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할인행사
홍상수 감독, 성현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그제 낮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를 만나기로 했는데 집에 데리고 가면 저녁을 먹을 수 있느냐고.

  나도 몰래 빽 소리를 질렀다.

  더워죽겠고 바빠죽겠는데(사실은 알라딘 서재 돌아다니느라고...) 밖에서 먹고 오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런데 왜 신경질이야?"

  남편은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제일 앞 장면이 바로 나같은  마누라 때문에 집 앞까지 온  선배를

  현관에도 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청소를 못해 집이 엉망이니 미국 아니라 달나라에서 온 선배라도 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물론 이 영화에 그런 구체적인 대사까진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가 그의 영화에서 초지일관하여 보여주는 냉소는 섬뜩할 정도이다.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시큰둥한 말이나 내뱉으려면 도대체 왜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지

  왜 만나는지 모르겠는 그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

  이번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욱 점입가경이었다.

  도라무깡을 엎어놓은 허름한 술집과 바퀴벌레가 출몰할 것 같은 여관 역시 홍상수 감독이

  무척 선호하는 장소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나 역시 빤질빤질한 술집보다는 허름한 집이 좋다.)

  그는 도대체 그런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삶의 남루함,  아니면 비루함?

  우리는 굳이 그의 영화를 통하지 않더라도 남루한 삶을 넌더리나게 경험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심하게 표현해서 이미 태어난 몸이니 죽을 수는 없고 어찌어찌 역할을 정해놓고

  간신히 사는 흉내나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소심하고 당돌하며 어떨 땐 무모하기까지 한 것이다.

  술 마시다 느닷없이 "담배불로 날 좀 지져줘!"하고 절규하며 팔뚝을 들이미는 인간을 보라.

   더욱 웃긴 건  홍상수 감독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감독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발설하게 해놓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다짜고짜 찾아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윽박지르다 여자가 선약이 있다고 하니,

  "너 군대에서 온 사람에게 이럴 수 있니?" 하며 납치하다시피 하는 녀석이 없나.

  또 성현아를 만나러 함께 부천에까지 가자고 했는데 유지태가 거절하자,

  "너 미국에서 방금 온 선배에게 그럴 수 있니?" 하는 김태우의 대사.

  아니, 군대나 미국에서 왔다 하면 꺼뻑 넘어갈 걸로 아는 남자들의 단순함, 혹은 후안무치.

   평소에 자신도 모르고 쓰기도 하는 말들이 홍상수 영화의 옷을 입으면 얼마나 유치찬란하고

  혐오스러운 건지 관객들은 화면을 보며 깨닫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아마 이런 요인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그 썰렁한 유머를  즐기는 사람에 속한다.

  부천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유지태의 그 뻔뻔한 표정이라니! 

  아아,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남자배우를 돼지로 만들어야 속이 풀리는  심술궂은 홍 감독.

  불능의 남자와의 베드신에서 "당신은 잘 할 수 있어요. 저는 믿어요!"라고 남자 밑에 깔려 외치던 진도

 희의 영화보다 이 영화에는 더 웃기는 장면이 많았다.

  넌 좋은 교수가 될 수 있을 거야."  김태우의 덕담.

  "고마워, 형." 그리고 의미 없는 악수.

  "오늘 나랑 잠으로써 이제 너는 깨끗해지는 거야."(김태우)

  "저 신음소리 내도 좋아요?"(성현아) ...홍상수는 확실히 마초다.

  "신음 소리가 너무 예뻐요."(유지태)

 

   이 영화는 미루다가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결국 오늘 낮 우리 집 마루에서 비디오로 보았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그나마 눈 내리는 스산한 거리 풍경이 이 폭염 속에 조금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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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7-2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며칠전에 집에서 봤답니다. 두 번.
홍상수 영화가 홍상수 스타일로 완성된 느낌이었어요.
김태우, 유지태 두 지식인의 스타일이 바로 홍상수 라는 남자의 내면과 외연을 동시에 갖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죠. 여자에게서 남자들이 발견하는 미래란 것이 겨우 성욕인가 싶지만, 대학교때 그런 애들을 참 많이 봤어요. 그땐 결코 이해 못했죠. 아주 극단적인 욕을 해댔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애들의 과거(?)의 행적을 이해하였지요. 니네들 그렇게 늘 목랐니? 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만큼... 어떻게든 들어갈 곳만 찾는 남자들이란 참... 가엾더군요. 물론 보은을 베풀듯 그 곳을 내어주는 여자도 가엾구요. 그 여자, 성현아의 문제점은 그거 같아요. 유지태가 화실에 찾아왔을 때 성현아가 말하기를, "가을에 국화가 피면 마치 나를 위해 피어난 것만 같아요~호호호..." 공주병이죠. 여자들의 공주병 혹은 나르시스즘을 이용하는 남자와 자신이 정말 매력적이어서 남자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착각... 아...신이시여!!
저는 별 다섯 개 주고 싶어요. 두 번 보니까 더 재밌더라구요.
로드무비님의 영화평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저절로 추천 꾹~
사설이 길었습니다요... ^^;;

로드무비 2004-07-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위의 글은 코멘트로 달기 너무 아깝습니다.
저처럼 엽서로 활용(?)하여 보지 그러셨어요.
홍상수 영화는 사실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생활의 발견> 포스터는 2년 넘게 우리집 거실 창에 붙어 있다죠?
김상경이 어느 집 들창 아래 담배 물고 요상한 표정 짓고 있는 것 말입니다.^^
이번 영화도 홍상수스러웠지만 뭔지 조금은 양에 안 찼습니다.
겨울에 한 번 더 빌려볼까요?
추천 눌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4-10-1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던 말, 너무 싫다! 진짜 웃기다! ^^;

DJ뽀스 2005-05-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색적인 대사들이 왜그리 웃기던지요. 극장전도 기대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