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패배는 항상 다른 자들의 승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 즉 제국들과 그들 제국의 토착 감독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연금술 속에서 금은 고철로 변하고, 식량은 독으로 변했다. 포토시, 사카테카스, 오루 프레투‘는,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번영의 절정에서 빈 광산 갱도의 깊은 구멍으로 곤두박질쳤고, 칠레의 초석(石) 지대와 아마존 고무 숲도 결국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브라질 북동부의 설탕생산지, 아르헨티나의 케브라초‘ 숲이나 마라카이보 호수‘의 석유를 생산하는 일부 마을은 자연이 부여하고 제국주의가 빼앗아 가는 부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부에 물을 대주는 비가 그 체제의 광범위한 주변 지역을 질식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대칭적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배하고, 국외적으로는 지배당하는 우리 지배 계층의 복지는 짐을 나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우리 대중의 저주다. - P13~14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유럽이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에스파냐 인들은 현지 부족 간의 분열, 말과 세균을 이용하여 정복 작전을 수행하여 성공했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자국 출신의 식민 통치자에게 원주민 보호를 조건으로 식민지 토지와 원주민에 대한 통치권 일체를 위탁했다. 이는 원주민에게 조공과 노동을 요구함으로써 이들을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또 에스파냐는 식민지 정복 공로자에게 토지, 원주민 노동력을 분배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는 자연스레 원주민의 강제 노동, 착취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인디오를 강제 노동에 동원하도록 허용한 제도도 있었다. 아메리카의 자산을 통해 부를 획득한 에스파냐 귀족들은 그 이윤을 유럽에 투자했고 이것이 아메리카 식민지 경제의 시작이 되었다.
에스파냐의 광산 개발을 통한 경제 구조는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의 기존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 경제를 무너뜨렸다.
18세기가 되면 브라질 금 생산량이 앞선 세기 에스파냐가 식민지에서 거둔 생산량을 넘기게 된다. 브라질 남동부 도시인 미나스 제라이스는 브라질 경제의 핵심이 되었고 이 지역의 항구 도시인 리우 데 자네이루는 1763년부터 수도가 되었으며 오루프레투는 광부들이 밀려들면서 1711년 도시가 되었다. 1703년 잉글랜드와 메투엔 조약을 체결한 포르투갈에서는 금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에 징수할 세금의 절반 이상을 불법으로 빼돌리면서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채웠다.
콜럼버스는 2차 항해 때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져온 사탕수수 뿌리를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최초로 심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이후 브라질, 카리브해의 섬들, 베네수엘라, 페루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들이 대거 들어가기 시작했고 설탕 재배로 인해 기존의 유기질의 토양이 황폐해졌다. 이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미국의 공업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이 지역들은 세계 자본 시장에 통합되면서 경쟁 구도, 수탈로 인한 토지 고갈 등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경제 둔화로 빈곤을 겪는 공통점을 겪게 된다.
19세기 세계 패권의 주인공이 된 영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지배력을 미치게 되었다. 증기 기관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혁명은 영국을 단숨에 부상하게 만들었다. 영국 기업은 새 지선을 건설할 권리를 획득하고 철로 노선 양쪽의 토지 사용권을 받아 이득을 챙기면서 성장했다. 영국의 직물 산업은 원주민 인디오 강제 노동에 의존하면서 가능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보호 관세법은 지배 계층과 거대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초석 광물이 붐을 일으키자 1879~1884 칠레, 볼리비아, 페루 간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영국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는 경제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칠레 초석 산지는 시간이 지나며 폐허가 되었고 경제는 망가졌다.
볼리비아의 주석은 한 기업가인 시몬 파니뇨가 독점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정부가 국유화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독점력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업은 노동자를 굶주리게 했고 학살을 조장하기도 하면서 재산을 늘려나갔다. 브라질의 철광석은 미국의 한나 사, 유에스 스틸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석유는 라틴 아메리카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볼리비아, 파라과이 사이의 전쟁을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량 학살이 벌어지면서 당시 50 만명에 이르는 국민이 떠났는데(파라과이는 전쟁 전에는 자주적으로 발전하던 국가였다고 한다) 현재도 볼리비아와 함께 빈곤 국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후 세계 자유무역 경제 질서에 편입되었다.
미국은 남북 전쟁 이후 세계 무대에 서서히 부상한다. 당시 자유 무역을 주장한 남부와 보호 무역을 강조한 북부 사이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세계적으로 자유 무역이 대세인 상황에서 보호 무역을 고수했다. 커피는 미국 시장, 소비자 능력과 가격에 의존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량도 급감한다. 이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노동자들의 실업 확산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의 봉기를 정부에서 탄압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도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호세 아르티가스가 농업 혁명을 실현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가우초를 농민화하여 시골의 빈농을 땅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들이 보복하면서 그는 사망하고 정책도 좌초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이익이 약화되고 점차 미국의 이익이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패권의 주역이 되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식민지 지역 긴장을 심화시키고 산업을 위성화시킴으로써 식민지 소수에 부를 집중시키고 다수를 가난으로 몰아가는 정책을 시행했다. 라틴 아메리카 정부는 이전 경제 구조를 그대로 둔채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내수시장인 농축산업이 피해를 보았다. 부를 쌓은 수공업자들은 결혼 인맥을 통해 지배층이 되기 위해 대지주의 딸과 결혼하거나 토지를 구입하여 이를 굴려 남는 자금을 산업에 투자했다. IMF는 통화를 안정화시키고 무역을 자유화하면서 수출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배층의 이익에만 부를 가져다주고 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을 흡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자국 은행의 저축을 보호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 급증한 미국계 은행 지점들을 확산시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국내 기업을 신용 부족에 빠뜨렸다. 미국은 차관을 이용해 그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을 들었으나 이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고 자국의 기술 관료를 내보내고 대출 자금을 내 사업을 키우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원조 비용으로 계산되며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은혜를 받은 국가의 외채에 부담이 된다." 종속적 산업화는 세계 시장의 불평등 구조에 기여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순수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채 다국적 기업이 통제한 기술에 의해 독립성을 상실했다. 기술 간 격차는 갈수록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부의 집중, 독점 자본의 폐해, 상품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들, 물건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 라틴 아메리카의 수출용 상품이 내수용 상품보다 품질이 더 높아 경쟁력이 있음은 뼈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쓰여진 책인가 싶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책을 읽어보니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 뿐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역사까지 배경 지식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데다가 딱딱한 지식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묘사로 맛깔나게 설명해주어 읽기 수월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수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과거 종종 있었으나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비단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상세하게 추적한다는 데 있다.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바로 아래 주석이 상세한데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와 역사가 낯선 이들에게도 충분히 잘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작품을 읽기 전후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의 재건을 향한 여정에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야 할 썩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바로 빼앗기고, 짓밟히고, 저주받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적 대의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대의다.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들을 나라별로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란과 변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운명은 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진실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절박한 도전처럼 작동하고 있다. - P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