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창문을 열였다 닫기를 반복한다. 비가 오는 날엔 라면을 먹는다. 어제 저녁에 라면을 먹었다. 점심으로 또 라면을 먹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ㅅ라면은 유통기한은 한참이나 지났다. 그런 라면이 아직 많이 있다. 버리지 않고 먹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라면이 많이 남았을까.  익숙한 라면이라 순서에서 밀린 것이다. 냉면과 ㄲ면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유통기간이 짧은 ㅅ라면을 먼저 먹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구매하거나 곁에 둔 책들을 차례대로 읽지 않으니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부탁을 받은 책, 선물받은 책, 리뷰를 써야 할 책으로 분류한다고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빨리 읽은 책은 리뷰를 써야 할 책일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해도 다시 연장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게 정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말을 건네는 표지가 있다. 내가 알아보기 전에 먼저 나를 알아봐 달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다, 이 말은 그럴듯한 말이고  눈에 띄는 표지가 있다는 거다.) 백영옥의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로 만난 『스타일』을 비롯해 그의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산문으로 만난 느낌이 좋아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란 제목의 소설도 궁금했는데 표지부터 말을 건넨다. 처음엔 장미꽃인 줄 알았다. 풍선이었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생각난다. 그 책에도 풍선이 있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뜬금없지만, 노란 장미!!
펼친 부분 접기 ▲

 

 

 내가 반한 표지(누구라도 반했을 것이다)는 모던 클래식인데 단연 녹턴이다. 유통기한이 있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했다. 책장에서 고요히 숨을 쉬고 있다.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이 책,  김이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르동의 ‘베일을 쓴 여인’이 표지다.

 

 

 

 

 

 

 

 

 

 

 

 

 

 

 

 

 

 비는 잠시 그쳤다. 다시 창문을 열고 점심을 먹어야 겠다. 라면을 먹을지, 김치찌개랑 밥을 먹을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 매콤한 쫄면이 먹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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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0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갈등하시다 점심은 뭘로 드셨어요?^^ 여기도 지금 비는 그쳤어요.
저는 노란 장미를 무지하게 좋아해요.^^ 서재지붕도 늘 참 이쁘다 생각했답니다.

자목련 2012-07-07 08:1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어제는 남은 김치찌개를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먹었어요.ㅎㅎ
저도 노란 장미 좋아요.
지붕 이미지, 넘 좋아서 바탕화면에 핸드폰까지 점령했어요.

지난 번 서재에 올린 벚꽃(미끄럼틀 사진, 정말 황홀했어요. 어떻게 그런 사진을 담을 수 있는지..

달사르 2012-07-06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오늘도 비가 왔나요? 여긴 비가 주룩주룩 장대같이 왔어요. 비 내리는 날엔 정말 라면이 땡기는 거 같애요. 힛. 메콤한 쫄면도 완전 맛있잖아염. 비 오는 날은 라면과 쫄면에게 양보하세요~ 뭐 이런 식으루다. ㅎ

유통기한 말씀하시니..왠지 유통기한에 얽매이지 않고 막 책 읽고 싶어지고 그래요! 꼭 읽어야되는 그런 책은 이상하게 자꾸 뒤로 미루고 싶고, 갓 받은 따끈한 책부터 먼저 막 보고 싶고 말이죠.

자목련 2012-07-07 08:08   좋아요 0 | URL
어제 내린 강한 빗줄기는 사라지고 이 아침에 미칠듯이 더워요.
유통기한은 잊어버리고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잠시 덮다가 다른 책을 읽다가, 또 책장을 뒤지다가, 그러고 싶어요. ㅎㅎ

신간 알림 문자나 메일을 오늘도 유혹의 손길을 날리네요. ㅋㅋ

2012-07-13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표지 예쁜 책! 근데 정말 이건 멋지군요...
그나저나 영주 시내에 진짜 맛있는 쫄면집이 있대요. 이번에 만난 친구말이, 영주 시장 가서 쫄면집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는군요. 담에 부석사 가게 되면 팁으로~ 알고 계시라고~~.

