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는 식민화에 저항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상징하는 템페스트』의 등장인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이란 신세계 주민들의 종속과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일어났던 유럽 민중들, 특히 여성들의 종속 간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토지에서 지역공동체 전체를 강제로 몰아냈고, 빈곤이 엄청나게 확산되었으며, 민중들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관계를 파괴하는 "기독교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또한 구세계에서 발달된 억압의 형태들이 신세계로 이전된 뒤 다시 유럽으로 재도입되는 꾸준한 교차수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의 차이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금과 은을 비롯한 여러 자원들이 유입되자, 국제분업이 일어나 새로운 글로벌 프롤레타리아트들을 상이한 계급관계와 규율체제로 분할했다. 이는 노동계급 내에서도 종종 갈등을일으키는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과아메리카인들이 겪어야 했던 유사한 처우는 자본주의의 발달을 지배하는 단일한 논리의 존재와 이 과정에서 자행되는 만행의 구조적 성격을충분히 보여 준다. 마녀사냥이 아메리카의 식민지로 확산된 것은 이와관련된 중요한 사례다. - P311
16세기와 17세기, 심지어는 18세기에마저 인간의 피(특히 비명횡사한 사람들의 피)는 여러 가지 액체에 인간의 살을 담가서 추출해낸 미라수mummy water의 형태로 많은 유럽국가에서 간질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데 흔하게 사용되었다. 게다가 "살, 피, 심장, 두개골, 골수 등 여러 신체 부위들과 관련된 이런식인풍습은 "사회 주변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가장 존경받는 집단 내에서도 시행되었다"(Gordon~Grube 1988: 406~407).7 따라서 스페인인들이 1550년대 이후 원주민들에 대해 느꼈던 새로운 공포는 단순히 문화적 충격에서 기인했다고 보기가 힘들다. 이는 오히려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만했던 식민화의 논리 속에 내재한 반응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 P317
스팔딩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상숭배 캠페인은 본보기형 처벌이었다. 중세 유럽의 공개적인 교수형처럼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청중들을 대상으로 교훈적인 공연을 펼치기 위한것이었다(같은 책 : 265). 이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죽음의 공간"16을 만들어 내는것이었다. 이로써 잠재적인 반란자들이 공포에 마비되어 공개적으로구타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시련에 맞서려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 지점에 있어서 스페인인들은 부분적으로 승리했다. 고문과 익명의비난, 공개적인 굴욕 앞에서 많은 유대와 우정이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들의 신이 힘을 가졌다는 신념이 약해졌고, [지방신에 대한] 숭배는 정복되기 전처럼 집합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은밀한 개인적 행위로 변해갔다. - P327
스페인인들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들은 여성혐오적 신념을 주입하여 남성들에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경제 및 정치권력을 재조직했기 때문이다. 전통 족장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토지를 인수하고, 공동체의 여성구성원들이 토지와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이로 인한 고통 역시 감내해야 했다. 따라서 식민지 경제 내에서 여성들은 (엔코멘데로스, 성직자, 식민지대리인들을 위해) 하녀로 일하거나 공작소의 직조공으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남편들이 광산에서 강제노역]미따 일을 할 때(사람들은 이 일죽음만도 못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들을 따라가야 하기도 했다. - P329
유럽인들의 환상 속에서 아메리카 그 자체는다가오는 낯선 백인을 유혹하며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신의 여성이었다. 때로 "인디언" 남성들 스스로가 경제적 보상이나 공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 여성 친족들을 사제나 식민자들에게 바치기도 했다. - P330
이런 기록들을 살펴보았을 때 라틴아메리카 혁명군들이 캘리번의어머니인 마녀 시코락스가 아니라 캘리번을 식민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캘리번은 주인에게서 배운 언어로 주인을 저주하는 방식으로만 주인에게 맞설 수 있다는 점에서, 반란에 있어서는 "주인의 수단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캘리번은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신의 해방이 강간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있고, 자신이 신으로 숭배하는 신세계의 일부 기회주의적 백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주도로 성취될 수 있다고 믿게 될 가능성이 있다. 대신 "달을 통제하고, 조수간만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녀 시코락스(『템페스트』, 5막 1장)라면 아들에게 대지, 물, 나무, "자연의 금고" 같은 지역적인 힘과 공동체적 유대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도록 가르쳤으리라. 고난의 수 세기를 거치면서도 공동체적 유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해방투쟁에 자양분을 공급해 왔고, 이미 어떤 약속의형태로 캘리번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 P334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확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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