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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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라는 제목을 보고 아르테미시아라는 화가를 이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의 의미로 정한걸까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묘비명이라고 한다. 알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이유보다 제목이 잘 선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테미시아 하면 으레 떠올리는 대표작이 있다. <유디트> 시리즈. 나는 그 중에서도《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보고 어딘가 낯선 느낌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지만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을 때 우피치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던 것이다. 수면 위에 잠자고 있다가 기억이 떠오른 것. 우피치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은 사실 보티첼리의 <봄>이나 카라바조의 그림들, 라파엘로의 <성모 승천> 등이지만 나는 아르테미시아의《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보고 당시에도 강렬한 느낌을 받아서 기억 속에 박혔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그 때 한국어판 도록을 샀었는데 확인해보니 그곳에도 이 작품이 들어가 있어 반가웠다. 이건 마치 운명이랄까. 소름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아르테미시아 개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만 담겨져 있지 않고 당시의 환경에서 활동한 다양한 작가들과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시기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마치 당시를 여행하듯 탐사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다양한 여성 지식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당시의 환경 속에서 남성 지식인들에 대항하여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역사와 예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외국인 이름들이 줄기차게 나오는지라 너무 그 이름에 의식하다보면 힘들 수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는 센스를 발휘하기를 권고한다.


이쯤에서 그녀의 개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녀는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그림을 도와주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재판정에서 자신이 당했던 수치를 밝혀야 했다. 아버지의 동료라는 작자도 열받지만 나는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1620년 이후에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둘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던 게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얼마 전 <완전한 이름>을 읽으면서 생각한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서사에 함몰되어 그녀의 작품에 정작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녀는 예술가이자 화가이다. 개인사가 극적이라고 해서 그것에 주목하다보면 작품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그녀의 개인사보다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책에는 다양한 그녀의 그림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직접 보고 오롯이 느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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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27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녀의 그림 너무 훌륭한데 그녀의 삶의 서사에만 집중하고, 또 <유디트>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도 갖고 있는 책이예요!

거리의화가 2022-06-27 21:49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이야기보다는 예술가니까 그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양한 작품이 많으니 좀 더 그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책 역시 좋았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보여주고 또 당시의 사회상도 알려주어서 좋았습니다^^

희선 2022-06-28 0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르테미시아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밑에 그림 다른 데서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고도 잊어버렸겠지요 아르테미시아를 말하는 책이 이게 처음은 아닐 텐데... 한번 보고 잊어버리면 다른 걸로 만나도 괜찮겠지요 거리의화가 님은 저 그림을 실제 보셨군요 보고 기억에 남았다니... 그 사람 삶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그림이나 글도 중요하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5   좋아요 4 | URL
아마 희선님도 한 번쯤은 본 그림일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본 그림을 책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개인의 삶이 승화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파랑 2022-06-28 06: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글에서 자주 보던 그림이군요~!! 역시 예술의 영감은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님의 닉네임에 딱 어울리는 책이군요 ^^

거리의화가 2022-06-28 07:47   좋아요 4 | URL
ㅎㅎ 10년 전 그림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 신기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느낌이었던 거겠죠. 아르테미시아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만날 수 있어 좋은 책이었습니다^^*

mini74 2022-06-28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름 전문화가로서 운영도 잘 하신거 같아요. 저도 리뷰 남겨야 하는데 ㅎㅎ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죠 ~

거리의화가 2022-06-28 16:08   좋아요 2 | URL
지난 번에 올리신 게 리뷰 겸 올리신 거 아니에요?ㅎㅎ 미니님 글 읽으면서 이 책 찜했던 기억이 나네요~^^ 유익했던 책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