자목련 2012-07-13 19:02   좋아요 0 | URL
오늘도 하늘은 흐리니 조만간 비가 내릴 것 같아요. 아, 쫄면은 아직..
부석사 = 쫄면으로 기억될 듯^^
 

 

 알라딘에 들어올 때마다 13이란 숫자와 마주한다. 그리고 흔들린다. 주문을 해야 할까, 정성스럽게 선택된 단편과 에세이를 담은 사랑스러운 책과 텀블러가 자꾸 유혹한다. 아직은 유혹을 참아내고 있지만 장담은 못 한다. 그래도 지난 달에 멋진 작가들을 나는 가슴에 품었으니까(BORN TO READ 티셔츠), 자제해야 한다. 

 

 13년 전, 나는 알라딘을 알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당시 내 삶에 책은 없었다. 한 남자가 있었고, 나른한 오후가 있었고,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가 하루 종일 나오는 유선 방송이 있었다. 13년 전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알라딘을 알고 있다.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쓰고 이 공간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알라딘은 내게 그 이상의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13이라는 숫자가 행운의 숫자로 보인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 중 이벤트 도서도 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은 아니지만 가장 요염한 자태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은 바로,

 

 

 

 

 

 

 

 

 

 

 

 

 

 

 

 

 좋아하는 작가들이 참여한 포맷하시겠습니까?, 요즘 가장 핫한 책이라 할 수 있는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 나는 곧 그들과 만날 것이다. 어쩌면 고급 스텐 텀블러도 함께 만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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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7-0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편혜영 신작 골라놨어염. 13이란 숫자에 이리도 혹하다니요. >,<
저 텀블러는 색상 선택일까요. 무작위일까요. 아..주문해봐야 알겠지요. ㅎ

13년 전이라..음..저는 일단 학생일 때네요. 자목련님은 남자가 있었군요. 으히히히. 좋은거~ ^^

자목련 2012-07-04 21:4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13일이 행운의 숫자처럼 여겨져요.
텀블러 색상은 선택할 수 있는 듯해요.
조만간 주문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안되는데...
달사르님은 산뜻한 학생이셨군요. 음, 저는 올드한 사람이라서, ㅋㅋ

이진 2012-07-0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 신작이 이벤트 도서지요?
아싸. <태백산맥> 세트하고 합해서 이번에 질러야 겠어요. 그럼 간단하게 오만원도 넘고 좋고.
알라딘 이런 이벤트 할때마다... 하, 버티기 힘드네요.

13년 전이라..음..저는 일단 응애응해 하고 있을 때는 지났고, 한창 장난이 심했을 때네요.(따라하기... ㅎㅎㅎ)

자목련 2012-07-04 21:48   좋아요 0 | URL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괜찮나요? 지난 번 페이퍼를 보니...
소이진님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악동이었군요. 그 시간이 그립지 않나요, ㅎㅎㅎ
열공하시고, 좋은 책도 많이 읽는 밤이길 바라요^^

2012-07-05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5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7-0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13년 전 나는??
결혼하기 전 해였네요.ㅋㅋ
미쓰시절 기울어져 간다고 아쉬워 하면서 열심히 친구들과 수다떨고 그랬던 것같아요.
몇 달 전 그친구들을 만났었는데 친구네집 앨범에 우연히 경주가서 찍은 사진이 한 장 발견되었다고..
연인들만 탄다는 그 2인용 자전거에 자기신랑이랑(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나랑 타고 있었다고,왜 그랬냐고? 묻던데..기억나질 않아 멍 때리고 있으니...기억력 좋은 친구가 내가 시집가기 전이어서 추억 만들어 준다고 경주로 모두들 떠났는데..자전거를 타려니 내가 자전거를 못타 친구네 신랑이 대신 태워준 것이라고 서로 기억을 억지로 끼워맞춰 사건을 일단락시켰네요.휴~
제가 지금도 운전도 못하고,자전거도 못타는데 친구는 그걸 모르고 있었더라구요.ㅎㅎ
자전거 안배워두길 잘했어요.오해살뻔 했어요.
13년 전의 일을 떠올리니 갑자기 그일이 떠올라 발그레 했네요.ㅋㅋ

