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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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속에서 자신들이 '온 세상 최고의 세계'를 향해 곧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 P28


19세기 유럽인들은 자유주의와 산업혁명에 의한 진보 속에 하루 하루를 낙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전 세계만 해도 두터운 신분제 하에서 고정된 방식에 갇혀 지냈던 사람들이 최소한 더 나은 자유 속에 평등을 꿈꾸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동적인 자유주의와 낙관주의 속에 살았던 그들은 창밖에서 동터오는 새로운 하루하루가 우리의 삶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겪었던 가장 암울한 밤에도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꿈에도 알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게 위험을 견뎌내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지도 상상하지 못했다(P62). 


좋은 책이 최고의 대학을 대신한다는 에머스의 공리는 내게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사람은 굳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심지어 김나지움을 나오지 않고서도 뛰어난 철학자나 역사학자, 문헌학자, 법학자, 혹은 그 밖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확신한다(P166). 

그는 어릴 적부터 좋은 책을 읽으며 기초 체력을 키웠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남다르긴 했던 것 같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첫 시집을 써내 출판사로부터 계약을 따냈으며 시집에 릴케로부터 헌사가 적힌 답장을 받았다. 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당대 최고 작곡가였다는 막스 레거가 시집 속에서 선택한 6편의 시에 붙인 곡이 연주장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에 편집진으로 들어가 활동하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명사들을 만나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특히 릴케와 남다른 우정을 쌓았고 로댕의 작품에 대한 몰입을 보면서는 배워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 


츠바이크는 유럽을 넘어 인도, 미국 등지를 여행하게 되었다. 여러 배경의 사람을 만나며 그는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여행은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때론 긴장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츠바이크의 이전까지의 경험의 범위는 유럽 내였다. 그러다 이때 바깥 세상을 보며 겪은 충격은 유럽이 다가 아님을,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아닐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라테나우는 그에게 유럽을 넘어선 시각도 있음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인도와 미국 여행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인도 여행에서는 칼 하우스호퍼 부부를 만났다. 일본 주재 독일대사관의 무관으로 파견된 칼 하우스호퍼는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했기에 츠바이크는 동양에 대해 더 아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칼 하우스 호퍼의 제자 중 루돌프 헤스가 가진 사상(‘생활공간’, 지정학) 중 '생활공간'이란 이론이 히틀러에 의해서 “오늘은 독일이 우리의 것이고, 내일은 온 세계가 우리의 것이다”라는 구호로 변질되었다(P309)는 것이 아이러니다. 

츠바이크가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한다. 낯선 땅에 떨어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그럴 법도 했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구직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내던졌다. 1910년대 미국은 구직을 위해 국적, 종교, 출신을 묻지 않았고 여권 없이 여행이 가능했다고 그는 언급했다. 그런데 그것은 서양인이고 유럽인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였다면 제약을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대중은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전쟁을 알지 못했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전쟁은 전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거리감이 전쟁을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전쟁을 학교 교과서나 미술관 그림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P374).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츠바이크는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벨기에에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출발한다. 그런데 막상 독일에 하차하고 보니 역내에 진입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만다. 그 허탈감과 불안감이란 어떠했을까. 그동안 작은 충돌들은 있었겠지만 전쟁이 벌어지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사람들, 눈 앞에 벌어진 현실에 그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 같다. 1차 대전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이용한 화학전이 벌어졌고 군용기를 이용한 항공전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전쟁이었다. 결과적으로 앞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전쟁의 양상,생각보다 더 길어진 전쟁에 피해는 더욱 컸다. 


그래도 1차 세계대전의 기간 동안에는 전쟁중이면서도 각 나라들이 폭력보다는 문화 국가임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한 문화 예술 공연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여전히 자신들이 양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스위스는 중립국으로 1차 대전이 벌어지는 곳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자유로웠다고. 궁정 고문관 람마슈(후에 헤이그평화회의 의장)가 츠바이크에게 고백하기를 오스트리아가 독일과의 동맹에서 탈퇴하고 평화의 길을 걷고자 카를 황제의 약조를 받아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하여 현실화되었더라면 1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종전 후 오스트리아 크로네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외국화폐만이 유일하게 안정적인 가치를 지녔는데 그 시절 전쟁을 치른 국가들은 대부분 이러했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나름 긴 기간 동안 러시아에 있었다.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기도 하고 막심 고리키와는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츠바이크는 잘츠부르크 집에 집을 마련했는데 이 무렵 잘츠부르크는 여름 축제이자 예술의 순례지로 자리매김했기에 자연스레 그의 집은 유럽 각지의 명사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필 문서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필 문서에 관해 쓰인 책과 인쇄된 경매 목록을 모은 문헌들을 찾아다닌 끝에 그는 수집가이자 필적 영역의 최고 권위자로 명망을 떨쳤다. 수집활동 마지막 10년 간은 특별히 행복한 기분으로 창작한 작품, 마지막 절정기에 창조된 작품을 모으고자 했다고. 

나는 수집을 통해, 나 자신의 작품들보다 그 전체로서 더 오래 지속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 히틀러의 시대가 시작되고 내가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수집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무언가를 영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확신 또한 사라졌다. 한동안 나는 그 일부를 금고나 친구들에게 맡겨두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박물관, 수집품, 무기고는 계속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자체로 굳어버린다는 괴테의 경고에 따라, 더 이상 내가 정성을 들여 완성해 나갈 수 없게된 수집품과 작별하기로 결심했다(P576, 577). 더 이상 수집을 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서글펐다.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면 그는 멀쩡히 살아나가서 더 많은 수집품과 그의 작품들을 남겼을 것이 아닌가.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끔찍한 저주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단 한 순간도 현재로부터 도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이전 세대는 재앙이 닥치면 고독과 고립 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지구 어딘가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경우, 바로 같은 순간에 모든 것을 알고 함께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운명은 나와 함께 있었다. - P650

히틀러 집권 전 잠시 평화로웠던 시기 츠바이크는 개인적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히틀러 집권 이후 츠바이크의 저서들은 금서 조치가 내려진다.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의 침공, 그리고 이어서 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츠바이크는 재혼을 위한 서류를 증명받기 위해 간 날 독일의 폴란드 침공 소식이 들었다. 영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인 그는 영국의 입장에서 적국의 외국인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탈출해야 했다. 

1차 대전만 해도 대중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1차 대전을 경험해본 유럽인들은 1939년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전쟁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평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츠바이크가 쓴 마지막 이야기라고 알려진 이 책은 이처럼 대략 1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2차 대전 시작 후까지를 다루었다. 근현대 역사상 가장 격변이었던 시대, 그의 서술을 빌어 시대를 지나오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했다. 그 시기 사람들은 그런 복잡한 시류를 어떻게 따라갔을까, 벅차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날도 AI의 흐름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상황들을 보면서 이것 또한 새로운 격변인가 생각하니까 말이다. 

사실 어찌 보면 개인이 쓴 일기이자 에세이인데 역사로도 읽히고 철학, 인문, 예술, 사회 비평 등 다양한 장르로 읽혔다. 무엇보다 지금 읽어도 다양한 생각들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띠지에 적힌 '현대의 고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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