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책임에서 풀려나게 되면 동물의 세계 나머지에서 그러하듯 아빠들이 자식에게 훨씬 더 헌신적으로 된다. 특히 조류에서는 부모가 함께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조류 커플의 90퍼센트가 그 일을 나눠 가진다. 진화의 단계를 거슬러가다 보면 아비의 돌봄이 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관례 수준이다. 물고기의 경우 전체 종의 3분의 2가 양육의 모든 책임을 아비 혼자서 지는 싱글대디이고, 어미는 알을 기여하는 것 이상은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심지어 해마 수컷처럼 일부는 출산까지 한다.

뒬락은 두 종류의 뉴런을 발견했다. 하나는 새끼 돌보기 행동을 하게 하는 갈라닌 뉴런이고, 다른 하나는 영아 살해 충동을 일으키는 우로코르틴urocortin 뉴런이다. 두 뉴런은 서로에게 직접 작용하여 하나를 자극하면 다른 하나가 억제된다. 따라서 두 행동은 상호배타적이다.

"지금 저와 당신이 살아 있는 것도 우리 조상님들이 자신의 갈라닌 세포로 제 자식을 돌보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엄마로 하여금 과연 지금이 아기를 가지기에 좋은 때인지 판단하고 실행하게 하는 우로코르틴 덕분에도 우리가 존재하지요. 그러지 않았으면 어미 자신이 죽었을 테니까요." 뒬락의 말이다.

뒬락은 이 신경 회로가 비단 생쥐의 암수에서만 똑같은 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이 공유하는 특성이라고 추정한다. 시상하부는 뇌 안에서도 아주 오래된 영역으로 잠자고 밥 먹고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여러 본능적 행동의 중심이다. 이 각각의 행동을 조절하는 뉴런이 동물에서 발견될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뉴런이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만약 부모되기의 명령 중추가 개구리와 생쥐에 존재한다면 유사한 회로가 인간 남자와 여자의 뇌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뒬락은 자신의 추정대로 우로코르틴 뉴런과 산후우울증이 연관되어 있다면 자신의 연구가 해당 장애를 치료하는 차단제를 찾아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실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은 무엇이 자신을 부추겼는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본능을 느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설명하지 못했죠.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본능적으로 새끼를 없앤 쥐의 뇌에서 일어난 일과 아주 유사할지도 모릅니다."

모성애의 목표는 무작정 새끼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번식할 때까지 오래 살아남는 자손의 수를 최대로 늘리는 곳에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이 일에 진정한 이타적 헌신은 없다. 오히려 철저히 이기적이다. ‘좋은 엄마’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 때와 포기할 때를 알고 있으며 그건 심지어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그러하다

모성의 시작은 호르몬의 교향곡으로 촉진되는데 그중에서도 모성 경험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옥시토신이다.

암쥐 처녀들은 일반적으로 새끼 쥐에게 극도로 적대적이라 무시하거나 마주치면 잡아먹기까지 했으나 반복적으로 새끼에 노출되고, 특히 주변에 보고 배울 엄마가 있으면 이 미숙한 베이비시터는 살해를 멈추고 생모처럼 어린 쥐를 자상하게 돌보기 시작한다.

남의 새끼를 돌보고 부양하는 것은 얼핏 진화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협동 번식은 다양한 분류군에서 여러 차례 진화했다. 1만 종의 조류 중 약 9퍼센트와 전체의 3퍼센트에 달하는 포유류 어미들이 알로마더allomother, 즉 ‘다른 엄마’들로부터 절실한 도움을 받는다.

인간의 아기는 성숙하기까지의 속도와 비용 면에서 최악이다. 남아메리카 수렵채집 부족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 결과 한 사람을 출산부터 영양 면에서 독립할 때까지 키우는 데 약 1,000만~1,300만 칼로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는 크고 육즙이 풍부한 덩이줄기를 아무리 잘 찾는다고 해도 엄마 혼자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편협하지만 대단히 영향력 있는 다윈의 태도로 인해 이후 150년 동안 동성 경쟁의 연구는 짝을 두고 벌이는 수컷의 경쟁에만 초점을 맞췄고, 암컷의 전투적 잠재력은 대개 무시되었다.
그 결과로 암컷의 데이터가 들어가야 할 텅 빈 자리는 허위 정보로 메워졌다. 암컷은 경쟁심이 없다는 가정하에 엉터리 이론이 세워진 것이다. 실상은 그저 우리가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뿐인데 말이다.

