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 <Sex and The city>를 며칠 전에 보고 왔다. 원작을 본 적은 없었지만, 워낙 유명한 터라 영화라도 봐야겠단 생각에 심야택시를 탔다. 4명의 여자 친구들의 사랑을 포함한 라이프 스타일을 스크린으로 봤다. 영화는 기대이상이었다. 허구과 허영을 논쟁치 않는다면 여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끼리도 충분히 존대 받을 수 있고, 사랑스럽다는 걸 봤다. 그리고 배드 신에 놀라는 결백증도 재발견했다. 같이 본 친구에게 너무 야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가 무안만 당했다.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친구의 표정에서 연애관의 일보가 필요함을 알았다. 야한 장면에서 만큼은 영화는 영화,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지 않고 있던 거다.

예전에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귄다고 하면 키스까지가 한계선인 줄 알았다. 넓게 봐서 약혼은 해야 섹스가 가능한 줄 알았다. 그 연애관을 올드미스 지인에게 말했다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한다”란 대답을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했다는 고백이 되는 거였다.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처녀논쟁>이란 싸이 곡에 “못생긴 게 처녀라고 말하면 병신”이란 가사가 별안간 떠올랐다. 이게 올해 초의 일이다.

이젠 좋고 나쁘고의 차가 아니라 개인의 취사선택이고 취향이라 본다. 그 며칠은 혼란스러웠지만, 주변에 커플이 생기면 기쁘다. 그러나 어째 내밀한 이야기까지 하는 친구년들은 모두 싱글일까. 나라고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만, 생겼단 소식을 알리면 이 책을 선물할 생각이다. 연애위험 예방백신 같은 <연애 오프 더 레코드>를 말이다.

연애에 관해 쓴 책들은 많다. 어디가면 연애할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고백 받는 법부터 식은 마음 데우는 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주는 책들이 연애 책 코너에 가면 차고 넘친다.  <연애 오프 더 레코드>은 그 들과는 많이 달랐다.

연애과정에 생기는 섹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에서부터 다르다. 역사적으로 사회는 여자의 임신 능력 때문에 남자보다 여자를 더 강하게 억압했다. 여자들은 신체를 과도하게 가리고, 남자들에게 차갑게 굴어 접근을 차단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사랑의 행위를 공상하더라도 그 생각이 발각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젠  <Sex and The city>가 나올 만큼 변한 시대다. 섹스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음담 패설류로 보이진 않으리라 생각된다. 타자 몇 번 두드리면 명치를 두드리는 창들이 튀어나오는 판에 이 장들은 너무도 건전하다.

그리고 건강하다. 책속에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차마 부끄러워서 말하기 망설 일지라도 필요할 건 말하라고 한다. 사랑이란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우리의 인생관을 더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일이다. 이럴 때하라고 대화가 있는 것이고, 이해력과 배려라는 게 있는 거다. 성이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말한다고 다 알아먹진 않겠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 직접 말하지 못하겠거든,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겠다. 

책 소재도 그러거니와 개성이 강하다. 연애라는 것 자체가 지극히 개인 행위이지만 연애 처세 실용서보다는 에세이 쪽이다. 연애 책에 매뉴얼이 있겠냐만은 표준의 범위에서 상대적으로 멀다. 에세이인데 연애에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다. 문제는 공감인데, 한 개성하던 무라카미 류가 섰던<성공연애특강>이 떠오른다. 너무 자기 색이 강한 탓에 연애특강이 아니라 인생관 특강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였는지 공감이 많이 가진 않았더랬다. <연애, 오프 더 레코드>도 연애에 참고는 되겠지만 남의 연애사에 레코딩 될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에도 솔직하라고 부추기지만 그 수위를 조절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가치롭다.

전체적으로 글이 탱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초콜릿 빛깔의 겉표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핫 핑크의 글자 색도 한 몫하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젖었다고 표현‘만’ 한 것이다. 바르톨린선의 분비 같은 생리적 매커니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아쉽다. 생리학자도 아니고, 성 교육책도 아니니 굳이 실을 필요 있겠냐 싶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생리주기처럼 누구나 알고 있더라도 한 번은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기왕 여성의 몸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말이다.

처음 플라시보님의 페이퍼를 보고 얼마 놀랐는지 모른다. 그녀의 글발에 감명하여 칭찬 페이퍼를 쓴 적도 있다. 글쓰기 좋아하고 책 내고 싶다는 알라디너들 속에 살다보니, 플라시보님이 진짜 책을 내실 줄은 몰랐다. 역시 낭중지추다.