텀블러 멋지군요.유혹당하지 않으리라~ 심지를 굳히고 있다는~~
머그컵도 색깔별로 다 모아놓고 결국 두 개 다 깨트려먹고 하나 겨우 남겨놓고 열심히 쓰고 있어요.
참고로 텀블러 하얀컵에 자꾸 눈길이 가네요.ㅋㅋ
검은색에는 시가 적혀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마트에서 우연히 보냉컵을 봤는데 딱 저러한 스타일의 보냉컵인데 시가 적혀 있더라구요.
시로 된 물을 마신다?? 정말 물이 절로 맛있을 것같지 않나요??
어찌나 멋지고 고급스럽던지 사고 싶어 죽겠는걸 겨우 참았어요.
가격이 너무 쎄더라구요.ㅠ
지금도 마트가면 눈에 아른거려 죽을지경입니다.ㅠ

자목련 2012-07-05 20:15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우리를 13년 전의 시간을 돌아보게 하네요.
기억력 좋은 친구분이 없었더라면 큰 오해를 살뻔했네요.
저도 자전거를 타지 못해요.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알라딘 덕분에 13이라는 숫자가 주위를 맴돌아요,ㅎㅎ
어떤 시가 적혔을까, 궁금해져요.
컵을 좋아해서 걱정이에요. 아직까지는 마음은 단단히 먹고 있는데(이제 겨우 하루 지났으니...)

라로 2012-07-0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3년이 되었군요.
저도 13년 전에 알지 못했어요,,,저는 그때 미국에 있었고 한국을 많이 그리워 했고,,,
좋은 직업이 있었고,,,젊었고,,,ㅎㅎㅎㅎ
저는 지금도 제 30대가 가장 좋았어요. 가장 예뻤을때였어요,,라고 기억해요,,,ㅎㅎㅎ
덕분에 13년전을 돌아보고 올리신 책 중 몇 권 보관함에 또 담고,,ㅠㅠ

2012-07-06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 여성 작가들의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구경미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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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맞는 사람과 나누는 수다는 즐겁다.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고 때로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밀한 사이여야만 할 수 있는 주제일 경우 은밀한 감정까지 교류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그 주제가 은밀한 섹스라면 수다가 시작되기 전부터 떨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작가 여섯 명(구경미, 김이설, 김이은, 은미희, 이평재, 한유주)이 들려주는 수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를 읽기 전부터 설레였다.

 

 김이설의 <세트 플레이>는 주인공(성철) 고등학생의 탈선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채팅으로 만남을 유도해 아줌마와 관계를 갖고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이야기다. 갈취한 돈으로 피시방 게임비를 내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노래방에 가는 게 전부였다. 단순하게 돈이 필요했고 섹스는 어렵지도 않았다. 술에 찌든 아빠에게 맞아 반신불수가 된 형, 부업 상자를 끼고 사는 엄마, 아무도 성철에게 관심이 없었다. 성철은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올 법한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평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남녀 사랑과 욕망에 음악을 더한 이야기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을 때 서로를 탐구하고 다가가며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베토벤의 소나타 ‘크로이처’의 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섹스와 음악은 묘한 어울림이 있다. 때로 강렬하게 때로 부드럽게 음악이 흐르듯 사랑의 강약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때문에 이 단편은 사랑보다는 베토벤의 음악이 더 강하게 남는다.

