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무렵, 칭기스칸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광대한 제국의 통치에서 제한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유용한 기술을 지녔지만, 말만 많고 거의 행동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은상식을 추구한 반면에 그들은 깨우침을 추구했다. 몽골 궁정으로 데려온사제, 수도사, 율법학자, 샤먼 들은 칭기스칸에게 좌절감만 안겨주었다.
그들은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강론과 가르침을 내세웠다. 그들 말대로 모든 문제가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연구,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칭기스칸은 당면한 문제가 산적한 수백만 인구의 제국을 통치해야했고, 그러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 P357

몽골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기피하여 그 대신에 완곡하게 ‘신이 되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하여 1227년 여름에 칭기스칸은 신이 되었다. 예수이 카툰은 칭기스칸의 시신을 펠트로 감싸는 작업을 감독했으며 친위대는 황제를 고향으로 데려가 매장할 준비를 했다. 칭기스칸은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도교, 그 외의 어떤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몽골인으로 죽었다. - P378

이제 외국 땅에 진출한 많은 몽골인은 칭기스 칸이 알아볼 수 있는부류의 몽골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인이 되어 있었다. 제국의 중심은 먼 도시로 이동했다. 훌레구는 바그다드와 타브리즈를 중시했고, 쿠빌라이는 새로운 수도 연경(오늘날의 베이징)으로 중심을 옮겼다. 몽골인들은 스텝을 버렸다. 카라코룸은 목초지로 전락했다. 한때 사절들이 칸 앞에 와서 몸을 떨고 포도주가 거대한 은빛 분수에서 흘러내리던 곳은 이제 염소와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곳으로 변했다. 카라코룸의 사원, 모스크, 교회는 산산이 부서져 폐허가 되어 땅속으로 사라졌으며, 새로 자란 풀로 만들어진 카펫 밑에 묻혔다. 승려들의 염불 외는 소리, 무예진의 기도 시간 알리는 소리, 기독교인들이 찬송가 부르는 소리는 가뭇없이 사라져 울부짖는 바람 소리로 대체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기도 소리는 때때로 샤먼들이 찾아와 북을 두드리고, 밤에 빛나는 별 아래 모닥불옆에서 춤추며 노래 부를 때 나는 소리뿐이었다. - P439

토머스 제퍼슨은 당시 널리 퍼진 중국 관련 주제에 관심을 공유한 많은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1771년 8월 3일에 처남 로버트 스킵위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칭기스칸을 다룬 머피와 볼테르의 연극에는신경 쓰지 말고 당시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던 원극의 대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제퍼슨은 칭기스칸을 다룬 페티스 드 라 크루아의 전기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제퍼슨 역시 모든 종교에는 일부 좋은 면이있지만 그것들 중 어느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그는 프랑스어로 된 칭기스 칸 전기를 여러 부 구입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이 가졌고 나머지는 자기 딸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 P469

제퍼슨은 1777년에 종교적 자유에 관한 법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지만,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가 1786년 1월 16일 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알맞은단어를 찾는 데 고심했고 이 작업은 거의 10년이 걸렸다. 그의 제안은 치열한 논쟁·편집·수정의 대상이 되었지만, 최종 확정된 핵심적인 단어들은 칭기스 칸의 칙령에서 사용된 단어들과 유사했다. 제퍼슨의 새로운법은 이렇게 규정했다. "그 누구도 종교적 의견이나 신앙으로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종교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장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전해졌 - P470

고, 몽골어에서 페르시아어로, 다시 터키어, 프랑스어를 거쳐 마침내 영어로 번역되었다. 번역된 문헌들에는 칭기스칸의 칙령에서 사용된 단어들이 사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칭기스칸의 정신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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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투겐의 죽음은 칭기스 칸 제국의 미래계획뿐만 아니라 칭기스칸의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영적 중심도위협했다. 정말로 하늘이 그를 축복하여 그런 크나큰 위업을 달성할 수있게 했다면 왜 손자의 사랑을 계속 누릴 수 있는 운명을 거부했을까?
왜 손자의 운명은 그를 바미얀의 절벽 앞에서 쓰러져 죽게 했을까?
운명은 죽음의 때를 결정했다. 하지만 칭기스칸은 그 운명에 맞서 자기 내면의 고통을 세상에 대한 복수로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는 손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금지했다. 몽골은 원래 전통적으로 죽은 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무투겐의 죽음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게 했다. 적에게 왕족의 죽음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심지어 후대에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몽골 연대 - P305

기 작가들마저 무투겐의 죽음이나 그 후에 벌어진 복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려면 무슬림관찰자들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P306

그는 이제 삶에서 마지막 행동이될새로운 영적 여정을 떠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내면의조화와 평화를 구하기 위해 철학적인 명상이나 마술 같은 의식에 기대려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당대에 가장 존경받고 저명한 영적 스승들과 현인들을 초빙해서 저 너머에 있는 세상으로 새로운 탐구를 떠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과 습관을 상세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신비한 비밀과 마음을 위로하는 지식을 알아내기 위해 다른 것들, 즉 좀 더 형식을 갖춘 체계화된 종교들을 연구하기시작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탐구를 수행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무엇을 발견했을 때 곧바로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 P311

칭기스칸은 몽골인들이 중국 대중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연로한 도교 현인이 도움을주길 바랐다. 당시 그는 중국의 3분의 1만 정복한 상태로, 금의 영토는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송과의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몽골인들은 중국 전역을 통제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고된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처지였다. 구처기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이미 칭기스 칸의 휘하에 들어온 영토에서 몽골의지배를 더 강화할 수 있고, 또 금과 송의 통치 지역에 사는 백성들에게도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칭기스칸은 도교 수도사들이 그를 도와 이미 정복된 백성들을 회유해주고, 나아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백성들의 마음 - P331

을 몽골 쪽으로 끌어들이길 기대했다. 외부에서온통치자로서 몽골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중국인들이 인정하는 합법성을 필요로 했다. 옛 지배층과 밀접한 동맹을 맺어온 유학자들은 그런 호의를 베풀 기색이 전혀없었지만, 불교와 도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 P332

구처기와 그의 추종자들은 칭기스 칸의 칙령을 의도적으로 새롭게해석했다. 그들은 전진교가 다른 모든 도교 교파를 제압하고 종국적으로는 주된 경쟁자인 불교를 타도해야 한다는 칙령으로 해석했다. 전진교는성직자들의 면세 특권을 확장했고 도교 사원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그들의 사업은 면세 특권 덕분에 다른 상인들보다 우위에 서면서 빠르게확대되었다. 전진교 사원들은 이제 사실상 면세로 물건을 판매하는 창고로 변모했다."
주어진 특별한 혜택으로 전진교는 점점 그 세력이 강해졌고, 너무나강대해진 나머지 어떤 경우엔 자신들에겐 몽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여기기까지 했다. 전진교 사원들은 상업, 은행업, 제조업을 위한 면세 지역으로 운영되었고, 창고로 쓰는 공간은 점점 도교를 숭배하는 공간을밀어내며 자리를 넓혀갔다. 그들은 제국 전역을 무대로 하는 면세점 체인이 되었다. 전진교에 가입한 사람들은 몽골 지역 당국이 요구하는 군역, 고된 집단노동, 가도 건설, 관리 운송, 그 외 다른 부류의 노동을 면제받았다. 결국 전진교의 대규모 확장은 제국을 통치하고 거대한 몽골군을유지하는 데 필요한 국가 세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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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책임에서 풀려나게 되면 동물의 세계 나머지에서 그러하듯 아빠들이 자식에게 훨씬 더 헌신적으로 된다. 특히 조류에서는 부모가 함께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조류 커플의 90퍼센트가 그 일을 나눠 가진다. 진화의 단계를 거슬러가다 보면 아비의 돌봄이 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관례 수준이다. 물고기의 경우 전체 종의 3분의 2가 양육의 모든 책임을 아비 혼자서 지는 싱글대디이고, 어미는 알을 기여하는 것 이상은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심지어 해마 수컷처럼 일부는 출산까지 한다.

