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가치도 권력관계의 표현이라는 것에 동감했다.
웬디 브라운이 말했던 구절이 떠올랐는데 서구 정치는 남성 권력의 지배 체제 안에서 굴러온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거나 변함없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아름다움에 목을 맨다.
과거 여성들이 집안 살림에서 벗어나 사회로 걸어나왔지만 그 대신 얼굴과 몸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나오미 울프의 마지막 말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과 권력과 기회를 누리고 법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데, 신체적으로는 해방되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 세대보다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 P30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 체계다. 모든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적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원을 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 P34
아름다움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구조와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P35
제약과 금기, 억압적인 법의 처벌, 종교적 명령, 임신과 출산의 노예화가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대신 그것이 해방된 여성의 얼굴과 몸에 그 모든 것을 가했다. - P39
원래 철의 여인은 중세 독일의 고문 도구였다. 인체 형상의 관에 미소 짓는 젊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팔다리와 이목구비가 그려진 것인데, 불운한 희생자를 넣고 천천히 뚜껑을 닫으면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굶어죽거나 그 안에 박힌 쇠못에 찔려 죽었다. 여성을 가두거나 여성 스스로 갇히는 현대의 환각도 똑같이 엄격하고 무자비하며, 완곡하게 채색되어 있다. 오늘날 문화는 철의 여인의 이미지에 관심을 돌리면서 현실에 있는 여성의 얼굴과 몸을 검열한다. - P41
철의 여인이라는 환각과 나란히 또 다른 환각도 일어났다. 못생긴 페미니스트라는 캐리커처가 부활해 여성운동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러한 캐리커처는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19세기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 P42
한 세기 전에는 노라가 인형의 집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고, 한 세대 전에는 여성이 온갖 기기로 가득 찬 소비자 천국인 고립된 가정에 등을 돌렸는데, 오늘날에는 여성이 갇혀 있어도 박차고 나올 문이 없다. 오늘날 맹위를 떨치는 아름다움의 반격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심리적으로 고갈시킨다.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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