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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평점 :
<오픈 시즌>
조 피킷... 참으로 평범해서... 그래서 특이한 주인공이네요.
시리즈의 첫 권, 일종의 프리퀄로 봐야할 듯한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조 피킷이 어떤 사람인지, 그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등이 소개되고,
심각하지 않은 음모론으로 그를 부각시키는 역할인 듯 합니다.
음모론이 심각하지 않다는 거야, 그 간 맛을 봤던 다른 스릴러 소설 대비 그렇다는 거지,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자신과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 조직의 무자비한 횡포지요.
조 피킷,
그는 정말 평범합니다. 평범한 가장,
생활비에 쪼달리지만, 본인이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멋진 일을 쫓아서 하는 이상주의자 같은 면모로 나타납니다.
총도 제대로 못 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타협을 시도하려고 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거든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아내와 딸들을 생각하자니 이상만 고집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가 가진 것은 이상을 쫓으려는 순수한 마음과 진실을 밝히려는 소박한 노력이었습니다.,
현명하고 강한 아내 메리베스의 변함없는 서포트도 그를 지키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미국의 메이저 문화코드를 반영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
총도 제대로 못쏘는 것으로 마치 제대로 하는 일이 뭐 하나 있을까 싶은 자책감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소시민. 자신의 이상을 쫓아 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타협도 생각해 보는, 그런 평범함. 많은 미국의 중산층, 또는 중하류층의 공감을 살 만한 포지션입니다.
어쩌면 Underdog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의 선임자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주변의 여러 사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는 타고난 친화력을 기반으로 사람을 잘 사귀면서 그의 선임자의 후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에 비해 조 피킷은 평범하고 소박합니다. 모자라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Underdog입니다.
그 Underdog이 자신의 막강한 선임자와 유능한 동료가 꾸민 음모를 보기 좋게 격퇴합니다.
그것도 너무 기상천외하지 않게.... 평범한 방식으로요..
미국은 태생적으로 Underdog이 강력한 기존 권력을 해체하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국 이상의 패권 국가였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미국민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영국을, 유럽을 자신의 마음 속의 권좌에서 내려 버렸습니다.
권위에 대한 용기있는 도전 뿐 아니라 근거없는 경멸까지도 미국에서는 용인되는게 이러한 태생적 문화의 명암입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 이성주의>라는 60년대에 씌여진 책은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냅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잘 안보지만, 이러한 정서를 드러내는 옛날 영화로서 떠오른 게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던 <아마겟돈>입니다.
작은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발견되었고, 지구에서는 핵폭탄을 설치하여 소행성을 쪼개서 지구를 빗껴가게 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핵폭탄을 표면에서 폭발시켜봐야 큰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핵폭탄을 소행성 깊숙히 설치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깊이 구멍을 뚫는 기술자들이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말이 석유 시추 탐사기술자이지 영화에서는 불량배, 양아치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NASA와 관련 지질학자와 물리학자의 전문성을 뛰어넘는 문제 해결 역량을 이 탐사 기술자들이 보여줍니다. 결국 지구를 구하는 것은 이들이지요.
필드에서 단련된, 학위도 없는, Underdog 느낌의 기술자들이 책상 머리에서 학문이나 익힌 권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한다는 식의 구조는 미국의 영화나 쟝르소설에서 수도 없이 반복됩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양상과는 다르게, 불량배 처럼 보이는 Underdog들이 더 순수하고, 매너 있는 상류층, 지식층이 더 부패하고 사악하다는 주제들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타이타닉> 이기도 하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Make it Count 건배는 기가막히게 그런 장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알 고어 부통령에게 이기고, 재선에서 케리 민주당 상원 의원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이 Underdog코드이기도 했씁니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의 석유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부자이긴 하지만, 그는 순박해 보이고, 적당히 단순해 보여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줬습니다. 반면 알 고어는 지나치게 똑똑해 보여서 'snobbish' 하다는 느낌을 주었었습니다. 케리 상원의원도 알 고어 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대결에서도 이 코드가 일부 나타났다고 여겨집니다. 힐러리의 패인이 그 한가지만은 아니지만, 힐러리는 지나치게 똑똑한 말들로 사람을 기만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끝까지 자신의 지지 기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과격한 말을 쏟아냈지요. 그 지지기반은 백인 Underdog이라고 볼 수도 있지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 <오픈 시즌>을 읽으면서 그런 문화코드가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게 인기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작품이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우리가 받는 인상의 몇 배로 더 큰 임팩트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자체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런 저런 미국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와이오밍 주에 있는 빅 혼산이 배경이던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엘로 스톤 국립공원이 와이오밍 주에 있습니다. 옐로스톤 남쪽에 있는 Mt. Teton 이란 곳도 경치가 끝내 줍니다. 빅혼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네요.
조 피킷이 신혼여행을 갔다고 하는 잭슨 홀이란 동네는 Mt Teton 남쪽에 있습니다.
작은 국내선 공항이 있어서 옐로스톤을 가고자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거쳐가는 곳이지요.
신혼 여행지가 같은 와이오밍 주 내의 다른 마을이라니, 그 평범하고 소박한 서민성은 신혼 여행지 선택에서도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