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말에 각지에 다양한 반역단이 잇따라 나타났으나 수왕조가무너진 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당(唐)이라는 새로운 왕조였다.
당나라의 이씨(李氏)는 수나라의 양씨(楊氏)와 마찬가지로 북주(北)팔주국의 하나다. 선비색이 짙다는 점에서도 아주 꼭 닮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수나라를 대체한 당나라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수는 38년도 존속하지 못했는데, 당나라는 290년이나 이어졌다.
태생은 꼭 닮았으나 수와 당은 등장하는 방법이 달랐다. 수나라는 북주(北周)라는 기성(成) 왕조를 찬탈하고 남조(南朝)를 공격해서 천하를통일했다. 수의 등장에는 천하에 반역단이 횡행한 배경이 없다. 하지만당나라는 반역단이 천하에 가득한 시대를 무대로 탄생의 울음소리를 울린 것이다. 그러나 그 정권 안에 반역단의 흔적이 거의 없는 것은 후한이나 위·진(魏晉)의 경우와 비슷하다. 굳이 말한다면 당나라 창업 공신 - P64

에 이적(李勣, 옛 이름은 서세적(徐世勣))과 울지경덕(尉遲敬德) 같은 반역단의성격을 띤 인물이 있다는 정도다. 이것 말고는 수나라와 다른 점이라고크게 꼽을 만한 것은 없다. - P65

황태자(건성)께서 만일 징(徵, 위징)의 말을 따랐다면, 반드시 오늘의 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징의 말‘이란 다름 아닌 세민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대답이니 패자로서 대담무쌍한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징은 이 말을 입에 담은 이상 분명 죽음까지 각오했을 것이다. 하지만태종은 위징을 용서하고, 첨사주부(詹事主簿, 동궁의 도장을 관장하고 공문서의 타당성을 검열하는 종7품 관리)에 임명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인물, 그런 사람은흔하지 않다. 태종은 여기에서 그런 인물을 발견했다. - P140

태평공주의 죽음으로 여성의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권은 크게 신장하여 당대(唐代)의 여성은 다른 시대의 여성에 비해 당당해보인다. 한대(漢代)의 미인은 조비연(飛燕)처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가볍고 가냘픈 것이 이상이었다. 반면 당대의 미인 조건은 좋은체격이었다. 이 시대의 그림이나 당삼채(唐三彩)에 등장하는 여성을 보면대개 통통하게 살이 쪘다. 양귀비도 체격이 좋았다. 무측천도 태평공주도 아마 체격이 좋았을 것이다. 이 시대의 여성은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탔다. 그전까지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안장에 옆으로 걸터앉았다.
이것도 이 시대 여성의 기질을 말해 주는 풍속일 것이다. - P229

이백의 죽음으로 성당(盛唐)의 시는 사라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성당시의 배경이 된 시대는 지나가고 뒤에는 상처투성이의 산하만이 남았다.
왕유는 미처 달아나지 못했지만, 두보는 도망가던 도중에 안록산군에게 붙잡혀 장안에 연금되었다. 머지않아 그는 그곳에서 다시 탈출해 황제의 행궁이 있는 봉상(鳳翔)에 도달한다. - P279

두보는 이백과 나란히 성당의 2대 시인으로 불린다. 이백은 확실히 성당의 시인이었을지 모르지만, 두보의 뛰어난 시는 대부분 안사의 난이후의 것이라 역시 성당의 사람은 아니다.
두보는 오히려 다음 시대를 연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의 국운이 계속 기울고 있었다. 이후에 중흥이라고 부르는 시대도있기는 했으나, 무측천시대부터 개원(開元)에 이르는 그때의 전성기로 다시 돌아간 적은 없었다. 상처투성이의 산하를 직시하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두보 이후의 시에서는 일종의 사회(社會派) 같은 요소가 느껴진다.
그런 느낌이 가장 농후했던 사람이 백거이(白居易)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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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08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그동안 위지경덕으로
알고 있었는데, ‘울지‘가 맞는
표현이고 하네요.

건성의 참모 위징은 춘추시대
공자 규를 모시던 관중 같은
존재였나 보네요.

이백과 두보의 시가 그 결이
다르다고 배웠는데, 저는 개인
적으로 후자가 더 마음에 드
는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7-10 09:22   좋아요 1 | URL
저는 위징은 생각할수록 놀라워요. 건성을 왕으로 모시려고 주장했었는데 후에 태종이 그를 참모로 쓰는 걸 보면. 위징도 놀랍고 태종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

이백은 참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더라구요. 그래서 시의 양도 많지만 다양한 시를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백거이 시가 좋더라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