그녀의 닉네임대로 믿고 있으면 그리 되는 것 같다. ‘서른 살이 되면 책을 낼 테야’란 야무진 꿈을 이뤄, 지켜보는 이에게까지 감동이다. 1세대 알라디너로 열심히 활동할 때가 있었다. 그녀의 서재를 매일 들락거리다 우연히 실명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중3때 읽은 양귀자의 <모순>이 떠올랐다. 책 주인공 이름이 ‘안진진’이었던 거다. 혼자 예지 몽을 꾼 듯 야릇한 공상을 즐기며 입을 봉하고 있었더랬다.

그녀가 플라시보가 아닌 박진진이란 그녀의 실명으로 책을 냈다. 책 날개에 작명 비화까지 실었다.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더불어 다음 책을 내실 때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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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8-06-2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리뷰를 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더구나 서재에서 보아 늘 익숙했던 이름이 좋은 말을 해 주니 더더욱 기쁩니다. (물론 약간 창피하고 쑥쓰럽기도 합니다만. 어쨎건 기쁜 마음이 더 앞섭니다.)

지적해 주신 부분. 생각 하지도 못했었는데 정말 그랬으면 책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론적 뒷받침은 주장을 훨씬 신뢰있게 포장 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 소흘한것이 저의 무식함 때문이라 덮고 싶습니다만. 실은 좀 더 성실하지 못했고 좀 더 노력하지 못한것의 결과인것만 같아 마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허나 이런 충고가 제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됨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봅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의 충고 덕택에 알게 된 것이 다행이며, 그래서 만약 또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에는 이런 부분도 참고해서 더 잘해봐야지 라는 마음을 먹어봅니다.

소설 [모순]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여러번 들었었는데 어쩐지 흔치 않은 제 이름이 등장한다면 분명 주인공은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테고. 마치 그게 주술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쓰잘없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모순을 주문 할 것 같네요. 님이 그 소설을 읽고 저를 떠올리셨다 하시니 궁금해집니다. (역시 인간은 판도라의 상자를 가만두지 못하는군요^^)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를 기원한다는 부분보다 저는 더불어 다음 책을 내실때 라고 저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아 주신것에 더욱 감사합니다. 물론 이 책이 잘 팔리면 님이 말씀하신 희망이 곧 현실이 되겠지요.^^

리뷰.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책을 나쁘지 않게 읽으셨다니 저로써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모과양 2008-06-2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추한 서재에 왕림해주시다니, 영광이여요. 플라시보님. 이렇게 신랄한 연애책을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책은 재미있게 봤습니다. 리뷰를 좀 더 세련되게 쓰질 못해서 부끄러울 따름이여요. 다음 책도 화이팅이여요.


플라시보 2008-06-26 10:52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책을, 그것도 연애에 관한 책을 낼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고 '아니 왜 날더러?' 하는 생각을 0.1초간 했으나 댐시 수락했어요. ㅋㅋㅋ 책을 내준다잖아? 하면서요. 호호호

플라시보 2008-06-2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양님. 당첨되셨어요. 일등은 아프락사스님이 하셨구요. 님은 제가 맘대로 뽑은 좋은 댓글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후훗. 그래서 읽고싶은 책 한권 선물하려 하는데요. 제 서재에 주소랑 이름 전화번호 그리고 읽고싶은 책 한권을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리뷰 다시 한번 감사했어요.^^

모과양 2008-06-26 12:27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영광을^^ 얼른 가서 남길께요.
 
토크쇼 화법 - 튀지 않고도 주목받는
김일중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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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란한 표지와 그에 대조되는 촌스런 제목 때문에 못 알아 볼 뻔했다. ‘쇼를 하라’는 세상이지만 그건 TV광고요, 일상적 대화는 토크쇼와 다르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화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서론은 방송가 이야기이고, 본론은 토크쇼 작가로 얻은 화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재미있고 쉽게 써놓았다. 결론은 말 잘 하는 게 아니라 뜻을 잘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허나 그걸 누가 모르나? 이러니 화법 책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달변가가 나오든 눌변가가 나오든 토크쇼는 균일한 품질로 매주 방송이 돼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참가자의 말솜씨와 상관없이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게 할 수 있을까? 말 이외의 요소들 중 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무엇일까? MC가 같은 말을 해도 이왕이면 더 세련되게 들리도록 하는 표현 방법은 없을 까?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토크쇼 작가의 업무였으며,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온 이런 나의 노하우를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 (p.6~7)

