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이 찾아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창밖에는 스산한 바람

보름달이 방충망에 걸려 있다

이 밤이 너에게도 가 있다는 건

지금 내가 해본 말이다

젊은 날 우리의 애인은

예쁘기도 했었다

밤은 왜 날마다 찾아왔느냐

술집 문이 닫힌 골목은 길었고

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잠이 달아난 밤에 접어두었던

옛사람의 글도 이젠 그만 펼치고 싶어진다

安貧樂道도 사람을 가리고

한 개뿐인 술잔을 엎어놓은 지도

꽤 되었다.

내게 벗이 있어

만나면 또 헤어질 터

무엇이 차고 무엇이 비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중 한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뜨니

남은 사람이 그런 걸 기억하고

늦은 밤 창문을 닫고 돌아서리라


                                                       --우영창 시집 <사실의 실체>  2006년, 세상의 아침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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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 그런 걸 생각하면  /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자신의 가난이나 고독에 대해서 대놓고 자꾸 들이대면 외면하고 싶다.
물론 취향의 문제이다.
입만 열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취향, 그런 걸 싫어하는 것도 어쩌면 가소로운 취향.

누가 더 가난한지, 누가 더 고독한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말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기막힌 사정을 생각한다.

'사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에 이르고 보니
모든 것이 가소롭고, 또 애틋하다.

(**아참,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나 고독을 관념적으로만 바라보거나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처리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오해하고 마음 상하실 분이 있을 듯하여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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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기 처음 와 봅니다.
몇 군데서 님을 뵈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인사는 처음 드리네요.
어젯밤의 제 마음의 빛깔이 여기 담겨져 있네요...

로드무비 2006-08-1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반갑습니다.
저도 여기저기서 님의 이름을 마주쳤던 듯.
시 가끔 올립니다.
좋아해 주셨으면......^^

2006-08-16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6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제 스스로가 가소롭고 애틋할때도 있답니다....ㅠ.ㅠ

2006-08-16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ndcat 2006-08-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샀답니다. ^^

로드무비 2006-08-1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캣님, 잘하셨어요.^^
어느 시를 올릴까 한참 망설일 정도로 마음에 드는 시가 많았답니다.

마음은 한글창에 님, 저도 뭐 꼭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잠시 들어오고
서재활동이 여의치 못합니다.
제목이 좋은데요? 그런데 무신 뜻인지......
마음 내키시면 저도 한 번 보여주세요.
제가 좀 독선과 아집은 있는 사람이지만 또 아주 객관적인 데가
있걸랑요. 헤헤~~
나중에 시간 날 때 님 방에 들를게요.
우리, 막바지 무더위도 거뜬히 물리치자고요.^^

건우와 연우님, 전 제가 가소로울 때가 더 많아요.ㅎㅎㅎ

뜨거운 커피님, 전 님이 먼 곳에 계신 줄 몰랐어요.
말씀하신 페이퍼(리뷰) 찾아서 읽어봤고요,
새삼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오래 전 제가 그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읽어보셨는지?
어쩌면 제가 닫아버린 서랍 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님의 댓글 보고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괜히 웃음도 나고 님, 맞아요.
세상에서의 모든 분주한 움직임도 알고보면 벗을 구하는 일에
다름아닌지도.......
나이도 상관없고요.
마음이 휑했다가 또 알수없는 의욕에 불타고.
사실 그런 날은 점점 줄어듭니다.
자기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항상 뒤통수로 느껴집니다.
그것만 없어도 좀더 자유롭고 즐겁게 살 텐데.
그나저나 주소 좀 가르쳐달라니까요.
이사가신 것 같아서.^^


2006-08-17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7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