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이 찾아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창밖에는 스산한 바람
보름달이 방충망에 걸려 있다
이 밤이 너에게도 가 있다는 건
지금 내가 해본 말이다
젊은 날 우리의 애인은
예쁘기도 했었다
밤은 왜 날마다 찾아왔느냐
술집 문이 닫힌 골목은 길었고
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잠이 달아난 밤에 접어두었던
옛사람의 글도 이젠 그만 펼치고 싶어진다
安貧樂道도 사람을 가리고
한 개뿐인 술잔을 엎어놓은 지도
꽤 되었다.
내게 벗이 있어
만나면 또 헤어질 터
무엇이 차고 무엇이 비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중 한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뜨니
남은 사람이 그런 걸 기억하고
늦은 밤 창문을 닫고 돌아서리라
--우영창 시집 <사실의 실체> 2006년, 세상의 아침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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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 그런 걸 생각하면 /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자신의 가난이나 고독에 대해서 대놓고 자꾸 들이대면 외면하고 싶다.
물론 취향의 문제이다.
입만 열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취향, 그런 걸 싫어하는 것도 어쩌면 가소로운 취향.
누가 더 가난한지, 누가 더 고독한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말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기막힌 사정을 생각한다.
'사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에 이르고 보니
모든 것이 가소롭고, 또 애틋하다.
(**아참,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나 고독을 관념적으로만 바라보거나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처리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오해하고 마음 상하실 분이 있을 듯하여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