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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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인도>는 연기력 없는 배우들, 옷 벗기는데 용 다 써버린 영화였다. 뒷맛은 쓰고, 오랫동안 헛헛했다. 그런데 그 저질 영화를 보던 중, 눈물을 흘렸다. 극장을 나오면서 얼굴이 상기됐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동행했던 이에게 왜 울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선 오해받기 쉬웠다. 내가 운 이유는 딱 하나,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서로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 전의 상황은 안타까웠다.

<달을 먹다>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울었다.

-향아!
내 색시가 되길 소망했다고, 하지만 늙고 불쌍한 어머니를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고, 아버지 최약국을 죽인 건 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였다고, 그렇다고 어미까지 잘못될 줄은 몰랐다고, 혼자이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도 너처럼 다리를 절고 싶다고, 그리고 힘들고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다.
- 향아!
(p. 111)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달을 먹다>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연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문과 향이를 비롯해 희우와 난이, 나중엔 스님이 된 제현과 하연까지 거슬러 오른다. 문학동네 수상작인 <달을 먹다>와 저급 영화<미인도>가 연관됐던 건 순전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애달음 때문이었다. 덧붙여 추가한다면 영 정조시대로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내간체 소설이라 담백하게 쓰인 것 같지만, 속은 짜고 맵고 쓰다. 단맛이 나는 곳은 딱 두군데 뿐이다. 태겸이 아내 묘연의 말없음을 심심해하며 아내 방을 뒤지는 장면과 여훤이 소박맞은 아내, 설희를 데리고 오는 장면뿐이다. 그 외에는 근친상간을 건드려 죄다 불안하다. 후인과 최약국도 불편하다. 아내를 귀이 여기면서도 냉담함 속에 방치했던 최약국은 딸로 인해 살해당한다. 마지막에 희우와 난이가 만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쯤에서 소설이 적당히 끝을 맺어준다.

뒷 표지를 덮고 나니 ‘사랑이 왜들 이러냐? 좀 편안 사랑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그 놈이냐고!’ 버럭 소리치고 싶어졌다.

ps 등장인물 각각의 시선 속에 조합되는 이야기라 복잡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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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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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새해다. 새해라서 달라지는 점은 없다. 자기개발 따위, 재수정한건 없고 막연했던 작년 목표를 올해 다이어리에도 다시 옮겨 놓은 게 다다. 늘 가는 서점, 더 둘러 볼 것도 없었지만 도서상품권도 생긴 김에 새 출발 기분 내느라 갔다. 주말 서점엔 사람이 많았다. 거기다 동행했던 이의 눈치를 보느라 매대 앞에 진득히 있지 못했다. 새해를 빌미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어느 경제 경영서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덜렁 들고 와버렸다.

‘치유’라.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붙들게 된 화두 중 하나다. 내겐 ‘공감’, ‘경청’, ‘심리’와 연결되는 단어다. 심리-에세이류는 꽤나 읽어 이젠 이력이 붙어버렸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내가 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을 재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너절한 내 리뷰에 대해서도 좀 너그러워졌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데, 상처보기가 쉽지 않다. 상처 돌봄 중 하나가 글쓰기다. 치유하는 글쓰기 교사로 참여한 저자가 쓴 이 책은 제목이 곧 내용이다. 상처가 많다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즐겨한다면 유용하게 읽을 부분이 많다.    

<비블리오테라피>의 저자 조셉 골드는 인간은 자기 경험의 한계나 자신의 스토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그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타인의 스토리라고 말한다(p. 92) 

맨 마지막 쳅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 삶이 우선이지 글이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글쓰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인간관계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중략) 상처의 완벽한 치유와 어떤 공격에도 끄덕없는 강력한 내공을 꿈꾸며 혼자 글을 써봤자 현실 속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금방 깨닫게 된다. 글의 치유력이 놀랍다고 해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주재료는 삶이고 보조 재료가 글쓰기다. (중략) 그 모든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주체는 글을 쓰는 당신 자신이다. (p.272)

책을 읽다가 어릴 때 겪은 처연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사건이다. 지금에 와서 털어놓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털어놓기엔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 두렵다. 그리고 기억 차체가 왜곡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진실을 알진 못할지라도 평생 묻어두고 가야는 할 것 같다. 그래서 더 갑갑하다. 세상은 아무리 말하라고 하지만, 말하지 말아야하는 일도 있다는 걸 다시 새긴다.

<<오타>>

p. 101 진실‘은’ 것은 의견을 말한--->진실‘된’ 것은 or 진실‘인’ 것은
p. 188 나와 갈등을 겪고 있는 다양한 상대가 될 수도 ‘한’다 --->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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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과양 2009-01-12 16:52   좋아요 0 | URL
네^^ 작년과 별반 차이 없이 잘지내고 있습니다. 속삭이신 님도 잘 지내셨나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란 섬의 아이
이네스 카냐티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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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가고 있다. 순탄과 비탄을 오갔던 올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제갈 길을 가고 있다. 그동안 뭘 하고 놀았는지 궁금해져 다이어리를 펼쳤다. 별 볼일 없는 일상과 시덥잖은 기록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럼 옛날엔 어땠던고?

