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난포 열전

주가가 물었다.
"당신께서는 계포를 어떤 인물로 보십니까?"
등공이 말했다.
"어진 사람입니다."
주가가 말했다.
"신하는 저마다 자기 군주를 위하여 일합니다. 계포가 항우를 위해서 일한 것은 그 자신이 할 일을 다한 것뿐입니다. 항우의 신하라면 다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황상께서는 이제 막 천하를 얻으셨는데 자신의 사사로운 원한으로 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어찌천하 사람들에게 황상의 도량이 좁다는 것을 보이신단 말입니까! 더구나 계포 같은 어진 사람을 한나라가 현상금까지 걸고 이렇게 급히찾는다면 계포는 북쪽 흉노로 달아나든가 남쪽 월나라로 달아날 것입니다. …" - P116

"우리는 둘 다 좋은 사람인데 어찌 서로 힘겹게 싸울 필요가 있소?"
이 말을 듣고 정공이 군대를 철수하여 한나라 왕 고조는 포위에서풀려 돌아올 수 있었다. 항우가 멸망한 뒤에 정공은 고조를 찾아갔다. 고조는 정공을 군대 안에서 박해하고 이렇게 말했다.
"정공은 항왕의 신하이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항왕이 천하를 잃도록 한 자는 바로 정공이다."
그러고 나서 정공을 베어 죽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된 사람으로 정공을 본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P122

난포가 말했다.
"폐하께서 팽성에서 곤경에 처하고 형양현과 성고읍 사이에서 패하셨을 때, 항왕이 서쪽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은 팽왕이 양나라땅을 지키면서 한나라와 힘을 합쳐 초나라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 P123

"천하가 평정된 뒤 팽왕은 부절을 나누어 받고 봉토를받았으며, 또한 이것을 자손 대대로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이제 폐하께서는 양나라에서 한 차례 군대를 모을 때 팽왕이 병들어나가지 못하자 모반했다고 의심하였습니다. 그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아주 작은 안건을 가지고 가혹하게 그를 죽이고 가족까지 멸하셨습니다. 신은 공신들 스스로 위험을 느껴 떨까 염려스럽습니다.
이제 팽왕이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삶아 죽이십시오."
결국 고조는 즉시 난포의 죄를 용서하고 도위로 삼았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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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사업(프로젝트)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이 끼친 영향과 결과

나폴레옹 이후, 오리엔탈리즘이란 말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오리엔탈리즘의 서술적 실재론은 격상되었고, 더 이상 단순한 표상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 즉 실제로 날조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변했다. - P161

옛날부터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고 막대한 비용이 소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유럽이 동양을 조종하는 방법을 완전히 변화시킬 엄청난 야망임에도 불구하고, 운하는 참으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담 상대의 어떠한 반대도 무시할 수 있고, 또 음모에 능한 이집트인이나 배신을 잘하는 중국인, 반라의 인도인이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룩할 수 없었던 동양 총체의 개혁사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었다. - P166

드레셉스와 그 운하로 인하여 동양의 거리감도, 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격리된 내밀성도, 그 영원불멸의국적 정서도 차례로 없어졌다. 마치 육지의 장벽이 수로로 변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동양도 또한 반항적 적대자로부터 협력적이고 순종하는동맹자로 변했다. 드레셉스 이후, 동양이 엄밀히 말하여 다른 세계에속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단지 ‘우리‘의 세계, 서로 결합된 ‘하나의 세계만이 있게 되었다. 수에즈 운하가, 몇 개의 다른 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 최후의 시골사람의 신념까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 ‘동양‘이라는 개념은 행정적이거나 실무적인 개념이 되었고 인구통계학, 경제학, 사회학의 여러 요소에 종속되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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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히 밀고 오는 일본 침략 앞에 두 민족은한배를 탔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두 민족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요, 암암리에 상호협조가없었다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중국의 국내사정이, 만주군벌의복잡한 내용이 조선 독립군의 발부리에다 낫질을 했던 것이다.
일본과 결탁하여 북벌을 저지하면서 오히려 본토 석권을 꿈꾸던 만주 군벌은 일본에 협조하여 독립군을 소탕하려 했고 조선 - P386

독립군은 일본 침략의 구실이 된다 하여 내어쫓으려 했고, 폭풍 같은 민중들 반일감정의 흐름을 돌려놓기 위해 중국 정권은조선인 배척운동에 부채질을 했으며 일본이 조선인을 앞세워온다 하여 조선인을 핍박했으며, 일본을 치기 위한 간접의 수단으로 조선인을 못살게 굴었다. 그 나쁜 조건과 부정적 시계(視界)를 고조한 것이 만보산사건이며 그것을 뒤집어버린 것이홍구공원의 사건이다. - P387

