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 24 ] The Wars of the Greeks
Greece’s War With Persia
페르시아인들이 그리스를 침략했다.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 땅의 대부분을 정복했으나 몇몇 도시는 수중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에 메신저를 보내 “우리는 페르시아 대왕이 보내서 온 사람들이다. 이 땅을 원하는데 동의한다면 흙과 물을 보내라.” 아테나인들과 스파르타인들은 분노했고 메신저를 우물에 던져버리자 페르시아는 예상대로 싸움을 걸어왔다. 첫 전투는 마라톤에서 시작됐다. 아테네군은 스파르타에 도와달라 요청했으나 축제 기간동안은 참여할 수 없다고 군대 보내기를 거부했다. 아테네인들은 홀로 페르시아군을 상대해야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승리했고 마라토너인 Pheidippides는 마라톤에서 26마일의 거리를 경주하여 마라톤에 도착했으나 힘이 다 빠져 사망했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살라미스 전투에서는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이 합심하여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The Greeks Fight Each Other
그리스는 대리석으로 된 건물을 많이 지었는데 거기에 화려한 friezes(=pictures, carved in marble)를 새겨 넣어 실감나는 전투 묘사를 해 놓았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종식되었으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가 더 강해질 것을 모두 두려워했다. 평화 대신에 그들은 싸움을 택했다. 둘 간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25년간 이어지게 된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의 강한 공격력을 알았기 때문에 성에서 방어하며 싸우려 했고 스파르타는 아테네군이 성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더니 아테네군의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이때 페리클레스도).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는 “전투에 나설 자 나를 따르라!” 로 아테네 군인을 모은 뒤 스파르타 주둔지를 함께 공격했다. 그러나 아테네 남성들은 전투력이 약했고 스파르타군이 그들을 무찔렀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인들에게 분노하여 아테네를 버리고 스파르타 캠프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나는 폴리스로 가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 스파르타인들은 그의 말대로 몰래 아테네를 침투하여 아테네인들을 사로잡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 Ch 25 ] Alexander the Great
Philip and His son
마케도니아에 필립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으로 부족하여 소아시아와 페르시안 제국까지 넘보았다. 그러나 페르시아를 공격하기 전 사망하고 만다. 그 소원은 아들인 알렉산더가 물려받게 된다.
알렉산더의 어릴 적 일화가 있다. 부케팔루스라는 검은색 종마를 얻은 일이다. 그는 다루기 어려워서 아버지 필립왕 조차 포기한 놈이었다. 그는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이용해 부케팔루스를 자신의 말로 삼는다. 부케팔루스는 알렉산더가 나간 전투 어디든 따라다녔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이후 정복하러 나간 소아시아 땅에서 “고르디언의 매듭”이라는 전설의 매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고르디언의 매듭을 풀어야 소아시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 백명의 사람이 시도해보았으나 성공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알렉산더는 칼로 slice the knot in half 로 매듭을 풀고 소아시아 뿐 아니라 이집트, 페르시아 제국까지 모조리 제압했다고 한다. 전설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Alexander’s Invasions
알렉산더의 정복 사업에 차질이 빚어진다. 인도 앞이었다. 점점 더 많은 군인들이 죽어나가면서 군인들이 싸움을 거부했다. 알렉산더는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그는 결국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인도에서 더는 나아가지 않기로 한다.
알렉산더는 후대에 자신이 위대한 통치자였음을 알리기 위해 수년간 도시를 건설한다. 이집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가 있다. 오늘날 이집트 관문 도시이기도 한 알렉산드리아는 상인들이 배를 타고 들락날락하기 좋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 생전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가 죽고 나서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명 학자, 작가들이 사는 미술, 음악, 교육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330 피트 높이의 등대인 파로스 등대가 존재한다. 이것이 the 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중의 하나다. 아쉽게도 오늘날 등대가 남아 있지 않다. 최근에 다이버들이 알렉산드리아 항구 바닥에서 돌덩어리를 찾아냈는데 그 등대의 일부분이라고 한다.
The Death of Alexander
알렉산더는 20살 때 왕이 되었고 불과 11년 동안 제국을 다스리는 왕의 지위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원정을 나가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약해지면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한다. 장군이 그를 보러 왔을 때 눈만 깜빡였다고. 사인은 독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말라리아에 의한 사망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는 유리관에 들어가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졌고 알렉산드리아에 석관으로 모셔졌다. 그가 죽고 나자 소아시아 북부와 마케도니아를 한 사람이 다스리고 다른 한 사람,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를 넘겨받는다. 그리고 세 번째로 셀레우코스가 소아시아 남부를 넘겨 받고 인도까지 영토를 섭렵하게 된다. 그 후손들은 셀레우코스인들과 시리아인들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