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의 탄생 -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4
클라우스 뮐한 지음, 윤형진 옮김 / 너머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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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시간과 장소 측면 모두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되며, 중국의 다양한 행위자가 나라를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끈질기고 광범위하게 추구했던 목표로 이해된다. 현대 중국 만들기는 무엇보다 강하고 부유하며 선진적인 국가를 다시 만든다고 하는, 빈번하고 분명하게 표현된 중국인들의 열망이 주도했다. - P20


역사서에서 비춰지는 중국에 대한 시각은 이분법적이다. 한편으로는 부정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다. 지금의 중국을 따져봐도 그렇다. 세계 경제 대국 2위가 된 중국에 대해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 환경 등의 문제, 몸집을 부풀리는 군사력으로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국과의 심화되는 대결 구도는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것이 더 강해질 예정인 만큼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반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지향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호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현대 중국은 청에서부터 시작한다. 현대 중국의 역사적, 제도적 기반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인데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다. 

강희제와 건륭제 재위 시기 청은 가장 큰 치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불안이 대중 봉기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여기에 자연 재해까지 겹쳐지며 백성은 빈곤으로 내몰려 국내적으로 혼란스러워졌고 더불어 외국 세력의 이권 양보는 조정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청 중앙 정부는 기본적으로 지방 사회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면서 적은 자원으로 중국 전역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 중앙 정부와 지방 사회 간의 얕은 관계로 인해 중요한 문제가 터졌을 때 일사분란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려웠다. 제국 말 조정은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 유교 중심의 관료제에서 중앙 집권적 국가와 군대 중심의 체제로 변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중국은 도전에 응전할 만한 지도력이 부재했다. 19세기 중국의 쇠퇴는 몇 가지 특정한 역사적 요인들의 결합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요인 중 일부는 세계적인 것이었고 청의 직접적 통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 P258

첫째, 환경 악화와 세계적 기후 패턴의 변화는 중국을 위태롭게 했다. 둘째, 제국주의의 영향은 중국의 경제 문제를 심화시켰다. 셋째, 조약항에 외국 자본과 기술, 지식, 제도 등이 유입되면서 해안 지역과 내륙 지역의 격차가 커졌다. 넷째, 제국의 정치 제도는 긴급한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찾는데 실패했다. - P259


20세기 시작 무렵 중국은 혁명이란 키워드에 꽂혔다. 여러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중국 혁명의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혁명을 통해 중국 전역에 근대 기술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농촌 구석까지 변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얼마 후 중국은 일본과 동북부를 비롯해 만주 지역을 두고 일본과 충돌하면서 전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지역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기근, 재해 등 국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전쟁은 군사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중국은 외세와 응전하며 국민 스스로가 자주성을 가지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 아래 똘똘 뭉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민족주의를 성장시키고 확산하게 했다. 중국은 1945년 이전 국가 통치를 둘러싸고 지방 군벌들과 국민당, 공산당, 만주국과 협력하는 친일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난립했는데 어느 것 하나도 국민들의 희망에 제대로 부응하는 세력은 없었던 것 같다.


국민당과 공산당 세력 간의 대결 끝에 1949년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국 땅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결함을 가진 채 시작되었다. 게다가 전쟁으로 도시는 파괴되고 농촌은 황폐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한국 전쟁, 타이완과의 갈등 등 안보 문제는 공산당 정부가 이를 전면에 빌어 내세우고 사회와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마오쩌둥 초기 경제는 중공업을 주도로 하여 집단화 농업이 받쳐주는 형태였다.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실패로 마오쩌둥 정부는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의 상대적 취약성은 무엇보다 비교적 낮은 정도의 제도적 구조와 약한 제도적 능력에 기인한다. 중국공산당은 저항을 힘으로 진압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제도들을 갖추지 못했고 확립된 절차를 결여했기 때문에 아렌트적 감각에서 보면 ‘구조가 없는‘ 국가였다. - P622