사회적 선택social selection이라는 개념은 1979년에 이론생물학자 메리 제인 웨스트 에버하드Mary Jane West-Eberhard가 주창한 것이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번식 철 바깥에서 성과 무관하게 영역이나 자원을 두고 벌어진 경쟁에 의해 정교하게 진화한 형질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다윈을 폄하는 대신 그의 원칙을 확장하여 성선택을 사회적 선택이라는 더 넓은 배경의 일부분으로 제안했다. 웨스트 에버하드는 종의 야단스러운 형질이나 성적 이형을 성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아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적 기능을 보이는 방대한 생물의 예시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암컷들 간의 전략적 경쟁은 영장류 조직의 핵심이다. 영장류 암컷의 사회는 대부분 상속 가능한 안정적인 모계를 특징으로 한다. 통제권을 쟁취하려는 무자비한 싸움을 벌이며 심리적 위협, 전술적 동맹, 잔인한 처벌을 통해 서로 경쟁한다.

미어캣 사회는 임신하는 즉시 다른 암컷의 새끼를 죽이고 잡아먹는 근친관계 암컷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번식 경쟁에 기반을 둔다. 새끼를 잡아먹는 일은 임신한 아랫사람에 대한 일말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 알파 암컷의 전지전능함에 의해 통제된다.
이 여인의 목표는 자신이 통치 기간에 그 어떤 암컷도 번식하는 꼴을 보지 않는 것이다.

미어캣 문화는 항상 긴장된 상태에 있고 또 살인적이다. 1,000종 이상의 포유류를 대상으로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치명적인 폭력을 조사한 결과, 미어캣이 지구상에서 가장 살인적인 포유류로 밝혀졌다. 심지어 인간을 제치고 잔인하기로 으뜸가는 짐승이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미어캣 다섯 마리 중에 한 마리꼴로 다른 미어캣에게 살해당한다.
가해자는 대부분 암컷, 그것도 새끼의 할미일 가능성이 크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사회에서는 영역 방어를 대부분 암놈이 담당한다. 여우원숭이 암컷은 냄새 분비샘이 잘 발달했고 수컷보다 화학 신호를 많이 생산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기대치와 반대되는 것이다. 여우원숭이 암놈들은 수놈보다도 동종의 냄새, 특히 번식기 암컷의 냄새에 더 관심을 보였다. 건강한 암컷일수록 지방산 에스터를 많이 생산하는데 이는 강하고 섹시하다는 증거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는 원원류, 즉 인류의 가장 근간이 되는 영장류 사촌이다. 원원류는 영장류 진화의 굵직한 경로에서 일찌감치 갈라져 나왔고 이후에 나머지가 신세계원숭이(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진원류)와 구세계원숭이(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사는 진원류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형 유인원이 여기에서 진화했다)로 갈라졌다. 원원류 중에서도 현생 여우원숭이의 조상은 약 5,000~6,000만 년 전에 마다가스카르섬에 고립되어 진화했다.

루이스에 따르면 암컷의 지배성 연구는 ‘지적으로 고립’되었고 본질적으로 테스트할 수 없는 가설이라 하여 여우원숭이는 종종 ‘마다가스카르의 유별난 괴짜’로 무시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우원숭이의 10퍼센트는 암컷 지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비과학적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육식동물에서부터 설치류와 바위너구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암컷이 지배한다고 기재된 포유류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암컷 지배가 마다가스카르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암시다.

