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 '죽음 직전'을 선고받은 영수(황정민)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더 노닥거릴 자유, 평소 살던 대로 흥청망청거릴
유예된 시간이었다.
아침을 깨우는 제대로 뽑은 원두커피 한잔, 재즈의 선율과 함께 마시는 위스키 온더락,
실크슬립과 함께 감겨오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애인의 낯익은 향수 냄새.
고층, 통유리 창문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새벽과 아침과 정오와 늦은 오후와 저녁,
그리고 깊은 밤 저마다의 불빛으로 반짝이다 스러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그것이 설령 겉멋이며 나쁜 습관에 속한 것이라 해도......
건강과 일생의 사랑,
그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 뻔한 소중한 기회를 발로 뻥 찬다.
자신이 떠나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연인을 버려두고.
건강이 좀 회복되자 그가 다시 악착같이 기어드는 건 바로 그 소굴.
그 소굴이 언젠가 자신을 내팽개칠 거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행복>의 황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