내로라는 토크쇼 작가면서 막상 자신의 책은 잘 내놓지 못해 안타깝다. 책을 읽는 도중 몇 번은 무릎을 쳤고, 몇 번은 메모를 해야 했다. 이렇게 써먹으면 되겠다며 몇 번은 노다지도 외쳤다. 다 읽고 나니, 임기응변의 그녀가 오버 랩 됐다. 그녀의 평소 행동이 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싸이 방문을 통한 개인정보 접근이라든지, 모임자리에서 이런 사람 꼭 있더라 하며 화제를 끄는 것이 겹쳤다. 그녀는 무의식 적으로 습득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다 알고 있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열등감에 위기감까지 더해졌다.

프로페셔널들의 대화는 하루 전날부터 시작된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의 사전 정보를 미리 파악해야 하는 건 예의를 넘어 의무다. (중략) “지난번 기사 봤습니다. 그 일 때문에 고생 좀 하셨겠던데요”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뵀을 때보다 휠씬 더 젊어 보이세요!” 같은 립서비스로 말을 꺼낸다면 이런저런 대화의 뜸들이기가 단번에 생략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최근엔 싸이월드 같은 개인 홈피도 꽤 유용하다. (중략) 대화 도중 “어제 싸이에서 봤는데 말예요. 홍대 앞 클럽을 자주 가시나봐요”같은 멍청한 질문은 하지 말자. 그건 마치, “제가 이제부터 똥피를 낼 테니 드시고, 꼭 스리 고 하세요”라며 고스톱 치는 것과 같다. 사전 준비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p.251~253)

대화할 때 당신의 토크에 보이는 사람들의 리액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주된 리액션이 “진짜 진짜?”라면, 당신은 토커(Talker)가 아니라 인포머(informer)이거나 리포터이다. 이런 리액션만 오가는 대화는 토크가 아니라 브리핑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토커가 누려야 할 가장 적합한 리액션은 “맞아 맞아!”다. (p.113)

내게 필요한 건 어떻게 개별포장하고, 맥을 집고, 듣는 이에 따라 변조를 하는 기술이었다. 이것저것 말은 많았지만, 대화라는 것이 서로에 대한 관심증가와 대화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난 언제 즐거운 토커가 되려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 세상에서 내말이 술술 먹히는 때를 기다리며 화법책을 들춰 봤다.

ps. 오늘 허일우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radio에 출현하였더군요.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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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비밀] 서평단 알림
프로이트의 비밀 - 프로이트의 소파가 털어놓다!
크리스티안 모저 지음, 안인희 옮김 / 해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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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다. 나의 게으름과 무능력함에 대해 화난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을까. 읽어야 할 책도 많다. 오프라인이든, 온 라인이든 서점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주눅이 든다. 화도 난다. 이곳 말고도 화낼 곳이 널렸다는 건 알지만 바보같이 여기 와서 화를 낸다. 그런데 더 바보 같은 건, 저렴한 이해력과 난잡한  필력으로 책 욕심을 낸다는 거다. 그것도 리뷰 시한이 정해진 서평단 도서를 말이다. 어제도 서평 도서를 덜컥 신청을 했다. 지금 내야하는 서평도서이나 잘 읽지. 아.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은 거냐. 어?

이게 저번 주의 푸념일기였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비밀>이 택배로 도착하자 신념일기가 써졌다.

열심히 보리.

열심히 봤고, 보다 보니 재미있었고, 재미있으니 열심히 하루 만에 다 봤다. 침상 맡에 두고 아껴서 봐도 좋았을 건 데 아쉽다. 책은 프로이드의 이력과 그에 대한 풍자로 채워져 있다. 컬러 삽화와 과장된 캐릭터가 이해를 돕는다. 정신분석이 학문으로 다지는 과정, 사생활과 제자와의 결별 등을 따라가다 보니 정신과학 아버지의 거리감이 줄어든 느낌이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자 저자가 바라는 바인 것 같다.

한번 친근하게 접근하고 나면 나중에 본격적인 이론서를 읽을 때도 훨씬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만화적인 캐릭터로 등장한 프로이트를 이미 만나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p.149)

오디푸스 컴플렉스네, 이드네, 아버지 살해네 등의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땐 기겁을 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인정하고 보니 그 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주구장창 정신과 책을 본 적이 있어서 정신과 책은 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다시 재미가 붙었다.

