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온 이래 가장 최신의 흥미로운 페미니즘 이론은 신물질주의 페미니즘(new materialist feminism)이다. 이 새로운 이론에서는 실체적인 물질성이 핵심을 이루고, 과학과 인문학이 이전 보다 많이 교차하는 특징을 지닌다. 스테이시 알라이모(Stacy Alaimo)와 수잔헤크만(Susan Hekman)은 그들이 편집한 책 『물질적 페미니즘』 (Material Feminisms)의 서문에서 페미니즘은 물질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학학(science studies), 환경 페미니
즘(environmental feminisms), 신체 페미니즘(corporal feminisms), 환경 정의, (포스트) 마르크시즘 페미니즘, 전지구화 연구, 문화연구 둥둥, 모든 분야에서 물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질에초점을 맞춰야만 ‘몸을 가진 존재‘의 경험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고, 이원론적 사고(자연/문화, 과학/인문학)를 극복할 수 있으며, 드디어 인간 너머를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라이모는 이를 "초-신체성"(trans-corporality)라고 부른다. "초신체성‘이란 생명체와 물질이 내/외부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흔적을 찾기 어려운 더 큰 흐름 속에서 모든 종들이 내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예외성을 부정한다.
여성 소설이 소설이라는 장르와 ‘모호하지만 유의미한‘ 관계를 갖듯이, 페미니즘 이론과 여성 소설 사이에도 똑같이 ‘모호하지만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여성 소설가와 페미니즘 이론가들 모두 주변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탓에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들이 정체성, 몸, 본질주의와 같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주변부나 경계에 선다는 것은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중심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쥘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그런 위치야말로 바로 ‘여성성‘의 특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변성이 갖는 이중적 이점은 20세기 여성 소설가들과 페미니즘 이론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 P21
페미니즘의 제1물결을 위와 같이 1860대에서 1920년대에 나타났던 운동으로 받아들인다면 왜 페미니즘이 갑자기 정치적 현장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유가 자본주의와 산업화라는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중산층 여성들이 가정의 영역 안으로 갇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올리브뱅크스(Olive Banks)는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19세기 중반 서구 페미니스트의 출현은 당시 복음주의 기독교, 계몽주의 철학,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논하고 있다 (Faces of Feminism 7-8). - P35
"여성은 수세기 동안 남성을 실제보다 두 배로 확대해 줌으로써 그들의 기분을 돋구어 주는 요술 거울 역할을 해왔다." "여성이 열등하지 않았다면 남성 확대하기를멈췄을 것이다"(37)고 말한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울프는 남성 작가들의 소설에서 여성 인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 인물들은 "매우 다양하여, 영웅적이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하며, 찬란하기도 하고 야비하기도 하며, 무한히 아름답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남자들만큼 위대하기도 하고, 더러는 남자들보다 더욱 위대하다" (45)고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양분되는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실제로 그리 다양하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런 양극화된 고정관념 즉, 아름답고, 덕스럽고, 천사 같은 여자 주인공과, 못생기고, 사악하고, 악마같은 여주인공 사이에는 우리가 읽고자 하는 여성성의 다양한 버전을 위한 공간이 없다. - P43
보부아르가 꿈꾸는 여성해방은 여성이 남성의 열등한 타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타파하고 평등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여성은 집밖에서 경제성 있는 일을 하거나, 결혼을 폐지하거나, 사회가 자녀양육을 제공하거나, 출산에 대한 혜택, 낙태권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는 남녀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배와 굴종의 관계는 상호성의 관계로 대체되어야 한다. "인류 반을 노예화했던 제도와 그에 수반되는 위선적 사회시스템을 모두 폐지할때 비로소 인류가 남녀로 나뉘는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되고, 둘은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741)고 말한다. - P47
사람에 따라서는 울프가 경제적 독립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경제적 자유와 헌법적 자유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잔의 상황을 보면, 여성이 돈을 벌고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여건이 되지는 않는다. 울프가 말하는 1년에 500 파운드(요즘 시세로 말하면 약 25,000 파운드)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말인데, 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19호실로」에서 분명한 사실은 수잔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아이를 키우는 수잔의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 P51
수잔은 결혼 전,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매슈처럼 살았었다. 좋아하는 직장이 있었고, 자신의 아파트, 돈,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여성이 된다"는 것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받아들이며, 매슈의 "타자"가 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매슈가 밖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오면서 가정의 가부장이 되는 반면, 수잔은 그 나머지 책임들, 아이들과 집안을 떠맡게 된다. 여성과 남성의 일터가 분리되지만 평등하고 상보적이라는 말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수잔의 지위는 열등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그녀를 온전히 실현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P52
보부아르는 마르크스 이론을 따라서 대부분의 결혼은 경제적인 결합에 불과하고, 합법적인 상속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목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3장). 레싱도 간통이 단순히 섹스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간파한다. 매슈의 첫 바람은 그저 "식상"하고 "사소하고" "불가피한" (357) 것으로 묘 - P53
사된다. 결혼은 이전과 "다른 국면" (357)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두사람 다 매슈의 바람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수잔은 자신도 애인이 있는 척 꾸미게된다. 그러나 자신의 거짓말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수잔은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매슈와 수잔의 관계는 수잔이 원하는 대로 절대로 변화할 수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 P54
오스틴이라는 하나의 예외가 울프의 일반적 규칙을 무너뜨리지는 않겠지만, 울프가 지난 세기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가부장적 판단을 스스로 흡수했다는 느낌이 든다. 울프는 여성의 글이 적고 열등한 이유가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했던 불이익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 여성의 글이 실제로 드물고 열등함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울프는 예외적인 여성작가를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방』의 처음 부분에서 남자들이 예로 들었던 여성작가들 정도다. - P55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레싱의 「19호실로」를 함께 읽는다면, 진짜로 평등하려면 초월을 재정의해야 하고, 초월을 늘 남성적 속성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먼저 버려야 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보부아르나 레싱 모두 ‘차이‘와 ‘분리‘의 페미니즘이 지닌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거나, 이를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한 단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Moi. Simone deBeauvoir, 211). - P71
어떤 텍스트든지 텍스트 안의 틈새, 지워짐, 압박점을 통해서 읽혀질 수 있지만, 특히 어떤 텍스트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언어적 유연성은 레싱의 가장 쓸모 있는 페미니스트적 도구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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