 

 김이은의 <어쩔까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말한다. 양반댁 주인 아가씨와 노비의 사랑으로 조선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 때문에 전부를 버릴 수 있고,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언제나 은밀하고 달콤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도 있다. 한유주의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에서 사랑은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한 때는 절절하게 사랑했을 사이지만 남은 건 드러나지 않은 증오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구경미의 <팔월의 눈>에서 주인공에게 사랑은 사치였고 제목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은미희의 <통증>에서 주인공의 사랑이 그러했다.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가 상처이자 통증을 안긴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남자의 연인을 미워하고 질투한다. 남는 건 지독한 통증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사랑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사랑을 들라면 연민일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연민이었고 자기애였다. 열정적인 사랑이야 그 뜨거움이 가시면 시들해지지만 연민은 질기고도 끈질겼다. 상대가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 연민은 새록새록 자가발전하면, 스스로를 부추겨 세우고, 더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그렇게 상대에게 흐르곤 했다. 그 희생적 사랑도 자기만족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법.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행복해하는 점에서 모든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였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상처받고 아픔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p. 218~219

 

 여섯 작가가 들려주는 사랑 혹은 섹스는 은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팠고 쓸쓸했다. 어쩌면 은밀한 그것이 아닌 잊고 있던 어떤 지난 날이나 감정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달콤한 사랑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날카로운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속되는 통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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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4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화요일 추도 예배가 있었다. 돌아가신 엄마의 기일이었고 가족들이 모였다. 근처에 사는 동생, 멀리 사시는 작은 아버지와 고모가 오셨다. 예배가 끝나고 다과의 자리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돌아가신 엄마가 아니라 잔인한 가뭄이었다. 때마침 야구 중계를 시청하고 있는데 부산엔 비가 오고 있었다. 정말 부러운 비였다. 우리가 기대하는 비는 주말에 내린다고 했다. 주말을 기다렸다. 이유는 한 가지, 비 때문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다. 아주 많이 쏟아진다. 천둥 번개에 놀라 새벽에도 몇 번 일어나 앉아 있어야만 했다. 바람이 무서워서, 잠금 장치를 열심히 살폈다.

 

 여전하게 내리는 비는 요란한다. 기분이 좋은 소리다. 반갑고 예쁜 비다. 그러니까 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하루종일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7월이 되기 전에 내려줘서 더 좋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6월의 마지막 주문을 했다. 절제의 날은 사라진지 오래다. 많은 책은 아니다. 단 두 권의 책과 곧 만날 것이다.

 

 

 

 

 

 

 

 

 

 

 

 

 

 

 

 

 

 

 소설가 김선재가 아닌 시인 김선재의 첫 시집 얼룩의 탄생과 알라딘에서 이번 주까지 반값인 미셜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다. 얼룩이란 단어는 흔적처럼 마음을 끄는 단어다. 기다렸던 시집이다. 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들려줄지, 아니면 소설과 연장선에 있는(내 생각, 내 느낌이다) 시가 있을지 설레는 시간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면, 그 아릿한 맛을 기억한다면 이 책은 특별한 책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행복일까, 아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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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3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은 한 방울의 물도 내리지 않고 있네요. 뉴스를 보니 서울은 잠겨서 지금 난리라고 하던데 여긴 장마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비가 오질 않네요. 아침에는 해가 떠서 놀랐답니다. 남쪽이라 원래 비 많이 오는데...

자목련 2012-07-01 07:49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남부지방은 내내 비가 온다고 하던데.(예보엔 우산이 주렁주렁)
여기도 비가 그쳤어요. 다시 또 비를 기다리는 날들이 시작되었어요,우리 모두에게^^

아이리시스 2012-07-0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만 주렁주렁하고 여기 바람만 막 불고 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남부지방 사람)
저희 엄마는 일기예보가 아침하고 오후하고 저녁이 달라진다면서 신대륙 발견하신 양(ㅋㅋㅋ)

아...기일... 가족들 모여서 좋았겠어요. 그게 원래..그런 자리잖아요! 좋은 시간이었기를, 그리고 <뒷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표지 참 예뻐요. 얼른 읽고 리뷰 보여주세요^^

자목련 2012-07-04 00:02   좋아요 0 | URL
복숭아나 자두처럼 주렁주렁 달린 우산을 상상하는 일도 즐거워요.
여전하게 비를 기다려요.

