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 '죽음 직전'을 선고받은 영수(황정민)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더 노닥거릴 자유, 평소 살던 대로 흥청망청거릴
유예된 시간이었다.

아침을 깨우는 제대로 뽑은 원두커피 한잔, 재즈의 선율과 함께 마시는 위스키 온더락,
실크슬립과 함께 감겨오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애인의 낯익은 향수 냄새.
고층, 통유리 창문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새벽과 아침과 정오와 늦은 오후와 저녁,
그리고 깊은 밤 저마다의 불빛으로 반짝이다 스러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그것이 설령 겉멋이며 나쁜 습관에 속한 것이라 해도......

건강과 일생의 사랑,
그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 뻔한 소중한 기회를 발로 뻥 찬다.
자신이 떠나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연인을 버려두고.
건강이 좀 회복되자 그가 다시 악착같이 기어드는 건 바로 그 소굴.
그 소굴이 언젠가 자신을 내팽개칠 거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행복>의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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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01-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슴아픈 얘기는 못 보는 병이 있어서...병을 고쳐야 할까요^^

로드무비 2008-01-22 13:01   좋아요 0 | URL
가슴 아픈 얘기는 못 본다고 스스로 믿는 게 어쩌면 병.=3=3=3
(산책 님, 반갑슴다.^^)

chika 2008-01-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예요.
지금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출판사가 '쿠오레'예요. 책을 집어들때부터 로드무비님 생각이 났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워요 ^^

chika 2008-01-22 13:47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왜 전 '흥청망청'이라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제목보면서 주하랑 관련된 얘기일꺼라 생각했을까요? ^^;;; (아마도... 그동안의 페이퍼가...;;;;)

로드무비 2008-01-22 14:48   좋아요 0 | URL
치카 님, 앗, 쿠오레라는 출판사가 있어요?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니 바로 저 로드무비를 말하는 것 같고.
그런데, 제 알뜰하고 살뜰한 도러와 '흥청망청'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씀인지.=3=3=3
아무튼 반갑습니다요, 치카 님.^^

chika 2008-01-22 15:18   좋아요 0 | URL
헤헤헤~
로드무비님은 항상 그 알뜰하고 살뜰하고 이쁘기까지 한 도러에게 딴엄마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잘 해주시잖아요. 전 그런 내용인줄알고요..이번엔 또 어떤 모험담(?)인가, 했거던요. ^^
- 댓글쓰고, 지금 이시간까지 회의자료준비땜에 서있었더니 다리가 막 아파요.. ㅠ.ㅠ

로드무비 2008-01-22 17:29   좋아요 0 | URL
이제 뭉친 다리 좀 풀리셨나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대의 존경이 담긴 인사랍니다.)

프레이야 2008-01-2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잘 죽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한 대 담배를 피우던 나이든 남자,
박인환이 제일로 기억에 남아요. 행복은 그런 것인가 봐요.
담배를 피우던 폐암환자 그 남자나 그 소굴로 기어들던 영수처럼요..^^

로드무비 2008-01-22 14:51   좋아요 0 | URL
혜경 님, 마지막 담배 한 모금 맛이 과연 어땠을까요?
박스 하나로 정리되는 그의 삶이 나쁘진 않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