침팬지 무리에서 암컷의 계급은 나이와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여러 암컷을 동물원에 모아놓으면 대개 별다른 소란 없이 재빨리 서열이 결정된다. 한 암컷이 다른 암컷에게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그걸로 끝이다. 암컷의 서열은 안정적이고 웬만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침팬지 무리에서 사회적 결과물은 가족 관계와 동맹의 네트워크에서 누가 중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마는 월등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중재 기술을 갖춘 특별한 존재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모든 성체 수컷은 공식적으로 마마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하나같이 마마를 필요로 했고 마마를 존중했다.

여성이 스스로 삶을 제어하지 못하고 남성이 폭력을 가할 위험성이 큰 사회는 암컷이 어린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원과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랭엄이 말한 결속하지 않는 암컷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야생의 사촌들에서 공격적인 수컷 지배의 본보기를 찾으려는 인류학자에게 요긴하다. 수컷이 남고 암컷이 떠나는 시집살이가 아마도 선행인류의 패턴이며 그로 미루어 인류의 암컷 조상들도 이와 비슷하게 고립되고 취약하고 억압받았을 것이라는 랭엄의 주장은 더욱 좌절을 준다.

프란스 드 발은 보노보를 ‘페미니스트 운동에 내려진 선물’이라고 불렀다. 침팬지는 부계 중심에 호전적이지만 보노보는 모계 중심에 평화롭다. 인간은 양쪽에 똑같이 피를 나누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대형 유인원의 비정통적 삶이야말로 영장류에서 수컷 지배가 정해진 것이라 주장하는 개념에 최후의 치명타를 날린다.

뒤를 봐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디아스포라로 성인의 삶을 사는 대신 보노보 암컷은 낯선 집단에 합류해서도 피를 나누지 않은 암컷들과 동맹을 형성한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구성된 자매 관계의 힘으로 보노보 암컷은 자신들보다 큰 수컷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의 동맹은 싸움이나 신체적 겁박에 의해 형성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연합을 유지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과학자들이 ‘G-G 문지르기’라고 묘사한 행위로 서로 생식기를 비비는 행동이다.

보노보는 이성과 섹스를 할 때 종종 정상 체위를 시도한다. 이는 다른 영장류에서는 전혀 관찰된 바가 없는 사실이다. 침팬지는 암수가 얼굴을 마주 보는 섹스를 하지 않지만, 야생에서 보노보는 세 번 중 한 번꼴로 정상 체위를 시도한다.

"보노보 세계에는 100퍼센트 이성애도, 100퍼센트 동성애도 없습니다. 모두 양성애자예요." 패리시의 말이다.

보노보는 인류학을 개방하여 가부장제를 인류 조상의 보편적 상태로 전제하지 않는 신선한 모델을 탐색하게 했다. 사실 영장류 사촌 전반에서 가부장제가 희귀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그리고 왜 가부장제가 많은 인간 사회에서 진화하고 장악했는지를 묻게 한다.

보노보 이야기는 우리에게 남성이 공격적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행위와 능력은 환경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여성에게 힘을 부여한 핵심적인 요소는 압제적인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자매결연의 힘이다. 여기에서 자매란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까지 모두 아우른다.

진정한 완경完經은 생식기관의 노화와 신체의 노화가 분리될 때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생식기관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동물원에서 폐경을 경험한 고릴라는 공짜 식사와 건강 관리로 수명이 인위적으로 연장되었다. 야생에서 고릴라 암컷은 35~40년을 살지만 사육 상태에서는 60년까지도 살 수 있다. 몸과 뇌가 난소의 나이를 넘기는 것이다. 5,000종의 포유류 중에서 야생에서 자연적으로 완경에 이른다고 알려진 종은 이빨고래류 4종과 인간뿐이다.

나이 들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운 사회적 비용이 진화적 자극이 되어 범고래 암컷으로 하여금 중년이 되면 번식을 중단하고 대신 아들과 손자에게 투자하며 딸과 손녀와의 경쟁을 거두게 한다. 그런 동기가 코끼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데, 다른 사회적 포유류처럼 아들이 출생 집단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 암컷은 시간이 지나도 집단 구성원과 근친도가 낮고, 아니 적어도 더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에 코끼리 암컷 우두머리들에게 가장 무난한 선택은 죽을 때까지 번식하는 것이다.