1970년대 말이 되면 세계적으로 탈냉전의 바람이 불면서 중소 갈등이 봉합되고 미중 간에도 협력의 장이 열린다. 덩샤오핑이 이끄는 정부는 기존의 계획 경제를 뒤로 하고 경제, 교육 중심의 개혁으로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다. 중국은 세계에서 생산된 부품을 받아다 최종 조립하여 제품을 만들어내 파는 것으로 이득을 보았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상되었고 소비력도 증가했다. 하지만 늘어난 국가적 수입은 군사력의 강화로 이어지고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부패를 낳았으며 도농 간, 국민 간 경제 불평등도 심각해졌다. 중국 전역이 개발되며 환경 오염이 심각해졌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1989년 텐안먼 사태 이후 정부는 정치적 자유화에서 더 멀어지는 행보를 보인다. 민족주의를 강화하며 중국몽을 내세우는 모습은 왜 중국은 발전하는 경제만큼 정치가 따라주지 않을까 여러 모로 질문하게 된다. 


마오 치하에서 결핍을 경험한 후 소비와 물질적 풍요는 분명히 만족스러웠지만, 어느 정도까지만이었다. 물질주의의 추구가 부도덕한 행위와 사회적 부정의 반복을 가져왔고 이러한 반복이 때때로 권력에대한 특별한 접근성에 기댔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나은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근본적인 관념은 중국 전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얻은 것이건 돈만을 중시하는 사회적 세계에 대한 불만을 온라인에서 표현했다. 중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큰 질문들과 씨름했다. 우리는 어떠한 규범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러한 규범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 21세기 초에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기를 원하는가? 중국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P778~779


잘 정리된 글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짜릿하여 읽으면서도 신이 나는 것 같다. 마지막에는 “브라보!”를 외치며 책을 덮었다. 300년도 넘는 긴 역사를 핵심만 뽑되 맛깔나게 정리한다는 게 쉽지가 않음에도 잘 읽힌다. 번역이 잘 된 것도 있겠지만 글이 지루할 틈 없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존에 현대 중국사 관련 책들로 고전처럼 거론되는 책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2000년대 초중반에 쓰여져서 고리타분하고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역사서는 현재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은 마침 시진핑 체제까지를 다루어 거의 최근까지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근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사서를 이 한 권이 담고 있으니 당분간은 이 책이 기본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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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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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은 불과 13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졌으나 당시 식민지 국가였던 조선, 중국 등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5년 이후 만주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지만 대한민국의 뿌리와 관련이 깊어 들여다볼수록 마음을 무겁게 한다. 현대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그 역사를 되짚어보지 않을지. 사실 일본인이 만주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견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이 책은 만주국의 성립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을 그리며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입문서적 성격을 지녔다. 입문서답게 분량도 적당해서 부담도 없고 만주국에 대해 본격적인 탐색에 들어가기 전에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1989년 <최후의 ‘만주국’ 붐을 읽는다>라는 글이 발표되었을 때 저자는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질 무렵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만주국을 괴뢰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만주국이 괴뢰국가이고, 국가 형태를 취한 식민지지배의 통치 양식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통합 아시아를 꿈꾼 이상국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상국가라는 이야기는 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왜 그렇게 말하는지 뒷 이야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1920년대 만주와 몽골에 대한 권익 싸움으로 중국과 일본은 격렬하게 대립 중이었다. 1928년 10월 이시하라 간지가 관동군 작전주임참모로 부임했다(그는 향후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만주사변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시하라는 장쭤린 폭살 사건 전 1927년부터 이미 만주와 몽골을 영유해야 한다는 생각(만몽영유론)을 가지고 있었다. 

만몽 영유가 불가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절실한 현안이 있고, 그것이 또한 일본의 국운을 좌우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국운을 결정하는 과제였던가.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총력전 수행을 위한 자급자족권의 확립이라는 과제인데, 이것은 당연히 일본의 국가개조와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둘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국방·전략상의 거점 확보라는 과제인데, 이것은 또한 조선 통치와 방공(防)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물론 이 두 가지 과제는 연관되어 있어 일련의 문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만몽 영유를 달성하면이 과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국내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대외 진출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동하고 있었다. - P43