뒬락은 두 종류의 뉴런을 발견했다. 하나는 새끼 돌보기 행동을 하게 하는 갈라닌 뉴런이고, 다른 하나는 영아 살해 충동을 일으키는 우로코르틴urocortin 뉴런이다. 두 뉴런은 서로에게 직접 작용하여 하나를 자극하면 다른 하나가 억제된다. 따라서 두 행동은 상호배타적이다.

"지금 저와 당신이 살아 있는 것도 우리 조상님들이 자신의 갈라닌 세포로 제 자식을 돌보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엄마로 하여금 과연 지금이 아기를 가지기에 좋은 때인지 판단하고 실행하게 하는 우로코르틴 덕분에도 우리가 존재하지요. 그러지 않았으면 어미 자신이 죽었을 테니까요." 뒬락의 말이다.

뒬락은 이 신경 회로가 비단 생쥐의 암수에서만 똑같은 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이 공유하는 특성이라고 추정한다. 시상하부는 뇌 안에서도 아주 오래된 영역으로 잠자고 밥 먹고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여러 본능적 행동의 중심이다. 이 각각의 행동을 조절하는 뉴런이 동물에서 발견될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뉴런이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만약 부모되기의 명령 중추가 개구리와 생쥐에 존재한다면 유사한 회로가 인간 남자와 여자의 뇌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뒬락은 자신의 추정대로 우로코르틴 뉴런과 산후우울증이 연관되어 있다면 자신의 연구가 해당 장애를 치료하는 차단제를 찾아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실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은 무엇이 자신을 부추겼는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본능을 느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설명하지 못했죠.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본능적으로 새끼를 없앤 쥐의 뇌에서 일어난 일과 아주 유사할지도 모릅니다."

모성애의 목표는 무작정 새끼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번식할 때까지 오래 살아남는 자손의 수를 최대로 늘리는 곳에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이 일에 진정한 이타적 헌신은 없다. 오히려 철저히 이기적이다. ‘좋은 엄마’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 때와 포기할 때를 알고 있으며 그건 심지어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그러하다

모성의 시작은 호르몬의 교향곡으로 촉진되는데 그중에서도 모성 경험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옥시토신이다.

암쥐 처녀들은 일반적으로 새끼 쥐에게 극도로 적대적이라 무시하거나 마주치면 잡아먹기까지 했으나 반복적으로 새끼에 노출되고, 특히 주변에 보고 배울 엄마가 있으면 이 미숙한 베이비시터는 살해를 멈추고 생모처럼 어린 쥐를 자상하게 돌보기 시작한다.

남의 새끼를 돌보고 부양하는 것은 얼핏 진화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협동 번식은 다양한 분류군에서 여러 차례 진화했다. 1만 종의 조류 중 약 9퍼센트와 전체의 3퍼센트에 달하는 포유류 어미들이 알로마더allomother, 즉 ‘다른 엄마’들로부터 절실한 도움을 받는다.

인간의 아기는 성숙하기까지의 속도와 비용 면에서 최악이다. 남아메리카 수렵채집 부족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 결과 한 사람을 출산부터 영양 면에서 독립할 때까지 키우는 데 약 1,000만~1,300만 칼로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는 크고 육즙이 풍부한 덩이줄기를 아무리 잘 찾는다고 해도 엄마 혼자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편협하지만 대단히 영향력 있는 다윈의 태도로 인해 이후 150년 동안 동성 경쟁의 연구는 짝을 두고 벌이는 수컷의 경쟁에만 초점을 맞췄고, 암컷의 전투적 잠재력은 대개 무시되었다.
그 결과로 암컷의 데이터가 들어가야 할 텅 빈 자리는 허위 정보로 메워졌다. 암컷은 경쟁심이 없다는 가정하에 엉터리 이론이 세워진 것이다. 실상은 그저 우리가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뿐인데 말이다.

사회적 선택social selection이라는 개념은 1979년에 이론생물학자 메리 제인 웨스트 에버하드Mary Jane West-Eberhard가 주창한 것이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번식 철 바깥에서 성과 무관하게 영역이나 자원을 두고 벌어진 경쟁에 의해 정교하게 진화한 형질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다윈을 폄하는 대신 그의 원칙을 확장하여 성선택을 사회적 선택이라는 더 넓은 배경의 일부분으로 제안했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종의 야단스러운 형질이나 성적 이형을 성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아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적 기능을 보이는 방대한 생물의 예시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암컷들 간의 전략적 경쟁은 영장류 조직의 핵심이다. 영장류 암컷의 사회는 대부분 상속 가능한 안정적인 모계를 특징으로 한다. 통제권을 쟁취하려는 무자비한 싸움을 벌이며 심리적 위협, 전술적 동맹, 잔인한 처벌을 통해 서로 경쟁한다.

미어캣 사회는 임신하는 즉시 다른 암컷의 새끼를 죽이고 잡아먹는 근친관계 암컷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번식 경쟁에 기반을 둔다. 새끼를 잡아먹는 일은 임신한 아랫사람에 대한 일말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 알파 암컷의 전지전능함에 의해 통제된다.
이 여인의 목표는 자신이 통치 기간에 그 어떤 암컷도 번식하는 꼴을 보지 않는 것이다.

미어캣 문화는 항상 긴장된 상태에 있고 또 살인적이다. 1,000종 이상의 포유류를 대상으로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치명적인 폭력을 조사한 결과, 미어캣이 지구상에서 가장 살인적인 포유류로 밝혀졌다. 심지어 인간을 제치고 잔인하기로 으뜸가는 짐승이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미어캣 다섯 마리 중에 한 마리꼴로 다른 미어캣에게 살해당한다.
가해자는 대부분 암컷, 그것도 새끼의 할미일 가능성이 크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사회에서는 영역 방어를 대부분 암놈이 담당한다. 여우원숭이 암컷은 냄새 분비샘이 잘 발달했고 수컷보다 화학 신호를 많이 생산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기대치와 반대되는 것이다. 여우원숭이 암놈들은 수놈보다도 동종의 냄새, 특히 번식기 암컷의 냄새에 더 관심을 보였다. 건강한 암컷일수록 지방산 에스터를 많이 생산하는데 이는 강하고 섹시하다는 증거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는 원원류, 즉 인류의 가장 근간이 되는 영장류 사촌이다. 원원류는 영장류 진화의 굵직한 경로에서 일찌감치 갈라져 나왔고 이후에 나머지가 신세계원숭이(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진원류)와 구세계원숭이(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사는 진원류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형 유인원이 여기에서 진화했다)로 갈라졌다. 원원류 중에서도 현생 여우원숭이의 조상은 약 5,000~6,000만 년 전에 마다가스카르섬에 고립되어 진화했다.

