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영감 따윈 필요없어!"라며 노년의 삶을 홀로 만끽하며 살아가는 우타코는
자신의 나이(77세)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른다.
사별 당번, 생이별 당번, 병 당번, 재난 당번 등 '희미한 그림자'(神을 지칭하는 것)가
차례로 걸어주는 인생의 간난신고를 모두 완수한 그녀의 목에는
더이상 걸려 있는 패찰이 없다.

인생의 고난도 당번을 서는 것과 같다니, 이를테면,
학교에 다닐 때 어김없이 차례가 돌아와 화장실 청소를 한다든가
학급 아이들이 마실 물주전자를 낑낑거리며 교실까지 날랐던 것처럼?
병이나 명퇴나 사랑하는 사람의 사별 등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고통도 그렇게 당번을 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앙탈을 부려봤자 소용이 없으니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선히 맞아들이라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전전긍긍하던 그 모든 일들이 '그까짓것!' 싶어진다.

남편을 앞서 보내고 분연히 일어나 쓰러져가는 집안을 일으켰던 그녀.
자식들이 함께 살자는 걸 마다하고 고급 맨션에서 혼자 사는 우타코는 맛있는 것 챙겨먹고,
철마다 예쁜 옷 맞춰 입고,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공부도 하면서
화사하고 유쾌하게 지내는데......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연애나 섹스나 결혼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우정이든 연애든 한 인간과의 사이에서 오고가는 '설렘'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타코 씨는 각자가 마음을 굳게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라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호들갑을 떨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사랑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우타코 씨를 보며 문득 생각나는 일 하나.
혈관이 약해 뭐가 잘못되어 지난달에 다시 수술을 받은 엄마는
마취에서 깬 직후 홍콩에 출장 간 내 남동생과 통화하는 아버지를 보더니
핸드폰을 달라고 했단다.

"니 홍콩 출장 갔다며?  올 때 랑콤 딱분 사온나. 다 떨어졌다."

순간 6인실의 병실에 웃음꽃이 터졌다고.
밤에 전화로 여동생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배꼽을 잡았다.
갑자기 닥친 병마와 두 번의 수술로 기운을 잃으시면 어쩌나 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던 것이다.

예쁜 옷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을 많이 닮은
우리 엄마.
우타코 씨를 만나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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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23년생인 '과천의 이야기 할머니'이학선 여사와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명성이 자자한 권남희 씨의 공동번역이다.
이학선 여사는 10여 년 전 작가 다나베 세이코(<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원작자)를 만나고
이 책을 읽으며 우타코 씨에 반해 가슴 설레며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권남희 씨는 나이 마흔을 맞으며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소설 속의 우타코 씨와
그때 일흔몇 살이었던 이학선 여사를 만나면서 우울증이라는 종기가
싹 나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공동번역인데 책 뒤에 왜 한 사람의 말만 실었는가?
권남희 씨의 이 책 소개를 읽으며 이학선 여사의 '옮긴이의 변'이 궁금해
급히 책장을 넘겼는데 허무하게도 그게 끝이었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출판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기약도 없는 가운데 
10년 전 노트 세 권에 우타코 씨를 한 자 한 자 옮겼다는 이학선 여사의 소회다.
이런 무례무신경함이라니......
이럴 때는 책을 확 집어던지고 거리로 뛰어나가고 싶다.
우라질 세상, 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성신문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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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섬 입장권은 왜 주는걸까요? 갸웃. ^-^ 로드무비님, 반가운데 딴 소리만 하네요.

로드무비 2008-01-1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치니 님 반가워요.^^
제가 이 책 살 땐 안 줬는데.
뭐 줘봤자 안 갔겠지만 그래도 궁시렁.
심술 모드.=3=3=3

2008-01-11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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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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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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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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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2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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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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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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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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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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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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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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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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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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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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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1-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 이래~ 비밀댓글들의 행렬ㅎㅎ
어머니 수술 후 몸은 좋아지셨는지요?
우타코 씨는 로드무비 님의 어머니와도 닮았고 울엄마와 시어머님과도 닮았네요. ^^
고희를 한 해 앞둔 용띠 엄마에게 사드려야겠어요.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개운한 레모네이드 같단 생각을 했드랬어요.
그나저나 이학선 여사의 소회가 저도 궁금해져요.
우라질..(이거 한번 따라해보니까 재밌네요.ㅎㅎ)

로드무비 2008-01-1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 님, 비밀댓글 궁금하세요?ㅎㅎ
그냥 소소한 대화예요.

엄마는 두 번의 수술로 많이 쇠약해지셨는데
몇십 년 간의 아침 등산이 그래도 버티게 해주는 힘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도 많이 좋아지셨지요?
'개운한 레모네이드'라는 표현이 신선하네요.
정말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우라질~ 뱉고나니 조금 시원하죠?^^

프레이야 2008-01-14 17:43   좋아요 0 | URL
몇십 년간이나 등산 다니신다니 참 좋으네요.
뭐든 꾸준히 오래도록 하는 건, 남다른 장기라고 생각해요.
울엄마는 6개월간(한달에 다섯번씩) 항암제 투여하고 1월 초, 아무 이상
없는 걸로 결과 나왔어요. 어제 노래방에 함께 갔는데 예전처럼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도 잘 부르던걸요. 어머니들, 화이팅!! 입니다.^^

로드무비 2008-01-18 12:09   좋아요 0 | URL
혜경 님 어머니와 우리 엄마가 비슷한 병으로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아무 이상 없는 걸로 결과가 나왔다니 저도 기쁩니다.
어머니가 무슨 노래 부르셨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엄마는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가 18번인데.
세상의 모든 엄마들 파이팅입니닷!
혜경님과 저도 포함해서요.^^

2008-01-17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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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1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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