전에 읽다 만적이 있는 <살인의 해석>이 떠오른다. 프로이트가 피렌체, 융과 함께 미국에 가면서 겪는 이야기인데, 융과의 갈등내용이 나온다. <프로이트의 비밀>을 보니 그 내용이 나온다. <살인의 해석>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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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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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한 달 단위로 나오는 스케줄에, 몇몇의 약속을 잡고 나면 나머지 날은 모두 책 보는 시간에 할애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책 볼 시간을 못가지면 짜증이 난다. 한 달 중 며칠은 부스스한 머리로 나온 배를 벅벅 긁으며 책상에 앉아줘야 하는 거다. 덕분에 만남의 즐거움보다 책 읽을 때의 즐거움이 크면 난감하다. 누굴 만나다가 집에서 읽던 책이 생각나서 피곤한 척 한 적도 있다.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을 땐, 나이트 근무 때문에 사람만나는 약속이 없었다. 거짓말 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이 책이 왜 재미있을까, 뭣 때문에 날 웃게 만든 건지 생각해봤다. 첫째로 무거운 주제가 없었고, 둘째론 말도 안 되는 뻥이었지만 그렇게 맹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혼자 뒤틀어보고 상상하는 때가 많다. 혼자 낄낄대던 걸 같이 낄낄댈 수 있게 쓰는 능력이 부럽다. 작가란 그런 게 아닐 까. 가소로이 보이는 공상도 그는 쓰고, 나는 쓰지 않는 거.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답을 요구할 때 농담으로 응수 하는 능청스러움도 빛난다. 그의 의뭉스러움에 태클도 걸어 보고 싶지만, 내가 어수룩해서 잘 모르겠다. 어라, 진짜 모르겠다. 이게 어수룩한 건지 어수룩 하는 척 거짓말 하는 것인지. 소설가야 거짓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 알 수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독자는 되바라지고 싶다.

<무방향 버스>,<유리 방패>에는 음악이야기가 없지만 <악기들의 도서관>,<자동피아노>,<매뉴얼 제너레이션>,<엇박자 D>엔 음악에 대한 조예와 철학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래서 [김중혁의 뮤직비디오 낭독회]가 더 기대된다.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지, 6월 11일을 곱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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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 소설가 백영옥의 유행산책 talk, style, love
백영옥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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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같잖은 리뷰나 올리는 철없는 독자지만, 꼴에 한국문학을 아껴 철마다 문학 수상작들을 챙겨본다. 덕분에 발칙한 작가 한 분을 알게 됐다. 올해 세계 문학상 수상작<스타일>을 본 것이다. 꽃띠문학이네, 수상작 치고는 가볍네 어쩌네 하지만 한 번더 믿어 주기로 했다. <스타일>의 ‘글 스타일’에서 고상과 천박을 넘나드는 그 유쾌함을 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처럼만 써준다면 출간되는 족족 다 볼 듯하다.

일간지에 연재했던 걸 엮은 책이라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기 편할 거다. 분량이 많지 않은 데다, 짧은 시간에 감성과 이성의 유락(愉樂)을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어디선가 그녀가 <담다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읽은 터라, 나는 그녀의 산책이 어쩐지 방황처럼 보였다. (중략) 노래에 열광하며 앙코르를 외치는 팬들을 향해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V자를 그려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담다디>를 부르는게  아닌가. 그것도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겅중겅중’, 장난스런 개다리 춤까지 춰가면서 말이다. (중략) 과거와 우아하게 화해하는 법에 대해 최초로 가르쳐준 고마운 선배. (p.203~204)

좀 다른 이야기인데 백영옥씨가 골드 미스인 줄 알았다. 인물 사진도 그렇고, 글 자체가 30대 독신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인터뷰 기사에서 남편이 <스타일>의 초고를 읽고 재미있어 했다는 내용을 봤다. 결혼 했다고 해서 말괄량이 기질이 죽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이 든다. 오른쪽엔 헬륨풍선, 왼쪽엔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산책을 할 것 같다. 물론 구두는 마놀로 브라닉. 또각또각 구둣발이 경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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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6-0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걷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요. >.<

모과양 2008-06-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저.. 마놀로 블라닉은 인터넷으로 밖에 구경 못했어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