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야, 조선사람들 의식구조가 어떤 건지 너 아니?"
가라앉은 눈빛으로 명희를 바라본다.
"아직은 지독한 봉건주의 아닌가요?"
"이중구조야. 이를테면 수구와 개화(開化)가 따로 있는게 아니구 함께 있는 거야. 함께 얽혀 있는 거야. 너도 그렇구나도 그 이중구조의 희생물이라 할 수 있어. 신여성이라 일컫는 교육받은 여성들, 그 대부분이 완상품이며 고가품일 뿐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없다. 좋은 혼처에서 주문하는 고가품이요돈푼 있는 것들이 제이 제삼의 부인으로 주문하는 상품이다그 말이야. 그러면 진보적인 쪽에선 어떤가. 그들 역시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여자에게 주려고 안 해. 이론 따로 실제 따로,
남자의 종속물이란 생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아. 여자가 인간으 - P109

로서 있고자 할 때 인형처럼 망가뜨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야.
신여성이 걸어간 길은 완상품이 되느냐 망가지느냐 두 길뿐이었다." - P110

"인간의 심리를 모른다 그 말이야. 집요한 것은 언제나 가해자다. 보복당하리라는 두려움이 있으니까 상대를 뿌리째 뽑아서 후환을 없이하려는 집념, 너 생각해보아. 도둑놈 경우를 생각해보아, 남몰래 도둑질하다가 들키면은 칼을 들이대는 것이그들 본능이야. 배은망덕한의 경우도 그래. 은혜 베푼 상대를모략하고 중상하고 이간질하며 씹고 다니는 것도 자신의 합리화, 배은망덕을 덮으려는 심리 아니겠어?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삭막하고 살아가기가 힘든 거지. 그러나 권선생은 이런 말을 했어. 죄를 짓게 되면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또 죄를 짓는다, 그 죄를 또 은폐하기 위해 죄를 계속 짓게 되는데 그게 바로 형벌이라는 거야. 결국 기가 쇠하고 무게 때문에 파멸하며,
후회나 회개가 구원이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거지.
나 그 말 듣고 많이 위로받았다. 속수무책이라도 덜 억울하더구나." - P116

"우리는 매사를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 P147

같소. 독립운동이나 혁명운동도 비극적 색조를 깔아서 그것으로 통합하려는 경향, 물론 우리 민족의 현실은 비극임에 틀림없고 국내에서는 싸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입지에서 그런감정의 유도誘導)가 화약이나 무기의 역할을 안 한다 할 수는없겠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정서적 면만 부각이 되면 튀겨서부푼 옥수수 같은 소영웅들의 목소리만 요란해지고 실질적으로 거둬들이는 실(實)은 보잘것 없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오. 쉽사리 비관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기 없는양심 때문에 자기 자신만 갉아먹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게 비관주의의 주범이지요." - P148

조선인들은 모두 순간순간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억압에서 빚어진 습성 같은 것이지만 이제는 북녘땅에서 실려오던 신화 같은 것은 없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있을 뿐 전쟁의 함성, 전과(戰)만 대서특필, 전해질 뿐, 모든 것은 일본이파놓은 깊이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지원병 제도, 민족신문의 폐간, 노동력 차출, 식량공출, 유명무명의 조직 확대, 관리들과 학교 교사까지 준군복(服)인 카키빛 국민복으로 갈아입은 지도 오래이며 중학교는 물론 여학교까지 교련이라는 명칭에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친일파는 친일파대로 우국지사는 우국지사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지식인 학생들, 장사하는 사람, 막노동꾼, 농민, 고기잡는 사람, 하급관리, 월급쟁이들 할 - P154

것 없이, 각기 위치와 관점은 다르지만 보다 가혹한 수난이 이민족에게 닥쳐오고 있다는 예감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거의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젊은 엄마에게도 어느 순간 불안과 공포는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 P155

"우리가 이 순간 바보같이, 미치광이가 되어 술을 마시고지만, 또 손 하나 발 하나 내밀 수 없는 철저하게 무력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항복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결국 자아에 대한 방어요 민족적 존엄은 결국 내 자신의존엄이기 때문이다. 다 빼앗기고 벌거숭이 되어도 우리는 항복하면 안 돼, …"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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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장

