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슈 장 3 - 아빠로 태어나기
필립 뒤피 외 지음, 황혜영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인생의 잡동사니를 정리해야 할 때'는 <무슈 장> 3권 에피소드 6의 제목이다.
생각지도 않은 아이가 생기고, 애인의 채근으로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구닥다리 침대를
친구에게 물려주고 새로 구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장 앞에 침대를 버렸다고 힐난하는
조부모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뿐 아니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의 벽 선반에서 수동타자기 등이 담긴 전 주인의 상자가 발견되는데
자신의 짐도 박스째 쌓아놓고 사는 형편이면서 장은 그 찌그러진 상자를 버리지 못한다.
어느 날은 벽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홀린 듯 들어가, 몇 달 전에 죽은 그 상자의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와 그것을 저버리는 것에 대한 주인공의 죄의식.
타인에게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한 순간이 담긴
소중한 추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보통때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는, 도무지 '의견'이라는 것이 있는지 싶은
우유부단한 장에게도 사람에 대한,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의가 있다.
장에게 빈대 붙어 사는 것같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펠릭스도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적잖은 금액의 유산을 포기한다.
조부모가 전쟁 때 유태인 장사를 해서 번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집도 절도 땡전 한푼도 없는 주제에.......
--노력하며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멋지게 사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노력했다. 가끔은 순간적으로 삶이란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게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렇게 숨 쉬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런 걸 공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58쪽)
무슈 장이 애인과 아이와 새 인생을 시작하는 건 좋았지만
소굴과도 같은 그 낡은 아파트를 떠나는 건 너무나 아쉬웠다.
앉으나 서나 자살을 생각하고 결행해 보이는 위층의 노인이나,
세입자들의 우편물을 정리하여 전하는 것이 유일한 자부심이던 뚱땡이 수위 풀보 부인도
분명 그러하였으리라.
수위 자리를 잃을까봐 노심초사한 나머지 밤마다 혼자 텔레비전 앞에서 폭식을 하며
뱃살을 줄이는 벨트 광고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풀보 부인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괴로웠다.
무슈 장을 비롯하여 특출하거나 매력적이긴커녕 평범하거나 어쩌면 좀 모자라 보이는 인물들이
시시껄렁한 에피소드 별로 가볍게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것 같지만
장의 엉거주춤한 사유와 느린 행동 방식이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세입자들 괴롭히는 게 취미인 심술궂고 괴팍한 풀보 부인까지 귀엽게만 보였으니......
무슈 장 2, 3권을 선물해주신 블루 님, namu 님 두 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