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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최윤아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평점 :
최윤아 작가님에게
왜 지금에야 써주셨어요? 당신의 결혼과 퇴사, 전업주부의 시간이 그 때쯤 시작되어 그랬겠지요. 책장을 넘기는 동안 기시감과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브런치를 찾아 구독신청을 했네요.
저는 책읽기 좋아하는 워킹맘입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몰아낸후, 글자 그대로 아껴서 읽었습니다. 한 문장씩 꼭꼭씹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어요. 퇴사 전후의 번 아웃, 전업주부의 그림자를 저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사표는 쓰지 못했고, 육아휴직을 걸치고 전업주부 생활을 했습니다.)
퇴사하지 않기 위해서 서점에서 자기계발서와 심리학 코너를 서성였다니, 저의 모습과 겹쳐서 놀랐습니다. 아무도 초보주부의 당혹스러움을 풀어낸 책이 없어서 작가님이 직접 쓰기로 하셨다는 부분에서 두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글이 고팠거든요.
막연하게 전업주부가 된 친구들을 부러워했는데, 그녀들은 말하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지켜보는 상사가 없어서 자유롭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휘발되는 가사 노동덕에 넘칠 줄 알았던 여윳시간은 성과표보다 냉정하더군요. 아이들은 자라는 데, 저는 무력감이 자랐습니다. 아이나 잘 키우라는 모호한 간섭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힘들긴 한데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었어요. 작가님처럼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 할 수 있었더라만 좋았을 텐데요. 그러질 못했네요.
전업주부가 제 길이 아니라는 건 금방 깨달았습니다. 역할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독히 우울했거든요. 전생에 무슨일을 해서 나는 이런 노역을 해야만 하냐며 원망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만 있는건 더 망하는 길인 것 같아 워킹맘으로 나왔습니다.
제 자존감의 팔할이 직장에서 수혈되고 있다는 걸 압니다. 마음껏 책을 질러도 눈치 보지않습니다. 소소하게 행복하네요. 앞으로도 당신의 느슨한것 같으면서도 팽팽한 문장들을 읽을 수 있기를... 진짜 책 너무 잘 쓰셨습니다.
p.45 그림자는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 사진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조리도구와 그릇을 동원했을지, 탄성을 자아내는 인테리어 사진을 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을 집었다 놓고 얼마나 자주 청소기를 돌렸을지.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렇게 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한 살림을 담은 SNS사진, 잡지, TV프로그램을 미국에서는 ‘도메스틱 포르노 Demestic pornography’라고 한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처럼 신문사에서 일하다 지쳐 집으로 돌아간 작가 에밀리 맷차는 저서 <하우스와이프 2.0>에서 "진짜 포르노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한 도메스틱 포르노가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낀 워킹우먼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해내고 있다"고 했다. 보다 보면 하고 싶어지는 포르노처럼, 도메스틱 포르노도 자꾸 보다 보면 살림을 하고 싶어졌다.
p.66 "회사 그만둔 거, 후회 안해?"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내가 가장 많이 받는 단골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요가를 해 보지 않고 사표를 냈던 건 좀 후회돼." 요가를 했다면, 그래서 요가가 자책과 불평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다면 어쩌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중략)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퇴사 상담을 해달라고 찾아오면 ‘운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운동 같은 한가한 소리하고 있네’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일단 운동부터 등록하고, 그래도 불행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중략) 불행은 내게 없는 것을 헤아릴 때 가장 손쉽게 찾아온다. 운동은 여태 많은 걸 잃었지만 최소한 ‘건강’만큼은 내게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운동은 가장 즉각적인 불행 백신이다. 퇴사를 망설이는 워킹우먼이나, 떠나온 회사를 자꾸만 돌아보는 전업주부. 저마다의 이유로 한껏 웅크린 그녀들을 헬스장, 요가원, 수영장으로 등 떠미는 이유다.
p.100 페이스북 최고운영자 셰릴 샌드버그는 저서 <린인>에서 벌써부터 육아 걱정을 하는 다섯 살 딸 때문에 속상해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슈타인의 사연을 소개한다. 하루는 페기의 딸이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마치고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왔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나처럼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대요." "도대체 그게 뭐가 문제니?" 페기가 묻자 꼬마 숙녀는 답한다. "우리 둘 다 우주에 나가면 아이들은 누가 돌봐요?"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는 ‘육아’를 의식한다. 이 말은 일과 육아 사이를 진자 운동하듯 오가는 여성의 방황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렇게 ‘엄마’(정확히는 전업주부 엄마)는 일찌감치 여자의 인생에 플랜B로 자리 잡는다.
p.120 남자의 재력을 따지면 한순간에 된장녀로 낙인찍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남자 돈 본다"고 밝혀왔던 친구였다. 내가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며 사람 구실 못하던 시절 결혼한 그녀와 수년 만에 재회했다. SNS로 훔쳐 본 결혼사진은 예상대로 호텔이 배경이었다. 당연히 재력가를 만나 결혼했겠거니 했는데 웬걸. 그녀의 입에선 신선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갚을 정도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돈 많은 남자와 편하게 살려는 마음은 완전히 접었어. 대신 한가지 결심을 했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잘 돼야겠다."