루이스에 따르면 암컷의 지배성 연구는 ‘지적으로 고립’되었고 본질적으로 테스트할 수 없는 가설이라 하여 여우원숭이는 종종 ‘마다가스카르의 유별난 괴짜’로 무시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우원숭이의 10퍼센트는 암컷 지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비과학적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육식동물에서부터 설치류와 바위너구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암컷이 지배한다고 기재된 포유류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암컷 지배가 마다가스카르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암시다.

침팬지 무리에서 암컷의 계급은 나이와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여러 암컷을 동물원에 모아놓으면 대개 별다른 소란 없이 재빨리 서열이 결정된다. 한 암컷이 다른 암컷에게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그걸로 끝이다. 암컷의 서열은 안정적이고 웬만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침팬지 무리에서 사회적 결과물은 가족 관계와 동맹의 네트워크에서 누가 중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마는 월등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중재 기술을 갖춘 특별한 존재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모든 성체 수컷은 공식적으로 마마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하나같이 마마를 필요로 했고 마마를 존중했다.

여성이 스스로 삶을 제어하지 못하고 남성이 폭력을 가할 위험성이 큰 사회는 암컷이 어린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원과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랭엄이 말한 결속하지 않는 암컷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야생의 사촌들에서 공격적인 수컷 지배의 본보기를 찾으려는 인류학자에게 요긴하다. 수컷이 남고 암컷이 떠나는 시집살이가 아마도 선행인류의 패턴이며 그로 미루어 인류의 암컷 조상들도 이와 비슷하게 고립되고 취약하고 억압받았을 것이라는 랭엄의 주장은 더욱 좌절을 준다.

프란스 드 발은 보노보를 ‘페미니스트 운동에 내려진 선물’이라고 불렀다. 침팬지는 부계 중심에 호전적이지만 보노보는 모계 중심에 평화롭다. 인간은 양쪽에 똑같이 피를 나누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대형 유인원의 비정통적 삶이야말로 영장류에서 수컷 지배가 정해진 것이라 주장하는 개념에 최후의 치명타를 날린다.

뒤를 봐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디아스포라로 성인의 삶을 사는 대신 보노보 암컷은 낯선 집단에 합류해서도 피를 나누지 않은 암컷들과 동맹을 형성한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구성된 자매 관계의 힘으로 보노보 암컷은 자신들보다 큰 수컷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의 동맹은 싸움이나 신체적 겁박에 의해 형성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연합을 유지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과학자들이 ‘G-G 문지르기’라고 묘사한 행위로 서로 생식기를 비비는 행동이다.

보노보는 이성과 섹스를 할 때 종종 정상 체위를 시도한다. 이는 다른 영장류에서는 전혀 관찰된 바가 없는 사실이다. 침팬지는 암수가 얼굴을 마주 보는 섹스를 하지 않지만, 야생에서 보노보는 세 번 중 한 번꼴로 정상 체위를 시도한다.

"보노보 세계에는 100퍼센트 이성애도, 100퍼센트 동성애도 없습니다. 모두 양성애자예요." 패리시의 말이다.

보노보는 인류학을 개방하여 가부장제를 인류 조상의 보편적 상태로 전제하지 않는 신선한 모델을 탐색하게 했다. 사실 영장류 사촌 전반에서 가부장제가 희귀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그리고 왜 가부장제가 많은 인간 사회에서 진화하고 장악했는지를 묻게 한다.

보노보 이야기는 우리에게 남성이 공격적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행위와 능력은 환경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여성에게 힘을 부여한 핵심적인 요소는 압제적인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자매결연의 힘이다. 여기에서 자매란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까지 모두 아우른다.

진정한 완경完經은 생식기관의 노화와 신체의 노화가 분리될 때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생식기관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동물원에서 폐경을 경험한 고릴라는 공짜 식사와 건강 관리로 수명이 인위적으로 연장되었다. 야생에서 고릴라 암컷은 35~40년을 살지만 사육 상태에서는 60년까지도 살 수 있다. 몸과 뇌가 난소의 나이를 넘기는 것이다. 5,000종의 포유류 중에서 야생에서 자연적으로 완경에 이른다고 알려진 종은 이빨고래류 4종과 인간뿐이다.

나이 들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운 사회적 비용이 진화적 자극이 되어 범고래 암컷으로 하여금 중년이 되면 번식을 중단하고 대신 아들과 손자에게 투자하며 딸과 손녀와의 경쟁을 거두게 한다. 그런 동기가 코끼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데, 다른 사회적 포유류처럼 아들이 출생 집단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 암컷은 시간이 지나도 집단 구성원과 근친도가 낮고, 아니 적어도 더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에 코끼리 암컷 우두머리들에게 가장 무난한 선택은 죽을 때까지 번식하는 것이다.

1970년대 당시 범고래를 위협하는 것은 굶주림과 오염이 아닌 납치였다. 전국의 해양 공원에 범고래 개체군이 잔혹하게 약탈당한 것이다. 살리시해의 남부 상주군 40퍼센트가 납치되어 인간의 여흥을 위해 수족관에 감금되었다.

범고래(그리고 인간과 같은 대형 유인원)처럼 코끼리는 분열과 융합이 거듭되는 사회를 이룬다. 즉 사회적 삶이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집단의 크기는 고정되지 않았고 역동적이며 구성원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알바트로스 동성 커플이 제안하는 바는 훨씬 고무적이다. 자연에서 성역할에 내재된 융통성은 물론이고 동물이 새로운 사회, 생태적 환경 앞에서 파격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적 대재앙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점차 더 중요해질 특성이다. 하와이 바닷새 군집의 65퍼센트 이상이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들은 낮은 지대의 산호섬에 둥지를 짓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환초와 레이산섬은 멸종 위기의 얼가니새나 슴새와 함께 레이산알바트로스 둥지의 95퍼센트가 밀집된 곳이지만 이번 세기 중반이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7 그리하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새롭게 군집을 형성하는 개척적인 레즈비언들은 말 그대로 종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끈비늘도마뱀붙이Lepidodactylus lugubris 개체군은 암컷으로만 이루어졌고 수컷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도마뱀은 대단히 성공한 종으로서 오직 복제를 통해 수컷의 개입이 전혀 없이 이 섬에서 식민지를 건설했다.

복제를 통한 번식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자손이 유전적으로 어미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근친교배의 궁극적 형태로, 감수분열 중에 가끔 일어나는 복제 실수 말고는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복제된 동물의 가계는 기생충, 질병,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맞서서 대항할 유전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섹스는 감수분열 중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해로운 돌연변이의 축적을 막는다. 유성생식하는 종에서는 복제 과정에 실수가 일어나더라도 상대편 성세포의 건강한 유전자 덕분에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오류가 제거된다. 무성생식하는 종은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없어 유전학계에서 ‘돌연변이 멜트다운mutational meltdown’ 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돌연변이를 축적하며 끝없이 복제만 거듭한다.

2018년에는 단성인 점박이도롱뇽Ambystoma 종의 역사가 500만 년이나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절취생식kleptogenesis’이라는 것이다. 점박이도롱뇽 암컷은 때로 근연종의 정자를 슬쩍하는데, 자극에만 사용할 뿐 그걸로 알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천 년에 한 번씩은 다양성 유지를 위해 과거에 ‘훔쳐서’ 저장해둔 정자의 일부를 게놈에 통합한다.

