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에게,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이다. 딸은 어머니를 줄어들게 하고, 쪼개고, 무언가를 떼어가지만, 아들은 뭔가 덧붙여 주고 늘려 주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바로 나의 어머니에게는 그랬다. - P38


친가에 자손이 귀하여 아이가 태어나기를 무척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첫째가 딸로 태어나자 어머니는 좌절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손'이 귀한 집이라 아들을 원하셨던 것이다. 특히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어머니를 압박하셨다고. 첫째가 딸이었는데 둘째마저 딸을 낳자 어머니의 심리적 압박은 무척 크셨다.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억울함과 분함이 내게 미쳤을거라고 먈씀하셨었다. 그치만 그때는 내가 기어다닐 때라 기억에 없다. 어머니께서 셋째와 넷째를 아들을 낳자 그제서야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어쨌든 어릴 적 기억이 나던 때부터는 많은 것들이 남동생들을 위주로 굴러갔다. 서운했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감정이 쌓여 폭발했을 때가 있었는데 결론은 딸이 희생해야 하고 첫딸이어서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왕비는 누구의 칭송을 필요로 하는가? 본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하는 백설공주는 무엇을 놓고 왕비와 경쟁하는가? 여성들이 펼치는 이 드라마 이면에 남성들이 있다. 왕비는 남성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것이며, 가치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남성의 관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는,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나의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존재, 나의 성별과 외모,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완성시켜 줄 기적이 되지 못하고 그녀를 분열시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P39


어머니께서 나와 내 동생들에게 본의 아니게 강요한 것들은 결국 남성에 의한 것, 가부장제 시스템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남동생들도 후에 이야기하기를 자신들은 버거워했노라고 넋두리를 했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었다면 딸을 둘만 낳아 전념하여 키우지 않으셨을까. 

거울이 보여주는 상은 결코 내가 아니고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맞추려고 했기에 탈이 난 적이 많았다.


거울은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오로지 거울 자신만 빼고. 거울이 되는 일은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나오는 에코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한 것은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그가 산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자신의 반영에만 빠진 그가 타인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점이다. - P44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 P53


솔닛의 비치에서의 경험을 듣는 것은 놀라웠다. 모르는 사람들이 건넨 제안에 오케이 하고 진행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어떤 일을 계기로 이전에 갖고 있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개인적인 경험이 떠오른다. 몇 년전 상해에 갔을 때 고층 빌딩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는데 아래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 투명 바닥에 누워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너무 무서웠고 사람이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인증샷은 커녕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서성대다가 내려왔다. 하지만 후회가 되었던지 나중에 두고 두고 생각이 났다. 그때 미쳤다 생각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왔어야 하는데… 도전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 결국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나는 뒤이어서 여러 차례 나를 넘어설 도전의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직 번지점프도 무서워 도전하지 못한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을까. 어떤 기분일까.’ 꿈꾸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능보다는 불가능의 확률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목련 2023-12-12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 하는 책인데...

거리의화가 2023-12-12 17:56   좋아요 1 | URL
이 책 갖고 계시는군요^^ 챕터마다 에피소드들이 달라서 독자를 환기시키네요. 관련 경험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12-14 0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이 귀한 집안이라는 말부터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히 알게되는 ptsd를 우리는 갖고 있죠ㅠㅠ

거리의화가 2023-12-14 09:44   좋아요 1 | URL
그쵸^^ 아들 때문에 4명씩이나ㅠㅠ 지금도 생각하면 어머니께서 억울함이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는 좀 이런 일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