나 더 있었더라면 아쉬움은 덜했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민간에 축적된 부가 증가하면서 일본 전체가 발전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축적된 부는 어떻게 분배가 되었을지, 빈부격차는 어땠는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1800년대의 유럽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극심한 빈부 격차는 결국 사회주의 운동을 낳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산업혁명 이전이었기에 유럽의 산업 자본주의에서와는 상황이 달랐겠지만, 부의 축적은 언제나 불균등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이로 인한 사회불안은 없었던 것인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을 하고 넘어왔는지 등이 궁금해 졌습니다.

세째로는 당시의 일본의 상황이 유럽에서의 부르조아 혁명기의 상황과 어떻게 매칭이 될까 하는 점입니다. 어차피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비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비교를 통해 조금 더 알게 되는 점도 있을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메이지 유신에 대한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게 맞을 것 같기는 합니다.

지금도 강력한 관료제의 나라라고 인식되어 있는 일본인데, 그 발전의 원동력은 민간 주도의 시장 경제였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어떤 부문은 정부의 방임이 필요하고 어떤 부문은 정부가 주도하는게 필요할 텐데, 일본 에도 시대는 그러한 역할 배분이 잘 맞아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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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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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저

지난 번에 '코리아 생존 전략'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디에서 구매한지 거의 1년이 되었지만 어쩐지 기회가 없었다.

'코리아 생존 전략'에 대한 오석태님의 서평에서 이 책이 언급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제목 부터가 '해양'과 '대륙'의 대결 구도에서 '코리아 생존 전략'과 비교가 될 것 같았다.

읽어보니,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그런 점으로 인해 큰 그림에서는 비슷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우리나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게 아니라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서 주변국의 입장에서 큰 흐름을 봐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을 모든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상정한다. 그 전에는 한반도가 그렇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았고, 대륙의 중화제국의 변방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낸 통일 일본이 등장하면서 동아시아의 지형도는 크게 바뀌었고, 그 여파는 결국 청나라의 등장과 명나라의 멸망을 비롯해서 타이완의 역사도 격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청나라에 의한 조선 침략이라는 결과까지 나았다 한다.

해양세력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은 17세기 이후 서구 세력의 진출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네덜란드와 러시아, 미국 등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서 세계의 흐름을 파악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서 성공적으로 근대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반면, 그런 접촉에서 시기적으로 뒤졌던 조선은 강성해진 일본과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청나라와의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를 준비가 덜 된 채로 맞이한 셈이 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조선의 사람들이 해외의 흐름을 볼 수 있었던 몇가지 사례들을 발굴해서 보여준다. 17세기말 동아시아 정세가 안정이 되었을때이다. 문순득이란 사람이 제주도에서 표류해서 오키나와에 떠내려갔다가 필리핀, 마카오, 북경을 거쳐서 귀국하는 이야기가 있다. 거의 3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이 분의 보고들은 바가 당시 조선 사회에서 큰 반향을 못 일으켰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바가 있다.

문순득은 당시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등이 참여하는 거대한 무역망의 흐름을 타고 귀국한 것이었다. 그 무역망에는 네덜란드 등의 서구 제국도 참여하고 있었고. 일본의 은과 도자기는 그러한 무역망을 타고 결국 유럽에까지 수출이 되었겠지.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 논쟁이나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아시아의 역사의 흐름 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19세기말의 일본 사회가 얼마나 집요하게 한반도 진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애기한다. 일본 정도 되는 강국이 그렇게 집요하게 부딪혀 온다면, 일본에 비해서 인구도 부족했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서구와의 교류도 늦어서 준비도 덜되었던 조선이 어차피 견디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 한다.

조선이 힘없이 무너진 것처럼 인식이 되고 있지만, 일본군 스스로의 통계로도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 일본군과 전투했던 의병의 숫자가 14만명이 넘는 다고 한다. 그 중에 1만 7천명 이상이 일본군에 의해 죽었다 한다.

이러한 기술은 최근에 출간된 황태연 교수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외 2권에서 얘기한다고 들은 것과 상통한다.