질형목 생물이 진화적으로 장수한 비결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조사와 맹렬한 숙고의 영역이었다. 그 비법 중 하나는 식사 중에 다른 생명체로부터 유전자를 ‘훔치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식단이 부러울 만한 건 전혀 아니다. 물론 사는 곳을 보면 더 기대할 수도 없다. 질형목 생물은 대부분 ‘유기 폐기물’, 죽은 세균, 조류, 원생동물 등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먹고 산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질형목 생물이 저녁거리에서 DNA를 추출한 다음,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기 게놈을 단장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합치면 질형목은 500종 이상의 종에서 외래 DNA를 갖다 붙인 프랑켄

암컷뿐인 이 개척자들은 성의 보편성에 대한 이성애 중심의 가정에 도전하고,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탐구 영역을 열고 있다.

환경이 균열되고 아주 많은 종이 재앙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성적 파트너를 찾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복제라는 고대 기술에 의존할 수 있는 암컷은 종이 힘겨운 시기를 견디는 데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최근 수학 모델에 따르면 단성생식 위주의 개체군에서도 유성생식하는 개체군과 거의 같은 속도로 좋은 돌연변이가 퍼졌다. 성이 주는 이점은 10~20세대에 한 번씩만 유성번식을 하더라도 유지될 수 있다. 어느 최신 논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전체의 5~10퍼센트만 유성생식하더라도 매번 유성생식하는 것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이점을 얻는다.
그래서 번식 양식을 자기 복제로 전환하여 개체수를 위험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능력을 갖춘 암컷이야말로 한 종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는 데 필요한 존재다.

종이 살 곳이 없어지면 아무리 수를 늘리더라도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단성생식은 특정 종에서만 가능한 안전망이고 복제 능력이 있는 것도 암컷뿐이다.* 이 특별한 암컷들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만약 인류가 이런 식으로 전쟁과 파괴를 이어나간다면 미래는 틀림없이 여성이 될 것이다. 살아남는 건 질형목 생물뿐일 테니까.

따개비는 성적 투자를 분산하는 대가이다. 안착한 환경이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성 체제를 수정하는 능력 덕분에 번식 스펙트럼의 폭이 대단히 넓다. 예를 들어 앞에서 본 왜웅矮雄, 즉 난쟁이 수컷은 암컷 위에 내려앉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난소가 발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그러므로 확실히 수컷으로 분류하기가 뭣하다.

한 젠더는 수컷으로 태어나 평생 수컷으로 살고, 한 젠더는 암컷으로 태어나 평생 암컷으로 산다. 하지만 세 번째는 암컷으로 태어나 살다가 나중에 수컷으로 변한다. 이처럼 성이 전환된 수컷은 처음부터 수컷이었던 놈들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이들은 영역과 암컷을 공격적으로 방어한다. 수컷으로 태어난 작은 개체들은 서로 연합하여 팀워크를 통해 짝짓기에 성공한다.
환경에 따라 선호되는 무지개양놀래기 수컷의 젠더가 다르다. 해초로 덮인 환경에서는 몸집이 큰 성전환 수컷이 암컷을 지키느라 애를 먹는 반면, 성전환하지 않은 작은 수컷은 더 활발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산호초의 맑은 물속에서는 성전환 수컷이 제 영역과 암컷을 더 잘 지킨다. 따라서 진화는 그 둘의 혼합을 선호한다.

성을 바꾸는 물고기 대부분이 자성선숙이다. 암컷으로 태어나 나중에 수컷이 된다는 뜻이다. 소수지만 그 반대인 웅성선숙의 예도 있다. 흰동가리들이 바로 수컷으로 시작하는 소수에 속한다. 이 물고기는 암컷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연구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

2020년에 출간된 선충에 관한 연구는 이진법적 도그마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이 미세한 회충은 인간을 포함해 좀 더 복잡한 생물에서 행동 조절의 청사진을 찾는 신경과학자들이 아주 사랑하는 모델 생물이다. 로체스터대학교 메디컬 센터 연구자들은 이 벌레의 뇌세포에서 유전자 스위치 하나를 분리했는데, 환경의 요구에 따라 성별 특이적인 형질을 왔다 갔다 한다. 예컨대 선충 수컷은 섹스를 찾도록 배선되었고, ‘암컷’(자웅동체이기도 하다)은 먹이를 찾는 데 집중된다. 그러나 수컷이 너무 굶주리면, 행동이 급격하게 암컷을 닮아간다. 이런 가소성은 성 사이의 경계를 뭉개고 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발상에 도전한다.

이제는 유해하며 공공연하게 우리를 속이는 이원적 기대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자연에서 암컷의 경험은 성별 구분이 없는 연속체 안에 존재하며, 다양하고 가소성이 높으며 낡은 분류 방식에 순응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얼굴 전체를 덮는 이론의 가면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바깥 세계의 언어를 읽으면서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서 읽는 영구적인 습관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가면을 벗기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깊이 각인된 개인적 이해의 틀 안에서 세상을 문화적으로 해석하도록 적응되었다. 이런 확실성의 안전한 그물 밖으로 나오려면 먼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자신의 깜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갈 만큼 용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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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은 모두 콜레스테롤에서 만들어진다. 이 스테로이드는 효소의 작용으로 프로게스테론으로 변환된다. 프로게스테론은 흔히 임신과 연관되는 호르몬이며 안드로겐의 전구물질이다. 또 안드로겐은 에스트로겐의 전구물질이다. 결론적으로 이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은 서로 쌍방향으로 변환될 수 있고 남성과 여성에 모두 존재한다.

그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토록 애를 먹인 정소 결정 인자 유전자 코드가 1980년대 런던의 피터 굿펠로Peter Goodfellow 실험실에서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굿펠로 연구팀은 SRY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 중성인 태아의 생식샘을 정소로 발달시켜 테스토스테론 펌프질을 시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첫 단계임을 증명했다. SRY 유전자가 없으면 생식샘은 좀 더 느긋하게 배아의 난소로 자란다.

"많은 유전자들이 ‘정소’ 유전자 아니면 ‘난소’ 유전자로 구분되지 않아요. 보통 ‘둘 다’에 해당합니다. 다만 개수가 얼마나 많고 또 어느 쪽으로 생화학 반응을 이끄는지에 따라 성별이 달라지죠. 이 유전자들 중 일부는 한 단계 이상에서 하나 이상의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소나 난소로 가는 두 경로는 선형이 아닐뿐더러 서로 완전히 분리되지도 않았다. 모든 경로가 서로 얽혀 있다.

혼란스럽게 뒤얽힌 양성兩性 유전자의 관계는 성의 가소성을 설명한다. 뒤엉킨 톱니바퀴 중 어느 것이라도 발현에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변이를 생산할 것이다. 이는 진화를 추진하고 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면서 적응하고 활용하게 하는 재료가 된다.

Y 염색체는 유전물질을 잃어가고 있었다. 염색체 가운데 제일 약체인 이 염색체는 실제로 수축하고 있다.

중간 지대에 살고 있는 개구리들은 모든 면에서 중간이다. 어떤 수컷은 성이 온도에 의해 조절되며 난소를 갖고 시작한다. 또 어떤 것들은 성결정 유전자에 의해 성이 결정된다. 그 결과 어떤 개구리는 일반적인 XY 수컷과 XX 암컷이지만 로드리게스는 XY 암컷과 XX 수컷도 기록한 바 있다. 겉으로만 보면 이 개구리들은 수컷 또는 암컷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식샘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일부는 난소와 정소 조직이 뒤섞여 있어서 성별을 둘 중 하나로 깔끔하게 지정하기가 불가능하다.

