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6시쯤 나와서 동네 산책을 했다.
토요일에는 햇볕이 나서 그나마 뽀송했는데 일요일은 후텁지근해서 끈적끈적하니 별로였다.
물론 막상 걷고 나니 기분은 좋았다~
점점 더워지니 아침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건지 사람들이 많아짐을 느꼈다.
오늘 아침 출근길도 습기 가득한 바람이 불고 끈적대는 공기에 불쾌지수가 저절로 높아진다.
주말까지 연이어 3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연구서라 하루 종일 읽어야 했지만 나머지 두 권의 책은 짧아서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세 권의 책들이 모두 성격이 다르다.
한 권은 워낙 유명한 소설인 <프랑켄슈타인>
다른 한 권은 <여기, 아르테미시아>
마지막은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은 6월에 읽을 책으로는 더 없이 적절한 책이었다. 지난주에 읽은 <와다 하루끼의 북한현대사>에 연이어 읽으려고 했던 의도였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여기, 아르테미시아>의 주인공인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모두 선구안을 지닌 인물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작가와 화가로 직업도 다르고 살았던 시기도 다르지만 머무르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조건이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고 도전 의식을 가지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역사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사건도 수없이 일어나는 마당에 한낱 개인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묻히기는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틈새를 조금씩 깨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온다.
어른들이 보내는 메시지란 그 인터넷에 떠도는 시나 좋은 문장이 적혀 있는 이미지 그런 것이다.
어쨌든 무응답은 아닌 것 같아서 답장을 보낸다.
헌데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기계적으로 응답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쳐서 민망함이 일 때가 많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하는 생각은 드는데 나는 살가운 표현이 너무 간질거려서 무뚝뚝함으로 흐르기만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