그냥 힘없이 무너진게 아니라, 저항의 과정이 있었지만, 워낙 일본이 강했고, 조선은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 조선 내부의 개혁, 자강 노력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의 흐름이 조선 위를 덮었다는 것.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의 열강으로 인정을 받았을 정도로 강했었다.

아니러니하게 러일전쟁의 승리가 일본 사회의 폐쇄적, 상명하복의 특징과 맞물려 결국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1945년의 종전과 해방, 그 이후의 국가 수립 및 한국 전쟁에 까지 이르는 역사를 다루는 길지 않은 챕터에서 저자는 당시에 성립된 한국과 일본의 정치 체제의 성격이 어떻게 현재에까지 이어지는 지 얘기한다.

'코리아 생존 전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넓은 시각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한다는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차이점이 상호 보완 관계가 될 것도 같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궁금해 진다. 
관련 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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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생존 전략 - 패권 경쟁과 전쟁위기 속에서 ‘새우’가 아닌 ‘돌고래’가 되기 위한 전략
배기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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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서 상세하게 쓰고 싶지만, 일단 이 짧은 단상만이라도)


2천년 한국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어내려오는 책입니다. 바라보는 관점은 주변 패권국간의 역학관계의 변화와 그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대륙 (중국/러시아)의 세력과 해양 (일본/미국) 세력이 결국 만날 수 밖에 없는 곳이 베트남, 대만, 한반도라 합니다. 그 자체로는 어려서 부터 듣던 얘기이지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그러한 세력 충돌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오늘의 상황을 그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어려서부터 알던 관점이었음에도 풀어내리는 내용 자체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구한말의 복잡한 상황에서 합병, 해방, 한국 전쟁,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세계적인 패권 대결 구도의 변화와 국내 정치의 변동 상황을 연결시켜서 풀어냅니다.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알던 사실들이 하나로 묶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책은 2005년 5월에 1판이 나왔고, 2017년 4월에 2판이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전체 6개장이었는데, 뒤에 7장이 추가되었습니다.. 7장은 2005년 이후에서 2017년 초까지의 상황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책의 백미는 고대에서 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앞부분의 '패권'에 대한 분석입니다. '패권'을 가진 국가가 어떻게 주변 세력을 편성하고 관리하는 지 그 패턴을 도출해서 보여주는데, 수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사로부터 시작해서,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포함해서 한반도 전체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점은 장점이면서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디테일에서 다소 논리가 약해지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흐름은 하나로 잘 묶어내는 듯이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동북아균형자론으로 한국의 무장 중립화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미 해양세력권 안에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중립화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저자의 제안에 동의하던 하지 않던 필독서 중의 하나라 생각됩니다. 

세계 10워권의 결코 못나지 않은 나라를 세계 1,2,3위가 둘러싸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현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많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최근의 주변 상황을 생각하면, 이러한 대결구도를 2천년간의 역사의 흐름을 통해 바라보는 관점은 꼭 제 것으로 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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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조건 Philos 시리즈 14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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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2007년도에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책입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전 이 책을 탐독했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경선에서의 라이벌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끌어들인 것도 이 책의 영향이었다고도 하지요.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는 링컨에게도 날선 비판을 던지지만, 그럼에도 링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통령을 19세기에 이미 뽑았던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오랜 역사가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오늘 불현듯 들었습니다.


아래는 2008년도 10월에 써 놓았던 후기 입니다. 
(2007년도에 구매, 2008년 1월에 완독, 후기는 10월에 썼네요. 당시 싸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개인적인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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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조건 (Team of Rivals)
도리스 컨스 굿윈 (Doris Kearns Goodwin) 저
이수연 역
21세기 북스 간 (829p)

링컨.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별로 없다. 140여년 전의 미국의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게 생각해보면 도리어 이상하다. 그렇게 이름은 잘 알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정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그가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는지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

신문의 신간안내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책. ‘권력의 조건’ 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영어원제와는 사뭇 다르지만, 책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부제는 ‘라이벌까지 끌어 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쉽’이다. 영어 원제는 ‘Team of Rivals’.

