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확신하건대, 모든 여성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었던 불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억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P55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심리적 트라우마는 남아 있다. 여전히 지금도 외부 화장실 사용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이고 지방 도로 휴게소는 더더욱 가기가 꺼려진다. (기타 건물 공용 화장실은 그 이후 가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순간 순간 죄여오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여성들은 여자처럼 말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동시에 여성성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Cameron, 1990) - P69
나긋나긋함과 거리가 멀고 딱딱한 말투인데다가 선머슴 같이 행동하는지라 너는 왜 여자답지 못하냐는 말을 몇십 년 넘게 들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 여성상은 몇십 년이 지나오는 동안 변함이 없어서 숨이 막힐 때가 많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오늘 읽었던 부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성들은 견고한 벽을 쌓은 공간 안에서조차 완전한 안정감을 누리지 못하고, 언젠가는 들킬지 모르는 일기를 쓰는 사람처럼 나와 다른 여성을 검열한다. - P59
불안 감정의 주체는 ‘권력 부족이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Barbalet, 2001). 내가 모자라거나 취약하기 때문에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구조가 나의 취약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P60
현재 여성들은 소셜 미디어의 어포던스를 이용해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주요한 과업인 ‘차별의 경험 말하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지각 획득‘(Mackinnon, 1989; Rich, 1986)을 달성해나가고 있다. 여성들은 경험 말하기와 감정 공유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 내의 억압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며, 인식의 기본틀을 마련할 수 있다.(Gautam, 2012). 이것이 불안의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억압의 이해, 개념화, 인식의 과정에 ‘불안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63
최소한 여성 관련 이슈에 있어서, 한국의 주류 미디어는 의제 설정 역할은커녕 역사의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한다. - P64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연결 행동을 연구한 학자들은 나의 느낌이 스스로 하는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해준다. 네트워크화된 사회 내 정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참여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참여가 유의미하다고 느끼는 개인의 감각으로, 분산된 개인들의 서로 다른 강도와 종류의 참여 행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Bennett& Segerberg, 2013) - P66
성별은 커뮤니케이션 불안의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 변수 중 하나다(AbuRabia, 2004). 말 한번 잘못 했다가 신상이 털리고, 커리어가 중단된 수많은 사례를 지켜보면서 여성들은 ‘반드시‘, ‘당연히‘와 같이 불안을 일으키는 비합리적, 당위적 사고(Ellis, 1995)를 학습한다. - P69
미러링을 여자처럼 말하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시장과 맺어온 불안의 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별러온 수용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거부감이 이렇게 심한데, 수용 가능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이 맞는가?‘라는 가상의 질문에 미리 대답을 해두자면, 이 질문은 언어 시장의 수요자를 남성 일반으로 한정하는 오류와 더불어 언어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는 여성 청자의 존재를 치워버리는 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 P71
여성들은 두려움에 얼어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불안과 함께 말하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싸우기를 선택했다. 여성의 불안은 젠더 권력의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여성들의 싸우기는 계속될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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