관동군은 국제적으로 1929년 세계경제공황의 상황으로 미국과 영국이 정신이 없을 때, 중국이 통일을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대결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여론이 정부보다는 군부를 지지했던 이유도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는 우선 1929년 가을 이래 세계공황에 의해 "자본주의 일본의 국민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국민이 만몽에서 그에 대한 해결을 구했다는 경제적 배경을 들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장쭤린 폭살 사건으로 만몽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군부가 "앞으로는 반드시 여론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여론을 환기시킬까를 연구하고 조직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를 도모하면서 매우 정력적으로 여론 조작을 추진한 것도 한 원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1월에는 사회민중당도 만주사변 지지를 결의하고, 12월11일 와카쓰키 내각의 총사퇴에 의해 시데하라 외교가 종언을 맞이하는 등 사태는 급전되었고, 만몽 처리에 관해서는 관동군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 P85~86


만주국 건설에는 만주 현지 지역의 군벌과 친일 단체 협조의 힘이 컸다. 

장쭤린의 책사이자 평톈 지방자치유지위원회 의원이었던 위청한은 장쉐량 군벌 및 난징 정부의 입김에서부터 벗어나 자체적인 이상적 왕도정치를 실현시키고 군대를 폐지한 뒤 군사적 기능을 일본에 위임하겠다 했다. 

또한 만주청년연맹은 ① 둥베이 4성의 철저한 문호개방, ② 현주 각 민족협화의 취지에 의해 자유평등을 지향하고, 현 주민으로 자유국민을 구성한다. ③ 군벌을 배제하고 철저한 문치주의로 다스리며 병란이 잦은 중국 본토로부터 분리하여 둥베이 4성의 경제적 개발을 철저히 한다는 것 등이 강조하면서 위청한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다.

중국 본토로부터 단절된 왕도국가를 건설해 아시아 부흥의 초석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가사기를 중심으로 한 ‘다이유호카이’라는 단체도 꿈꾸던 바다. 


만주국 정치를 결정했던 것은, 괴뢰국가·보호국화라는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현지 중국인의 자주적 발의의 의해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관동군의 지도하에 일계 관리에 의해 일본의 통치 의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현하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그리하여 표면과 내면의 괴리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주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국책에 순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만 관계의 기조가 되었던 것이다. - P203

1929년 세계 공황 이후 일본 경제 막다른 길에 몰린다. 일본 농촌은 노동 쟁의가 최고조에 이르고 실업자 수도 상당했으며 결식 아동이 속출하고 생활고로 부모자식이 동반 자살, 딸을 파는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만주국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만주국 붐을 일으킨다. 하지만 과대하게 선전된 만몽의 자원과 이권에 일본인의 활동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정적 자원에 수요는 많으니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만주국 건국을 둘러싸고 정부 계열 간 균열이 발생하면서 자치지도부 사람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배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32년 만주국 승인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고 <일만의정서>에 의해 만주국 통치의 실권은 일본이 법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쇼와 천황은 무토 노부요시 관동군 사령관에게 “장쉐량 시대보다도 한층 선정을 베풀도록 노력하라”는 훈시를 했다. 


일본인은 만주국의 제제를 천황제와 유사한 형태로 만드는 것에는 이상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천황제의 황실에 대응하여 제실이 만들어졌고, 국문장에 대응하여 제제 실시 후 일본식으로 난화(花)가 문장이 되었다. 이외에 궁성(宮城)에 대응한 제궁(宮), 행행(行)에 대응한 순수 나중에 순행), 어진영(御眞)에 대응한 어용(御容: 나중에 어영御影), 황위에 대응한 제위, 황후에 대응한 제후라는 식으로 만주국제제는 천황제의 모조)로서 만들어져 갔던 것이다. - P255

일본은 이렇게 천황제 시스템을 이용하여 만주국 체제를 이용하여 구성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과 만주국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상처럼 일본은 만주국의 상 속으로 각각을 투영시켜 무한의 상을 겹쳐간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자기이고 그 모든 것이 타자인 것처럼 진위를 가리기 힘들게 되어 간다. 


그러나 일본과 만주가 긴밀하게 이렇게 움직이려 했으나 전쟁 상황은 날로 악화일로를 걸어갔고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갔다.