이 책의 저자인 도리스 컨스 굿윈에 대해서 소개된 바는 하바드 대 박사 출신으로, 린든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10년간 하바드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역사 관련 베스트셀러 서적을 몇 권을 집필했고, NBC 방송에서 정치분석가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강의도 하면서 실제 정치에서도 활동하면서, 동시에 역사 관련 서적도 집필하는 등 활동의 폭이 크다. 이런 경력의 사람이 쓰는 책이라면, 학문적으로 엄밀한 역사서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의도와 주제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취사 선택해서 강한 방향성을 가지는 책이 될 가능성이 클 것 같이 보인다. 의도가 앞서기 때문에 대체로 일차사료보다는 2차, 3차 사료를 애용하게 되는 경향도 클 것 같다. 그런데 이 저자는 그렇게 쉬운 길로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말 번역으로도 800여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내용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다른 링컨의 전기에서 흔히 인용하지 않은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슈어드 가족의 편지만 5000통, 슈어드의 딸 패니가 쓴 일기 800 쪽, 체이스가 남긴 수천통의 편지와 일기. 스탠턴의 편지와 그의 누이의 회고록 등등, 일차사료의 범위와 양이 매우 넓어 보인다. 그러한 넓이는 본문 여기저기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10년을 집필한 책이 이 책이라 한다.

저자는 링컨을 기존의 시각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해 나간다. 링컨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기술하면서 18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명사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 나간다.

“뉴욕 주 상원의원이었던 슈어드, 오하이오 주 지사였던 체이스, 미주리 주의 저명한 노 정치가 베이츠가 그의 라이벌이었다. 링컨이 공천을 받았을 때, 그의 라이벌들은 모두 사람을 잘못 뽑았다고 생각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유능한 라이벌들을 내각에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유례없는 결정은 링컨이 엄청난 자신감과 관대함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슈어드는 국무장관, 체이스는 재무장관, 베이츠는 법무장관에 임명되었다. 링컨은 민주당 출신의 세 사람에게도 나머지 장관직을 제안했는데, 기디언 웰스는 해군장관, 몽고메리 블레어는 우정장관, 에드윈 스탠턴은 전쟁장관이 되었다.”

“ 링컨이 임명한 내각의 장관들은 모두 링컨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공직생활 경험도 풍부했다. … 막강한 경쟁자들은 처음에는 링컨이 경험도 없고 무식하다고 멸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위태로운 조국을 이끌어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충실한 친구가 되었다.”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링컨은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경선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반대쪽 정당인 민주당 인물들까지도 자신의 내각에 포함시켰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자리들에 말이다. 아주 유능하고 유력한 인물들이었지만, 라이벌들인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나가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려울 때일 수록 가장 가까운 친구들 사이도 흔들리기 쉬운 법, 그런데 라이벌들하고 한 팀이라면, 더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취미 삼아 읽는 독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단점도 많은 책이다. 먼저 상당히 길다는 점은 (800여페이지) 이 책을 선택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름이 한 번 이상 나오는 등장인물도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읽다가 보면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책 뒤의 영문인명록 페이지 수만 15페이지에 달한다. 미국의 지리와 역사에 생소하면 지도가 책 내에 여러장 있음에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시간 순서대로 써내려간 역사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건의 앞뒤가 잘 연결이 안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는 책 내용을 통해서 진솔하게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전문 역사가의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들, 증언들로 인해, 링컨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마치 소설을 읽는 듯이 등장인물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더러 보게 되었다. 가슴이 턱 막히는 감동적인 순간도 꽤 있었고, 눈물이 솟아나오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시기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슈들로 얽혀 있던 시기였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스펙트럼이 존재했으며, 남북 뿐 아니라 동서에 걸쳐서도 서로 의견들이 달랐었다.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인종적 문제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복잡하게만 얽혀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노예해방과 남북재통합이라는 일은 빠른 시일 내에 같이 이룰 수 있는 일이 도저히 아닌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링컨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로 인해 그 두가지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러한 링컨의 위대한 리더십의 본질은 라이벌들을 자신의 팀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자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링컨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링컨과 같은 리더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놀라운 발견이 되었다. 링컨의 그 놀라운 리더십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탕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그것이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는 것, 내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링컨은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로 내겐 다가온다.
그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생각할 때 그러하다.