결혼 후 B는 기업의 핵심 부서(라고 쓰고 빡센 부서라고 읽는)에 자원했다. 여성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선 사원 때부터 커리어를 관리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푸념하는 그녀에게서 피로의 흔적대신 광채가 났다. 자기의 선택 대로 인생을 밀고 나가는 자만이 가진 당당함인 듯했다. (중략)
B는 결혼 적령기에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스스로 밥벌이를 책임 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돈’말고 다른 것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돈이 있어야 돈 말고 다른 걸 볼 수 있었다.
p.129 사랑에 관한 한 가장 신뢰받는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상대를 위해 노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존은 무언가를 나서서 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상대의 행동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다. 때문에 의존한다는 건 사랑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도 된다. 20대 초반에 잠깐 만났던 한 남자는 시험 때마다 매번 자신의 리포트를 대신 싸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나를 떠났다.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데 있기 때문에 기대로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자립을 이뤄낸 사람이야 말로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p.166 내 시간은 내 거라고.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실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이 부탁 저 부탁 들어주다 정작 ‘시간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 자리에 작은 알맹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요즘 좀 바쁘다. 새로 나온 책 홍보 때문에 약속도 일정도 많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끼는 이 분주함이 오히려 반갑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일만이 줄 수 있는 달콤한 피로의 맛을 이제야 음미하고 있다.
p.188 가까스로 무기력을 떨치고 개과천선하여 다시 열정적이고 성실하던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고 이 글을 끝맺고 싶지만 솔직히 그러지는 못했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관성이 셌다. 출간 계약을 맺고도 나는 자주 침대에서 뭉그적거렸고, 재미도 없는 특선영화를 틀어주는 TV앞에서 몇 시간이고 머뭇거렸다. 한 번에 바뀌지 않는 스스로에게 실망도 자책도 많이 했다. 이뤄내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왜 여전히 무기력한지 실체를 알지 못해 답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기력과 게으름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조바심을 내진 않는다. 잘 살아내고 싶은 의지가 있는 한 그건 무기력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무기력만큼 질긴 놈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쉽게 떨쳐낼 수 있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나’는 결국 ‘잘되고 싶은 나’에게 지게 되어 있다.
p.189 이제는 나는 안다. 무엇이 없는 상태가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 간절히 되고 싶은 상태가 진짜 자유라는 사실을. 무기력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 남은 쌀알만 한 의미라도 정성껏 붙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p.208 버지니아 울프가 글쓰는 여성에게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로 왜 하필 ‘자기만의 방’을 골랐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나머지 하나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이다.) 타인의 목소리가 차단된 공간만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분명 바다 같던 시간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내 인생엔 수영장만큼의 시간도 고여 있지 않다. 전업주부에게 ‘자기만의 방’은 그래서 필요하다. 속절없이 가족들에게 흘러 들어가 버리는 시간을 벽과 방문을 ‘둑’ 삼아 내게 고이게 하는 것. 그렇게 확보한 고독을 오롯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내가 성장하는 데만 투자하는 것. 그것이 결국 전업주부를 웃게 하고, 종국에는 방 밖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p.221 요즘도 일을 하다 보면 욱하고 ‘꿈 같은 게’ 생길 때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고, 강의를 하다 보면 김미경같은 스타강사가 되고 싶다. 이것들을 새로운 꿈 삼아 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하고픈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어떤 명확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꿈은 어느 단계에서 달성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방향이어야 한다. 명사형으로 종결되어 버리는 꿈 말고, 동사형으로 진행되는 꿈이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꿈에 ‘도달’하겠다고 기를 쓰고 과속하다 다치지 않고, 꿈을 이루고 난 후에도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꿈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실을. ‘꿈’이라는 단어는 언뜻 핑크빛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검붉은 핏빛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강박성과 중독성을 품고 있어서다. 꿈에는 ‘꼭 이뤄야 한다’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끈질지게 엉겨 붙는다. 그래서 자칫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보다 꿈을 더 위에 두는 ‘꿈 근본주의자’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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