일. 만 관계가 진정으로 새로운 이념하에서 독자적인 국제관계를 창출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말하는 데 적합한 개념과 체계로써 구미의 정치학이나 법률학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설명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 없이 구미의 정치학과 법률학에서 말하는 ‘괴뢰국가의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시아 역사 자체가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지적 오만이고 지적 제국주의의 다른 형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아시아 역사 자체"란 도대체 어디의, 어떤 역사란 말인가. 건국 이래 일관되게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지탄해 왔던 중화민국과 삼십 몇 만이나 되는 반만항일군 전사들, 그리고 앞에서 든 겐코쿠대학의 중국인 학생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아시아를 거론할 때 우리들
일본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항상 아시아 담론을 기만의 방패로삼아 왔다. 만약 자신의 삶을 경멸할 생각이 없다면 21세기에는 이러한 ‘아시아‘라는 담론으로 자신과 타자를 함께 속이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고 절실히 생각한다. - P334

재만 조선인은 만주국 시대에 일본인=‘동양궤이즈(東洋鬼구)‘에 다음가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얼웨이즈(鬼)‘로서 전후에는 참혹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귀국도 할 수없어 11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만주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족은 일본인 다음가는 "만주국 중요 구성분자"로서 국방의 책무를 담당했는데,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징병 · 징용되어 중국·남방전선에 동원됨으로써 전범이 되거나 시베리아에 억류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패전 후에는 일본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보호나 보상의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 P399


윗 구절을 읽으며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만주국을 통해 설사 이상향을 꿈꾸었다고 해도 그 방향은 분명 평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주변을 핍박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고 여긴다. 


책의 말미에는 보론을 싣고 있다. 책의 특성상 간단하게 다뤄져 언급하지 못했던 질문을 추려 저자가 답을 하는 형태여서 독자가 궁금해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었다. 


1945년 만주국이 무너지고 나서 일본인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급속도로 증가했던 재만 일본인은 중국의 내전으로 일본으로 귀환하려다 상당수가 목숨을 잃거나 시베리아에 억류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현지에 남아 전문 지식과 기술을 중국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현지에 자발적으로 남은 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 몰랐던 부분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에도 여러 인물이 만주국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국가 탄생 이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친일 청산과 현재도 뿌리 깊은 이념 때문에 벌어지는 색깔 논쟁은 고질병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이미 소멸해버린 만주라는 공간, 만주국이라는 국가를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시대착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참한 희생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인류의 예지를 이끌어내어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과거의 사실로 망각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만주국이 그러한 사상과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것은 ‘영원한 현재’로서 계속 존재할 터이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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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만주족 이야기 - 만주의 눈으로 청 제국사를 새로 읽다 경계에서 중국을 보다 1
이훈 지음 / 너머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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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가 멸망한 후 중국은 청 제국의 강역을 계승했고 만주족은 중국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사의 영역은 중국 내지China proper를 넘어 청 제국이 지배한 광활한 공간을 포괄한다. 중국은 만주 지역을 동베이東北라고 부르며 중국사가 포괄하는 공간으로 편입시켰다. 반면 한국에서 만주 지역은 한국 고대사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두 나라는 만주 지역에서 태어난 국가를 각자 ‘국사’의 일부에 배치했고, 역사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자의 역사 공간은 충돌한다. 양자의 사이에서 만주족과 그들의 조상이 영유했던 그들만의 역사와 그들만의 공간은 실종되어 갔다. 이 글은 만주족이 살았던 이야기를 그들의 시각으로 서술했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는 데 이 글이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청의 역사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만주족의 역사를 자연스레 훓게 된다. 근대 중국의 마지막 국가가 청이었기도 하지만 중국 땅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와 붙어 있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던 위치에 있었다. 다만 서로의 이해도가 달라 지금까지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책과 자료를 통해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명과 인명 등을 원어인 만주어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독자는 낯선 용어로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기존에 우리는 관련하여 한어적 명칭과 발음이 자연스러운 탓이다. 현대 만주족의 규모가 거의 줄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역사를 다루는데 만주어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한자만을 사용한다면 반쪽짜리 이해일지 모른다. 게다가 중국은 다양한 민족을 구성원으로 하므로 특정 시각에 입각하여 서술된 역사는 몰이해를 불러올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여 만주어를 사용하여 책을 기술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읽다보니 괜찮아졌다.