"최초의 생물이 복제를 통해 번식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크루스가 내게 말했다. "최초로 번식한 생물은 알을 낳을 수 있어야 했겠죠. 그러니까 암컷입니다."
크루스의 연구 결과는 6억 년 전에서 8억 년 전에 존재했던 유일한 생물은 복제한 알을 낳는 생물이었다고 추정한다. 수컷은 성이 도래할 때까지 진화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크루스는 그 시기가 2억 5,000만 년에서 3억 5,000만 년 후라고 보고 있으며 그제야 생식세포의 크기가 다양해졌다. 이렇게 생식세포가 뚜렷하게 나누어지면서 서로 크기가 다른 생식세포의 결합을 촉진하는 상호보완적 행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서로 상대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성적으로 끌려야 하며 재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안드로겐에 의해 활성화되는 성적 이형이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정소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다고 보여주는 현미경 사진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에스트로겐, 즉 가장 대표적인 ‘여성’ 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사실은 수컷의 정소와 정자 발달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에스트로겐이 최초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일 수밖에 없는 게, 최초의 동물은 알만 낳았고 알은 에스트로겐을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크루스가 설명했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는 사실상 신체의 모든 조직에서 중요합니다. 몸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없는 조직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조직개념은 테스토스테론의 전능함만을 강조해왔지만 에스트로겐 역시 강력한 호르몬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진화를 보는 이런 대안적인 관점에서 ‘암컷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다음과 같다. 여성은 성의 시조始祖이다. 이 원시적 난자 제조기의 유물은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이 사실을 통해 남성이 내면의 여성성과 접촉하는 것을 재해석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분류로 취급하긴 했어도 암컷과 짝지을 권리를 두고 수컷들이 대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윈이 물의를 일으킨 부분은 여성이 성적으로 자율적일 뿐 아니라 남성의 진화를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을 가졌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마나님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준 것으로 대부분의 (남성) 생물학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다윈은 암컷이 짝을 고르는 기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대신 암컷이 특정 수컷에게 끌리는 것은 ‘미적 취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7 비록 동물에게 그런 결정을 내릴 지적 능력이 있는지를 두고 긴 분석을 시작했지만(곤충은 그렇다, 벌레는 그렇지 않다 등), 다윈은 성선택이 작동하려면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미적 감각이 요구된다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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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빅토리아 시대의 기득권층에게 다윈의 새 이론을 매질할 채찍을 주었다.

까다로운 정도는 암컷의 나이, 생식력, 환경, 기대 수명, 기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때로 암컷의 선택은 한 마리 이상과의 섹스에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산쑥들꿩 암컷은 수줍어 보였지만 알고 보니 놀라울 만큼 성적으로 개방적이었다.

이제는 암새의 90퍼센트가 일상적으로 다수의 수컷과 교미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 결과 한 둥지에 있는 알의 아비가 모두 다를 수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은 수컷에게 빼앗긴 성적 운명의 통제권과 알의 친자 결정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DNA 검사 기술로 도마뱀에서 뱀, 바닷가재까지 다른 암컷들의 정절이 속속 철회되었다. 일처다부의 경향은 모든 척추동물에서 발견되었고 무척추동물에서도 예외가 아닌 표준으로 선언되었다. 한편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성적 일부일처는 극히 드물어 지금까지 알려진 종의 7퍼센트 미만에서만 확인되었다.

놀랄지도 모르지만 모든 포유류의 암컷은 음핵이 있다. 암양처럼 음핵이 잘 가려진 동물도 있지만, 1장에서 다룬 점박이하이에나 같은 동물에서는 음경처럼 앞으로 부풀어 오른 20센티미터짜리 거창한 기관이다. 두 극단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빙산의 일각이다.

오늘날 수컷의 영아 살해는 영장류 사촌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51종의 영장류에서 의심되거나 실제로 목격되었다. 대부분 외부에서 침입한 수컷이 번식 시스템에 진입할 때만 살해를 시도하며, 특히 젖을 떼지 않은 영아들이 타깃이다. 같은 패턴이 수사자에서도 보이는데 알파 수컷이 새로 무리를 장악하면서 새끼 사자를 죽인다. 요약하면 앞에서 내가 실수로 유혹했던 암사자는 생물학적으로 나와의 섹스를 강요받은 셈인데, 그건 내 작은 으르렁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내가 자신의 아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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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의 암컷이 얼마나 성적으로 개방적인지 알고 싶을 때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신체적 단서가 있다. 몸무게에 비례한 수컷 생식샘의 무게를 보면, 일반적으로 암컷의 성적 습성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강력한 것이다. 특히 서서히 퍼지는 문화적 편견과 결합했을 때는 그 힘이 가공할 만하다. 패러다임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가장 부지런한 과학자도 현혹하여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제한하고 상자 바깥에서 보는 신선한 관점에 혼돈을 준다. 베

세라 플래퍼 허디는 "실증적 태도를 가진 생물학자들은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들으면 일단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물론 자신들의 가정이 얼마나 남성주의적이고, 자신들의 다윈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 근간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인지는 간과하고 있지요."

저녁 식사와 데이트를 한 번에 해결하는 암거미의 성향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 동물학자들에게 여러모로 모욕적이었다. 악랄하고 난잡하며 지배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원래의 소극적이고 수줍고 한 남자만 아는 틀에서 벗어난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암거미는 또한 진화의 난제이기도 했다. 생물이 사는 이유가 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라면 섹스도 하기 전에 파트너를 집어삼키는 행위는 진화적으로 적절치 못한 적응 아닌가. 그러나 성적 동족 포식은 전갈에서 나새류, 문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척추동물과 함께 모든 종류의 거미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적어도 거미에서는 확실히 암놈이 번식을 통제합니다. 수놈이 아니라요." 클라크의 설명이다. "암놈은 더 오래 삽니다. 정자를 저장할 수도 있지요. 최대 2년까지 보관하는 종도 있어요. 그래서 한두 마리쯤 먹어버리더라도 찾아올 놈들은 늘 있으니 아쉬울 게 없지요. 기다리면 되니까요."

성적 동족 포식은 한쪽, 심지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러 분류군에서 수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했으며 다양한 선택의 힘에 의해 유지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성적 갈등, 성선택, 자연선택이 한데 모여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지저분한 밤을 보낸 것 같다. 그 결과물은 겉으로 혼란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뒤엉킨 거미줄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다 보면 서서히 이해가 갈 것이다.

