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에 눈을 뜨면 <신영복 평전>과 만화 <중쇄를 찍자>를 교대로 읽고 있다.
뭔가 골치가 아프면 만화부터 먼저, 컨디션이 좋아도 당연히 만화부터 먼저 손이 간다.
정말 좋은 건 아껴야 하는 법이니까!
책 속의 체계적이고 상세한 역사의 흐름도 기가 막히지만
평전에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너무 좋다.
중학교 1학년 때 신년식이 끝나고 담임 선생이 반의 모든 학생에게
각오를 한마디씩 하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령이 붙어"숙제 잘하겠습니다" "심부름 잘하겠습니다" 등
몇 개의 각오로 압축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거침없는 리듬을 끊은 친구가 나타났다.
"저는 각오할 게 없는데요?"
각오를 댈 것을 다그치는 선생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면 그만인 것,
굳이 1월 1일이라고 무엇을 각오하라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신영복은 그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신나게 리듬을 타고 '숙제' 아니면 '심부름'을 댔던 나로서는
뼈아픈 후회로 남았습니다.[담론]
<중쇄를 찍자>는 5권째인데 책과 관련한 기가 막힌 구절이 나온다.
책에는 경의를 표할 것! 남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물건이니까.(182쪽)
'책은 남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물건'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그 말을 한 책방 주인 카와는 중년여성인데, 어릴 때부터 활자중독에
아이돌보다 불상을 좋아하고 꽃무늬보다 카무플라주와 줄무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카와는 늘 혼란스런 중에 책을 읽다가 책을 통해 인생에 안착했다.
엊그제 알라딘의 신간소식에서 제목과 저자만 보고 바로 주문한 책이 한 권 있다.
박홍규의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띠지에 실린 저자의 얼굴을 보니 더욱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