1599년 누르하치는 여진 통일의 장정을 시작했다. 그해 건주여진은 하다를 공격했고, 하다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먼저 멸망했다. 하다의 마지막 버일러인 멍거불루는 생포되어 건주여진의 수도인 퍼알라에 끌려와 있다가, 누르하치의 비첩婢妾과 사통하고 대신인 가가이G’ag’ai, ?盖(?~1600)와 밀통하여 찬탈을 도모했다는 죄로 죽임을 당했다. 1607년에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약했던 호이파가 멸망당했다. 호이파의 바인다리 버일러는 방어를 위해 도성을 삼중으로 축성한 보람도 없이 누르하치의 공격을 맞아 패배했고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울라는 호이파가 멸망한 후에 6년을 더 버티다가 멸망했다. 해서여진 후기의 맹주였던 여허는 해서여진 가운데 가장 오래까지 버티다가 1619년에 멸망했다. 몇 년간이나마 건주여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방파제가 되어 여허의 멸망을 막아 준 것은 명이었다. 명은 1619년 1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몇 년 전부터 아이신 구룬金國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던 건주여진을 공격했다. 그러나 명의 공격이 완전히 실패하자 여허는 후원자를 상실했다. 명은 여허를 후원하고 지켜 주기는커녕 신흥 금나라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해 가을 누르하치는 여허를 공격했고, 동성의 버일러 긴타이시와 서성의 버일러 부양구는 피살되었다. 해서여진의 마지막 국가가 멸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만주족의 구성원은 어떤 방식으로 분화했을까. 우선 1644년 청이 중국 땅에 들어와 만주족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구성원이 다양해졌다. 1635년까지만 해도 청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있었던 것은 여진족과 소수의 한족, 조선족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는 강희제 시기 만주 동북부에 있던 퉁구스계 민족과 소수의 러시아 계열의 민족이 유입되고 건륭기에는 동투르키스탄에 있던 소수의 투르크계 사람들이 팔기군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만주족’이 가진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만주족은 성이자 씨족 집단인 ‘할라’, 2개 이상의 씨족 집단이 모인 ‘무쿤’, 하나의 할라가 여러 마을에 들어가서 각 마을에 서로 다른 할라가 섞이는 ‘가샨’ 등을 가진다. 만주족이 성을 잘 쓰지 않는 것은 국가를 세우기 전에 할라인 씨족 집단으로 생활했던 시기의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누르하치는 여진 통일 과정에서 대부분 집단 고유의 조직을 니루에 배속시켰기 때문에 그들이 팔기에 편제된 후에도 큰 혼란이 없을 수 있었다.

둘째, 수렵과 군사 훈련이다. 만주족은 국가를 수립하고 나서도 수렵을 생산 활동의 일부로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군사 훈련의 과정으로 이용했다. 

셋째, 황실에서 지낸 샤머니즘 제사인 탕서와 곤녕궁 제사다. 누르하치는 경쟁 여진 부족을 물리친 뒤 씨족 수호 신령을 모신 사당인 당서를 파괴함으로써 누르하치의 탕서가 다른 모든 씨족의 탕서를 대체하게 하면서 복속된 여진인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홍 타이지는 탕서 제사를 황실이 독점하게 하고 굿을 금지시켰다. 곤녕궁 제사는 탕서 제사와 유사하지만 하늘신, 조상신 뿐 아니라 석가모니, 관음신 등 외부에서 가져온 신도 섬기는 것이 특징이다.