무엇보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모은 그의 리더십.

똑같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지침이 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 책은 2007년도에 읽은 가장 감명깊은 책이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책이다.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들을 요약해 본다.

– 링컨은 기하학, 천문학, 정치경제학, 철학을 혼자서 공부했다.

– “링컨은 노예소유주들을 비난하는 대신, 감정이입을 통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협박은 협박을, 비난은 비난을, 저주는 저주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의 대의에 사람들을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이성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인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승리, 즉 “이 당에 노예나 음주가가 존재하지 않는” 영광의 날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통합’의 지도자였다.)

– 1855년, 그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세명의 후보 중, 링컨은 가장 많은 표인 47표를 얻었지만, 과반수에는 못 미쳤다. 다른 후보는 노예제를 찬성하는 측이었고, 링컨과 같이 노예제 반대측인 또 다른 한 후보는 5표 밖에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 5표가 있으면 링컨의 당선이 확정될 수 있었는데, 그 후보 측은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있었다. 부동표가 마지막 순간에 노예제 찬성측 후보로 몰릴 것을 우려한 링컨은 5표 밖에 얻었던 그 후보에게 자신의 지지표를 몰아주는 결단을 내린다. 그의 지지자들은 반대하였지만, 링컨은 고집을 부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대의의 승리라고 하면서. “링컨은 패배에서 친구를 얻었다. 트럼벌도 (그 후보), 저드(지지자)도 링컨의 관대한 행동을 잊지 못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모두 1858년에 링컨이 상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그를 도와주었고, 저드는 1860년에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 (시카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전에서 승리한 후)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언어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 모든 극단적 견해를 회피하고 지켜낸 그의 중도적 입장은 … “평정을 잃지 않는 침착한 성격과 공정한 정신”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다. … 링컨의 깊고 고결한 야망, 페렌파처의 말을 빌리면 “편협함과 적개심, 탐심이 없는 야망”…. 링컨은 다른 라이벌만큼이나 강렬하게 출세를 바랐지만, 공직에 대한 야망 때문에 친절함과 관대함을 잃은 적이 없었따. 그는 지지자와 경쟁자를 똑같이 공정하게 대했으며, 노예제 반대 운동에 한결같이 적극적이었다. 시카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을 지목한 이들은 이 모든 자질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라를 뒤흔드는 크나큰 난제를 해결하는 데 더 없이 적합한 인물을 선택했다.” (그의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노선은 남북 전쟁 당시의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바였다.)

– (대통령 당선 후) “링컨은 종이에 (내각 구성원으로) 원하는 일곱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목록에는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그의 경쟁상대였던 슈어드, 체이스, 그리고 베이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 옛 민주당원인 몽고메리 블레어, 기디언 웰스, 노먼 저드와 옛 휘그당원인 뉴저지 주의 윌리엄 데이턴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링컨은 .. 과거의 경쟁자들을 “자신의 공적인 집안”으로 끌어들여 “탄탄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분명히 밝혔다. … 훗날 <시카고 트리뷴>의 조지프 메딜은 링컨에게 왜 정적과 적수로 구성된 내각을 택했느냐고 질문했다. 특히 공화당 공천 과정에서 가장 큰 라이벌이었고, 여전히 이전 패배에 분노하고 있던 세 사람을 선발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링컨의 대답은 간단하고 솔직하며 날카로웠다. “내각에는 당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단결해야 합니다. 당을 잘 살펴본 나는 이들이 바로 그 유능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

– (해임 후 부정부패가 드러나 비난을 받게 된 캐머런이라는 사람을 위해) “ (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과 내각 전체가 모든 잘못이나 실수, 오류에 대해” 캐머런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책임이 있따고 사과했다. 캐머런은 이 관대한 행동을 잊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비난을 함께 짊어지는게 링컨에게는 큰 용기였을 거라며 고마워 했다. 링컨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든 말든 나 몰라라 했을 것”이라고 캐머런은 기록했다. 링컨은 그런 많은 사람들과 달랐고, 신임 전쟁장관을 포함해 모든 각료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