이제 두 개의 동맹국이 전후 아시아에서 서로 전혀 다른 이상의 전시장이 될 정상회담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도쿄는 자신들의 목표가 서구의 굴레로부터 아시아 동맹국들의 "해방"이라고 공개 선언했다.38 이에 대한 제스처로서 11월 30일 일본은 왕징웨이 정권과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전의 굴욕감을 주던 합의보다는 좀더 평등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튿날 왕징웨이와저우포하이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제국을 위해 사용하던 거창한 표현인대동아공영권을 축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로 날아갔다. - P378

카이로에서는 아시아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하나는 전후 아시아에 대한 구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연합 사령부SEAC가 당면하고 있는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장제스는 회담을 위해 전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대해 적었다. 여기에는 만주와 타이완, 펑후 열도의 회복,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 대중 배상의 일부로서 중국 점령지 내 모든 일본 소유 공장과 선박의 인도 등이 있었다."
그러나 논의는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연합국들은 아시아에서 어떻게 싸울지를 놓고 강력하게 걸고넘어졌다. 카이로에서 SEAC는 세 가지 유력한 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가 버마의 재탈환("타잔Tarzan 작전"), 두 번째는 북부 수마트라 침공("컬버린Culverin 작전"), 마지막은 가장 야심만만한 계획으로 벵골만을 통해 안다만 제도를 점령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의 보급선을 위협하는 벵골만 상륙작전("해적Buccaneer 작전이었다. 장제스는 슬림 장군의 영국군과 함께 중국군이 투입되는 "타잔 작전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안다만해 (벵골만 남동쪽에 있는 바다로, 버마해라고도 부른다 옮긴이)를 침공하는 계획도 약속해주기를 원했다. - P383

카이로에서 합류하기를 거부했던 스탈린은 테헤란에서 루스벨트, 처칠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유럽이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오버로드 작전이 시작되면 동부 전선에서의 작전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장담했다. 또한 소련은 대일전에 참전하기로 약속하면서도 그 시기는 오직 독일이 항복한 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연합국의 목표는 급변했다. 벵골만을 통한 주요 상륙작전이 될 "해적 작전은 12월 5일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 작전은 영국 해군이 보유한상륙함의 태반을 요구하는데다, 미 수뇌부는 과연 그것이 성공 가능한 전략이라고 결코 확신한 적이 없었다. 해적 작전의 포기는 중국과의 맹약이 마치대수롭지 않은 양 간단하게 파기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암시였다. - P387

1942년 5월 정글을 도보로 탈출한 이래, 스틸웰에게 버마의 탈환은일종의 집착이 되었다. 카이로 회담에서 해적 작전의 제안은 스틸웰의 희망을 한껏 부풀게 했다. 작전이 취소된 뒤에도 그는 그것을 다시 추진하는 데에만 매달렸다. 마찬가지로 영국군과 중국군은 이미 버마 공격을 준비하기위해 나서고 있었다. 1943년 12월 중국군은 국경지대의 일본군 전초 거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P394

3월 27일 장제스는 버마 작전을 위해 Y군(도합 9만여명 정도였다)과 미군 전투기들을 인도로 보낸다면 중국 중부를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스벨트는 4월 3일 장제스가군대를 출동시키지 않는다면 중국에 대한 더 이상의 원조를 "기대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스틸웰(그리고 마셜)까지 압박하자 장제스는 굴복할 수밖에없었다. - P395

루스벨트가 장제스를 압박한 이유는 스틸웰의 오판 때문이었다. 연합군 수뇌부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아시아에서도 미 해군의 주도 아래 병참선이 짧은 중부 태평양을 통해 북상 중이었다. 따라서 버마에서의 대규모 공세에 흥미가 없었으나 스틸웰은북부 버마의 일본군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이 가진 중국군 2개 사단과 1개 미군 연대만으로도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제스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지만 스틸웰은 장제스의경고를 단순히 그가 싸울 의지가 없는 탓으로 흘려버렸다. 그러나 일본군은 철도를 통해 신속하게 북부 버마로 병력과 물자를 증원할 수 있었다. 영국군 또한 무다구치의 "임팔 작전이 발동되면서 수세에 몰렸기에 스틸웰의 공세는 당장 교착상태에 빠진 채 도리어 포위 섬멸당할 판이 되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스틸웰은 루스벨트에게 Y군이 출동하도록 장제스를 압박해줄 것을 건의했다. 루스벨트 역시스틸웰에게 미군 부대를 증원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그렇다고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그로서는 스틸웰의 실패를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 모든 책임을 장제스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 옮긴이 - P395

