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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 - 토라로 토다를 ㅣ 구약사상문고 6
왕대일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3년 6월
평점 :
시편 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 – 왕대일
이 책의 저자인 왕대일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서학자로서 저자는 시편을 하나씩 분리해서 읽을 것이 아니라 한 권으로 묶어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내용 요약
이 책은 총 10개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앞에 머리말이 있다. 머리말 첫 단락에서 저자는 “시편을 탄원시, 찬양시, 감사시, 제왕시 같은 유형에 따라서 읽지 않고, 시편이 다섯 마당으로 짜여진 한 권의 책이라는 매무새를 깊이 헤아리면서 읽었습니다”라고 하며 이 책은 그러한 사색의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시편의 얼개가 모세의 토라를 따라한 것이라고 하며, 시편의 다섯 마당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 이른바 ‘토라시’와 ‘제왕시’라고 한다.
1, 2장은 시편을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한 권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3, 4장은 한 권의 시편 앞에서 들머리 역할을 하는 시편 1편과 2편에 대해서 각각 설명한다. 5장에서부터 9장까지 시편 다섯 마당을 1 권씩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 10장에서는 시편에서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있었는지, 예수는 어떻게 시편의 전통에 서 있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책을 마친다.
1장에서 저자는 시편의 바탕은 기도와 찬양, 또는 탄원과 찬양이지만, 시편의 시들은 결국 찬양으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렇게 찬양이었던 시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서가 되었다.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 저자들의 묵상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묵상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기에 시편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를 위해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이 땅의 문제를 헤쳐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장에서 저자는 시편을 읽는 독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시편의 시를 유형별로 묶어서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른 하나는 시편 시가 전해진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시편의 생김새나 짜임새에 대한 관찰은 시편의 쓰임새에 대한 연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한다. 성전이 외적의 침략으로 무너진 뒤에 성전 대신 회당이 들어서게 되면서 시편은 시집의 형태로 두루마리에 정리되기 시작한다. 이때는 제2성전시대로 기원전 6세기 이후이다. 바벨론 제국에 의한 패망(BC 587) 이후 길고 쓰라렸던 붕괴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셨던 언약을 상기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항변하는 자들에 대한 응답”으로 다섯 마당이 한 권으로 묶인 시편이 편찬되었다 한다.
3장에서는 전체 시편의 들머리 역할을 하는 시편 1편을 분석한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들려주는 길에 대한 토라(말씀)이다. 이 서시는 시편 전체를 토라로 보게 한다. 시편에서 이러한 토라시는 1편, 19편, 119편이다. 시편 1편은 악한 사람들이 판치는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한마디로 주님의 은총을 밤낮으로 읊조리며 살아야 한다. 이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가르침을 읊조린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4장에서는 시편 2편을 분석한다. 시편 2편은 다윗이 세운 왕국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시편 1편이 토라시라면 2편은 제왕시이다. 이러한 들머리와 짝을 이루는 시편의 마무리는 시편 149, 150이다. 149편이 하나님이 시온 산에 왕을 세웠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토라시 1편, 19편, 119편 바로 다음 시편이 2편, 18편, 118편이 제왕시라는 점은 이러한 배치가 의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토라시와 제왕시는 같이 하면서 시편의 뼈대를 이룬다. 이렇게 시편은 토라를 따르는 신앙과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는 소망을 짝으로 소개한다.
시편 1편이 보여주는 것이 개인적인 일상에서 경험하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대비라면, 시편 2편은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의로운 길을 걸으려는 이스라엘의 왕과 악인의 길을 따르려는 세상의 왕들을 구별해서 말한다. 시편 1, 2편이 말하는 바는 세상에는 악인들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인의 길에 서라 하시며, 이러한 일을 바로 이루기 위해서 시온에 세운 대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려 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렇게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실현되고 있다.
5장부터 9장까지 시편 5권 각 권을 분석한다. 시편 1권은 3편부터 41편까지이며, 탄원시가 바탕이 되고 있다. 시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실제가 고통과 시련이라는 것을 직시한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에서 탄식이 형성되지만, 탄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는 통로가 된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토로하고 복수를 청하는데, 이것은 결국 우리의 약함과 유한함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가 된다. 그렇게 시편의 “의인‘은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기도의 언어를 회복하게 된다.