1970년대 당시 범고래를 위협하는 것은 굶주림과 오염이 아닌 납치였다. 전국의 해양 공원에 범고래 개체군이 잔혹하게 약탈당한 것이다. 살리시해의 남부 상주군 40퍼센트가 납치되어 인간의 여흥을 위해 수족관에 감금되었다.

범고래(그리고 인간과 같은 대형 유인원)처럼 코끼리는 분열과 융합이 거듭되는 사회를 이룬다. 즉 사회적 삶이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집단의 크기는 고정되지 않았고 역동적이며 구성원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알바트로스 동성 커플이 제안하는 바는 훨씬 고무적이다. 자연에서 성역할에 내재된 융통성은 물론이고 동물이 새로운 사회, 생태적 환경 앞에서 파격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적 대재앙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점차 더 중요해질 특성이다. 하와이 바닷새 군집의 65퍼센트 이상이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들은 낮은 지대의 산호섬에 둥지를 짓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환초와 레이산섬은 멸종 위기의 얼가니새나 슴새와 함께 레이산알바트로스 둥지의 95퍼센트가 밀집된 곳이지만 이번 세기 중반이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7 그리하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새롭게 군집을 형성하는 개척적인 레즈비언들은 말 그대로 종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끈비늘도마뱀붙이Lepidodactylus lugubris 개체군은 암컷으로만 이루어졌고 수컷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도마뱀은 대단히 성공한 종으로서 오직 복제를 통해 수컷의 개입이 전혀 없이 이 섬에서 식민지를 건설했다.

복제를 통한 번식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자손이 유전적으로 어미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근친교배의 궁극적 형태로, 감수분열 중에 가끔 일어나는 복제 실수 말고는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복제된 동물의 가계는 기생충, 질병,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맞서서 대항할 유전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섹스는 감수분열 중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해로운 돌연변이의 축적을 막는다. 유성생식하는 종에서는 복제 과정에 실수가 일어나더라도 상대편 성세포의 건강한 유전자 덕분에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오류가 제거된다. 무성생식하는 종은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없어 유전학계에서 ‘돌연변이 멜트다운mutational meltdown’ 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돌연변이를 축적하며 끝없이 복제만 거듭한다.

2018년에는 단성인 점박이도롱뇽Ambystoma 종의 역사가 500만 년이나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절취생식kleptogenesis’이라는 것이다. 점박이도롱뇽 암컷은 때로 근연종의 정자를 슬쩍하는데, 자극에만 사용할 뿐 그걸로 알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천 년에 한 번씩은 다양성 유지를 위해 과거에 ‘훔쳐서’ 저장해둔 정자의 일부를 게놈에 통합한다.

질형목 생물이 진화적으로 장수한 비결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조사와 맹렬한 숙고의 영역이었다. 그 비법 중 하나는 식사 중에 다른 생명체로부터 유전자를 ‘훔치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식단이 부러울 만한 건 전혀 아니다. 물론 사는 곳을 보면 더 기대할 수도 없다. 질형목 생물은 대부분 ‘유기 폐기물’, 죽은 세균, 조류, 원생동물 등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먹고 산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질형목 생물이 저녁거리에서 DNA를 추출한 다음,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기 게놈을 단장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합치면 질형목은 500종 이상의 종에서 외래 DNA를 갖다 붙인 프랑켄

암컷뿐인 이 개척자들은 성의 보편성에 대한 이성애 중심의 가정에 도전하고,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탐구 영역을 열고 있다.