해가 바뀔수록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안부나 소소한 일상을 나눠요. 수많은 뒷모습을 보고 있어요. 우선은 글보다는, 그 뒷모습들만^^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기묘하거나 슬픈 일은 어디서든 일어난다. 다만 알려지지 않을 뿐이고 그 주체가 내가 아닐 뿐이다.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기에 그저 함께 놀라고 아파하며 살아 간다. 그렇기 때문에 기이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다. 그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덟 조각의 삶이라 할 수 있는 여신과의 산책에서도 기이한 일은 벌어지고 여전하게 고통과 우울이 흐르고 삶과 죽음은 이어진다.

 

 기이한 일부터 말하자면 이지민의 <여신과의 산책>이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 여신에게 일어난 일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모두 부모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반복된 경험은 여신에게는 고통의 기억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간절하게 여신의 우연한 힘을 원하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아이러니 한 것, 그게 삶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삶 속엔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말하는 한유주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주인공은 암에 걸린 소설가다. 치료가 아닌 스스로 죽음을 실천하기 위해 이국의 나라에 도착한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쩌면 삶의 마지막 풍경일지 모르는 그곳을 묘사한다.

 

 폭이 좁은 2층 베란다에 젖은 빨래들이 널려 있다. 나는 잠시 빨랫감들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빨랫감들이 흔들린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5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므로 2층 베란다에 축 늘어져 있는 누군가의 빨랫감들은 나의 5분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그 5분 동안 빨래들은 전혀 마르지 않는다. 젖은 빨랫감들이 여전히 무겁게 늘어져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살의를 느낀다.’  p. 51

 

 소설은 마치 죽음을 마중하러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삶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애착을 느낀다. 고요하고 담담한 글을 통해 드러내지 않은 고통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죽음을 동반한 삶을 써 내려간 문장은 때로 슬프고 때로 아름답다. 죽음을 염두하며 사는 삶은 없겠지만 한유주의 소설은 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가장 현실적인 삶을 들려다 본 소설이다. 김이설의 <화석>과 박솔뫼의 <차가운 혀>는 전쟁같은 우리네 하루하루를 현실감이 있게 보여준다.  <화석>은 유부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20대의 뜨거운 사랑이 아닌 불륜의 관계를 통해 정확한 현실을 인지하게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 우리 시대에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도니 일상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죽은 후 화석으로 남아서라도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해결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는 허무한 삶 말이다.

 

 ‘나는 다시 파견 업체를 통해 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모카빵을 가위로 자르거나, 반찬 코너 시식대에서 주부들을 불러 모았다. 매일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남편의 술자리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선배 사무실에서는 첫 월급을 받았다. 여름휴가 계획도 세웠다. 아이가 바라던 대로 바다에 가기로 했다. 아이에게 생애 첫 바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참 기뻤다. p. 110

 

 <화석>이 30~40 대의 모습을 다뤘다면 박솔뫼는 <차가운 혀>를 통해 청춘의 시간을 말한다. 경쟁이 가득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변화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세상과 우울과 권태로 마주하는 화자의 하루는 쓸쓸하기만 하다.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나와 여자 친구와 사장의 관계를 통해 소통과 단절을 말한다. 나에게 시간을 활용하라고 말하는 사장은 어쩜 기성 세대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외침 같다.

 

 ‘여전히 나는 모든 게 같다고 생각해.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하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한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나는 내 시작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이 없었다. 늘 하루가 길기만 하다. 태어날 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 p. 325

 

 나머지 사랑과 이별로 아파하는 박주영의 <칼처럼 꽃처럼>, 인간의 의식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재치있게 그린 박상의 <매혹적인 쌍까풀이 생긴 식물인간>, 혼혈 여자친구와 방위병이 서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해이수의 <뒷모습에 아프다>, 가사의 미래에 닥친 대 한파로 동면하는 인간을 다룬  권하은의 <그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까지 다양한 삶이다.

 

 어떤 삶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고, 어떤 삶은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닮아 섬뜩했고, 어떤 삶은 한 번쯤 일어날 법한 일이라 놀라웠다. 조각 조각 이어진 삶 속 우연과 필연을 가만히 떠올린다. 때로 날카로운 통증처럼 때로 달콤한 사탕처럼 마주하게 될 우연과 필연이 계속 될 거란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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