이치고 작전은 일본군이 여태껏 감행했던 작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약 5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중국 중부에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경에이르기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치고 작전은 단순한 전략적 목표 그 이상이었다. 일본군과 국민정부군 양쪽 모두에게 이 전역은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한 마지막 시도였다. 일본에게 중국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은 가장 다급하면서 절박한 일이 되었다. 만약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다면 유럽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미국과의 협상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 P398

전선에서 모습을 감춘 지휘관들, 자신들의 사유 재산을 피란시키는 데 군용 장비를 사용한 장교들, 농민들에게서 소를 징발했던 것 등. 그로 인해 군인들은 중국인 동포들에 의해 무장 해제되었다. "일본군은 3주도 안 되어 자신들의 모든 목표를 - P403

달성했다. 남쪽으로 향하는 철도는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30만 명의 중국군이 소멸했다" 뤄양의 상실은 국민정부군 수뇌부가 자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일본군의역량을 과소평가하면서 또 다른 재앙을 초래했다. - P404

허난성의 전례 없는 패배는 장제스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으며 중일전쟁은 물론, 국공내전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카이로 회담을 전후하여 장제스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전에 없이 높였다. 비록 스틸웰과의 갈등이나 미·영·소 3 대국의 은근한 무시,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은 당시에만 해도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가장 골칫거리였던 공산당에 대해서도 지루한 협상 끝에 1944년 3월 더 이상의 대립을 끝내고 양당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항일에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국민당만큼이나 공산당 역시 일본군의 소위 "삼광작전"으로 존립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장제스는 전면 공세의 준비를 지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직후 일본군의 대공세가 시작되고 유일한 전략예비대인 Y군을 스틸웰에게 빼앗기면서 장제스의 구상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더욱이 공산군은 일본군의 공세에서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을뿐더러, 화베이와 화중에서 국민정부의 통치 기반이 와해된 것을 기회 삼아 이 지역을 빠르게 잠식해나갔다. 덕분에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옮긴이 - P404

1938년 당시의 용맹했지만 실패로 끝났던 방어전은 장제스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1944년에는 그렇지 못했다. 국민당은 그동안 장제스가 권좌를 지켜야 한다고 믿어왔던 한 사람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다름 아닌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전쟁 초기 국민당은 싸울 때마다패배를 거듭했다. 하지만 상하이와 우한에서 중국군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국민정부가 항전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제 뤄양창사에서의 부끄러운 패배는 충칭과 워싱턴에서 적대적인 수군거림을 초래했다. 마셜은 루스벨트에게 중국에 아직 남은 군사 자원을 "일본에 맞서생산적인 노력을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맡길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셜이 보기에는 오직 스틸웰만이 그 역할에 적합했다. 루스벨트는 미국인을 중국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장제스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P407

"중국에서 지난 7년 동안의 전투를 검토한다면 공산당의 참전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에 불과했다고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공산당은 규모와 격렬함에서 상하이와 쉬저우, 한커우(우한), 창사 전역에 비견될 만한 어떠한 전투도 치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주장과는 상반되지만, 그들은 단지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본군의 극히 작은 부분만을 견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7여기서의 작은 부분이란 국민당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였다. 가우스는 장제스의 추종자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산당이 악화되는 중국의 전세를 뒤엎을 마법의 열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옌안에서는공산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블라디미로프가 그와 생각이 같았다. 그는 모스크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제8군과 신4군은 1941년 이후 사실상 싸우지 않고 있다." - P415