처음 상경했던 06년은 직장에서 깨지고, 사람한테 치이고, 책으로 자위하던 히키코모리였다. 07년엔 집구석에서 책 100권과 놀았고, 올해엔 밖으로 돌아다녔다. 한 달에 1번 이상은 영화관에 들렀고, 뮤지컬과 연극을 간간히 봤으며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다녔다. 일상 기록만 변한 게 아니라, 생각도 같이 변했는데 추악해서 들춰보기가 싫다.

‘아이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어른은 보고 싶지 않는 것 까지 본다.’고 <건투를 빈다>에서 김어준이 말하더라.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긴 했는데, 다시 보기는 싫은 반쪽짜리 어른이 됐다.

먹먹하고 막막한 12월 초, <파란 섬의 아이>를 다 읽었다. 쉬운 문장과 반복적인 어구가 많아 쉽게 읽힌다. 그러나 또 쉽게 읽기는 어렵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엉엉 울고 싶어진다.

화자는 사생아 ‘마리’다. 그녀 엄마는 ‘미치광이 제니’로 불리는데 원래는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강간으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다. 나락으로 떨어진 제니는 종종 울었다.

엄마는 저녁에 불 앞에 앉아 종종 울곤 했다. 그럴 때 엄마의 두 눈은 눈물 빛깔을 띠었다. 엄마가 말했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나는 말했다.
“내가, 내가 있잖아요.”
그러나 엄마는 계속 울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원하도록 내 삶의 작은 순간마다 엄마를 사랑하고 싶었고, 어디든 엄마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엄마는 말했다.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지 마라.”
하지만 나는,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싶었다. 늘 엄마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p. 19~20)


책에서 밝은 구석이라고는 젖소 로즈와 마리가 함께 있는 잠깐과 피에르를 만나는 찰라가 다다. 마지막엔 그것마저도 비극으로 마감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우울하다. 미치광이로 취급해 모녀를 착취하는 마을 사람들과 힐난하는 외가만 있을 뿐이다. 됨됨이야 어떻든 마지막에 새 아빠 앙투안이 등장하는데, 잠깐의 안정을 찾는 듯 하더니 궁극을 쳐버린다. 책을 덮고 나니, 누구도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경고 없이 폐를 찔린 것처럼 황당하고 숨이 찬다.

내용 마지막쯤에 사촌들의 장난으로 이복동생 루이가 죽게 된다. 그런데 마리가 이렇게 회상한다. 
하지만 그 날은 그 집에 들어가지 말고 도망쳤어야 했다. 정말로 온 힘을 다해 도망쳤어야 했다. (p.234)

인상이 써졌다. 그리고 엄마 제니가 강간 피해자이면서도 왜 헤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지 그 의문이 해소됐다. 그 사건을 ‘내가 만약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하는 식의 자책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마리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마리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은 없어”라고.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려지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 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 반쪽짜리 어른도 되지 못했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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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책상으로 쓰려고 샀는데, 깔끔하고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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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심리학 - 마음을 읽어내는 관계의 기술
이철우 지음 / 경향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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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책을 자주 봤었다. 정확히는 대중적인 심리책을 많이 봐왔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왠 만한 심리학책은 다 본 것 같다.나도 어찌 못하는 이드(id)가 에고(ego)의 문을 마구 두드릴 때, 심리 책은 기꺼이 문지기 역을 맞아주었다. 나체의 이드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낯가림 심한 에고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말이다. 

이철우의 전 작<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를 예전에 읽었었다. 그의 문체는 비유와 유머가 적었다. 촉촉함을 넘어 눅눅하기까지 한 ‘사랑’이란 주제를, 참으로 건조한 문체로 썼었다. 노학자의 정갈한 책상이 떠오를 만큼. 난 그게 신기했다. <사람풍경>의 김형경이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김혜남 같은 격정적 감흥이 없는데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흥미롭게 읽게 만드는 힘이 신기했다.

이철우의 책이 또 나왔다. 인터넷으로 살까 말까를 많이 망설였다. 관계의 심리학이라니 이젠 웬만큼 알지 않은가 싶어, 잊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형서점에 들렀고, 설렁설렁 넘겨보다가 이 문장에 동하고 말았다.

앨리노어는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으로부터 3가지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나는 매력적이지 않다. 둘째, 나에 대한 누구의 애정도 지속되지 않는다. 셋째,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들조차도 나를 실망시킬 수 있다. (p.244)

이렇게 냉랭하기 이를 때 없는 내용을 관계의 실체라고 말해주다니, 저자다웠다. 인간관계에선 절대 내편은 없으며 상황에 따라 협력과 배신을 일삼는다고 했던 지인 K씨가 떠올랐다. K씨는 이 사실을 고2때 깨달았다고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무척 혼란스러웠었다고도 했다. K씨는 30대 중반의 애 아빠이고,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난 그때도 인정하기 싫어 무지하게 혼란스럽던 중이었다. 짧은 한 줄에서 무지 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책은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심리학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편하게 읽었다. 어느 심리학 책이라도 가치관에 대한 내용은 꼭 넣곤 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가치관 정의는 좀 달랐다. 큰 틀에서 보며 같은 맥락이겠지만, 두루 뭉실하게 자기를 잘 찾아보라 했던 책들보다는 구체적이어서 좋았다.

‘중요한 타자가 내가 그렇게 했으면 하고 바라고 원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의 행동 지침으로 삼는 것’이 가치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가야할 길, 그리고 참된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페르소나의 역할 밖에 못한다며 꼭 넘어서라고 한다. 지금의 나는 참된 나를 잘 찾은 것일까?

난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싶어 무지하게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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