난자는 오랫동안 암컷의 수동성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징이었다. 3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작고 이동성 있는 정자와 비교했을 때 커다란 크기와 정주성 성격은 성적 불평등의 근원이 되었다.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수정은 동화 속 장면처럼 전개된다. 난자 공주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으면, 그녀의 영웅인 정자 왕자가 역경을 헤치고 달려와 잠에서 깨운다는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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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로 난자가 경주에서 누가 ‘이기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정자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암수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 두 성을 가르는 쐐기를 박았지만, 이런 구분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이 더 컸다. 동물의 형질은 신체적이든 행동적이든 다양하고 가소성이 있다. 자연선택이든 성선택이든 선택의 힘이 부리는 변덕에 맞춰 변형될 수 있으며 성적 형질을 유동적이고 유연하게 만든다. 한 암컷의 특징을 성이라는 수정구슬을 보고 예측하는 대신, 환경, 시간, 기회가 모두 그 형태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진실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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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번은 서양의 역사를 면밀히 연구한 끝에, 유럽이 종교적 자유의 정립을 위한 건전한 모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징기스 칸의종교는 우리의 외경심과 찬송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로마 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권에서 그는 과감하게 주장했다. 기번은 몽골의 진중에서는 다른 종교들이 ‘자유와 조화‘ 속에서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크 야사 Ikh Yasa (위대한 법률)를 준수하는 한, 칭기스칸은 ‘가장 적대적인 부족의 예언자와 성직자의 권리를 존중했다는것이다. - P15

몽골이 벌인 정복전쟁의 참상은 여러 책과 영화에서 잘 다루어졌으나,
법률 제정가인 칭기스칸의 역할은 대체로 보아 별로 탐구되지 않은 상태다. 생애 만년에 그는 온 세상의 종교 지도자들을 자신의 야영지로 불러들였다. 이는 서로 반목하는 종교들 사이에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하기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는데, 사실 여러 종교 사이의 호전적인 적대감이 인류를 크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원래 자신의 영적 정수를 찾기 위해 종교에 귀를 기울였으나 이것이 결국에는 사회 내에서 종교가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탐구과정으로 확대되었다. - P23

그는 오늘날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것과똑같은 문제를 많이 겪은 통치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적 다원주의는 자주 극단화와 갈등을 빚고 있다. 신앙의 자유와 광신자들의 행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 이런 광신자들이 민간 사회의통제에서 벗어나 사회의 주인이 된다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떻게 해야 한 종교의 추종자들이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 자신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주장하며 경쟁하는 종교들을 사회 내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할수 있을까? 종교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에 답을 찾기 위한 칭기스 칸의 탐구는 800년 전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급한 사안이다. - P24

칭기스칸은 처음에는 정주 문명의 종교 기관들을 매우 회의적인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대한 사원, 엄청난 부, 화려한 의식 행렬 등을 자랑하는 대규모 종교들은 가짜에 불과하다고 의심했다. 그렇지만 이 이상한 기관들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은 듣고 싶어 했다. 많은 저술을 남긴 13세기의 학자 겸 연대기 작가 바르 헤브라이우스Bar Hebraeus는 이렇게 썼다. 칭기스칸은 ‘고매한 현자들‘을 소환하여 여러 언어로 된 그들의 성스러운 경전을 읽어달라고 했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종교를 저마다 설명하고 토론하게 했다. 수도자, 신부, 점성술사, 마법사, 예언자, 연금술사, 점쟁이, 현자, 점술가, 허풍선이 들은 몇 달에 걸쳐넓은 강을 건너고 높은 산을 지나 먼 곳의 국경을 통과하여 마침내 그의유목 캠프에 도착했다. - P40

산간의 숲 지대인 캉가이는 풍성한 생명의 어머니였지만, 수목의 생장한계선 위의 높은 산간 지대는 커다란 암석과 험준한 절벽이 영원한 눈과 얼음을 헤치고 비죽 튀어나와 있는, 어떤 생명도 살지 못하는 땅이었다. 이런 남성적 요소가 대지에 딱딱한 뼈를 제공했다. 여성적 숲과 남성적 암벽은 함께 모든 존재의 기원을 형성했다. 그것들은 남성, 여성, 불멸이라는 3대 영혼으로 구성된 우주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모든 피조물은두 개의 필멸하는 영혼과 하나의 불멸하는 영혼을 갖게 되었다. 몽골의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뼈에 남성적영혼을 살과 피에 여성적 영혼을, 그리고 마음과 심장에 불멸의 영혼을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 P61

부르칸 칼둔의 협곡과 암석 노두는 그에게 피신처를 제공했고 동시에 그가 공포, 커다란 희망, 소망, 욕망을 은밀하게 속삭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린 소년과 산 사이의 친밀감이 부족의 남자 친척들에게서 얻지 못한 유대감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친척들은 그를 거부하고 스텝에서 굶어 죽도록 내다버린 매몰찬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산은 믿을 만한 친구이자 안내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신임하거나 믿는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대신 그가 사랑하는 부르칸 칼둔과 함께할 때 가장 편안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장 중요한 관계가 그 산의 등성이, 숲, 그림자에서 생겨났다. - P66

서쪽은 케레이드족이 통제했고, 동쪽은 타타르족이 버티고 있었다. 두 부족은 과거에 여러 번 서로 합쳤으나, 케레이드족이 번번이 그 결합을 깨트리고 나왔고 이제 두 부족은 철천의 원수 사이였다.
타타르족은 아버지 예수게이를 죽인 데다 자신의 부족에 치명적인 적이었으므로, 테무진은 과거에 케레이드족의 통치자인 토르길 옹 칸에게충성을 바친 집안의 내력을 상기시키면서 그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손쉬운 선택이었으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타타르족과 케레이드족은 서로 비슷한 생활방식을 영위했지만 한 가지뚜렷한 차이점이 있었다. 타타르족과 기타 동쪽의 부족들은 중국을 적절한 문명의 모델로 숭배한 반면, 케레이드족은 서쪽을 지향하면서 셈어에서 기원한 알파벳을 사용하여 글을 썼고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받아들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케레이드족에게 붙었을 때, 그는 이런 차이점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흘러가면서 그 선택은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가 창건한 국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 P78

스텝 부족들은 암석이나 산등성이에 비문을 새김으로써 하늘과 소통했다. 비문은 하늘과 햇빛을 향해 노출되어 있어야지, 마치 수치스러운 비밀이나 되는 양 건물 내부나 책갈피 사이에 숨겨져 있어서는안 되었다.
국가가 후원한 공식 기념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경에 산스크리트어와 소그디아어로 기록된 비문이다. 전자는 인도의 성스러운 언어였고, 후자는 페르시아와 연관된 교역의 언어로 셈 알파벳을 사용하는문자였다. 이 두 언어로 기록된 석비는 기단을 이루는 거북-용의 등 위에 올려져 있는데, 이 동물은 국가의 힘과 권위를 상징했다. 원래의 장소에서 옮겨져 지금은 체체르레그의 산간 마을에 모셔진 이 석비는 찬란한 - P92

불교 사원의 안마당에 평온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사원은 20세기에 몽골의 많은 종교 건축물을 파괴한 사회주의의 광풍을 운좋게도 모면했다. 이 비석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1400년 동안이나 살아남은 메시지를 보존하여 그 자체가 역사가 되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보존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비석에 중국, 인도, 페르시아, 투르크, 셈의 여러요소가 혼재한다는 사실은 테무진 탄생 이전 500년 동안 스텝 지역에번창했던 문화가 아주 복잡하고 다원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최초의 비문들을 가리켜 ‘법률의 돌들(놈 상nom sang)‘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놈nom은 법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했고상 sang은 돌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상sang에서 나온 것이다. 몽골족은이 어구를 ‘도서관‘의 의미로 채택했는데, 현대 몽골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비문은 그 비석의 건립을 후원한 칸의 신성함을 확증한후, 그의 통치에 역사의 축복과 영계의 승인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 P93