스틸웰은 자신의 도로를 건설했고 복수에 성공했다. 하지만그의 강박적인 프로젝트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은 12월이 되어서였다. 아삼에서 시작한 레도 로드는 라시오에서 버마 도로와 연결되면서 다시 한 번육로를 통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보급 물자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945년7월 한 달 동안 약 5900톤에 달하는 물자가 도로를 따라 수송되었다. 그러나 이 단계에 오면 험프 루트를 통해 공수되는 물자가 도로를 통한 수송을 초라하게 만들었다.78 79 물론 전쟁이 좀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길은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레도 로드는 장제스에 의해 스틸웰 로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겉으로는 그것을 건설한 미국인들의 의지에 대한 찬사였지만 아마도 그 속내에는 그 같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장본인의 이름을붙여야 한다는 암시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도로가 뭔가 쓸모가 있게 되었을 때, 스틸웰이 1944년 무더운 여름에 버마의 정글에서 싸우고 있을 때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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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숱한 건물이었다. 한없이 넓고 하얀 가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카키빛군용차, 마차, 인력거, 바람에 서걱거리던 가로수, 무리지어 가는 사람들, 꽃잎 같은 아이들이 있고 행진하는 일본 병정, 그모든 것이 소리 죽은 채 땅속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었다. - P13

일본은 이번 전쟁에서 속전속결, 국지전으로 결과가 날 것으로 믿으려 했지. 장개석(蔣介石)이든 모택동(毛澤東)에 의해서든 중국이 통일되기 전에, 사실 서안사건(西安事件) 후 장개석이 공산당 토벌을 중지하고 항일로 돌아선것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한결같이 항일로 굳게 뭉친 것은 일본에게 더 기다릴 수 없는 초조감을 안겨주었고, 과거에는 물 - P28

론 근자에 있는 만주사변 역시 속전속결, 국지전으로 계속 재미를 본 그 단꿈도 버릴 수 없었고, 때에 따라서 불안이나 불확실하다는 것이 결단력을 부추기고 자신을 부추기는 경우가 있지. 결국 일본은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신중파를 누르고 전쟁으로 건너뛴 건데, - P29

일본은 거대한 공룡에 물린 격이고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거다. 그들은이미 국가총동원령을 선포했고 인원과 물자를 모두 전쟁에 투입한다는 것인데 인원과 물자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서 물리적으로 일본은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야. 시간은 힘을 소모하고 자리는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인원과 물자가 엷게 깔릴 수밖에 없고 성글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결국 녹아버리게 돼 있어. 엷어지고 성글어지고 힘이 빠진 곳을 지금 팔로군(八路軍)이뚫고 있는 게야. 장개석은 오히려 일본은 도외시하고 전쟁 후중공에 대비하여 군사력 소모를 견제하고 있는 형편이며 국민당에서 이당활동제한변법(異黨活動制法)을 내놓은 것만 보더라도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있지. 그러나 일본은 끝없는 늪인 줄 - P29

알면서도 고통스런 행군을 아니할 수 없게 돼 있다. 일본을 위해 중재에 나설 나라도 없고 전쟁물자를 대주기는커녕 팔아주는 곳도 없어. 작년에는 미국에서 미일(美)통상조약을 폐기했고 영일(英日)회담은 결렬, 국제연맹이사회에서는 중국원조의안을 가결했고, 뿐인가, 여태까지 소련은 무제한으로 중국을원조해왔거든. 중국에서 손 털고 철군하는 것 이외 일본은 달리 방법이 없다. 그것은 패전을 항복을 의미하는 거니까 늪이든 지옥이든 갈 데까지 가보자, 한 가닥 희망은 지금 구라파에서 독일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과 국공(國共)이 분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그러나 일본은 너무 깊이 물려버렸고 바닥이 나버렸어. 문제는 우리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다." - P30

총칼과 교지(智)로써 우리 속에 가두어진 조선 민족, 성질사나운 놈 있으면 잡아먹고 지혜로운 놈 있으면 잡아먹고 먹음직스러우면 잡아먹고 허약한 놈 잡아먹고 나머지는 부려먹으면서 필요할 때 조금씩, 유사시에는 비상용이고, 분명 볼모는 아니다. 일본이 강탈한 강산에 노닐던 짐승들이다. 그들 재산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법이 없는가. 그러나 법을 바라는 자는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는 죄인이 되어 가둠을 당하며 모든 것, 생명까지 박탈당해야 한다. 이 무법의 벌판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있는 걸까. - P58

