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시집을 읽는다.

시라는 것을 잘 모르고 읽어도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가 많지만

때로 그려지는 문장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중 먼저 바람 세트를 꺼내들었다.

조금 더 있으면 바람이 불지 않는 쨍쨍한 날만 지속되는 여름이 될 테니까.

여전히 바람이 부는 지금의 날씨에 어울릴거라는 생각을 하며.


첫 시작은 윤동주다.

정지용 시인이 쓴 발문을 읽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비장함을 가지게 된다.

시인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통과하는 시인이라는 건 어떠해야 하는가.

시라는 것이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건가.

1941년 9월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조선임전보국단이 만들어진 후 많은 문학인들이 여기에 가담했고 변절의 길을 걸었다.

그들을 온전히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두둔하기도 어렵다.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기능만 하면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문학의 기능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한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1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다.


아직 초반이지만

인물의 섬세함을 잘 살린다고 해야 할까.

좋은 느낌이다.


올리브의 강인함은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사회화되기 이전 나는 규약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간이었다.

그저 시키는 것을 따라하는 로봇 같은 삶이였다고 할까.

읽고 있자니 일단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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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04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윤동주 시는 읽을때마다 뭉클해집니다.ㅠㅠ 올리브 볼수록 마음이 끌리는 인물이지요 ~

거리의화가 2022-05-04 17:29   좋아요 1 | URL
윤동주 시인의 시는 유독 비장한 마음으로 읽게 되요. 마지막을 알고 있어서 그의 시를 온전히 그 자체로 보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구요ㅠㅠ
올리브 아직 초반이라...ㅎㅎ 참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강단있고 당차고. 그가 노년이 되기까지 얼마나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어려웠을지 초반만 봐도 알겠더라구요ㅜㅜ

바람돌이 2022-05-05 0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윤동주 시인의 시는 전 늘 좀 애틋한 마음으로 읽었는데요. 그게 우리 딸이 중1때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고 이 사람은 왜 자기 얼굴을 밉다고 할까? 하면서 너무 진지하게 시인이 못생겼나보다라고 했던게 자동으로 떠올려져서 약간 코믹하게 되어버렸달까요? ㅎㅎ
올리버 키트리지는 보면 볼수록 메력적인 할머니입니다. 저는 저도 이렇게 좀 멋지새 늙을 수 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단 자식과의 관계만 빼고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5-06 18: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따님 귀엽네요^^; 그럴수있죠. 왜 자기 얼굴이 미울까 생각해보는 것~ 저는 윤동주 시집을 여러 차례 읽었는데 영화 동주 보면서 또 느낌이 더 좋게 된 케이스예요. 시가 영상화가 되니까 더 좋더라구요~
올리버 키트리지 아직 초반만 읽어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수 없지만 첫 느낌은 좋았어요.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저도 잘 늙어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늙는게 잘 늙는 것일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책읽는나무 2022-05-05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화가님의 완독하실 감상이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거리의화가 2022-05-06 18:09   좋아요 1 | URL
네 올리브 다 읽고 나서 감상 후기 올리도록 할게요. 어떤 느낌일지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scott 2022-05-06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벽에 오래 도록 새겨 두고 싶은 구절 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영상도 추천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06 18:12   좋아요 2 | URL
와. 스콧님~ 저도 저 구절이 젤 좋더라구요. 윤동주 시인 시집의 대부분의 시들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만 그 중 마지막에 읽었던 시를 올려봤어요~^^;
올리브 키터리지 영상 말씀하셔서 찾아봤는데 2014년이군요^^ 오~ 책 읽고 영상도 함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