– (게티즈버그에서의 그 유명한 연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를 낳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전쟁은 세계최초의 대통령제 민주주의 정부에 닥친 첫번째 시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마지막 문장이 얼마나 그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남북 전쟁의 가장 큰 대의는 ‘노예 해방’이기도 했지만, 남북이 다시 통합되어 다시 제대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던 체이스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망으로 인해 링컨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 체이스는 사직서를 무기로 링컨을 흔들었었는데, 네번째의 사직서 제출을 링컨이 결국 수리해버리고 만다. 상황을 놀란 주변 사람에게 설명하고 나서 링컨은 말을 이었다. ) “ “하지만 체이스만큼 대법원장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사람은 연방에 없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난 그를 미합중국의 대법원장으로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링컨이 이처럼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게 조금도 복수심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자잘한 복수심보다는 더 숭고한 동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치텐든(그 주변 사람)은 말했다.” (실제로 체이스는 나중에 대법원장이 되었다.)

– “몽고메리 블레어는 3년 전 프레몽에게 보냈던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었을 때, 거기에 링컨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도, 그를 편들어준 링컨을 잊지 못했다. 또 링컨은 블레어 부자가 사적인 면담을 요청했을 때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누이 엘리자베스도 늘 백악관에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국회에서 급진파들과 싸우는 동안, 링컨이 프랭크에게 보내주었던 지지에도 언제나 감사했다. 이처럼 링컨의 자비롭고 친절한 행동은 블레어 가족과의 친분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고, 몽고메리가 어쩔 수 없이 사임했을 때도 그 관계는 깨지지 않았다. 결국 링컨은 보수적이고 유력한 블레어 가문의 애정과 지지를 잃지 않고도 프레몽의 출마포기와 급진파의 지지를 얻었다.” (블레어 가문은 민주당으로서 링컨과 정치적 노선이 많이 달랐지만, 링컨이 그의 능력을 아껴서 내각에 참여시켰었다.)

– (재임을 위한 선거에서) “군인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지지는 감동적이었다. 그는 서부 군대에서는 80퍼센트의 표를 얻었고… 군인들은 링컨을 지지하면 전쟁이 연장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구현하고자 하는 대의에 진심으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그들이 사랑했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80퍼센트의 표는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 (1865년 3월 4일의 취임식에서) “남이나 북이나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에게 기도 했으며, 상대측에 불리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쪽 모두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는 없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름의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전쟁이라는 이 큰 벌이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50년간 노예들의 보답없는 노동으로 쌓아온 모든 부가 소멸될 때까지, 그리고 칼을 든 가해자가 채찍을 맞아 흘린 모든 핏방울을 보상할 때까지 이 전쟁을 지속시키는 게 하나님의 의지라면, 3000년 전에 말해졌듯이 ‘주님의 심판은 전적으로 진실하고 마땅하다.’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또한 하나님께 보여주신 정의에 대한 굳은 확신으로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고,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며, 전쟁에서 싸운 이들과 그 미망인과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들 가운데, 그리고 온 나라에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두기 위해 매진합시다.” (너무나 잔혹했던 남북 전쟁을 보면서, 기독교인이라면 고민했을 법한 부분들이 보인다. 왜 이런 전쟁이 우리에게 닥쳐와야만 하는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만 하는가 등등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링컨 자신만의 답을 얘기하는 것 같다. 링컨이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것 같이 책의 저자는 군데군데 언급해 놓았지만, 이 연설에서 나는 그가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취임식 연설 이후) “극단적 분리주의 (링컨의 절대적 반대편이라는 얘기) 신문인 <찰스턴 머큐리>의 평가, “… 그는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서 힘과 에너지, 두뇌, 열정을 모았다. 그는 분명 통치자로서 우리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로 가는 길에) “잠시 후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링컨은 “하나님을 찬미하라! 위대한 메시아가 오셨다!, 영광!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흑인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몇몇 흑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링컨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무릎을 꿇지 마십시오. 그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누릴 자유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흑인들은 몸을 일으켜 손을 맞잡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 (1865년 4월, 링컨이 저격을 당하고 사망한 직후) “스탠턴은 며칠동안 지칠 줄 모르고 수도를 방어하고 음모자들을 체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슬퍼했고, 누군가 링컨의 이름을 꺼내기만 해도 주저앉아 통곡했다고 한다. 그간 스탠턴에게서 무뚝뚝한 모습만 봐왔던 사람들은 이토록 슬퍼하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존 헤이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 “사망했습니까?” 체이스가 묻자, 필드가 대답했다. “예” 체이스의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마 후 체이스는 … 예전의 정적이었던 몽고메리 블레어, 그리고 그 아버지와 마주쳤다. 체이스는 아버지 블레어의 손을 잡고 슬픈 눈으로 “블레어 씨, 오늘부터 우리 사이의 모든 분노와 고통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체이스는 링컨과 계속 불화했었던 사람이었다. 일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 “남부 출신인 블레어 가족은 … 이번 암살이 남부에 큰 불행임을 알고 있었다.  “남부의 지지자들은 이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던 친구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겠지요. 그들도 우리만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라고 엘리자베스 블레어는 그날 늦게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남북전쟁 종료 후, 링컨은 남북의 참된 통합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풉시다.’라는 취임연설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 “5월 마지막 주까지 미합중국의 수도에는 계속 반기가 펄럭였다. 곧 해산에서 집으로 돌아갈 약 20만 연방군인들의 고별행군을 보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이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워싱턴 역사상 그때만큼 많은 방문객은 없었다. … 그 따뜻한 봄날 펜실베이니아 가를 행진했던 군인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영원히 바꿀만한 일을 완수했음을 알고 있었다. … 기디언 웰스는 이 행사에 워싱턴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참석했다고 서글픈 듯 말했다. “모두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은 없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보다 각료들이 링컨의 부재를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 “링컨은 평생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예전에는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게서 우정과 협조를 이끌어 내었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더 중요한 문제를 위해 작은 것을 양보할 수 있었다.”

