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육 년 동안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던 어머니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하시며
따로 나가 사는 아들을 위해 따로 챙겨둔 물건을 건네신다
검은 봉지 속에는
칫솔 네 개
행주 네 장
때수건 한 장
구운 김 한 봉지
치르려 해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검은 봉지를 들고
흔들흔들 밤길을 걸었다
문 닫힌 가게 때문에 더 어두워진 거리는
이 빠진 자리처럼 검었다
검은 봉지가 무릎께를 스칠 때마다 검은 물이 스몄다
그늘이건 볕이건 허름하게나마 구멍 속에서 비벼진 시절이 가고
내 구멍가게의 주인공들에게서
마지막인 듯
터질 것처럼
구멍의 파편들이 가득 든 검은 봉지를 받았다
--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 창비, 2006년 11월 刊
하나같이 변변찮은 허름한 옷가지 상자를 한꺼번에 마루에 부려놓고 보니
과장해서 1톤 트럭 분량이었다.
대학 다닐 때 남포동(신창동) 옷 골목에서 사입은 고동색 모직 투피스도 끼어 있었다.
며칠 전 그 난장 속에 철퍼덕 주저앉아, 방금 도착한 모르는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그렇게 읽는 시의 맛이라니!
'거인고래' 등 몇 편의 빼어난 시가 눈에 들어왔는데,
오늘 새벽 정색을 하고 다시 읽자니 페이퍼로 옮기고 싶은 시는 따로 있었다.
검은 봉지 속의 내용물처럼 수수한 이 시.
-- 칫솔 네 개
행주 네 장
때수건 한 장
구운 김 한 봉지
'고척동 이쁜이네'를 찾아 아버지와 함께 낯선 서울의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
옛날옛날 어느 날이 생각난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사정사정하여 빌리고
1년인가 이자를 꼬박꼬박 부치다가 잠적했다는 돈의 액수도 생각난다.
영등포에서 건대 부근 화양동 뒷골목까지, 물어물어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그녀가 이사 갔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버지도, 나도, 고척동 이쁜이네도, 인생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다.
"아버지, 제발 그 돈은 잊으시지요! 그 아줌마도 오죽하면 떼먹고 달아났겠습니까!"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때 나는 대학에 갓 입학한 남동생과 함께 상경하여 고모 집 문간방에 잠시 기식하던 처지.
미우라 아야꼬의 에세이에 의하면 "아버지의 정강이를 파먹고" 있는.
딸네와 아들네가 함께 이사를 했으니 이모저모 궁금하기 짝이 없는지
우리 부모님, 이번 주에 올라오신다고 한다.
울 아버지, 얼마 전 한쪽 눈 수술을 받았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은 듯.
고속 타고 오시라 했더니 차를 몰고 오는 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부득부득 손수 운전을 고집하신다.
이번에는 또 검은 비닐봉지에 무얼 주섬주섬 담아 오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