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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
박지영 지음 / 땅에쓰신글씨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끈기 없는 나의 변(辯)
나는, 지금 잡고 있는 책이 재미가 덜하다고 느껴지면 미련 없이 덮어버린다. 이 책 잘 썼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면 ‘왜 중간에 덮지 않고 끝까지 다 봤나?’하는 질문이 생긴다. 음악과 법학을 동시에 가진 박지영이란 이의 호기심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론 그녀의 끈기(또는 노력)를 보고 싶어서 였다. 그녀는 음악가 또는 사법고시생의 끈기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그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산만큼 성과 면에서도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난 좀 거북하다.
본인은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그 성과란 것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학습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원치 않았지만 수학 경시 반에서 특별 수학수업을 듣고 있더란다. 그리고 입시경쟁에 대해 멋모르고 진학했는데, 예원과 서울예고에 있더란다.
그녀의 말로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녀의 재능이 있기에 끌려 올수 있었던 행운이지 싶다. 그녀의 재능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되면 샘난다. 자신은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피아노 연습도 맘껏 못했음을 아쉬워 하지만, 그 속에는 예술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자부심이 보인다. 공부도, 피아노도 서울대 음대에 불합격할만한 모자람이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시 내가 서울대 음대에 진학하는 이유는 나의 객관적 실력으로 우리나라에 그 이상 진학할 음대가 없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배포 없이는 대한민국에서 피아노 제일 잘 치는 34명을 뽑는 그 시험에 살 떨려서 도저히 도전장을 내밀 수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p.101~102)
서울대 불합격과 함께 재수를 준비하던 중 임파선 종양을 발견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항암치료환자의 힘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읽는 사람도 같이 힘 빠질 만큼 잘근잘근 풀어놓았다. 병문안시 원하는 것이 있단다. 뭐하고 있냐고 묻지 말고, 뭐하고 싶냐고 물어 줬으면 좋겠단다. 그 것은 필자가 과거형보다, 미래형 질문을 더 생각하는 것과 연결된다. 굳이 붙일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긴 제목 끝의 ‘Next’도 그런 연유로 붙인 듯 하다.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며, ‘왜’라는 질문은 불필요하단다. 우리 둘 다 ‘왜’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고, ‘앞으로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노라고 했다.(p. 240)
항암치료가 힘들어 중간에 포기를 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그 때부터 다시 재수 공부를 했다. 그런데, 몸이 힘들면 쉬고 몸이 괜찮으면 힘들 때까지 공부했다는 대목에서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그것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한 방법이라는데, 이건 끈기와 집착과 운이 마구 뒤섞인 것 같다. 공부에 대한 생각을 더 털어놓았더라면 이해가 쉬웠을 텐데, 아쉽다.
기차를 타고 나서 내 스스로 기차의 코스를 다른 곳으로 바꾸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처음 기차를 탈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종착역 도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의 겁 없는 도전은 새로운 목표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고 이미 세워놓은 목표를 향한 또 다른 수단에 대한 도전이었다. (p.186) 음악도에서 법학도로 옮긴 것도 사회에 대한 봉사를 위해 시작한 일이란다. 그녀는 현재 서울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 중에 제일 피아노 잘 치는 사람으로 일하고 있다. 피아노를 배울 때 깨우친 그 끈기를 가지고 말이다.
그녀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내가 찾고자 했던 것도 찾지 못했다. 과거와 지금의 삶을 재정리 해보고 다음에 펼쳐질 삶을 위해 책을 써봤다는데, 차라리 '나도 희망을 증거가 되고 싶다'쪽으로 썼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힘만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