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락 A.E
에이미 메디건 외 출연 / 미디어 체인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에드 해리스 감독,  주연의 영화 <폴락>(2000년 제작)을 비디오로 보았다. 1940년대 미국 미술이 유럽을 제치고 주도권을 잡도록 한 주요인물 중의 한 명인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1912~1956)의 예술세계와 사랑을 다룬 영화였다.

'사랑의 고통은 그 고통마저도 감미롭다'는 말이 있지만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 대신 '창작'이라는 말을 대입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문학이니 음악이니 미술이니 등등 한 장르의 예술을 꿰차고 활동하는 사람이 호소하는 창작의 고통은 부럽기 짝이 없는 것이니까.

그리니치 빌리지의 낡은 아파트, 만삭의 형수는 주정뱅이 시동생을 쫓아내지 못해 아침부터 남편을 들들 볶고 아침 식탁에서 커피 한잔 얻어마시지 못하는 무명화가 잭슨 폴락(에드 해리스 분). 예술가들의 무명 시절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보아도 감동적이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 그 한 가지 빼고는 대부분 철저하게 무능하고 내성적으로 묘사되고, 또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구차하고 고독하게 사는 모습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어느 날, 한 동네 사는 여성화가 리 크레이즈너(마샤 게이 하든 분)가 그를 찾아온다. 소문을 듣고 그림을 구경하러. 그녀는 이 내성적인 말라깽이 남자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다. 그에게 알콜 문제가 있다는 것도 가족의 노골적인 냉대도 그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귀찮은 혹을 떼듯이 그를 남겨두고 코네티컷의 군수품 공장에 취직이 되어 형네 식구가 떠나버리고 폴록은 그녀의 아파트로 기어들어간다.

'어디에 심취할까?' '내가 숭배할 짐승은?' 그녀가 자신의 집 보드에 휘갈겨 써놓은 랭보의 싯귀대로 그녀는 자신의 그림은 내팽개치고 폴록의 손에 붓을 잡게 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페기 구겐하임과 연결이 되어 전시회를 열고 그녀의 주문을 받아 초대작 벽화를 제작하는 잭슨 폴록.  무명의 가난한 화가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페기 구겐하임은 이 영화에서 신경질적이고 섹스나 밝히는 좀 우스꽝스러운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그 점이 도리어 재미있다.


페기 구겐하임

잭슨 폴록은 윌렘 드 쿠닝 등의 화가들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그건 필요에 의한 사교행위에 불과하다. 술만 취하면 "넌 가짜야!" 라는 말이나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을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다 진탕 취하여 거지꼴로 거리에 누워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돌아와 리의 집 현관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는 그 몰골과 그 냄새를 말없이 안아준다.

결국 그들은 뉴욕을 떠나 시골 폐가를 빌려 정착한다. 어느 날, 화실로 쓰는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붓에 물감을 흠뻑 묻혀 바닥의 종이에 흩뿌리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폴록. 에드 해리스는 액션 페인팅 기술을 직접 익혀 폴록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듯한 사실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 리를 데리고 형네 집에 인사하러 갔다가 식탁에서 갑자기 베니굿맨을 크게 틀어놓고  발작하는 모습과 함께 대단히 박진감이 넘치는 부분이다.

리의 요청으로 결혼을 한 이 부부. 롱아일랜드 한적한 폐가를 개조한 집에서 잭슨 폴록의 초대형 대작들은 속속 탄생하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강경한 리의 입장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균열이 찾아오는데......

잭슨 폴록의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무의식적으로 쓱쓱 그려나가는 듯한 에드 해리스의 손끝에서 우리의 눈에 익숙한 그의 그림이 한 장 한 장 탄생하는 장면은 마술에 가깝다.

한가지 아쉬운 건 그의 고독과 절망이 너무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덜났어! 드 쿠닝은 그렇게 잘나가는데......" 하며 손님들 앞에서 술 퍼먹고 부활절의 칠면조 식탁을 뒤집어 엎는 장면에서도 그의 구체적인 절망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리가 그를 떠난 후 마을의 가슴 큰 처녀(제니퍼 코넬리 분)와 시시덕대는 생활을 하던 도중 어느 날 그는 마흔 몇 살에 술이 떡이 되어 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죽는다. 리는 그를 떠난 후 자신의 그림을 다시 찾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숭배했던 그 천재 화가를  떠나 정말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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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3-1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져요!

로드무비 2005-03-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고마워요.
님도 보면 좋아하실 영환데......^^

Phantomlady 2005-03-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록 사후 그림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뛸 때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화가의 미망인들을 보면 늘 그 생각부터 나요 ^^.

니르바나 2005-03-1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거야 말로 이 주일의 리뷰이군요.
저도 꼭 보겠습니다.

로드무비 2005-03-1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다른 페이퍼에 비해 댓글이 너무 없군요.^^;;;
스노드롭님, 화가의 미망인들은 좋겠죠?
살아선 생고생을 시키던 남편들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브리즈 2005-11-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봉했을 때 봤던 영화였어요, "폴록"은.
에드 해리스 팬인 데다가, 그가 잭슨 폴록 일대기를 영화화해 감독으로 나섰다는데, 안 볼 도리가 없었죠. ^^..
하지만 영화는 사실 실망이 컸지요. 예술가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겪는 갈등이 너무 진부하게 표현됐다고나 할까.(폴록의 내적 갈등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 와중에도 마르시아 게이 하든의 연기는 정말 좋았구요.
당시에 관객이 너무 적어서 썰렁하기까지 했던 극장이 생각나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산사춘 2006-07-30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의 삶을 그린 영화 좋아했는데(예술적 소양은 없지만 비교적 논픽션이고 대체로 주연배우들이 짱인지라) 이 영화는 나온 줄도 몰랐네요. 움, 멋진 무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