투르크의 텡그리는 테무진이 텡게르라고 부르며 숭배했던 것과 똑같은하늘이었다. 우주의 절대자이며 초연하고 신성한 존재인 텡게르는 인간의 일상사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텡게르는 지상의 어떤 사람에게 사람들의 세속적인 일들을 대신 관리하라고 위임하는데, 그가 곧 칸이다.
사람들은 통치자의 행동을 통해 신성한 존재의 생각과 말씀을 알 수가있다. 텡게르는 통치자로 지명된 칸의 권력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을 때에만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톤유쿠크의 기념비 비문은 예전에 투르크족이왜 그토록 불운을 겪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하늘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칸을 주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 칸을 버렸다." 비문은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사람이 아무도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 P100

테무진은 스스로 판단하여 어떤 조언은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어떤 조언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석의 정신적 가르침, 예를 들어 하늘과 땅의 중요성, 부족 간 단결의 필요성, 도시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에는 동의했지만, 투르크족의 고립주의와 반외세 정서는 거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스텝 부족들이 먼 땅에서 수입하는 제품과 물품 없이는 훌륭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군사력과 전투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했지만, 제국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교역을 장려하고 촉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103

자주 바뀌는 테무진의 소규모 추종자 부대는 자발적으로 그에게 합류한사람들과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적당히 뒤섞인 부대였다. 그들은 우량카 - P108

이, 타타르, 타이치우드, 잘라이르, 바룰라스, 올쿠누드, 콩기라드 등 여러 씨족과 부족 출신의 목축꾼과 사냥꾼으로 이루어진 혼성 부대였다.
그들은 스텝의 다인종적 단면을 보여주는 부대인 만큼 다양한 정신적·종교적 관습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들은 주변 문명들의 여러 주요 종교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그런 종교들의 믿음과 실천에다가 그들 자신이 판단하여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애니미즘의 믿음을 가미했다. 이 무렵테무진의 추종자들은 현대적 의미의 세계 종교-불교, 이슬람교, 도교, 기독교의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스텝 사회는 그들 주변에까지 전파된 이런 종교들의 여러 요소를 흡수했다. - P109

소그디아인은 다른 많은 신앙과 접촉함으로써 다양한 종교들과 교류하고 또 그들 모두와 상업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그디아인은 ‘빛의 종교‘를 신봉했는데, 역사적으로는 그 종교의 예언자인 마니의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불렀다. 오늘날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권에서
‘마니교적인 Manichaean‘이라는 단어는 경멸어로 사용되며,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편협한 세계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용어는 세상을 오로지 선과 악의 단순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 P132

언어로 널리 사용된다. 또 때때로 사람들이 잘못된 혼동을 일으켜 ‘마키아벨리적 Machiavellian‘이라는 단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최근에는 모든 유형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나, 비양심적이고 음험하고 사악한 정치적·종교적 행동이나 기업 활동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원래 마니교는 아주 생동감 넘치면서도 독특한 종교였다. - P133

마니교 신자들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사상을 빌려왔다. 즉, 땅은 ‘물의 바다‘이고, 하늘은 ‘빛의 바다‘인데 그곳에는 ‘지식의 신‘이 산다. 위구르족은 통상적으로 자신들의 종교를 ‘세계 바다 world Ocean‘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리스어로는 탈라사 Thalassa, 산스크리트어로는 사무드라Samudra, 투르크어로는 텡기스, 몽골어로는 달라이라고 칭한다. 그들의 종교가 모든 예전 종교들의 강을 하나의 커다란 바다로 포섭했으므로그렇게 부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위구르족은 마니교의 신앙을 모든 지식의 강들이 유입되는 커다란 ‘세계바다‘에 비유했다. ‘세계 바다‘는 순수, 지식, 힘, 평화, 산호와 진주 같은바다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보물을 상징했고, 바다 자체의 초자연적 힘을구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P138

한 기사에 따르면 위구르족은 ‘강인하고 정복될 수 없는‘ 부족이었는데, 왕자들과 평민들 사이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41

그러나 마니는 우수한 엘리트의 존재를 믿었고 붓다, 예수, 그 외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가르친 평등사상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선택된소수 엘리트가 일반 대중보다 더 우수하므로 이들이 대중을 통치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위구르 국가가 강성해지고 그 지도자들이 마니교를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자, 엘리트 가문들은 그들의 욕구를 정당화해주는이 철학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경전의 실제 의미들(일부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든 내용이었다)에 혼동이 발생하면서, 엘리트 그룹은 마니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경전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 P142

위구르 문자는 고대 시리아어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과도 관련이 있는 소그디아 알파벳에서 유래했다. 이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은 글을 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갔다. 그런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는 듯이, 위구르족과 몽골족은 알파벳을 수직으로 세워서 중국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갔다. 그들의 문자 체계는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뿌리에 바탕을 두고있었는데, 이런 방식 때문에 스텝 생활에 국제적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송나라 궁정에서 파견한 중국의 사절 조공은 이 문자 체계가 중국의 피리 악보 표기법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26이 혼성 문자는 몽골이 세상을 바라다보는 새로운 창이 되었고 또 역사에 연결시키는 귀중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 P144

몽골 국가의 공식 수립 이태 전인 1204년, 테무진은 나이만 궁정 출신인 타타 통가 Tata Tonga라는 서기를 채용하여 그에게 위구르 알파벳을 몽골어에 맞추어보라고 지시했다. 타타 통가는 아직 소규모인 몽골 궁정에 다른 필경사들을 데려와 테무진의 아들들과 입양한 타타르 출신 아들 시기-쿠투쿠 등을 비롯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에게 문자 교육을 실시했다. 겉보기에 단출한 조치들은 앞으로 이어질 수십 년 동안 엄청난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테무진 주위의 소규모 측근 그룹이 제국의궁정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측근들은 소규모 서기 집단에서 언어학교들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과 서로 갈등하는 지적전통에서 왔으며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훈련된 지식인들을 주위에 다수거느리게 된다. 이런 허약한 시작에서 차츰 스텝 학자들의 집단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지식인 계급이 된다. - P145

마침내 마니교도들은 대부분의 기독교도, 무슬림, 중국 학자들에 의해 몽골 역사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세기 뒤에 몽골족이 불교로 개종하자, 불교 수도자들은 이 증오 받는 종교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학자들이 기록된 역사에 독점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몽골족은 그들의 신화와 민화 속에 역사의 검열된 부분을 보존했다.
그리하여 기이하고 흥미로운 한 몽골 이야기는 테무진과 예언자 마니를 연결시켜 마니 칸이라는 초자연적 인물을 만들어내고서, 그 인물이
‘황금과 순은으로 된 몸‘을 가지고 있다고 몽골 기도에서 묘사했다." 예언자 마니는 채식주의를 가르치고 동물의 학살을 엄금했는데, 마니 칸은야생 동물의 보호자, ‘모든 짐승의 영주‘가 되었고 또 ‘그의 권능 안에서수만마리의 동물을 부리고 있었다. - P152

기독교는 케레이드족의 전원적 생활방식에 잘 맞는 종교였다. 스텝 유목민들은 목동과 목축에 관한 성경 속 이야기들을 잘 이해했고, 척박한환경에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법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며, 더 나은 삶을 얻고자 끊임없이 구도 행위에 나섰다. 케레이드족은 이동 예배당과 랍반rabban이라고 불리는 사제와 함께 이동했다.
랍반은 히브리어 랍비 rabbi에서 나온 말인데, 사제들은 미래를 예언하고,
별점을 치고, 병자들을 치료하고, 잃어버린 동물을 찾아주고, 날씨를 통제하고, 시리아어로 쓰인 기독교 경전을 낭송했다. 풍성하게 늘어진 겉옷을 입은 그들은 향을 피우고 등을 켜고서 정교한 의식을 수행하며 칸과그의 통치를 칭송했다. - P158