– “헤이는 1905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직전, 이렇게 기록했다. “백악관으로 돌아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꿈을 꾸었다. 그 대통령은 바로 링컨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사려 깊게 내 병을 걱정해 주었다. 그가 중요한 편지 두 통을 주며 답장을 보내라 했다. 나는 그 작은 지시를 받으며 기쁨을 느꼈다.” 이 때는 사랑하는 대통령이 암살된지 40년이 흐른 뒤였다. 헤이는 그 꿈을 꾸고 “겉잡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40년 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 상사를 이렇게 기억할 수 있다니. 책의 마지막 부분인 이 대목에서 읽는 나도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이 솟아 올랐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도 이만큼 내 맘에 울림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 (저자의 마지막 문단) “1860년 5월 18일 슈어드와 체이스, 베이츠, 그리고 링컨은 각자의 집에서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 공화당 전당대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벌들은 링컨이 승자로 떠오르자 당황하고 분노했다. 이들은 격동의 1850년대 노예제에 대한 갈등이 탈퇴와 내전으로 치닫는 동안, 저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링컨은 다른 라이벌들보다 더 재능이 있거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벌보다 더 치열한 인생을 살아왔고 동시에 천성적으로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덕에 라이벌 중 가장 보잘것 없었던 링컨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느낌을 공감하며, 그들의 동기와 욕망을 이해할 줄 아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적수들을 한데 모으고,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내각을 구성하고, 연방의 보전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들의 재능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능력들 덕분이었다. 링컨은 무능한 장군들과 적대적인 의원들, 소란스러운 내각에 대처해 길고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였다. 그는 결국 장애를 극복하고 경쟁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슈어드처럼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충성스러운 친구를 만났다. 이 책은 링컨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여러 사람의 인생을 다루면서, 링컨이 어떻게 사람을 다스렸고, 어떻게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자 집필되었다.”

– (옮긴이의 말) “근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늘 이 책 <권력의 조건>… 마지막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적에 그 동안 그들에게 쌓인 미운 정과 고운 정 때문에 눈물 흘리던…” (어떤 감동적인 영화의 끝장면도 이 책의 끝부분만큼은 아닐 것 같다. 절절한 실화였고, 한 두명의 주인공 만에 대한 얘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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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도 이런 대통령을 많이 누리지는 못했지요.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를 보니, 그 오래전의 미국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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