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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문화 - 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로의 산책 ㅣ 서울문화예술총서 1
김중식.김명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서울의 밤문화>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머릿속으로는
한때 시궁쥐처럼 들락거렸던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주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자고 "밤문화 = 주점"으로 자동연결되어 버렸을까.
그런데 서울의 밤문화는 술, 혹은 향락산업과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빛 모서리>의 시인 김중식이 공동 필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래 전 우연히 시인과 잠시 공유했던 밤의 문화가 떠올라서.
어느 날 성대앞의 시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시인들의 시낭송대회가 끝나고
모 주점에서 열린 뒷풀이 자리에 김중식 시인이 참석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시인들의 시낭송은 기억에 없고, 신xx 시인이 그 주점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른 <약속>이라는 노래만 한 곡 달랑 귓가에 남아 있다.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곡이었는데......
어느 하늘 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 밑 억세게 황량한 들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그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지는 그런 곳이면 좋아
거기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이 반가워지면 좋아 음--
때로는 유행가가 시보다 더 절실하게 마음속에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그날 밤이 그랬다.
각설하고 결론을 말하면, 내가 기대한 김중식 시인이 맡은 2부 "현대 서울의 밤문화"는
조선일보 김명환 기자가 담당한 1부 "근대 서울의 밤문화"에 훨씬 못 미쳤다.
책 속이든 활동사진이든 근대 풍경이라면 넋을 잃고 보는 나의 취향을 감안한다고 해도
시인 고유의 감성은커녕 꼼꼼한 취재가 뒷받침된 것도 아닌, 평이한 글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기생의 기원부터 권번 기생들이 창간한 그들의 애환을 털어놓은 잡지 <장한長恨>,
그들이 가정 파탄의 주범으로 몰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온 '기생 여급과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의 태도'라는 <삼천리> 지의 기사, "가정에 섹스압필을 주어라"라는 어떤 이의 웃기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도입 부분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은 서울에 관한 담론의 출발로, 서울 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고 창조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서울문화예술총서' 제1권이다.
"거대도시 서울에 꽃핀 지난 100년간의 밤풍경"은 취지나 제목만 거창했지,
1909년 문을 연 우리나라 제1호 요릿집 '명월관'에서 현재의 룸살롱이나 주점까지
한마디로 술집 변천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그 잘난 밤의 문화는 남성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었다.
세상이 달라져서 여성들도 당당하게 밤의 문화를 주도하는 세상이 되긴 했다만
내용을 살펴보면 뭐 그렇게 신통방통할 건 없다.
심야영화관이나, 헬스클럽, 찜질방, 혹은 새벽까지 불 밝힌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끄는 모습 정도랄까.
노래방, PC방, 찜질방, 룸살롱 등 방(밀실)에서 이루어지던 밤문화는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함께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효순 미순 추모 촛불집회'로
광장으로 나오기에 이르렀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한마디로 "서울의 밤은 밀실과 광장의 아수라백작"(154쪽)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라도 남기지 않았으면 시인에게 아주 섭섭할 뻔했다.

본문 속의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