칭기스칸은 타타르족, 케레이드족, 나이만족의 붕괴가 그들이 전장에서 보여준 전략적 열등함 탓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내부의 권력투쟁과 잦은 반란, 형제와 형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내홍이 결국 부족의힘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예전의 부족, 씨족, 귀족이 존재하는 한 자신의 나라가 결코 안전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타타르족을물리친 이후에 그는 귀족 남자들은 추방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원칙으로삼았다. 그들은 결코 그에게 충성을 바치거나 믿음직한 존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래에 이런 배신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새로운 정치 조직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82

테브 텡게리 사건은 유혈 낭자한 선례가 되었다. 몽골의 칸이 국가나칸보다 더 높은 권위를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를 살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나 결코 마지막은 아니었다. 종교보다 칸을 우선시하는 이 정책은 그 후 1258년에 바그다드에서 이슬람 칼리프와 그 아들들을 처형하는 데 동원되었다. 또 추종자들이 신성하다고 인정한 이스마일리 아사신의 이맘을 살해할 때에도 이 정책이 활용되었다. 나중에 등장한 몽골 통치자들은 교황을 초대하여 그의 행위를 심사하려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만약 교황이 몽골족의 초대를 받아들였더라면 교황도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라이벌 정치 지도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칸에게 도전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 P191

몽골족의 전통 종교 의식은 게르의 중심에 위치한 불에 집중되었다.
가족들, 주로 어머니가 과거와 미래의 가족 수호신들이 그 불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불에다 기름 덩어리를 봉헌했다. 예전 칸들의 왕실 캠프는 왕실의 상징으로서 불을 숭배했지만, 칭기스칸은 이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불은 부하들이 숭배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계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군부대 내에서 그들이 거행하는 불의 예배는한 가계의 숭배에서 모든 가계의 숭배로 확대되었다. 나아가 국가를 예배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유대와 단결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칭기스 칸의 영도 아래, 게르의 중앙에 놓인 화로는 이러한 국가 의식의 중심이 되었고, 군대와 국가의 법률과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 P212

몽골족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깃발에 마유를 뿌리며 세정식洗淨式을올렸다. 칭기스 칸의 부하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런 유사한 의식에서 자무카가 했다는 말은 기록되어 전한다.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내 깃발에 봉헌을 바치고, 모든 전사가 쳐다볼 수 있도록그것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듭니다. 나는 쇠가죽 북을 쳐서 일천 명의 병사가 돌격하는 듯한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등에 검은 줄이 있는 내 군마에 올랐습니다. 나는 가죽으로 된 내 가슴방패판의 줄을 꼭 조여 맸습니다. 나는 칼집에서 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나는 적의 이름을 표시한화살을 활시위에 얹어놓았습니다. 우리 모두 싸우다가 죽읍시다." - P215

10년 전 처음으로 나이만족을 정복했을 때, 칭기스칸은 패배당한 적진에서 서기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훨씬 더 많은 서기가 필요했다. 그가 통제하게 된 수백 군데 도시와 수천 군데 마을을 관리하기위해서는 대규모 행정 요원 집단이 필요했다. 무섭게 확장되는 제국의 행정 수요를 맞추기 위해 그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대개 교육을 많이 받았고, 문자에 익숙했으며, 성문법을 해석하고 시행하는 일에 능숙했다. 탐욕과 착복을 일삼는 전형적인 귀족들과 달리, 그들은 원칙과 이상에 헌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대중과소통하고 지도하는 방법을 알았다. 칭기스칸은 도움이나 안내를 받을수 있을까 싶어서 중국의 기성 종교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종교계 인사들을 널리 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궁정 내에서 문화와교육을 널리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선량함의 길을 구현하여 좋은관습과 인자한 통치가 전대의 수준을 능가하게 하려는 데 있다." - P236

칭기스칸의 궁정은 마법의 돌을 가진 몽골 샤먼, 도교 연금술사, 독경하는 불교 승려와 점성술가, 기도하는 물라, 노래하는 기독교인, 유교의궁정 의례 담당관, 티베트의 점술가, 다양한 종류의 독립적인 심령술사와강신술사, 영혼을 불러온다고 소문이 났거나 마법의 술수를 부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독심술사 등 다양한 영적 위력을 지닌 사람들을 불러들 - P243

였다. 칭기스칸의 캠프는 유목민의 대학과 같은 특성을 지녔으며, 다양한 언어, 문화, 종교를 지닌 학자들로 이루어진 정신적 동물원의 종합판과 같았다. 그 캠프는 밝은 노란색, 하얀색, 반짝이는 오렌지색, 핏빛 적색, 아주 진한 검은색으로 된 제의祭가 넘쳐났다. 하루가 염주, 북, 공, 호루라기, 나무 종 같은 종교적인 소리로 시작하여, 신들린 채 모닥불 옆에서 깃털 장식을 달고 춤을 추는 샤먼, 불태운 양의 어깨뼈에 생긴 금을읽는 주술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점성술사, 지골을 던져서 운수를알아보는 병사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끝났다. - P244

무슬림, 불교도, 기독교도 들이 뒤섞여 있는 카라키타이의 정복은 칭기스 칸이 종교적 파벌주의의 파괴적 힘을 최초로 만난 사건이기도 했다. 그의 반응은 단순하면서도 공정했다. 그는 카라키타이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요청해온 무슬림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신자들에게도 ‘기도의요청‘을 다시 한 번 허락했다. 칭기스칸은 새로 해방된 땅의 각 도시와마을에 전령들을 보내, 자신의 법률을 널리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그 내용을 들어서 알도록 했다. 그는 "각자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그 신조를따라야 한다"라고 선포했다. 이것은 그때 이후 그가 추진한 정복에서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신하들을 위해 이 원칙을 지켰다. - P251

카라키타이의 무슬림들과 달리, 화리즘의 주민들은 몽골족을 해방의영웅으로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자 몽골족은 이 새로운 적들에게 경멸감을 보였다. 한 무슬림은 몽골족의 인식을 이렇게 묘사했다. "주택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락하고 유약한 족속이다. 땅을 경작하고 가축 떼처럼 일하는 노예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상급자가 사치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몽골족이 볼 때, 사마르칸트, 부하라, 오트라르의 주민들은 염소 떼나 양 떼와 마찬가지로 금방 겁을먹고 쉽게 남의 지시를 따르고, 언제나 처분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 P272

칭기스칸이 무슬림 지도자들을 소환한 것은 그들의 학생 혹은 제자가 되려고 함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불렀다. 지상에서하늘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정복한 사람들의 종교들을 검토하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내 그 오류를 시정해주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상인들이 벌레 먹은 사과나 금 간 보석을 자세히 살피듯이, 그는 무슬림 지도자들을 면밀히 심사했다. 그의 임무는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하고, 사악한 자를 징벌하고, 미덕 높은 자를 보상하고, 모든 사람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온 사람들 중에 몽골 침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용히 하여라!" 한 유지급 이맘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의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칭기스 칸은 "지금 - P280

불고 있는, 신의 전능의 바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권한이 없다." 그 후 여러 달 동안 칭기스칸은 자칭 신의 사람들과 지혜의 교사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실천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의 업적을 검토하고, 그들의 도덕을 시험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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