넷째, 조선 시대 말을 끄는 하인인 ‘거덜’이 있었던 것처럼 만주족은 ‘쿠툴러’가 있었다. 쿠툴러도 말을 관리하는 하인이지만 기병 위주의 전쟁을 하는 만주족에게 말을 관리하는 그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다섯째, 오락, 전투 훈련으로 빙상 경기를 했다. 건륭제는 자금성 북해에서 빙상 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1925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북해는 겨울에 북경 시민이 스케이팅을 즐기는 장소로 기능했다고 한다. 여섯 째, ‘가추하’라는 놀이다. 가추하는 포유류의 발목관절뼈를 지칭하는 만주어로 뼈(주로 양이나 돼지의 뼈를 이용)를 던지며 노는 것이다. 가추하는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즐기는 대중 놀이였다.

일곱째, 만주어다. 홍타이지는 특히 한어의 유입으로 만주어가 상실될 위협에 놓인 것을 경계하여 한어, 몽고어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주족은 점차 한족의 문화에 익숙해졌고 한자 사용이 많아지면서 소멸되어갔다.


청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조치는 다양했다. 귀족층 자제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당근을 주는 대신 귀족층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황제가 몽고 왕공을 자주 접견하고 장성 밖에 사찰을 지어 타 민족을 고려하는 모습을 비춰주기도 했다. 동전에 만주어와 한어를 함께 새기면서 백성들에게 통합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도 있었다. 신강을 정복한 이후에는 전쟁기념관인 자광각을 세워 군사적 메시지를 주었다. 한인이 숭배하던 관우 신앙을 만주족 지배자들은 계속 존숭했다. 관우 신앙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청의 변경은 제국의 역사 동안 끊임없이 변경되는 과정을 거쳤다. 1644년 청은 입관 후 수십 년간에 걸쳐 중국을 정복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한 상황에서 다수의 병력을 원거리의 동북방 흑룡강 유역으로 파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침입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청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아 소규모 병력을 동원하고 현지의 부족민을 병력으로 활용하며 때로는 조선군을 동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청은 순치기에만 1652년부터 1660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수백 명 내지 1,000여 명의 소규모 병력을 파병하여 흑룡강 유역 곳곳에서 러시아인을 공격했고 부족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다섯 차례의 전투 가운데 조선군은 1654년과 1658년 두 번 참전했다. 조선의 신유 장군이 참여하여 알려진 ‘나선 정벌’이 이 중 하나다.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후 만주 지역의 북방은 안정된 상황으로 진입했지만 청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부족민을 팔기로 편제하는 정책을 계속 진행시켰다. 시버족은 이 때 만주에서 신강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책은 만주족의 역사도 다루지만 특히 ‘만주족’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여겨졌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원하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적합했고 역사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무얼 하며 살았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하기 때문에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주족에 대해서 세밀하게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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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Stars Are Scattered (Paperback, 미국판) - 『별들이 흩어질 때』원서
빅토리아 제이미슨 / Dial Books for Young Readers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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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파괴되고 우여 곡절 끝에 난민 캠프에 들어온 두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게 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둘의 모습이 대견했다. 가족과 헤어지고 고향이 사라지는 비극은 없었으면 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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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5-28 0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4-05-29 21:41   좋아요 2 | URL
괭 님도 완독하셨던 것으로 봤어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미나게 읽었네요. 감동적이기도 했고요. 특히나 저는 난민캠프에서 만난 엄마와의 일화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훔쳤답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미미 2024-05-29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화가님 완독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4-05-29 21:42   좋아요 1 | URL
미미 님 덕분에 정말 재미나게 읽었어요. 뭉클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후기까지 읽으면 가슴에 불꽃이 절로!ㅎㅎ 요새 일 때문에 스트레스 가득이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힐링했습니다. 감사드려요. 다음 달 책도 기대해봅니다.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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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김기태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꽤나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전 첫 소설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읽은 책은 <세상 모든 바다>이다. 부모님이 자이니치인 제일교포3세인 하쿠와 한국인 백영록의 묘한 만남이다. BTS 이후 가장 성공했다는 케이팝 그룹인 세모바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바다는 ‘ALL THE SEAS OF THE WORLD’로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미로 보였다. 세모바는 인권,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평소 그런 가사와 메시지를 꾸준히 펼쳐왔다. 팬들도 이에 원전 건설 예정인 곳에 반대 메시지를 내며 ’SAVE MY BADA’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로나, 우리의 별>에서는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고 성공하는 오로나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기타 하나에 의지해 목소리로 승부하는 가수로 시작해 여러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기부를 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펼치게 된다. 스스로 길을 닦아 개척해나가겠다 말할 때는 결연한 기개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세모바와 오로나를 보면서 엔터테이너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바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출난 장기, 스타성을 원하면서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면 ‘적당히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게다가 도덕성까지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참 요즘 스타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보편교양>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곽은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고전교양’이라는 수업을 개설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엎드려서 잠을 자고 5명 정도만이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 5명의 아이들 중 은재가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입시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학교 수업도 모자라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 및 과외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쓸데없거나 사치라고 느껴질 수 있을테니까.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 아니냔 말이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코 등을 떠올리며…… 어떤 지도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은재 아버지는 학교를 통해 수업에 대한 항의를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히는 게 유해하지 않는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입시 과목 선생님이 아버지께 자본론은 문제 되는 저작이 아니라고 해명한 뒤 그제서야 곽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한다. 은재는 졸업식 때 곽에게 3학년 때 배웠던 과목 중 고전교양 수업이 가장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기뻐한다. 곽은 입시 과목에서 벗어나 보편 교양을 지향하려 했으나 학생의 이야기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면 학생이 입시, 점수에 목을 매는 것처럼 자신도 평가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교육자에 대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롤링 선더 러브>는 공포와 동경 사이를 저울질하며 마음의 길을 잃은 주인공 독신녀 맹희가 나온다. 그는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짝짓기 프로그램에 큰 마음을 먹고 나간다. ‘완두’가 된 맹희는 출연자가 아닌 인터뷰 때마다 만난 ‘우엉’ 피디에게 호감을 갖는다. 방송이 나간 후 맹희는 생각한다.