환경이 균열되고 아주 많은 종이 재앙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성적 파트너를 찾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복제라는 고대 기술에 의존할 수 있는 암컷은 종이 힘겨운 시기를 견디는 데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최근 수학 모델에 따르면 단성생식 위주의 개체군에서도 유성생식하는 개체군과 거의 같은 속도로 좋은 돌연변이가 퍼졌다. 성이 주는 이점은 10~20세대에 한 번씩만 유성번식을 하더라도 유지될 수 있다. 어느 최신 논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전체의 5~10퍼센트만 유성생식하더라도 매번 유성생식하는 것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이점을 얻는다.
그래서 번식 양식을 자기 복제로 전환하여 개체수를 위험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능력을 갖춘 암컷이야말로 한 종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는 데 필요한 존재다.

종이 살 곳이 없어지면 아무리 수를 늘리더라도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단성생식은 특정 종에서만 가능한 안전망이고 복제 능력이 있는 것도 암컷뿐이다.* 이 특별한 암컷들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만약 인류가 이런 식으로 전쟁과 파괴를 이어나간다면 미래는 틀림없이 여성이 될 것이다. 살아남는 건 질형목 생물뿐일 테니까.

따개비는 성적 투자를 분산하는 대가이다. 안착한 환경이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성 체제를 수정하는 능력 덕분에 번식 스펙트럼의 폭이 대단히 넓다. 예를 들어 앞에서 본 왜웅矮雄, 즉 난쟁이 수컷은 암컷 위에 내려앉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난소가 발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그러므로 확실히 수컷으로 분류하기가 뭣하다.

한 젠더는 수컷으로 태어나 평생 수컷으로 살고, 한 젠더는 암컷으로 태어나 평생 암컷으로 산다. 하지만 세 번째는 암컷으로 태어나 살다가 나중에 수컷으로 변한다. 이처럼 성이 전환된 수컷은 처음부터 수컷이었던 놈들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이들은 영역과 암컷을 공격적으로 방어한다. 수컷으로 태어난 작은 개체들은 서로 연합하여 팀워크를 통해 짝짓기에 성공한다.
환경에 따라 선호되는 무지개양놀래기 수컷의 젠더가 다르다. 해초로 덮인 환경에서는 몸집이 큰 성전환 수컷이 암컷을 지키느라 애를 먹는 반면, 성전환하지 않은 작은 수컷은 더 활발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산호초의 맑은 물속에서는 성전환 수컷이 제 영역과 암컷을 더 잘 지킨다. 따라서 진화는 그 둘의 혼합을 선호한다.

성을 바꾸는 물고기 대부분이 자성선숙이다. 암컷으로 태어나 나중에 수컷이 된다는 뜻이다. 소수지만 그 반대인 웅성선숙의 예도 있다. 흰동가리들이 바로 수컷으로 시작하는 소수에 속한다. 이 물고기는 암컷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연구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

2020년에 출간된 선충에 관한 연구는 이진법적 도그마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이 미세한 회충은 인간을 포함해 좀 더 복잡한 생물에서 행동 조절의 청사진을 찾는 신경과학자들이 아주 사랑하는 모델 생물이다. 로체스터대학교 메디컬 센터 연구자들은 이 벌레의 뇌세포에서 유전자 스위치 하나를 분리했는데, 환경의 요구에 따라 성별 특이적인 형질을 왔다 갔다 한다. 예컨대 선충 수컷은 섹스를 찾도록 배선되었고, ‘암컷’(자웅동체이기도 하다)은 먹이를 찾는 데 집중된다. 그러나 수컷이 너무 굶주리면, 행동이 급격하게 암컷을 닮아간다. 이런 가소성은 성 사이의 경계를 뭉개고 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발상에 도전한다.

이제는 유해하며 공공연하게 우리를 속이는 이원적 기대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자연에서 암컷의 경험은 성별 구분이 없는 연속체 안에 존재하며, 다양하고 가소성이 높으며 낡은 분류 방식에 순응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얼굴 전체를 덮는 이론의 가면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바깥 세계의 언어를 읽으면서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서 읽는 영구적인 습관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가면을 벗기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깊이 각인된 개인적 이해의 틀 안에서 세상을 문화적으로 해석하도록 적응되었다. 이런 확실성의 안전한 그물 밖으로 나오려면 먼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자신의 깜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갈 만큼 용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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