처녀들에게도 앞날은 있는 걸까. 칼의 문화, 유곽문화(遊廓文化), 그것도 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으나 여하튼 일본 군화가 지나간 곳이면 맨 먼저 어김없이 서는 게 유곽이다. 그러고 보면 칼과 섹스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고 생과 사의 윤회인 것 같고, 이 미망(迷妄)의 유전(流轉)은 진정 끝남이 없는 것인가. 유곽으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 그것은 죽음인가 삶인가.
죽음도 아니며 삶도 아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땅도 빼앗기고 삶의 터전도 다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딸을 팔아넘긴부모의 그 죄업의 생애를 전율 없이 생각할 수 있는가. 공장 월급의 몇 달치 선불이라 속이고 얼마간 금액을 떨어뜨린 사내들은 딸을 끌고 간다. 가난과 생명의 존재는 이토록 처절한 것인가 참 그렇다! - P59

하얼빈을 지나 멀리멀리 우수리강과 합류, 노령 하바로프스크까지, 송화강은 가히 만주의 젖줄이며 대지의 생명선,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다. 땅문서가 없었던 땅, 땅임자도없었던 땅, 흑룡강 우수리강에는 어족(族)이 지천이며 사계절유목과 수렵, 나무열매의 채집으로 굳이 땅을 일구지 않아도넉넉했던 삶의 터전, 기름진 망망대륙인 만주땅, 대궁(大弓)을사용했었다는 동이족(東夷族)이 송화강 따라, 우수리강 흑룡강을 건너 시베리아 벌판인들 아니 넘나들었다고 어찌 단언하리.
강물은 청록빛, 청자靑磁를 빚은 물빛인가, 고구려의 남정네가 이 강물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고구려의 아낙이 이 강가에서 빨래를 했을 것이다. 지난날은 모두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날이 설사 질곡의 하늘 밑이라 한들 어찌 오늘만 할 것인가. 그 옛날 나라의 기틀을 잡아주고, 무지몽매하여 고구려에서 보낸 국서(國書)도 오직 읽는 이가 왕인(仁)의 자손 한 사람뿐이었다던지, 그런 그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 - P85

고, 죽통에 밥 담아 먹는 그들에게 도예를 가르치고 불상을 바다에 띄워 보내주고 그렇게 예술을 전수해주었는데 우리는금 저들에게 야만족으로 매도되고 있다. 금치산자로
선고받은 것이다. 어느 나라 지도에도 조선은 없고 조선이라는나라는 없는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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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처럼 내 마음속에 몇시간 떠돌다가, 그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에 품었던 낭만적인 관념과 더불어 점차 하나의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연상 작용으로(어떤 다른 여성적 이미지와도 완연히 구별되는) 발전했으며, 따라서 추억이 가장 잘떠오르는 바로 이런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추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추억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 P98

게르망트부인이 보여 주는 이런 상이한 얼굴들의 연이은 출현 덕분에그 얼굴들은 그녀의 옷차림이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때로는 비좁게, 때로는 넓게 상대적인 공간을 차지했고, 내 사랑은날마다 변하는 살과 옷감의 어느 특정 부분에도 고정될 수 없었으며, 내 마음의 동요도 이처럼 그녀가 날마다 살과 옷감을고치고 거의 온통 새것으로 만들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살과 옷감을 통해 혹은 낯선 뺨이나 새로운 옷깃을 통해 내가 느끼는 것은 항상 게르망트 부인이었으니까. 이 모든 것을움직이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을, 그 적의가 날 슬프게하고 그 다가옴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인간을 나는 사랑했고, 이런 그녀의 삶을 사로잡아 거기서 그녀의 친구들을 내쫓고 싶었다. 푸른 깃털을 세우거나 불같은 안색을 보이거나 그녀가 하는 행동은 내 눈에 중요성을 상실하지 않았다. - P102

나는 물리적 세계만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와 그 모습이 다르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모든 현실이 우리가 직접 지각한다고 믿는 현실과 다르며, 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작용하는 관념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구성하는 현실과도다르다고 생각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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