시편 2권(42편~72편)과 시편 3권(73편~89편)은 하나로 이어지는데, 다윗의 시 51~71편을 가운데 두고 고라의 시와 아삽의 시가 감싸고 있는 구조이다. 시편 2권의 기본 바탕은 다윗이 수립한 왕조를 향한 간구에 있으며 유형 상으로는 간구와 탄원으로 분류된다. 시편 2권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토라를 사수하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주인공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이 땅에 구현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시편 3권의 시들은(73~89편) 왕조가 패망한 뒤의 상황을 애도하는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편 73편은 시편 전체의 중간에 위치해서 시편의 지평을 둘로 구분한다. 그 이전에는 왕을 향한 희망이, 그 이후에는 왕에 대한 절망이 깔리고 있다. 그 가운데에 있는 76, 84, 87편 등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패망에도 하나님의 성소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다.
시편 4권(90~106편)과 5권(107~150편)은 하나로 연결되며, 시편 1~3권이 제시하는 질문에 응답하는 역할을 한다. 시편 4권은 “다윗 왕조의 멸망(89편)과 종말의 때에 누릴 기쁨(107편) 사이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신학을 요약해 놓았다”고 한다. 시편 4권에서는 다윗보다 모세가 더 부각된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신실하게 헤쳐 나갔던 이스라엘의 과거 선조들의 신앙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다윗이나 사울 이전에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며, ”주님이 우리를 다스린다“는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의 근본을 되찾고자 한다.
시편 5권(107~150편)은 “시편 1~4권이 펼쳤던 다윗 왕국에 대한 각각의 기대와 비전을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재해석” 한다. 107~117편은 왕조의 패망에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연의 질서는 전혀 무관함을 상기하며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여겨질수록”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청한다. 118~135편은 예루살렘 성지순례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확신과 승리의 찬송으로 끝낸다. 136~145편은 유배자로서의 현실을 다시 상기하면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향을 더욱 궁극적인 소망으로 삼고, 다윗의 후손이 장치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세우게 된다는 비젼을 제시한다.
시편 5권의 마지막 다섯 편의 시인 146~150편은 “할렐루야 시”라고도 불린다. 시인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시련 앞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경험하게 될 구원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그 희망을 역사 속에 구현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토라를 따라서 걷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시편의 큰 주제라 할 수 있겠다.
10장에서 저자는 시편의 주인공인 두 인물을 소개한다, 의인과 왕. 처절한 고난을 겪은 사람을 묘사한 시편 22편을 통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시편에서 기도하고 바라던 왕은 제사장 멜기세덱과 연결된다. 왕이자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신약의 히브리서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근거로 여겨졌다. 이처럼 시편의 두 인물인 의인과 왕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시편을 자주 인용하였지만, 특히 십자가에서 시편을 계속 암송하고 있었다는 점에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는 주목한다. 엔도 슈사쿠는 예수님의 그 시편의 시구들이 제자들에게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보았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끝까지 사랑의 언어를 놓치지 않았던 모습을 보며, 제자들은 비로소 이사야서 53장을 떠올렸을 것으로 엔도 슈사쿠는 보고 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 서서 그 길을 걸으려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시편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시편으로 기도해야 “오늘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토다(찬양, 기쁨, 감사)를 꽃피는 토라(말씀)을 제대로 걸을 수 있다”고 하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후기
시편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읽는 것이 기본이라면, 앞 뒤 문맥 없이 시편 한 편만 들여다 보면서 뜻을 파악하고 큐티를 하려는 시도들은 자칫하면 전혀 다른 문맥으로 시편을 해석하게 하는 경우도 있겠다 싶다. 책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룬 1편과 2편만 봐도 1편만을 보면 신앙 생활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해도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2편과 연결해서 보면,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 측면 모두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음을 비로소 보게 된다.
또한 한권으로서 읽는 시편들을 통해 새삼 드러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결코 현실 도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비참한 현실이지만, 현실에 뿌리내리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어두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시편의 신학은 다윗 왕조의 패망과 이방인의 땅으로의 유배라는 고난 가운데에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졌던 소망의 실체를 보게 한다.
오늘의 기독교인은 특히 한국에서의 기독교인은 악으로 물든 현대 물질문명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신앙의 개인적 차원과 정치/사회적 차원을 통합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점점 세속화되어 이제는 세상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삶 가운데 이루어 내야 한다는 과제 또한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시편 또한 오늘의 우리가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님의 날카로운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