홍구사건 이후 조선 혁명당이 중국 요녕여 항일전선을 구성함으로써 양 민족 간의 공동보조는 구체화되었고 조선 독립군과 중국 의용군이 합세하여 쌍성현(雙城縣)의 점령을 위시하여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군(滿聯合軍)을 격파했고 동경성(京城)을 점령, 동만(東滿)의 대전자령에서 일본의 나남(南) 72 연대를 대파하는 등 행동으로나타났다. - P387

오족협화(五族協和), 공존공영(共存共榮)이라는 새빨간 거짓말과 아시아의 맹주(盟主), 웅대한 민족의 비상, 그런 우쭐해지는 용어의 팻말이 희미해가는 황도주의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일깨울 뿐.
그런데 내어쫓다시피 한 그들 백성은 그러나 해방된 것도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필요할 때 다시 주워다 쓰는 야적된 화물이라고나 할까. 잡아다 먹을 수 있는 뇌 먹이는 도야지라고나 할까. 세계 제패의 황당한 꿈을 꾸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만주 자체가 하나의 병참기지인 만큼 언제든지 그 인력을 전용(轉用)할 수 있는 것이다. 생산력으로, 전투력으로 어느 편이든 본국에 비하여 그들은 최전방이며 일선이 될 것이다. 확대일로의중국전선도 전선이려니와 소련이 언제 어떻게 도발해올지, 전쟁의 가능성은 매우 짙다. 약탈의 악령들은 남의 땅 남의 백성뿐만 아니라 제 나라 백성도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맨 먼저 - P420

침략의 도구로 앞장세워 사지로 몰고 가게 마련이다. 애국이라는 충성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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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p

"신이 듣건대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없다. 왕 노릇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라고 합니다. 오창敖倉오산敖山에 세워진 식량 창고에는천하의 곡식을 날라다 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신은 그곳에 쌓아 놓은 식량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형양을 함락시키고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가면서 죄를 지어 변방으로 쫓겨나 병사가 된 자들에게 성고를 나누어지키게 하고 있으니, 이는 하늘이 한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이바로 초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쉽게 취할 수 있을 때인데, 한나라가도리어 물러나는 것은 스스로 좋은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 역생이 초나라를 막을 계책을 내며… - P64

"당신은 마땅히 교외까지 나와서 맞이하고 북면하여 신하라고 일컬어야 하는데 도리어 새로 세워져 안정되지도 않은 월나라를 가지고 순종하지않았습니다. 한나라에서 진실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선조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불태우고 종족을 모두 죽일 것이며,
부장 한 사람에게 10만 군대를 이끌게 하여 월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월나라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하기가손바닥을 뒤집듯이 쉬울 것입니다."
-> 육가가 남월왕을 말로 압도 - P70

"두 나라가 싸우려 할 때는 상대편에게 자신들의 장점을 과장하여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신은 흉노에 가서 여위고 비쩍마른 가축과 늙고 약한 병사들만을 보았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자기들의 단점을 보여 주고 기병을 숨겨 두었다가 승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흉노를 치면 안 됩니다."
-> 유경이 흉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간한 말. 그러나 고조는 유경을 광무현에 가두고 계속 전진하다 패배하고 겨우 도망하여 나옴 - P99

"지금 천하는 겨우 평정되어 죽은 사람의 장례도치르지 못했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일어설 수도 없는데, 또 예악禮樂을 일으키려 하고 있소. 예악이란 백 년 동안 덕을 쌓은 뒤에야 일어날 수 있소. 우리는 당신이 하려는 일에 참여할 수 없소. 당신이 하려는 일은 예법에 어긋나므로 우리는 가지 않겠소. 당신은 돌아가시오. 우리를 더럽히지 마시오!"
숙소통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고루한 선비라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군요."
-> 숙손통은 유학자이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탁월했던 듯하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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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구분
축소화, 순화


단테 지옥편, 롤랑의 노래, 오셀로 <- 외부자로서의 이슬람

사람은 자신이 속하는 공간 밖에 있는친숙하지 못한 공간을,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공상이나 연상 또는꾸며낸 이야기로 가득 채우게 된다. - P105

"상상력의 외면화에 의해서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 하나의 사회가형성되었다. 기독교도의 이슬람관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고 자기충족적이었다." 그 결과 이슬람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내게는 다니엘의 이 말이 오리엔탈리즘 전체의 성격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암시하는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미지의 기능은 이슬람 그 자체를 표상하는 것이아니라, 중세의 기독교도를 위하여 그것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 P116

문화는 언제나 상이한 문화에 대하여 완전한 변형을 강요하는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측에서 보아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모습으로 전환시켜 받아들이게 된다. - P128

유럽이 동양, 특히 이슬람과 만나게 된 결과, 이러한 동양의 표상 시스템은 강화되었고, 앙리 피렌이 시사했듯이 이슬람은 국외자outsider의 전형이 되었다. 중세 이래모든 유럽 문명은 동양에 대항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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