저게 나인가. 아니지. 저것도 나인가. 그건 맞지. 완두는 맹희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이긴 했다. 나 생각보다 관종이었을지도. 맹희는 갖가지 조합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시청자들의 반응을 찾아 읽었다. 각오는 했지만 어떤 말들은 너무 부당했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맹희 자신도, 감자도 토마토도 양파도 그들이 비난하는 만큼 잘못한 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남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무엇을 속이거나 팔아넘기겠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을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를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기대서만 채워지는 충족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만이 다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자연에서도 충분히 애정을 쏟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9편의 소설 중 좋았던 작품 두 개만 뽑으라면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무겁고 높은>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단순한 문장일 수도 있는데 그냥 좋았다. 니콜라이와 진주는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마트 직원으로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그렇기 않기에 서로를 향해 내민 손이 위로가 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차라리 이것은…… 딩동. 음식 도착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 선수인 송희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나라 스포츠는 일부 종목만 인기 있을 뿐 비인기 종목은 대중들조차 관심이 없다. 인기 종목도 프로 선수로 데뷔하고 성공하기 힘든데 비인기 종목은 그보다 더할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기록을 깨어 나간다는 것이 고독함을 불러오지 않을까. 

송희는 마지막 대회에서 94kg의 바벨을 들었으나 100kg의 바벨을 드는 것에는 실패하고 경기장을 내려온다. 

정확한 궤적으로 떠오르는 바벨. 무수히 상상했던 깨끗한 움직임. 꽂힌 원판을 세어보니 이미 100킬로그램이었다. 3차 시기를 위해 복도를 걸으며 송희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오늘 역도대에 오른 건 이십여 명. 그중 십수 명은 역도화를 벗게 될 것이다. 송희는 자기가 그 십수 명 중 하나라는 걸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다만 바벨을 떨어뜨리고 끝내고 싶진 않았을 뿐.

이 대목을 읽는데 뭉클했다. 자신과의 승부에서 송희는 적어도 지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송희는 쉽게 날려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만두더라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그는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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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05-20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언제 나왔죠?! 알라딘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이런 기쁜 소식을 또 접하고! 고마워요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5-21 08:02   좋아요 1 | URL
수이 님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뻐요^^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찾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건강 잘 챙기셔요!

2024-05-29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9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